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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오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깨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음양사>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여인이 술수에 넘어가 한을 갖게 되고, 마침내 살아 있는 요괴가 되어버리는 것을. 원망이나 분노, 슬픔의 도가 지나치면, 살아 있는 그대로 뿔이 나고 입이 찢어지며 요괴가 되어버린다. 죽은 뒤에 귀신이 되는 것도, 처음부터 오니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오니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 제목에 나오는 ‘우부메’와 ‘망량’은 모두 요괴의 이름이다. 소설에는 당연히 그 요괴들이 나온다, 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다. 지금 일본에서 ‘현상’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작가인 교고쿠 나쓰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는 오히려 전통적인 추리소설에 가깝다. 요상한 사건이 있고, 사건의 트릭을 ‘안락의자형 탐정’에 흡사한 추젠지 아키히코가 풀어낸다. 추젠지는 헌 책방 교고쿠도의 주인이
[B딱하게 보기] 요괴, 인간의 다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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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혹은 85년이었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9살의 나는 TV에서 흘러나오는 광고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유니폼을 입은 네명의 유령잡이들, 레이 파커 주니어의 신나는 주제곡, 붉은 드레스를 입은 시고니 위버. 나는 그 영화를 보고야 말리라 결심했다.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고, 버스 노선도 익히고, 자금도 마련했다. 하지만 시내 극장까지의 여행은 보통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혼자 타는 버스라니. 겁이 났지만 극장값 1천원에 왕복 버스비 100원을 주머니에 챙겨넣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목표는 마산 중앙극장. 버스에 올랐다. 한데 버스 안내양이 보이질 않았다. 기사는 웃으면서 플라스틱 박스를 가리켰다. 아뿔싸. 버스 안내양이 사라지고 버스비를 셀프-서비스로 내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100원을 툭 떨어뜨렸다. 큰일이다. 돌아오려면 50원이 필요한데. 이제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걸까. 오
[오픈칼럼] 포도향 본젤라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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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방문단의 현충원 참배가 있던 날, 한 사내가 북측 대표단에 물병을 집어던지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런가 하면 인공기를 불태우려는 우익 시위대를 경찰은 소화기를 난사해가며 진압했다고 한다. 원천봉쇄와 강경진압은 운동권만 당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대한민국을 전세낸 우익들이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게 많던 우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내 곳곳에서 열린 우익 집회에 모여든 이들은 어떤 곳은 다섯명, 다른 곳은 스무명, 또 다른 곳은 1천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결사항전을 외치며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에 비하면, 시위는 상당히 싱겁게 끝난 셈이다. 듣자 하니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 내분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저물어가는 이 ‘올드라이트’ 대신에 등장한 것이 이른바 ‘뉴라이트’. 전매청 담배 이름을 연상케 하는 이들은 한때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전격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그뒤 시간이 꽤 지났어도 세력을 넓히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어차피 언론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쌍라이트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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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기남입니다. 여기 근처에 있는데 얼른 나오쇼.” 저녁에 일을 하다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남기남 감독이었다. 최근 <바리바리 짱>을 개봉시킨, <영구와 땡칠이>의 전설적 흥행감독, 6일 만에 영화 1편을 찍었다는, 바로 그분이다. 한겨레신문사 근처 어느 주꾸미집에 있으니 빨리 나오라는 말에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잠깐 얼굴이라도 뵙자는 생각이 들었다.
6∼7년 전쯤이다. 남기남 감독에 관한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같은 성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오랜 친분을 나눈 사이처럼 대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첫날, 한낮에 만나 저녁 무렵 술에 취해 사무실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너무 마셔서 인터뷰는 내일 다시 하시죠.” 그렇게 첫 만남은 아무 소득없이 끝났고 나는 다음날 비로소 남기남 감독의 전설적 빨리찍기 비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뒤로 몇년간 그를 잊고 지냈다. 그때 난 지금은 남기남 감독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환경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남기남과 주꾸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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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물꼬물 지렁이 기어가듯하는 글씨체, 단조로운 배경처리, 어쩐지 당연하게 “내가 그려도 이만큼은 그리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PAPER>의 다른 기사를 다 읽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꼭지가 바로 <PAPER>의 김양수의 카툰판타지였다. 그 만화들이 모여 한권의 책이 되어 <생활의 참견>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카툰은 내용에 따라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는데, 각장의 도입부에 있는 작가 김양수의 사진에서부터 그의 유머 공력을 실감할 수 있다. <스타워즈>의 로봇 C3PO의 몸에 자신을 얼굴을 갖다붙이는가 하면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 몸에 얼굴을 콜라주한다(배경의 학생들 얼굴도 모두 김양수 자신이다). <일상의 참견>이라는 제목은 ‘일상이 인생에 태클 걸어올 때’쯤으로 해석하면 될 텐데,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김양수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경험담이다. 학창 시절, 야설을 프린트(씩이나)해서 보던
소소한 일상의 난리블루스,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생활의 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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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보이>는 어찌 보면 <가위손>과도 비슷한 이야기다. 가위손을 달고 있어 냉대받은 인조인간 에드워드처럼, 박쥐와 인간의 피가 섞인 뱃보이는, 완고한 작은 마을에서 튕겨나올 수밖에 없다. 죄짓는 법을 모르는데도 죄인이 되고만 아이 뱃보이, 태어나기도 전에 저주받았던 소년. 그러나 뮤지컬 <뱃보이>는 그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시끄러운 소극(笑劇)과 다정한 로맨틱코미디로 행세한다. 낯선 존재 앞에서 당황하는 시골 마을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허둥대고, 허둥대는 사이, 현실은 코미디가 되기 때문이다.
한때 광업이 번창했던 작은 마을, 불량한 테일러 집안의 삼남매는 폐광에 놀러갔다가 박쥐와 인간이 섞여 있는 듯한 벌거숭이 소년을 잡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혼자 살아온 그 아이를 괴물 ‘뱃보이’라고 부르면서 없애려고 하지만, 수의사 파커 박사의 아내 메레디스는 뱃보이를 감싸면서 에드가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에드가를 살려주는 대가로 오랫동안 냉랭했던
죄없는 죄인의 노래, 뮤지컬 <뱃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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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을 줄이고, 스킨십을 늘릴 것. 토퍼 그레이스에게 주고 싶은 처방전이다. 시트콤 <70년대 쇼>를 본 여성들이라면, 테스토스테론 과잉으로 보이는 아버지, 장성한 아들을 아기 다루듯 하는 푼수 어머니 사이에서, 안절부절 엉거주춤하던 소년 에릭 포먼을 기억할 것이다. 과연 2차 성징을 거쳤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가녀린 몸매와 목소리를 지닌 그는 또래 사이에서도 유약하고 무력하고 썰렁한 아이로 통한다. 그런데 토퍼 그레이스의 포먼은 그 이상이다. 멍한 눈빛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라고 애달아 하는 것 같은데, 삐딱한 입매는 ‘아무래도 상관없어’라고 냉소를 뱉는 것 같다. 너무 평범해서 배우 같지 않은 얼굴에 담긴 소년의 순수와 고독과 불안. 이런 유형의 배우를 본 적이 있었던가, 더듬어 올라가 보면, 휴 그랜트와 에드워드 노튼이 떠오른다. 아버지뻘의 부하(데니스 퀘이드)와 그의 매력적인 딸(스칼렛 요한슨) 때문에 난감해지는 <인 굿 컴퍼니>의 토퍼 그레이스를
어메이징 그레이스, <인 굿 컴퍼니>의 토퍼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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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웅은 말이 없는 남자라고 들었다. <가족>에 그의 보스로 출연했던 박희순은 자신도 역시 말수가 적은 탓에 1박2일 MT 내내 말 한마디 못했다고 했다. “응… 편한 사람하고는 말을 잘해요. 형하고도 나중엔 얘기 참 많이 했는데.” 그걸로 끝이었다. 바람결에 들은 대로 그는 과묵했고, 문장 사이에 여백을 두었고, 웃음으로 빈 공간을 메우곤 했다. 그러나 언어가 의사소통의 전부였다면 이 세상에 영화나 드라마가 존재할 수나 있었을까. 눈썹 사이에 주름을 잡으면서 짧은 말로 무언가를 전하려 애를 쓰는 그를 보며 <부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엄태웅은 자신을 키워준 서재수(강신일)가 네가 경찰이 되었을 때 세상에 태어나 두 번째로 기뻤다고 말하자, 조금 부끄러운 듯, 하지만 정말 좋아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런 웃음은 다르다. 눈과 코와 입과 얼굴 구석구석 퍼진 근육을 모두 움직여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진실. 케이블 TV 재방송으로 우연히 본 그 장면
빙점과 발화점이 만났을 때, <부활>의 엄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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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한국의 작가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인 김기덕과 홍상수의 작품이 나란히 발표됐다. 직접 비교하기 힘든 두 영화지만 가만히 보면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하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세운 영화사에서 의욕적으로 제작했고, 마린 카미츠 같은 해외의 유명 제작자가 제작에 참여했으며, 칸영화제 공식부문에 초청되어 외국 평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은 두 작품이다. 거기에다 재미있게도 두 작품의 상영시간은 똑같이 89분! <극장전>이 우리가 오밀조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반면 <활>은 오로지 바다와 배에서만 진행되는 영화다. 처음엔,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 속에 힘과 의지를 표현한 <활>에 비해 <극장전>은 겨울 파카 속에 들어 있는 공기처럼 가볍고 포근한 작품처럼 보였다. 그런데 다시 보니 <활>에는 따뜻한 애정이 묻어나고, <극장전>에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무시무시함이 느껴진다. 결국은 죽음을
[DVD vs DVD] 한국의 두 대표 작가, 홍상수 vs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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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와 바다라는 최악의 조합은 <죠스>의 촬영 자체를 하나의 모험으로 승화시켰다. 감독 스필버그는 ‘바다 속에는 용기와 우둔함이 함께 있었다’며 어렸을 때 뭣도 모르던 시절에나 만들 수 있었던 영화라고 회고한다. 제작자들 중 한명은 ‘원작 소설을 두번만 정독했더라면 야생의 상어가 나오는 이 영화를 절대로 못 만들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죠스>의 제작과정은 제대로 작동된 적이 없었던 모형 상어, 시시각각 기후와 일조량이 바뀌는 해상 촬영에 얽힌 트러블로 가득하다. 리처드 드레이퍼스는 한달 내내 사방에서 스피커로 들리던 ‘상어가 말썽이네요’ 방송에 지긋지긋해했고, 제작자는 모형 상어가 촬영 첫날 그대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던 광경을 지금도 황당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상기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간신히 구색을 갖추게 된 영화일수록 완성에 대한 욕심은 남다른 것. 스필버그는 시사회에서 관객의 비명 소리를 듣고 ‘저런
[서플먼트] 영화보다 무서운 제작현장의 추억, <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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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은 통일이 되었지만 분단 전의 상황을 거짓으로 만들고, <간큰가족>은 그 반대로 여전히 남북으로 갈렸지만 통일된 조국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묘사한다. 그 모든 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온 가족의 통일자작극인 셈이다. 분명 재미있고 웃기지만 돈이라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변치 않은 마음으로 일관했더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DVD는 2장의 디스크로 감독, 배우들이 참여한 음성해설과 영화 소재를 반영한 통일부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영상 등을 부록으로 수록했다.
웃기는 가족들, <간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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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휴대폰을 통해서 오는 죽음의 메시지. 일본영화의 괴인 미이케 다카시에 이어 쓰카모토 렌페이가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역시 둘간의 공력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안정적인 장르영화의 모범을 보여준 전작과 달리, 속편은 노골적으로 그간 유행했던 많은 공포영화들의 장면을 베끼고 또 베끼면서 색깔없는 영화를 자처한다. <착신아리2>는 영화적으로 조금도 발전이 없는 속편이지만, DVD 타이틀의 뛰어난 음향효과와 흥미로운 부가영상들이 그 단점을 보완한다.
그 벨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착신아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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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OVA을 통해 수많은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천지무용> 시리즈. 이 작품은 흔치 않게 OVA의 성공으로 텔레비전으로 진출, 새롭게 제작되는 사례를 남겼다. 이번에 발매되는 <in LOVE2 아득한 마음>은 세 번째 극장판으로, 이전의 작품에 비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하지만 극장판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변함없이 마사키 텐치를 둘러싼 시리즈 특유의 미소녀 캐릭터들의 활약과 잔잔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미소녀들의 잔잔한 로맨스, <천지무용! in Love2 아득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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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모는 195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인 동시에 트렌드 리더였다. 대중문화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해 매번 새로운 시도를 펼친 그는 당대의 사회문제와 변화하는 여성의 위상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다루곤 했다. 한형모가 <성벽을 뚫고>(1949)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운명의 손>은 호스티스와 여간첩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여자와 직업군인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운명의 손>은 당시 반공 분위기를 반영한 스파이물이지만 기본적으로는 1950년대 멜로드라마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외부의 장벽에 의해 비극적 운명을 맞는 러브스토리란 점에서 한형모의 1957년작 <순애보>와 연결된다. 정작 <운명의 손>의 유명세는 ‘키스신이 담긴 최초의 한국영화’라는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하고 촬영감독을 지낸 감독의 작품답게 그 미적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으며, 이제는 우리에게 낯선 1950년대의 유명 배우들을
50년대 트렌드 리더, 한형모의 테크닉, <운명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