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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피에르 로셰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쥴 앤 짐>은 안타깝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몇 년 뒤 할인서적 코너에 꽂혀 있던 <쥴 앤 짐>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눈에 띄게 된다. 두 사람은 서신을 교환했고, 트뤼포는 <쥴 앤 짐>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하지만 로셰는 <쥴 앤 짐>이 만들어지기 전에 숨을 거둔다).
트뤼포는 로셰의 소설을 사랑했다. 그는 1962년에 <쥴 앤 짐>을, 1971년엔 로셰의 두 번째 소설이자 <쥴 앤 짐>의 관계를 뒤집어놓은 <두 영국 소녀>를 영화로 만들었으니, 칠순 노인의 젊은 시절 사랑 이야기는 트뤼포의 터치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트뤼포 작품 중에서도 유달리 격렬한 감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두 작품의 시작은 그랬다.
얼마 전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에서 <삶의 설계>를 보는 순간 <쥴 앤 짐>이 떠올랐다. 예술가인
<쥴 앤 짐> 트뤼포의 인생과 사랑에 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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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센세이션이 아니라 캐릭터다”
‘미식축구’는 오래도록 정치와 전쟁을 이야기해 온 올리버 스톤에게 구미 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필드에서 뛰고 뒹구는 선수들의 모습은, 사생결단으로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모습이며, 구단주의 권력과 돈, 언론의 스피커가 뒤엉킨 거대 스포츠산업은 정치판에 흡사하니 말이다. 개인기 과시나 지나친 승부욕을 경계하고 팀 스피리트를 강조하는 코치, 가업으로 물려받은 구단을 어떻게 굴리면 돈이 될지가 유일한 관심사인 구단주의 만남은, 처음부터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팀이 연패의 늪에 빠지고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실려가자, 구단주는 오만한 신참을 쿼터백 자리에 앉히고 완치되지 않은 선수들을 필드로 불러내는 등 독단으로 새 진용을 짠다. 코치와 구단주가 사사건건 부딪치고, 팀닥터까지 구단주편에 서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간다.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는 맹수가 우글거리는 거칠고 삭막한 ‘정글’의 이미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3] - 올리버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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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관한 영화가 자유를 줬다”
“폴란드 감독인 내가 지금 베를린에 심사위원으로 와 있고, 다음달엔 오스카상을 받으러 미국으로 간다. 이건 좋은 징조다.” 올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이자, 오스카 평생공로상 수상자인 안제이 바이다는, 그의 영화가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까지 관객으로 포섭해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었다. 평생을, 민족과 사회에 대한 걱정에 바친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얘기에 믿음을 싣게 된다. 안제이 바이다는 자신의 레지스탕스 경험을 영화화한 <세대>로 데뷔해, 폴란드 민족진영의 주도로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를 다룬 <지하수도>, 2차대전 직후 민족 내부의 이념 갈등을 그린 <재와 다이아몬드> 등을 내놓았다. 70,80년대 사회 상황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대리석의 사나이> <철의 사나이>도 빠뜨릴 수 없는 대표작이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오마쥬’의미로 특별 상영된 99년작 <판타데우스>(Pa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2] - 안제이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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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거장에게 바친다
올 베를린영화제는 유난히 거장을 사랑했다. ‘오마쥬’라는 주석을 단 특별상영 프로그램 중에는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잔 모로의 작품도 있었지만, 동·서양을 대표하는 노장 두 사람의 신작이 나란히 올라 이채를 띠었다. 폴란드의 역사, 민주주의, 자유에 대해 예술적인 통찰을 보여준 안제이 바이다 감독, 그리고 휴머니즘의 영화들로 74편의 긴 필모그래피를 이룬 성실파 이치가와 곤 감독이 그들이다. 안제이 바이다의 <판타데우스>는 폴란드에서 <타이타닉>을 앞질러 6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경이적인 작품. <도라 헤이타>는 이치가와 곤 감독이 구로사와 아키라 등 30년 전 동지들과 함께 쓴 시나리오를 뒤늦게 영화화한 것이다. 이들은 칠순, 팔순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과시해, 베를린에 모여든 젊은 영화인과 기자단을 감동시켰다.
늘 논란을 몰고 다닌다는 점에서, 이들보다 한수 위인 올리버 스톤과 폴커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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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남>이 <배트맨 비긴즈>를 누르고 4주째에 1위를 탈환했다. 관객동원은 지난주 대비 98%로 낙폭도 거의 없고 조만간 20억엔 돌파가 가능해 영화로도 대성공을 거뒀다. <배트맨 비긴즈>는 한계단 밀린 2위로 떨어졌고 도호의 작품 <전국자위대 1549>와 <교섭인 마시타 마사요시>는 전주 순위인 3위와 4위를 그대로 유지했다. 뤽 베송 감독, 이연걸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대니 더 독>은 개봉 첫주에 5위로 데뷔했다. 모건 프리먼은 <배트맨 비긴즈>와 <밀리언달러 베이비>까지 출연작 3편을 탑10에 올려놓아 눈길을 끈다.
지난 6월 25일에 있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개봉전 상영회는 730개 스크린으로 진행되어 동원관객 34만5144명, 흥행수익 4억9511만1060엔을 기록해 이 부분 신기록을 세웠다. 앞서의 기록은 2003년 5월의 <매트릭스2:리로디드&g
日, <전차남>, <배트맨 비긴즈> 물리치고 4주차에 1위 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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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얼굴을 하고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이런 습성을 가진 사람을 보면 우리는 예술가나 과학자를 연상한다. 하지만 스파이크 리의 영화 <정글 피버>에 나오는 한 흑인 목사는 ‘악마’의 정의를 그렇게 내린다.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창의적인 정의였다. 나는 처음에 이 목사가 왜 내가 어릴 때 바람직한 미래의 과학자 상으로 교육받던 캐릭터를 악마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 정의가 깊은 신앙심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실험을 거듭했던 그 옛날의 갈릴레오는 “지구는 돈다”며 반체제적 발언을 하지 않았던가. 역설적이지만 “간통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잡범’은 회개를 통해 종교의 정당성을 재생산해주는 귀순용사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소년은 언제 체제를 위협할지 모르는 ‘사실’을 발명해 미래의 반체제 사범으로 둔갑할지 모른다. 그러니 호기심에 찬 소년을 악마로 규정한 그
여인의 육체, 지식권력을 비웃다,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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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큰가족>은 아버지의 50억원의 유산을 노리고 가족들이 벌이는 통일 자작극에서 출발한다. 통일이 되면 아버지 김 노인(신구)의 유산 50억원은 가족에게 분배될 것이고, 통일이 되지 않으면 거액의 유산은 통일부로 넘어간다. 빚에 쪼들리는 큰아들 명석(감우성)에게 이 ‘시츄에이션’은 일확천금의 기회이자 절체절명의 위기다. <간큰가족>이 웃기기 위해 만든 가상의 ‘시츄에이션’을 보면서 현실의 ‘시츄에이션’이 겹쳐졌다. 정말 이 시대의 통일이란 (최소한 남한 사람들에게) ‘연극’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히도, 아버지의 유산으로 상징되듯이 ‘돈’이 통일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어버렸다. 통일 자작극에 제작비를 대고 투자비의 두배를 받아내려는 사채업자 상무(성지루)는 통일 자작극의 돈 떨어진 제작자, 명석에게 위협하듯 말한다. “돈 없으면 통일이고 나발이고 못해!” 이 사실은 가짜 통일뿐 아니라 진짜 통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간큰가족&
아버지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간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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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시리즈 네번째 영화 <여고괴담4:목소리>(이하 <여고괴담4>)가 28일 오후 2시 서울극장에서 기자·배급 시사회를 열었다. 신인이었던 박기형과 김태용, 민규동 감독 등에 이어 역시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만든 최익환 감독은 “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재해석할지 고민했다. 공간은 시각적이기도 하지만 사운드로도 이루어진다”는 말로 이 영화의 간결한 부제를 설명했다. <여고괴담4>에선 육체를 잃은채 학교를 떠도는 소녀의 목소리가 관객을 공포로 인도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고생 영언(김옥빈)은 혼자 음악실에 남아 노래연습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다음날 아침 음악실에서 눈을 뜬 영언은, 단짝 선민(서지혜)을 제외하면, 누구도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언 곁을 맴도는 어느 소녀의 그림자. 선민은 영언의 목소리에 기대어 그날밤 무슨 일이 일어났던건지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그러
<여고괴담 4: 목소리> 기자 시사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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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게이지먼트>는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판타지적인 멜로 영화인 동시에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실상을 재현한 전쟁영화다. 두 연인이 나란히 누워있는 포스터만 보고 로맨틱 드라마로 생각한 사람은 시작부터 펼쳐지는 생지옥 같은 참호전의 공포 그곳에서 인성을 잃은 사람들의 굳은 표정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그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것은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약혼자가 살아있다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그의 생사를 확인하려하는 마띨드를 통해 감독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감독 특유의 독특한 캐릭터 묘사와 뒤틀린 유머, 그리고 미스터리적인 영화의 구조로 인해 긴 러닝타임 동안 흥미를 잃지 않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장대한 규모의 로맨틱 서사극으로서 제작에 무척 공을 들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메이킹 다큐멘터리 ‘전장에서의 1년’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는데, 촬영이 진행되는 과거와 영화 속 현재를 오고가는 재치 있는 편집으로 영화만큼이나 흥미롭게 볼 수
<인게이지먼트> 1차대전과 20세기 초 파리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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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최초로 할리우드 뉴라인시네마의 투자를 받은 무협영화 <무영검>(태원엔터테인먼트 제작)에 출연 중인 윤소이가 부상도 두려워하지 않은 투혼을 발휘하며 최고의 여자무사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 중인 <무영검>에서 윤소이가 맡은 역은 927년, 멸망 위기에 처한 나라의 마지막 왕자(이서진)를 구하기 위해 활약하는 최고의 여자무사. 남자 주인공이 중심이 되었던 기존의 한국 무협 영화와 달리 이번에 영화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무사는 여자이다.
최근 윤소이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암살단에 맞서 2m가 넘는 화살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위험한 장면을 찍었다. 전문 액션 배우도 연기하기 힘든 상황에서 윤소이는 일부 화살이 얼굴을 스치며 부상을 입고 일시 귀국, 열 바늘 이상을 꿰매는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촬영장에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고.
이미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선보였던 윤소이는 더
윤소이, <무영검>에서 ‘한국의 장쯔이’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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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실 몇 가지가 있다. 4월2일, 한국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사람인 장동휘가 죽었고, 모든 미디어가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4월13일, 위대한 장인 이만희 감독이 30주기를 맞았고, <씨네21> 같은 영화전문지를 포함한 어떤 매체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어떤 젊은 한국 감독도 임권택과 대결하지 않았다.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 간단한 가설 하나를 떠올릴 수 있다. 한국영화의 과거는 한국영화가 아니라 미국영화이거나 유럽영화이거나 일본영화다(혹은 한국영화에는 임권택과 한국영화라는 두 부류가 있다).
그럴듯한 가설이다. <올드보이>는 쿠엔틴 타란티노 스타일의 변주로 수용되고, <달콤한 인생>은 필름 누아르 그것도 프렌치 누아르의 계보에 편입되려 하며, <남극일기>는 은연중에 구로사와 기요시를 불러온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아니라 &
최근 한국영화 스토리텔링의 몇가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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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셔터> 심령사진을 찍고 쇼크를 받은 카메라
[정훈이 만화] <셔터> 심령사진을 찍고 쇼크를 받은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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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최근작이 결국 파리에서 개봉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현재 작은 상영관에서 주최하는 회고전 형식으로 상영되고 있긴 하지만, 일주일에 단 며칠만 상영될 뿐이다. 많은 언론이 미리 보고 호평으로 의견을 모았음에도 이 작품은 진정한 경력을 박탈당한 것이다. 매우 뛰어난 필름 누아르로 대중적 영화감독으로의 귀환이라고 알려진 <하류인생>이 어떻게 대학가에서 유리된 비밀스러운 작품이 되었는가? 이 지면에서 한 예술 작품이 훼손된 놀랄 만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애초에 <하류인생>은 프랑스에서 개봉된 한국영화 중 가장 커다란 성공을 거둔 <취화선>의 상영관들을 통해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에 개봉하기로 돼 있었다. 문제는 파리에 도착한 인터네거 프린트가 배급용 사본을 뜨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던 데서 시작되었다. 개봉 3주 전, 프랑스 배급사에서는 포스터를 거두고 극장에 프랑스 관객용으로 특별 제작된 예고편을 상영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몇몇
[외신기자클럽] <하류인생> 프랑스에서 개봉 못한 사연 (+불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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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이 또 다른 돌연변이 슈퍼히어로를 응징하러 나섰다. 지난 6월14일, <엑스맨>의 제작사인 이십세기 폭스와 마블 코믹스가 소니픽쳐스와 레볼루션 스튜디오를 표절혐의로 고소했다. 두 회사가 소송장을 제기한 이유는 소니픽쳐스와 레볼루션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있는 <줌의 아카데미>의 주요 테마와 캐릭터, 이야기 구조가 <엑스맨> 시리즈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기 때문. <줌의 아카데미>는 초능력을 잃어버린 전직 슈퍼히어로 줌(팀 앨런)이 젊은 슈퍼히어로 양성교육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SF영화로, 초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부와 사회로부터 핍박받아온 아이들이 특수학교에서 교육받으면서 능력을 키워나간다는 점에서 <엑스맨> 시리즈와 유사하다. 이십세기 폭스의 대변인은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서 열린 법정심사에서 “레볼루션 스튜디오가 우리가 보낸 경고문을 읽고 스크립트의 일부분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줌의 아카데미>가 <엑
슈퍼히어로 영화 <줌의 아카데미>, <엑스맨> 표절혐의로 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