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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기는 연기고, 나는 나예요, ‘CUP Vol 2: 배우 김남길의 대화집 뒷:) 담화’
정재현 2024-02-13

- 외모를 떠나 배우에게 얼굴은 감정을 표현하는 주요 도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산입니다. 배우 김남길이 가장 많이 듣는 수사는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이에요. 본인의 얼굴에 관한 혹자들의 평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이라는 평, 극찬이라고 생각해요. 데뷔 초창기엔 제 얼굴이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선도 악도 공존한다는 건 결국 백지 같은 얼굴일 수 있잖아요. 나란 배우의 존재를 하루빨리 알려야 하는데 내 얼굴엔 명확히 특징이 없는 것 같아 고민했죠. 지금은 당연히 장점이라 여겨요. 우선 식상하지 않고요, 선한 얼굴로 악역을 연기하거나 악한 얼굴로 선역을 연기하는 반전도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악과 선의 전형성도 얼굴에 적당히 머금고 있고요. 배우는 살아온 흔적과 생각이 얼굴에 조금씩 묻어나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제 감정에 더 솔직하려 하고,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은 관찰을 통해 연구하죠. 어릴 땐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차피 생각과 마음이 얼굴에 반영될 거라면 나의 내부를 어떻게 운영해나갈지를 고민해요.

- 흥선대원군으로 특별 출연한 <도리화가>(2015)를 보면, 신재효(류승룡)와 막걸리를 대작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 장면을 두고 “음주 신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때 술을 마시는 순간 그건 ‘연기’가 아니게 된다”고 얘기한 게 기억에 남아요. 기본적으로 연기는 가장(假將)하는 행위고, 배역과 배우 사이 간격을 분리한 채 접근하는 게 옳다고 믿는 것 같아요. 스스로 “나는 배우가 천직”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까닭도 연기와 현실의 이격을 분명히 구분하는 배우관으로부터 나오는 걸까요.

= 뭐든지 나를 투영해야 연기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흔히 ‘메소드 연기’라고 하는 접근법이요. 그런데 저는 메소드 연기가 무언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메소드 연기에 실패한 배우예요. 늘 진정성을 중시하지만 근본적으로 연기는 연기고, 나는 나예요. 하지만 배우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삶 전부를 연기에 할애해요. 슬픈 일이 있을 때 화장실 거울로 제 얼굴을 보면 ‘이게 진짜 슬픔이구나. 이런 눈으로 슬픔을 표현해야 하는구나’ 같은 생각이 절로 들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동료들과 공유하면 모두 숙연해져요. 배우라면 다들 저와 같은 경험이 있는 거죠.

- 2022년 방영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확실히 전에 못 보던 김남길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었어요. 작품을 다시 보니 굵은 웨이브 파마를 한 송하영 경위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흔히 경찰 하면 생각하는 머리 모양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했고 무엇보다 하영의 모티브라 알려져 있는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스타일과는 너무 달라 신선했어요. (웃음)

= 하영의 머리는 두 가지 이유에서 탄생했어요. 우선 대개 형사들은 머리에 신경 쓰지 않으려 짧게 자른다고 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2002년 월드컵 당시 안정환 선수가 머리에 신경 쓰지 않기 위해 파마를 했다는 일화가 생각나지 뭐예요. 또 제가 미국 <CBS> 드라마 중 <멘탈리스트>를 좋아했는데 주인공인 프로파일러 패트릭(사이먼 베이커)이 곱슬머리였어요. 처음 파마를 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주변에선 “미쳤나봐!”라고 했는데(웃음) 막상 파마를 하니 평소엔 순해 보이다가도 프로파일링을 할 땐 대비 효과가 생겨 하영만의 날카로움이 두드러지더라고요.

- 김남길씨의 연기 커리어는 연극무대에서 시작했습니다. 무대예술을 향한 동경으로 연기를 시작했다는 일화도 유명하고요. 다시 연극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 너무 하고 싶죠. 적정한 때에 좋은 작품으로 무대 복귀를 하자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어요. 다시 연극을 한다면 현대극보다는 고전극을 해보고 싶어요. 연극배우로 설 때와 달라진 지금의 연기 톤으로 고전의 대사를 소화하면 얼마나 새로울지 혼자 기대도 하고요.

- 지금 당장은 김남길씨가 연기하는 <맥베스>가 궁금하네요.

= 실은 <맥베스>를 준비했던 적이 있어요. <버드맨>처럼 <맥베스> 공연 직전의 분장실 풍경부터 출발해 <맥베스> 공연 전체를 롱테이크로 찍는 영화였어요. 여러 사정으로 무산돼 아쉬웠어요.

- 얼마 전 KT&G상상마당 시네마에서 김남길 전용관이 열렸어요. 만약 영화제에서 김남길 특별전을 열 테니 그곳에서 상영할 세 작품을 골라 달라는 요청이 오면 어떻게 큐레이팅하시겠어요.

= <무뢰한>(2014), <후회하지 않아>(2006) 그리고 마지막 자리에 무얼 넣을지 계속 갈등이 일지만 지금은 <기묘한 가족>(2018)이요. <기묘한 가족>은 해외영화에서 주로 등장한 오컬트 소재를 한국의 가족드라마로 풀어낸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데, 흥행을 잘하지 못해 아쉬워요. <후회하지 않아>는 제 영화 데뷔작이고, 2006년 당시 퀴어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터라 의미가 남달라요. 1억원으로 힘들게 만든 영화기도 하고요. <무뢰한>은 제가 너무 좋아해요. 이상하게 <무뢰한>은 개봉 당시엔 “옛날 영화 같다”는 평을 받았는데 지금 다시 보면 컷 전환 속도나 촬영이 또 동시대적이에요.

- 일기 쓰기를 포함해 글 쓰는 걸 좋아해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고요.

= 글쓰기를 진짜 좋아해요. 어릴 땐 정말 많이 썼고요, 한동안 일기를 못 썼는데 다시 일기를 써야겠다고 최근에 다짐했어요.

- 혹시 캐릭터를 연구할 때나 시간이 흐른 뒤 연기 경험을 복기할 때도 글을 써가며 정리하는 유의 배우인가요.

= 네. 안 그래도 얼마 전 서재를 정리하다 옛 대본을 읽게 됐는데 과하게 끄적여뒀더군요. (웃음) 한동안은 3단계에 걸쳐 글을 쓴 적도 있어요. 처음 캐릭터 빌딩에 들어갈 때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제 초기 관점을 적어두었고요, 촬영 중간엔 내가 처음 세운 계획으로부터 요동하지 않기 위해 배역에 관한 글을 썼어요.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를 떠나 보내는 의미로 글을 썼고요.

- 지금 <열혈사제2>를 한창 준비 중이시죠. <열혈사제>의 연출 B팀과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메인 연출인 박보람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공개 가능한 선에서 <열혈사제2>가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들려준다면요.

= 박보람 감독과 두 작품을 해보니 소통이 잘되는 연출자라는 인상을 받아 다시 한번 함께하고 싶었어요. <열혈사제>에 출연했던 다른 배우들도 <열혈사제2>에 박보람 감독이 합류하면 다시 이 작품을 찍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고요. <열혈사제2>에 대한 기대는 오랫동안 들어왔어요. 더 빨리 시즌2가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벌써 5년이 흘렀네요. 많이들 기대를 해주시니 그 기대를 충족하고 싶어요. 바라건대 유쾌한 작품이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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