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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는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간부인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를 통해 정보기관 내부의 혈투를 그린다. 취조실의 이중유리는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보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정보기관은 그 반대로, 밖의 구석구석을 탐지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불투명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정보기관의 특징을 이용해 영화는 가정과 상상, 허구로 평행 세계를 만들었다. <헌트>는 한참 지나간 시대를 다루면서도 <남산의 부장들>보다 <26년>에 가까이 있다.
1983년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에 대한 테러 시도가 등장하는 도입부는 이 영화가 근본적·전반적으로 픽션임을 알린다.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없다. 영화 초반의 대통령 방미와 종반의 아웅산 테러는 실제로 각각 1983년 11월과 10월에 있었다. 영화 내내 도사린 ‘베드로 사냥’ 프로젝트도 창작인데, 극중 대통령의 세례명인 ‘베드로’는 실제
<헌트>와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 :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탄피처럼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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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측면에서 예상을 기분 좋게 비켜간다. 배우 이정재가 첫 장편영화 연출작에서 기획·공동 각본·주연까지 맡았다는 점, 그가 필연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동반할 수 있는 전두환 신군부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 신인감독이 200억원대 제작비로 한국에서 흥행과 거리가 먼 첩보물에 도전했다는 점, 그런 작품이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정우성과 이정재가 스크린에서 재회한 작품이 됐다는 점까지. 8월10일 개봉을 앞둔 <헌트>가 이처럼 성공적인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한 리뷰를 전한다. 더불어 김수민 시사평론가가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에 관해 보낸 글을 덧붙인다.
전두환 대통령의 사진으로 만든 인형이 불타오른다. 워싱턴 교민들의 시위를 지켜보던 CIA 태평양 아시아 지부장은 “이게 다 전두환 신군부가 무력으로 광주를 진압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며 주한 미군은 물론 아시아 내 미국 입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
‘감독’ 이정재의 첩보물, 베일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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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의 리얼리티를 찾다
‘관객이 체험한 것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한재림 감독과 스탭들의 목표는 확실했고, “모든 회의는 ‘무엇이 더 리얼한 재난 상황인가’를 묻는 것으로 귀결됐다”.(이목원 미술감독) <비상선언>팀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플라이트 93>과 해외 다큐멘터리들을 참고하며 다큐멘터리의 톤을 잡아나갔다. “필름 시절의 다큐멘터리는 특유의 질감이 있다. 조명을 제대로 치지 않아서 입자가 거칠어지는 건데, 솔직히 요즘 디지털 렌즈는 감도가 좋아서 밤에 찍어도 그리 거칠어지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는 일부러 후반작업을 통해 거친 질감을 덧씌우는 효과를 넣었다. 또 영화적인 시선이라기보다는 멀리서 지켜보며 포착하는 시선, 보기 좋게 만들어서 찍는 게 아니라 실제 거리감의 확보를 중시했다.”(이모개 촬영감독)
빅터 빌에서 공수한 보잉777 부품
<비상선언>의 기체 내부를 만든 이목원 미술감독은‘스카이코리아’의 내부 모습이 실제 보잉7
이모개 촬영감독, 이목원 미술감독이 말하는 ‘비상선언’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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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의 중첩, 뜨거운 믿음과 풍자를 동시에 꾀한 <비상선언>으로 한재림 감독이 5번째 영화를 선보인다. 중반부까지 돋보이는 항공 재난물로서의 준수한 완성도와 고강도 스트레스 상황을 장시간 끌고 나가는 후반부의 전개가 더해져 <비상선언>에 대한 세간의 추측과 평가는 개봉 당일부터 꽤나 엇갈리는 모양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이 영화가 뜨거운 바이럴을 낳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재림 감독은 테러영화의 스릴로 영화를 이륙시킨 다음 재난 상황의 극한적 속성과 동시대 한국 사회의 살풍경에 대한 모사로 항로를 만든다. 이후 거듭되는 착륙의 위기 속에서 <비상선언>의 비행기가 최후의 연료로 택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용기, 그리고 집단의 희생 정신이다. 한재림 감독은 이 모든 것이 실제 현실의 일면이 불러낸 상상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을 거쳐, 어렵사리 회복한 극장가에 1년 만에 안착한 재난 블록버스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영화보다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은 우리 시대 재난의 축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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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행 비행기에 제약회사 출신의 테러리스트가 몸을 싣는다. 잠복기를 극도로 줄인 바이러스가 살포되자, 거대한 보잉777의 복도를 따라 승객들이 하나둘 기침과 가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한번 올라타면 착륙하기 전까지 꼼짝없이 상공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기내 스릴러의 제약을 극대화하고, 지상에서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개인과 시스템의 혼란을 좇은 <비상선언>은 그 규모와 캐스팅(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은 물론, 재난 상황이 내포하는 지루한 유예의 시간과 고조된 감정까지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장면 너머에 쏟아부은 열정과 작품을 향한 호불호에 대한 생각까지, 한재림 감독을 만나 직접 들으며 뒷편의 야심과 공력의 과정을 정리했다. 한국에 전에 없던 사례를 처음 시도한 항공 스릴러로서의 도전은 이모개 촬영감독, 이목원 미술감독의 제작기로 전한다.
전례 없는 재난의 체험: 한재림 감독의 항공 스릴러 ‘비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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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부터 8월25일까지 진행되는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은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의 주요 사업인 영상 복원 사업의 결과물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올해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에선 4K 리마스터링된 이창동 감독의 장편 6편과 단편 <심장소리>를 상영하는 섹션이 마련됐다. 기획전의 일환으로 지난 7월23일,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1관에서 ‘복원의 재구성: 이창동 전작 4K 리마스터링 포럼’이 열렸다. 전석 매진된 이날 행사에는 수많은 관객이 참여해 <심장소리>를 관람하고 포럼을 경청했다. 영화 상영 전 모습을 드러낸 이창동 감독은 감사 인사와 함께 <심장소리>의 제작 과정을 전하고, “원본 복원 작업은 영화산업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하며 모두 발언을 마쳤다. <심장소리>가 상영된 뒤 김홍준 영상자료원 원장이 모더레이터를 맡고 박홍열 촬영감독, 조해원 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장,
‘복원의 재구성: 이창동 전작 4K 리마스터링 포럼’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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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일 개봉하는 <비상선언>은 몰입력 있는 재난 상황과 뜨거운 감정의 온도, 기꺼이 모사와 풍자의 대상이 될만한 한국 사회의 현주소까지 위태로운 항공기의 궤적 안에 아우른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지난해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첫선을 보인 <비상선언>은 <더 킹> <관상>의 한재림 감독이 대규모 항공기 테러물을 표방하면서 초호화 캐스팅의 위용 역시 자랑한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한 대테러의 아수라장 속에서 흥미로운 잔해들을 추려내 다시 엮어보았다.
<비상선언>은 완력이 센 영화다. 이 비행 경험에 한번 동참하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이끌려가 진이 다 빠져서야 나올 수밖에 없다. 2시간 20분 동안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서술만은 아니다. <비상선언>이 주는 피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한국형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 드디어 이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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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이 개봉 전부터 화제다. 전편 <명량>이 한국영화사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 역시 높다. 또한 으레 그렇듯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되면 실증과 왜곡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 때문에 감독이나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괜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할 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번 작품은 전편 <명량>이 그랬듯 탄탄한 역사 고증과 감독의 적극적인 해석 그리고 국민들의 감정적 기대 사이에서 안전하면서도 과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 수군과 왜군의 군사력이 엇비슷하던 때
7월 동풍이 세게 불어 항해하기 어려웠다. 고성땅 당포에 이르자, 날이 저물기로 나무하고 물 긷고 있을 때 피난하여 산으로 올랐던 그 섬의 목자 김천손이 우리 함대를 바라보고는 급히 달려와서 말했다. “적의 대·중·소선을 합하여 70여척이 오늘 낮 두시쯤 영등포 앞바다에서 거제와 고성의 경계인 견내량에 이르러 머무르고 있다”고 하므
역사학자가 본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충분히 독창적인 해석 혹은 역사 고증에 대한 강박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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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명량>에 이어 <한산>은 권유진 의상감독이 김한민 감독과 함께 작업한 세 번째 작품이다. 시대물 작업을 할 때마다 당시의 의복 유행과 관련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한다는 권유진 의상감독은 조선군 투구에 적힌 문구, 각기 다른 형태의 갑옷을 입은 왜군들의 배경 등 극중 장수들이 현재의 의상을 갖춰 입게 된 경위에 관해 꼼꼼히 설명해주었다. 의상과 관련된 문헌 한줄을 극중 의상에 디테일하게 구현해내는 권유진 의상감독의 집념은 <한산>에 리얼리티를 더해주었다.
철갑과 두정갑
“<한산>과 <명량>은 갑옷부터 많이 다르다. <명량>을 찍을 당시 실제 임진왜란 때 입던 철갑이 출토됐다. 그래서 그때 고증에 따라 전부 철갑으로 바꾸자고 이야기가 됐다. 반면 <한산>을 찍을 땐 두정갑으로 가자고 했다. 두정갑은 방어력이 가장 좋은 갑옷이라 할 수 있다. 갑옷에 점점이 박혀 있는 징은 본래 못이
‘한산: 용의 출현’ 권유진 의상감독 “고증 통해 얻은 극강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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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대단했고 이걸 구현하는 게 관건이겠다는 생각을 했다.”(정성진 VFX 슈퍼바이저) 이순신 장군의 일기 <난중일기>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이순신에 관한 다큐멘터리, 그 밖의 영상 자료들 등 정성진, 정철민 VFX 슈퍼바이저는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들을 참고했다. “영상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건거북선이나 학익진의 규모, 전투의 진행 방식 등을 VFX로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 없었다는 거다. 걱정도 됐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한번 잘 준비해 구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정성진 VFX 슈퍼바이저) 후반작업 기간만 1년. 1천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투입돼 <한산>의 그림을 완성해갔다.
해상 촬영 없이 구현해낸 해전
<한산>은 바다에 배를 전혀 띄우지 않고 해상 신을 진행했다. “일부는 실제로 배를 띄우고 촬영하고 일부는 VFX로 작업하는 건 <명량> 때 이미 한 방법이다. 전작과의 차별
'한산: 용의 출현' 정성진, 정철민 VFX 슈퍼바이저 "거북선의 용머리가 어느 각도에서도 위엄을 갖추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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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반응이 좋다.
= 여러모로 감사하고 겸허해진다. 시사 후 들었던 이야기 중엔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어떤 형태로든 관객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면 다행이다. 영화를 통해 응원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특히 성취감을 느꼈다. 그간의 행보가 보상받는 기분이다.
- 엄청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는 속편이다. 이순신 장군을 그린다는 것만 해도 부담인데, 전작인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동원한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작이다. 속편을 제작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을 것이다.
= 맞다. 그래서 8년이 걸리지 않았나. 어떻게 보면 8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는 처음부터 삼부작으로 구상했고 서두르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건 뚜벅뚜벅 가다보면 결국 완성될 거라 믿었다. <명량>의 큰 성공은 부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어떻게 그려야 내가 원하는 완성도를 달성하고 관객을 만족시킬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감독 인터뷰 “선비같은 기질로 주변을 아우르는 이순신의 포용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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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극장가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1761만명의 관객이 선택한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 <명량>(2013)의 속편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7월27일 드디어 스크린의 바다를 향해 출항, 개봉 1일차 38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이순신 삼부작’의 두 번째 영화 <한산>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의 운명을 바꾼 한산대첩을 재조명한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한 이 영화는 전작의 아쉬움을 영리하게 보완한, 단점이 잘 보이지 않는 수작이다. <씨네21>에서는 김한민 감독의 속 깊은 인터뷰를 시작으로 <한산>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전한다. VFX를 맡은 정성진, 정철민 VFX 슈퍼바이저는 한산 앞바다에 배를 띄우지 않고도 전장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었던 비밀을 공개한다. 권유진 의상감독은 당대 시대상의 세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한층
다시, 운명의 파도에 오르다 '한산: 용의 출현'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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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내버려두면 세상은 점점 나쁜 방향으로 간다. 거기에 저항하다보면 시끄러워진다. 도발, 균열, 파괴는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물결과도 같다. 라두 주데 감독의 <배드 럭 뱅잉>은 이러한 저항의 언어가 영화로 표현될 때 나올 수 있는 행복한 결과물이다. <일방통행>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 <실천과 빈정거림(시트콤)> 3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이 영화는 남편과 합의하에 찍은 섹스 비디오가 포르노 사이트에 유출된 후 자신을 향한 조롱에 맞서는 교사 에미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배드 럭 뱅잉>의 매력, “코로나19 팬데믹을 완전히 찢어버린 당당하고 도발적인 농담”(<버라이어티>)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부쿠레슈티의 명문고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는 에미(카디아 파스칼리우)에게 난데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녀가 남편과 찍은 부부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우리는 포악하게 나쁜 것을 들춰내야 한다: '배드럭 뱅잉'이라는 저항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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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마케도니아의 시골 마을, 갓난아이인 딸 네베나를 납치하려는 늙은 마녀 마리아(아나마리아 마린카)에게 엄마(노미 라파스)는 아기가 16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키우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마리아는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아기의 목소리를 가져가고, 엄마는 마녀를 피하고자 딸을 동굴에 숨겨놓고 키운다. 엄마의 철벽 방어에도 마리아는 16살이 된 네베나(사라 클리모스카)를 찾아와 소녀를 자신과 같은 마녀로 만든다. 그러나 마녀 엄마와 마녀 딸의 동행은 얼마 가지 못해 끝이 나고, 마을로 내려온 네베나는 자신이 매혹된 기혼 여성 보실카(노미 라파스)의 모습으로 변신해 인간세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마녀 설화를 모티브로 한 <혼자가 아닌>은 한 생명체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관계에 적응하고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스케치한다. 한창 차기작을 촬영 중인 고란 스톨레브스키 감독을 화상으로 만나 첫 장편영화 <혼자가 아닌>에 관해 물었다.
- 어떻게 이야기
BIFAN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 작품상 '혼자가 아닌' 고란 스톨레브스키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