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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필름마켓이 10월18일 폐막식과 함께 4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아시안필름마켓의 공동 운영위원장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박광수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안정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부산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폐막식에서 참가자들은 첫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했다. 함께 열린 PPP 시상식에서 홍콩 <아브라힘의 하루>의 팡호청 감독이 부산상을, <M>의 이명세 감독이 코닥상을 받았다. MBC 무비상은 <야차>의 류승완 감독, 예테보리영화제 펀드상은 <처음 비가 내리던 날>의 응유옌 판 쾅 빈 감독, 씨네클릭아시아상은 <두 발로 걷는 말>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부산영상위원회상은 <홍콩 히어로>의 아브라함 링컨 림 감독, 재외동포재단 펀드상은 <38선>의 모라 미옥 스티븐슨 감독에게 각각 돌아갔다.
이날 막을 내린 아시안필름마켓은 첫 행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일단
18일 폐막, 아시안필름마켓 '성공적' 평가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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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드 르 베스코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감독이다. 어머니와 언니가 배우였던 베스코는 8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31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올 부산에서 상영되는 브누아 자코 감독의 <언터처블>에서는 여배우 잔을 연기했다. 잔은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인도인 힌두교도인 ‘언터처블’이라는 말을 듣고 인도행을 결심하게 된다. 잔은 애인이 연출하는 브레히트의 희곡 <도살장의 잔다르크>를 포기하고 원치 않았던 영화에 출연해 돈을 받아 인도로 떠난다. 중국과 일본에 한 달씩 체류한 적이 있는 것은 물론, 미조구치 겐지와 임상수의 영화를 좋아하는 등 아시아 영화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베스코는 인도와 관련된 <언터처블>의 시나리오를 읽고 흥미를 느껴 출연을 결정했다. <사드>(2000), <잠시 후>(2004)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브누아 자코 감독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열 살도 되기
<언터처블> 배우 이슬드 르 베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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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중 아시아계 배우가 로맨틱한 연기를 펼치는 멜로영화나 코미디를 본 적이 있나. 또는 아시아계 변호사가 주인공인 영화나 아시아계 의사가 주연인 영화를 만난 적은 있는가. 혹여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아계 배우가 주연을 맡는다 해도 그 경우는 대부분 무술액션영화다. 또 할리우드에는 흑인 시장을 위한 영화나 히스패닉을 위한 영화는 존재하지만 아시아 사람을 위한 영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아시아계, 아니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계에 대한 금단의 장벽을 돌파하면서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에 출연했던 성 강, <007 어나더 데이>에 등장했던 윌 윤 리, <퍼펙트 스코어>에 나온 레오나르도 남이 그들이다. 한국과 아시아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아시안필름마켓의 ‘스타 서밋 아시아’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을 만났다.
편견을 깨
한국의 이름으로, 아시아의 이름으로 세계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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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맞수가 나타났다. 3주 동안 예매를 독식했던 <타짜>에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재로서는 혼전양상을 보이고 있다. 500만명을 돌파한 <타짜>는 맥스무비와 YES24에서 1위를 고수하며 40% 내외의 점유율을 기록중이며, <거룩한 계보>는 티켓링크와 인터파크에서 1위를 차지하며 37% 대 점유율을 선보였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두 영화의 예매율로 인해 <거룩한 계보>가 개봉하는 10월19일의 박스오피스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거룩한 계보>가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지만 조직폭력배라는 소재를 다룬 본격적인 남성영화임을 감안하다면 <타짜>와의 흥행 정면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4주째 박스오피스 순위 상승을 이뤄내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는 3개 예매 사이트에서 3위를 기록했고, YES24에서는 <거룩한 계보>를 제치고 2위
<타짜>의 맞수, <거룩한 계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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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서글한 눈매에 건장한 몸집의 젊은 남자가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만약 그를 알기 전에 그의 영화 <사과>를 먼저 보고 나서 ‘이렇게 결이 고운 영화는 세심한 성품의 여성 감독이나 만들 수 있는 일일 것’이라고 혼자 내기라도 걸어 본 부산의 관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 셈이다. <나의 일기>, <소년의 시>등의 단편작업을 했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조감독을 거쳐 장편 데뷔작 <사과>로 부산에 초대된 강이관 감독.
단정 짓거나 과시하지 않으려는 말투가 삶의 조각들을 세밀하게 담아낸 영화 <사과>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관객이 궁금해 할 이 영화의 제목 짓기에도 그런 태도가 반영된 것일 텐데, “<사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먹는 사과와 사람이 사람한테 하는 사과다. 영문 제목도 사과(SA-KWA)인데, 어차피 두 의미 모두 적당하게 반영할 영어 뜻이 없을 바에야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게
<사과> 강이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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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기를 원하지만, 아시아에서 보다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오우삼 감독의 파트너로 세계적 명성을 날리고 있는 프로듀서 테렌스 창은 최근들어 할리우드에서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드 타겟>부터 <페이첵>까지, 오우삼 감독의 모든 할리우드 프로젝트를 조력해온 그가 부산을 찾은 이유도 PPP 프로젝트인 <의혈형제> 때문이다.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 <의혈형제>는 테렌스 창과 오우삼이 공동 제작자로 나서고 서기, 리우예, 토니 양, 대니 우, 장첸 등 중화권 배우가 출연하는 프로젝트로, 현재 PPP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모으고 있다.
그의 아시아 영화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건 20년 가까운 파트너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스크린에 담는 이 영화는 5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아시아 합작 프로젝트. “오우삼이 5개의 대형
<의혈형제>로 부산 방문한 프로듀서 테렌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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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점수는 못 받아도 상관없어요.” 동의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환학생인 에노모토 마유코(23)씨는 부산영화제를 위해 중간고사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 좋으신 교수님은 “마유코상, 파이팅!!”을 외쳐주셨다고. “교수님 드리려고, 영화제 기념 핸드폰 줄을 하나 샀어요. 선물을 드리면 혹시나 리포트로 대체해 주실지도 몰라요.(웃음)”
올해 2월 한국을 찾은 에노모토씨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부산영화제를 눈여겨봤다. 이후 한국에서 같은 방을 쓰던 친구가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원래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강동원이나 소지섭을 볼 수 있을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오지 않아서 너무 섭섭해요.” 하지만 그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덕분에 지난 8개월 동안 사귄 사람들만큼의 한국친구들을 얻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올 12월이면 일본으로 돌아가는 그는 “내년에는 관객으로 참여해서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며 다음 영화제를
자원봉사자 에노모토 마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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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스톤 Crazy Stone
감독 닝 하오/홍콩, 중국/2006/105분/폐막작
폐업 위기에 처한 수공예 공장을 구하기 위해 골동품 전시회가 열린다. 공장주는 전시품 중에서 가장 값비싼 비취 장신구가 걱정되어 전직 경찰인 바오에게 경비를 부탁한다. 그 무렵 빈집털이 등을 일삼던 다오 패거리는 공항에서 소매치기한 가방을 뒤지다가 비취를 훔치기 위한 장비와 계획서 등을 발견하고 직접 공장을 털기로 결심한다. 가방의 주인과 다오가 비취를 훔치러 공장을 들락거리는 사이, 바람둥이인 공장주의 아들 샤오멩은 진짜 비취를 가짜와 바꿔치기해서 애인에게 선물하는데, 그녀는 다오의 여자친구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진짜 비취와 그것을 모방해 기념품으로 만든 가짜 비취는 수많은 손을 거치며 진열장 안을 들락거린다.
중국에서 놀라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크레이지 스톤>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처럼 인물과 사건이 세밀한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영화다. 속도가 빠
현대의 중국 서글프게 응시 <크레이지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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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날들 Days of Glory
라쉬드 부샤렙/프랑스, 알제리, 모로코, 벨기에/2006/120분/월드시네마
제2차 세계대전에 복무했던 북아프리카 식민지 군대는 가장 위험한 전투에 투입되었고 프랑스의 해방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공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혀졌다. 프랑스 군대의 길을 터주어야만 했던, 그리하여 그들보다도 많은 생명을 바쳐야했던 군대. <영광의 날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채 역사의 책장 사이에 파묻혀버린 갈색 피부의 군대를 위한 영화다.
알제리계 프랑스인 감독 라쉬드 부샤렙은 알자스 전투에 참전했던 식민지 군인들을 인터뷰하여 과거를 다큐멘터리로 되살린 듯한 영화를 만들었다. 1943년 알제리 청년 사이드는 조국 프랑스를 구하자는 구호에 고무되어 북아프리카 식민지 국민으로 구성된 군대에 자원한다. 그 부대의 하사관 마르티네즈는 어머니가 북아프리카 출신이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병사들을 모질게 괴롭히는 인
식민지 군대를 위한 영화 <영광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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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차게 달려왔다. 영화들, 배우들, 행사들, 관객들, 영화제의 관계자들, 그들을 바라보던 우리까지도. 영화의 바다에 빠져 흠뻑 젖었던 9일간을 뒤로하고 새로운 내년을 기약한다. 끝은 또다른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던가. 이제 또 다른 시작을 앞에 두고 수고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항상 웃음이 넘치길. 항상 행복하길.
마지막날만을 남겨둔, 영화제 9일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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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르와 아스마르 Azur And Asmar
미셸 오슬로/프랑스/2006/95분/오픈시네마, 동시대 프랑스 작가들
파란 눈을 가진 소년 아주르는 어릴 적부터 아랍인 유모의 아들 아스마르와 함께 자란다. 아주르는 유모의 고향에 있다는 요정 진의 전설을 들으며 그녀와 결혼하고 말겠다고 결심하지만,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아주르의 아버지는 아들을 도시로 유학보내고 아스마르 모자를 쫓아낸다. 몇년이 지나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란 아주르는 진의 전설을 잊지 못해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났다가 폭풍을 만난다. 아주르가 떠내려간 곳은 파란 눈을 저주의 상징이라 믿고 박해하는 유모의 고향땅. 장님 행세를 하며 천신만고 끝에 상인으로 성공한 유모를 만난 아주르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진을 찾으러 가지만, 아스마르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진의 궁전으로 향하고 있다. 같은 요정을 사랑했고 형제처럼 친했던 아주르와 아스마르는 이제 서로를 견제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주르와 아스마르>는 <
미셸 오슬로의 3D 애니메이션<아주르와 아스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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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하나>는 18세기 도쿠가와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무라이극이다. 주로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적인 필치로 그려냈던 그의 전작들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러한 선택에 의아함과 동시에 궁금증을 느낄 것이다. 작품을 향해 쏟아낸 질문들에 쉽게 대답을 내주지 않고 생각에 잠기곤 했던 고레에다 감독은 느리지만 진지한 목소리로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 등 주로 동시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던 당신에게 시대극은 큰 변화로 느껴진다.
=무거운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왔다. 다큐멘터리가 나의 출발점이어서 그런지, 예전에는 연극같지 않은 사실적인 느낌의 영화를 선호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완벽한 픽션을 가볍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나>는 죽음과 복수로부터 출발하지만,
<하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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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 졸업 작품이자 첫 장편영화인 <용서받지 못한 자> 마지막 상영이 있던 날, 나는 애써 태연한 듯 행동했지만 사실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이전에 두 번의 상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내 영화의 반응이 어떤지 알 방법이 없었다. 누가 감독 앞에서 영화를 욕하겠는가? “영화 잘 봤어요... ” 누구나 감독에게 예의차원에서 날리는 멘트 아닌가... 관계자에겐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보기 싫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겁이 나서 도저히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볼 용기가 없었다. 영화 상영 내내 극장 앞에서 줄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난다. 상영 내내 관객들이 영화를 욕할 것 같았다. 심지어는 줄지어 극장을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담배를 피다 극장에서 나오는 관객들을 바라보면 혹시 내 영화를 보다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도 했다. 별의별 공상을 다 하며 담배를 피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영사사고가 나서 상영이 중지 되었다는 것이다. 놀라 극장으로
부산의 첫 추억- 윤종빈 감독의 2005년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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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내가 12살 되던 해에 식당일을 시작하셨고, 29살 되던 해에 그만두셨다. 햇수로 따져보면 한 17년 정도 된다. 초,중,고,대학교 다닐 동안 수업을 마치면 항상 집 대신 식당에 와서 밥을 먹었다. 테이블이 그리 많은 곳이 아니었기에, 나는 다른 손님이 오기 전에 후다닥 먹고 빠져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인해 난 항상 오징어 덮밥을 시키곤 했다. 조리 시간도 짧고, 비벼먹는 음식이므로 빠르게 먹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식습관에 길들여져서인지, 지금도 복잡하게 먹어야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구워야 하는 삼겹살, 발라야 하는 생선, 데쳐야 하는 샤브샤브 등.. 대신, 그릇 하나에 섞어놓고 비벼먹는 음식이면 뭐든 좋아한다. 한 마디로 말해 입이 좀 싼 편이다.
부산에서 지내는 동안 나의 까다로운(?) 식습관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해운대 근처에 있는 ** 해장국집. 이 곳 해장국은 미니멀리즘의 극치다. 뚝배기 하
민용근 부산유랑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