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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팬덤 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조명하는 분석이 부쩍 늘어났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좋기만 할까. 오세연 감독은 <성덕>에서 2016년 J의 성추행 기사를 최초 보도한 기자를 원망했던 일기장을 발견한 후 이를 반성하는 메일을 기자에게 보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부정하기 위해 메신저를 공격하는 거다. 한편으로 팬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아이돌의 감정 노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세연 2016년 당시 미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동시에 ‘거짓 미투’를 의심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를 비하하는 ‘기레기’라는 욕이 널리 퍼지기도 했던 시기다. 당시엔 무혐의 판결을 받은 사건을 기사화해서 사람을 괴롭히는 게 나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기만 썼지만 다른 팬들은 박효실 기자님을 조직적으로 공격했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J의 팬이기 때문에 기자를 공격해도 된다고 정당화하는 거다. 나중에는 팬덤보다
[기획] 영화 ‘성덕’ 대담 ④ ‘주주 정체성’이 크게 심화되며 팬으로써 느끼는 복잡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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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경 |
경기콘텐츠진흥원 영상산업팀 매니저
| 모은영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 장현상 |
헤이리시네마 대표
‘인디한 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김영경 경기인디시네마의 지원 사업은 크게 배급과 상영으로 나뉜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상영관만 지원했다면 올해부턴 헤이리시네마와 협업해 오프라인 극장 상영도 병행한다. ‘인디한 편’은 상영 지원의 한 파트다. 좋은 작품을 중점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큐레이터 역할을 해줄 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감독 등 여러 전문가를 초대해 운영위원회를 만들었다. 많은 분들이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무료 상영으로 진행하게 됐다.
모은영 경기인디시네마가 지원하는 작품들이 일회적으로 상영되고 그치는 게 아니라 경기인디시네마가 선택한 우수한 작품을 극장과 연계해 소개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동안 개별 극장에 지원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공공기관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기획] 경기인디시네마 신설 프로그램 ‘나는 요즘, 인디한 편!’ 운영위원회 3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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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부터 유통까지, 독립예술영화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기인디시네마가 큐레이팅의 역할을 강화했다. 경기콘텐츠진흥원(이하 경콘진)은 매년 50편 내외의 작품을 선정해 경기도 내 극장 상영 및 온라인 상영관 편성을 지원하고, 총 1억5천만원 규모로 개봉예정작 P&A 비용을 지원하는 등 최대한 많은 작품이 개봉 및 배급 단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CJ CGV·KT와 업무협약을 맺고 매달 진행해온 ‘CGV·KT 상영 연계지원’ 사업은 오프라인(CGV 전국 18개관)과 온라인(올레tv 및 시즌) 내 고정관에서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산업 전반이 위축되고 OTT가 성장하는 등 최근의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신규 연계 사업은 보다 많은 관객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지난 6월 신설된 ‘나는 요즘,
[기획] 인디한 그대를 위한 다양성 영화의 발견, 2022년 경기인디시네마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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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그 세계에 스며들다
여기 모인 분들은 과거에 연예인을 사랑하고 덕질을 해본 경험이 있다. 이 마음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왜 우리는 팬질을 멈출 수 없었나. 몇번의 실망과 탈덕을 거치며 더이상 팬심을 갖지 못하게 된 분들이 있다면 그 사연도 궁금하다.
오세연 사고 같은 게 아닐까. 일부러 좋아하려고 물색해도 안 보일 때가 있는데 원치 않게 갑자기 스며들 때가 있다. 일단 그 세계에 들어가고 나면 한 사람을 파헤치는 것도, 그로 인해 온오프라인에서 알게 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좋아서 덕질 자체에 중독되는 것 같다. 연예인에게 애정을 쏟는 것도 어떻게 보면 습관이다. 덕후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고 그게 일상의 재미가 되는 사이클이 된다. 오빠의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웃음)
김다은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로 덕질을 했다. 사실 B그룹의 G가 매력적이었지만 그는 인기가 너무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G 옆에 붙어 있는 S를
[기획] 영화 ‘성덕’ 대담 ⓷ 기부하고 여론전을 펼치는 정치적 존재로 진화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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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자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저는 OOO의 팬이었습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대담에 참석하신 분들도 ‘덕질의 역사’를 포함한 자기소개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오세연 <성덕>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연출한 오세연이다. <성덕>은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스타가 범죄자가 되면서 어떤 충격에 휩싸인 경험을 한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일종의 기행문이다. 가수 J를 좋아했다.
김다은 <성덕>의 조감독을 맡은 김다은이다. 연예인을 떠나 어떤 대상을 너무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로 오늘 이 자리에 소환된 것 같다. 영화제에 가도 극영화를 주로 봤고, 다큐멘터리를 진지하게 공부한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자질이 부족하다며 거절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세연씨가 “저는 J를 좋아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거다.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범죄자가
[기획] 영화 ‘성덕’ 대담 ⓶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기 위해 바꿔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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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O를 좋아하다 자연스레 ‘패밀리’도 알게 됐다. 언제 데뷔할까 목 빠지게 기다렸던 막내 G는 6년 연습 후 어느 다큐멘터리를 거쳐 그룹으로 세상에 나왔고,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B그룹의 첫 콘서트 현장에 있었다. 좋아하지 않게 된 지는 꽤 됐다. 다 기억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 사건·사고가 있었다. 노래만 듣는다느니 개인 팬이라느니 둘러대던 때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후회하게 만드는 일이 터졌다. 봉인했던 과거를 고백하는 건 9월2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성덕>이 보는 관객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덕>에는 정준영과 빅뱅 승리, 슈퍼주니어 강인, 가을방학 정바비 등 그들이 범죄자가 될 줄 모르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인터뷰이로 출연한다. 연예인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 그가 범죄자가 됐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팬질 덕분에 가능했던 긍정적 경험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좋아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상에 매혹된 경험이
[기획] 영화 '성덕' 대담 ⓵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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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송환>에는 1992년 영상부터 2021년 촬영분까지 30여년의 시간이 담겼다. 어느 시점에 영화를 완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나.
= 2006년에 영화가 한번 엎어지고 2013년 외국 프로덕션 합작 계획도 무산됐다. 그러다 2019년 남북미 정상 회동으로 송환이 추진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 부랴부랴 촬영을 다시 시작했다. 그 열기가 식었을 때 선생들의 실망이 굉장히 컸고 송환되는 장면은 이제 찍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엎느냐 송환이 안되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끝내느냐 갈림길에 섰다. 영화에 2020년 ‘송환 20주년 기념 2차 송환 촉구대회’가 나온다. 행사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장기수 선생님이 10명 남짓 계시더라. 영화에서는 자리가 간소했다고 표현했지만 초라했다. 어떻게든 빨리 영화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끝내지 않으면 다 돌아가신 후에 끝낼 거야 뭐야. 이렇게 생각하니까 좀 아찔하더라. 이듬해 송환 21주기 되는 날 김영식 선생이
[기획] ‘2차 송환’ 김동원 감독, “촬영은 계속된다.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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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감독의 <2차 송환>은 2차 송환을 기다리는 김영식 선생을 비롯한 장기수 분들과 북한을 방문해 1차 송환된 조창손 선생을 촬영하길 염원하는 김동원 감독의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나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어 <2차 송환>을 봤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푸른영상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다큐보기’ 행사를 했다. 그때 김동원 감독이 <2차 송환>의 편집을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벌써 몇년 전의 일이 되었다. 나는 <2차 송환>이 어느 시점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마무리가 됐을지 무척 궁금했다. 전작 <송환>(2003)은 1992년 김동원 감독이 아는 신부의 부탁으로 지방의 한 요양원에 계신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 김석형 두분을 감독이 사는 동네로 모셔오는 일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내레이션(감독의 목소리)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려준다. 김동원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기획] '2차 송환' 기약 없는 희망, 그러나 김 선생은 오늘도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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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은 ‘송환 속편’이었다. 2000년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송환>의 뒷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었다. 옥살이 중 고문에 못 이겨 전향했던 장기수들이 2000년 송환 명단에서 제외됐고 이들은 ‘폭력에 의한 전향 무효선언’과 함께 2차 송환 운동을 시작했다. 김동원 감독은 이 운동을 좇아 이들의 2차 송환 과정과 더불어 북한에 먼저 송환된 장기수들도 촬영하려고 했다. 정권이 5번 바뀌는 동안 2차 송환 가능성도, 김동원 감독이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송환 속편’은 이루지 못한 <2차 송환>이 되었다.
2차 송환 운동이 시작된 지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46명의 송환 신청자 중 생존자는 9명뿐이다. 평균 나이 91살. 실패에 실패를 반복하고도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2022년에 도착했다. <2차 송환>은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도 아니고 코미디나 로맨스의 배경도 아닌, 아주
[기획] 김동원 감독의 '2차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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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프랑스 파리 출생.
프랑스인 의사 아버지와 스위스인 은행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7구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위스로 건너가 1940년 스위스 국적 또한 취득. 1948년 부모가 이혼하자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1949년
소르본대학교 입학, 민족학 전공.
소르본대학교가 있는 파리5구 카르티에 라탱을 중심으로 에릭 로메르가 주도하는 영화 연구 모임, 시네 클럽(ciné-club)에 심취. 그의 곁에는 훗날 <카이에 뒤 시네마>의 주축이 되는 앙드레 바쟁, 누벨바그의 주요 이름들인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등이 함께였다.
1950년
영화지 <가제트 뒤 시네마>(Gazette du cin´ema) 창간 멤버.
시네 클럽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1950년 6월부터 11월까지 총 5개호 발간. 만 19살의 고다르는 한스 루카스라는 필명으로 뛰어난 문학적 지식이 돋보이는 글을 썼다. 조지프 L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①] 연표로 보는 고다르의 생애 - 출생부터 1967년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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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13일 누벨바그의 거장 장뤽 고다르가 60년이 넘은 커리어와 120편이 넘는 작품을 뒤로하고 91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SNS에 연이어 올리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심경을 올린 이 중 한명이다. “(고다르는) 프랑스영화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거장이 되었다. (…) 우리는 천재의 시선, 국보를 잃었다”라고 썼고, 현 프랑스 문화부 장관 리마 압둘 마락은 트위터에 “‘인생에서 가장 큰 포부가 뭐죠?’ ‘불멸의 존재가 되어서, 그런 다음 죽는 거죠’”라는 <네 멋대로 해라>(1960)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고다르는 대담하고, 자유롭고, 불경스러운 세상을 추구하며 영화의 모든 규칙을 불태워버렸다”라고 썼다. 전 문화부 장관이자 현 아랍 세계 연구소 소장인 자크 랑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다르, 어두운 상영관의 영원한 지배자”라고 쓰며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①] 장뤽 고다르 감독 사망 관련 프랑스 현지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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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 뮤직>(2004)
<아워 뮤직>은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세개의 장으로 나뉜다. 연옥편은 사라예보를 주 무대로 삼는다. 사라예보는 1차 세계대전의 발원지이자 대량 학살이 벌어졌던 역사적 상흔의 장소이기도 하다. 고다르는 이 영화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숏과 역숏으로 구성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스라엘은 픽션 소재가 됐고, 팔레스타인은 다큐 소재가 되었다는 말처럼 두 민족의 관계에는 동등하게 마주 볼 수 없는 비대칭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오히려 고다르는 팔레스타인과 마주 볼 수 있는 자로 인디언을 불러들인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는 존재들간의 마주침을 통해 역사를 다시금 사유한다는 점, 숏-역숏이라는 몽타주를 역사의 방법론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아워 뮤직>은 <영화의 역사(들)>의 정신을 잇는다. 고다르는 역사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 가운데 팔레스타인을 위한 영화의 자리, 즉 팔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①] 장뤽 고다르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다 – 2000년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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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1967)
매춘이라는 고다르의 주제적 관심사를 드러내는 예시로 이 영화를 들 수도 있겠지만, 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형식이다. 마리나 블라디의 첫 등장 장면에서 영화는 유사한 구도의 장면을 두번 보여준다. 그녀의 옆모습을 보여주며, 첫 번째 내레이션은 배우로서의 블라디에 관한 사실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장면이 다시 시작되고, 두 번째 내레이션은 여자를 쥘리엣 장송이라는 인물로 소개한다. 영화는 확정적인 내러티브로 함몰되지 않는다. 고다르가 내러티브를 원죄로 여겼다는 장피에르 고랭의 증언처럼, 영화는 의미화되는 것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다. 연출에 대한 사적인 의견을 말하는 내레이션의 틈입은 영화를 불균일하게 만들며, 자본주의가 점령한 도시의 공적인 풍경과 관계 맺는 에세이-쓰기를 수행한다. _김예솔비 영화평론가
<만사형통>(1972)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이 형식적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①] 장뤽 고다르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다 – 누벨바그, 그 이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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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1960
엄청나게 훌륭한 여러 편의 영화들을 남기고도 여전히 데뷔작으로 수식되는 감독. 고다르 자신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네 멋대로 해라>의 명성이다. 약 9만달러의 제작비로 23일간의 제작 기간을 거친 장뤽 고다르의 데뷔작은 영화 역사와 프랑스 시민사회의 세대를 갈라놓았다. 비평가 고다르에게 추앙받은 잉마르 베리만 같은 작가조차 <네 멋대로 해라>를 “불편하고 자아도취적인 영화”라며 난감해했다. 할리우드 필름누아르, 갱스터, B무비를 불러들여 철저한 참조와 모방, 전복과 재해석의 영화 만들기를 선포한 고다르가 만든 캐릭터는 험프리 보가트를 동경하는 좀도둑 미셸과 거리에서 신문을 파는 미국인 패트리샤다. 이들은 철저히 계획된 무의미, 권태, 즉흥성을 획득한 채로 다가올 68혁명의 대변자로 자리 잡는다. 누벨바그의 호기는 엔딩 신에서 배우 장폴 벨몽도가 남긴 한마디, “역겨워”로도 축약될 수 있다. 점프컷의 유의미한 쓰임을 보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①] 장뤽 고다르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다 – 1960년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