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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야 합니다. 정말요.” 브렌다 박사는 가제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두달 전까지 가제트는 빌딩 경비원으로 지내며 멍청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렌다 박사의 연구소에 강도들이 침입했고, 기회를 놓칠세라 용감하게 돌진한 가제트는 전치 99개월의 중상을 입었다. 이에 브렌다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로보틱 테크놀로지를 총동원해 그의 몸을 완전 개조해냈다. 그러나, 박사는 가제트가 엉뚱한 일에 그 능력을 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몸은 당신 마음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명심하세요.”
집으로 돌아온 가제트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침실쪽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급히 구두를 벗으려던 가제트는 문득 생각이 났다. “맞아. 고고 가제트, 스프링팔!” 그러자 팔이 주욱 늘어나 단번에 전화 수화기를 귀로 가져왔다. “하하, 꽤 쓸 만한걸!… 여보세요?” 저쪽에서 들려온 것은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십니까? 가, 제, 트, 씨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가제트 임파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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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였던 레니 리펜슈탈의 삶은 아르놀트 팡크와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바뀌게 된다. 팡크의 <운명의 산>에 매혹되면서 1920년대 독일 산악영화와 인연을 맺은 레니 리펜슈탈. 그녀는 히틀러의 연설에 감명 받아 그에게 편지를 쓰고, 얼마 뒤엔 <의지의 승리>를 연출한다.
팡크의 <성스러운 산>과 G. W. 파브스트의 <피츠 팔루>에서 산악을 오르내리며 인간과 멀어지고, 자신의 데뷔작 <푸른 빛>에선 신비한 야생의 소녀를 연기한 리펜슈탈의 운명은 시작부터 그레타 가르보, 마를렌 디트리히와 궤도를 달리했다. ‘아름답고 강인한 자연만이 훌륭한 것’이란 산악영화의 주제는 리펜슈탈 영화 전체의 비극을 잉태한 것이었다.
파시즘과 결합한 <의지의 승리> <올림피아> 이후 리펜슈탈 영화의 자연복귀와 반인간적인 색채는 에코파시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리펜슈탈은 인터뷰에서 선전물이 아니라 예술작품인 <의지의 승리>
<성스러운 산> vs <의지의 승리> vs <수중의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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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노안이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지만 한창 때의 나는 독서광이었다. 그동안 몇번씩 이사하면서 많은 짐들이 사라지고 새로 생겼지만 책에 대한 애착만은 집요해서 아직도 20대 젊은 시절의 책까지 모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영화 <과부춤> 이후 나는 경제적인 불안을 잊기 위해 다시 책벌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체언어에 대한 책을 읽다가 문득 무릎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순간 기묘한 영감과 함께 아주 아름답고 깨끗한 이미지의 성적 충동을 느꼈다. 나로서는 신선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스무살 무렵 읽었던 김승옥의 단편소설에서 가장 신비한 섹스의 이미지로 비너스의 멘스가 뛰어나게 묘사된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아주 강렬하고 신선해서 무릎이라는 단어에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고 며칠을 거기에 집착했다. 마침내 영감의 샘물에서 ‘무릎과 무릎 사이’라는 싱싱한 제명을 길어올리고 말았다.
나는 이 제명을 생각해내는 순간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광부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그뒤
이장호 [46] - '무릎'이란 단어에서 시작한 <무릎과 무릎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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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는 거대한 하나의 유혹이다. 15세기 이래로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수정되고, 문학이 되고, 영화가 되고, 심지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프랑스 밖의 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28년 덴마크의 칼 드레이어는 <잔 다르크의 열정>을 완성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영웅을 가로챘다고 분개했지만 이 영화는 곧 드레이어의 대표작이 됐다. 당대의 이론가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이 영화를 가리켜 “재판정은 초상화의 전시장”이 아니라며 클로즈업의 남발을 비판했지만, 감독은 자신이 매혹된 세계를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기를 원했다. 스스로 명명한 ‘현실화된 신비주의’는 매혹의 이중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세속과 구원 사이에 놓여 있는 ‘잔’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하지만 도저히 현실의 카메라로 접근할 수 없다는 드레이어의 판단은 온통 클로즈업으로 가득 찬 화면을 만들어놓았다. 이러한 특성은 이후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흡혈귀> <오데트> <분노
고전 속에 빛나는 새 세기의 시선, 뤽 베송의 <잔 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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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MC극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영화<신데렐라 맨>을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6월28일자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극장업계 2위인 멀티플렉스 체인 AMC가 이 영화에 만족하지 못한 관객에게 입장료를 환불해주기로 했다. 이러한 홍보 전략은 1988년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미스틱 피자> 이후로 처음이다.
지난 6월3일 개봉한 <신데렐라 맨>은 론 하워드 감독과 러셀 크로, 르네 젤위거 등 화려한 진용으로 다음 오스카 선전까지 점쳐진 작품.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흥행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오프닝 성적이 1832만달러로 박스오피스 4위에 그쳤고 현재까지 4주동안 5000만달러만을 벌어들였다. 제작비가 8800만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조한 성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측이 비장의 카드를 내놓은 것. 제작사 유니버설도 두팔 벌려 환영한 ‘즉석 환불 전략’은 6월24일부터 신문과 인터넷에서 광고 중이다. 광고문구는
“<신데렐라 맨>이 마음에 안들면 환불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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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로봇’이 아니라니깐요
1926.<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6)에 등장하는 로봇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마리아의 복제인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탄생 초기에는 금속으로 구성된 몸체가 잠시 드러나지만, 곧 마리아와 똑같은 외모를 지니고 붙잡혀 있는 진짜 마리아 대신 노동자들 앞에 나타나 폭력을 부추긴다. 마리아 로봇은 지금 보아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세련된 감각의 메카닉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 이 놀라운 시각적 이미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로봇이 영화 속에서 오로지 악역만 담당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하다. 어쨌거나 할리우드에서는 1950년대가 되도록 깡통 땜질 수준의 로봇 디자인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로봇은 분명 시대를 초월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1956.<금지된 세계>의 로비
셰익스피어 희곡 <폭풍우>(Tempest)를 각
사라지는 로봇 영화, 로봇 100년 [2] - 로봇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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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가깝게 더욱 가깝게
SF 영화의 잔치상은 한번도 빈곤한 적이 없었다. 우주여행, 시간여행, 외계인, 괴수, 신무기, 미친 과학자 등등…. 그 중에서도 로봇은 언제나 인기있는 주인공이었다. <터미네이터> 등 로봇 캐릭터가 영화판을 누비고 다닌 것이 불과 10년도 안 됐는데, 어느새 스크린에서 로봇들의 모습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80년대 중반경 SF문학쪽에서부터 움트기 시작한 사이버펑크 바람이 삽시간에 SF영화의 콘텐츠를 물갈이해 버린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처음엔 CG의 발달에 힘입어 시각효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나중에는 가상현실이라는 내러티브 그 자체가 가진 무궁무진한 스토리의 가능성들로 사람들의 흥미를 계속 붙들었다. 결국 로봇이라는 고전적 SF 아이콘은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확고부동의 자리를 보전하기가 버거웠던 것이다.
이제 SF 영화는 온통 현란한 가상현실과 우주모험 시나리오로 채워지고 있으며, 최근 그 틈을 비집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사라지는 로봇 영화, 로봇 10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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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따먹기>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교실 안 아이들의 싸움을 통해 권력의 해부도를 그린다. 자그맣고 겁많은 영훈은 강산과의 지우개 따먹기에서 매번 이기지만 뚱뚱하고 힘쎈 강산이 윽박지르는 바람에 자기 지우개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럼에도 힘이 부치는 영훈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영화는 영훈의 이야기에다 경찰에 쫓기는 운동권 대학생 누나의 이야기로 정치적 함의를 부풀린다. 마르크시즘 서적을 쥐고 집을 빠져나가던 누나는 영훈에게 지우개 하나를 건네며 꼭 이기라고 웃어준다. 초등학생 만화가, 디자인 수업, 사운드그룹 활동을 하다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간 민동현은 스토리보드 작성과 리허설, 비디오 촬영 등 사전준비 작업을 철저히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영화를 찍으면서 적잖은 장애물을 헤쳐와야 했다. 전쟁과도 같았던 그의 제작 뒷얘기는 영화지망생들에게 영화만들기의 쓴맛과 단맛을 미리 맛보게 해준다.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
이스트만 단편영화 만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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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전투, 기쁨과 절망의 좌충우돌
엉뚱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단편영화는 미래의 영화”라는 앙드레 바쟁의 유명한 전언은 단편 영화의 서글픈 운명을 암시한다. 미래를 꿈꾸는 자가 현실의 궁핍함을 견뎌야하듯, 단편영화 작가는 현재의 한기(寒氣)를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 단편영화 작가들은 언제나 목이 마르다. 군소 단편영화제가 많아지고 대중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단편영화의 존재감은 전보다 훨씬 두터워졌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기획에서 유통까지, 단편영화에 짐지워진 숙제는 속시원히 풀린 게 없다. 관객과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인디스토리나 미로비전 같은 배급사의 노력으로 해외영화제 나들이가 잦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급시스템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영화만들기는 온전히 작가들의 몫이다. 아직까지는 단편영화 작가가 지원을 요청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쉽지만 우리의 현실이다.그런 풍토에서 이스트만코닥 단편영화 지원제도는 거의 파격에 가깝다. 이스트만은 35mm필름 1만자를 제공하고
이스트만 단편영화 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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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과의 30년 전 추억을 되새기며”
일본을 대표하는 네 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게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 그리고 이치가와 곤(84).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앉힌 건 ‘죽어가는 일본영화를 살리자’는 사명감. 1969년 스튜디오의 쇠락과 함께, 침체에 빠진 일본영화를 구하기 위해, 이들은 인디 영화사 ‘네 기사의 모임’을 만들었고, 함께 연출할 요량으로 <도라 헤이타>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가 <도데스카덴>의 참담한 흥행 실패로 크게 상심하자, 나머지 세 사람은 합의 하에 이 기획을 접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세상을 떠난 동지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치가와 곤은 그 영화 <도라 헤이타>를 30년 만에 완성해냈다. 74번째 작품.
<도라 헤이타>는 마약과 매춘과 강도의 도시 호리소토에 급파된 치안감사 사무라이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고헤이타라는 이름을 두고 ‘도라 헤이타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7] - 이치가와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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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사의 기여 없는 공동제작 요구와 부당한 제작지분 요구에 단호히 대처하겠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회장 김형준)는 28일 서울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발표했다.
강우석 감독(시네마서비스),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이은 엠케이픽처스 대표, 신철 신씨네 대표,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등 한국영화 주요 제작자들이 대거 모인 이 자리의 참석자들은 “스타를 권력으로 가진 매니지먼트사가 제작사의 지분을 부당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과도한 출연료와 함께 제작비 상승과 수익률 저하의 원인이 돼 영화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매니지먼트사가 기획 과정에서 아무런 기여 없이 공동제작을 요구하거나 흥행 보너스가 아닌 제작사 지분을 요구하는 등 스타 캐스팅을 조건으로 한 부당한 요구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제협은 불균형한 제작비 구조를 합리화하고, 수익률보다 가파르게 높아져가는 제작비 상승
영화제작가협 “매니지먼트사 부당요구 단호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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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라는 마법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우연일지 몰라도, 올 베를린에서 프랑스 감독들은 그다지 환대받지 못했다. 파스빈더의 희곡을 영화화한 <타는 바위에 떨어지는 물>의 프랑수아 오종이 “평가절하됐다”는 것은, 독일 언론의 자백이기도 하다. <작은 도둑> <귀여운 반항아>의 클로드 밀러(58) 역시 신작 <마법사의 방>(La Chambre Des Magiciennes)으로 “새로움이 없다”는 매질만 당하다가, 국제예술영화평론가협회(FIPRESCI)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마법사의 방>은 그러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메시지와 디지털 카메라 촬영 등의 신기술이 결합한, 주목할 만한 영화다. 그간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온 클로드 밀러 감독은, 이번에도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류학자 클레어는 논문을 준비하다 까닭 모를 구토와 설사,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6] - 클로드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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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이 혁명이었을까”
영화는 15살 소년 미치오가 아버지를 여의고, 미션 스쿨 독립학원으로 전학오는 데서 시작한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말더듬 증세가 심해진 미치오는 따돌림을 당하지만, 중성적인 외모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합창반 소프라노 야스오가 그의 곁에 선다. 친구가 된 두 소년은 합창반 지도 교사를 믿고 따르는데, 사토미라는 여인의 방문으로, 그가 과거 학생운동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탄 테러를 벌이고 도움을 청하러 온 사토미가 경찰에 쫓기다 그들 앞에서 자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방학 동안 목소리를 잃고 학교로 돌아온 야스오는 합창대회에 나가 혁명가를 부르자며 학생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미치오는 그런 야스오의 목소리가 돼준다.
<놀라운 20세기>라는 TV 다큐시리즈를 만들던 93년부터 오가타 아키라 감독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렇듯 잔인한 역사가 개인의 정신에 그리고 행동에 대체 얼마만한 영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5] - 오가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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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이라는 비판만은 못참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폴커 슐뢴도르프는 새 영화 <리타의 전설>(Die Stille Nach Dem Schuss)에서 ‘무너진 장벽, 그뒤’를 이야기하고 있다. 서독 적군파의 테러리스트 출신인 리타는, 동지들이 제3국으로 떠날 때 동독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테러금지협정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리타를 공개적으로 보호할 수 없는 비밀경찰은 그녀에게 새 이름과 새 삶을 제공한다. 동독으로 건너간 리타는 서독을 동경하는 타티아나와 친구가 되지만, 새로운 신분도 그녀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리타의 전설>은 ‘테러리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그 흔한 로맨스와 스릴도 없이, 줄곧 건조하고 냉정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고 있다. 독일 현지에서 호평과 혹평을 오가며,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모은 작품. 장벽이 무너진 이후의 독일사회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 없었던 만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4] - 폴커 슐뢴도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