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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다운로드’라는 말은 금기였다. 네티즌 중 절반이 경험했고 어둠, 불법, 도둑질의 대명사처럼 여겨진 ‘다운로드’는 영화계에서는 실존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봉인된 존재였다. 그랬던 다운로드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영화 부가판권의 구원투수가 되어 돌아왔다. 워너브러더스홈비디오코리아는 MBC와 제휴하여 올 여름 모든 라이브러리를 합법적인 영화 다운로드를 통해 제공할 계획이다. 비로소 합법적 다운로드의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한국영화 부가판권 시장이 구조 변화를 기대하게 하며, 장기적으로는 동영상 콘텐츠를 둘러싼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산업의 결전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인다. ‘합법’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돌아온 탕자 ‘영화 다운로드’의 미약한 시작을 통해 창대한 산업적 결말을 점쳐본다.
‘다운로드’의 바람이 분다. 어둠의 세계를 통한 불법이 아닌 ‘합법적 다운로드’다. 진원지는 할리우드. 지난 4월부터 워너, 유니버설, 소니, 파라마운트, 폭스, MGM이
합법적 다운로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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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상하던 결과가 나왔다. 갖가지 억지스러운 상황에 질질 끄는 연장방송까지 '논란 백화점'이라 불리우던 <하늘이시여>를 제치고 드디어 <주몽>이 대망의 1위를 차지하였다. 그동안 안방극장을 외면해 온 3,40대 남성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면서 방영 초기부터 놀랄만한 시청점유율을 보였던 <주몽>의 이후 성장그래프가 사뭇 궁금하다.
월드컵 시즌의 개막으로 다른 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시청율이 하락하였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전체 7위로 교양부문 2위를 차지하였고, 10위권 안팎을 기록하던 <VJ특공대>는 이례적으로 18위에 머물고 말았다. 월드컵이 지구촌 최대의 이벤트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축구 외에는 볼 프로그램이 없으니 대략 난감할 따름이다.
MBC의 자존심 <주몽> 드디어 1위로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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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장을 빠져나온 케이트(프란카 포텐테)는 택시를 잡을 수 없어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옮긴다. 간신히 표를 구해 플랫폼으로 들어가니 마지막 열차가 6분 뒤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뜬다. 벤치에 앉아 잠시 선잠 속으로 빠져든 케이트. 정신을 차려보니 플랫홈에 홀로 남아 있다. 부리나케 입구쪽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입구는 셔터가 내려진 상태. “누구 없냐”는 외침에 답하는 이도 없다. 다시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놓친 줄로만 알았던 마지막 지하철이 들어온다. 악몽과 같은 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각본과 연출을 겸한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은 ‘지하철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겪는 극도의 공포’라는 아이디어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크립>이 주는 공포의 핵심은 폐쇄적인 지하철 역사 안에서 벌어지는 한 여자와 괴한 사이의 추격전이다. 케이트에게 플랫폼과 긴 터널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낯선 공간이지만, 괴한은 이 공간을 훤히 꿰뚫고 있다. 도망자가 부처님 손바
단조로운 공포, <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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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9·11 테러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테러가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가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TV 속 화면에 놀람을 금하지 못했고, 그 놀람과 공포는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2004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러시안 묵시록>은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다. 모스크바 시민들을 상대로 테러를 일삼는 체첸 반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러시아의 소령 알렉세이 스몰린(알렉세이 마카로프)은 군사 첩보 도중 체첸의 포로로 붙잡힌다. 심한 고문을 당하던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해 러시아 정부가 모스크바 테러에 관여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러시아 정부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한편 체첸은 이슬람의 테러 세력인 안사르 알과 또 한번 테러를 계획하고 러시아의 서커스 극장을 습격한다. 조국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에게도 돌아가지 못하는 알렉세이 소령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결백과 러시아 시민들의 목숨을 모두 구하려 나선다.
알렉세이 가르킨 소
러시아 버전 블록버스터의 가능성, <러시안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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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동부 뉴저지주 뎀프시 의료센터 응급실. 브렌다 마틴(줄리언 무어)이 코트와 손에 피를 묻히고 멍하니 정신이 나간 채 들어선다. 흑인 남자에게 차를 절도당했고, 그 남자가 밀쳐서 다쳤으며, 무엇보다 차 뒷자리에 몸이 안 좋은 네살배기 아들이 타고 있었다는 게 브렌다의 주장이다. 응급실로 관록이 느껴지는 로렌조(새뮤얼 L. 잭슨) 형사가 다급하게 들어선다. 낯익은 아이 납치 소재에 베테랑 형사가 나섰으니 이제 볼 만한 추리와 범인 검거가 시작될 듯하다.
그런데 브렌다의 주장은 어딘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고, 로렌조는 브렌다의 몽롱한 진술 덕분에 열받았는지 심한 천식으로 헉헉댄다. 병원은 흑인 거주지와 백인 거주지 사이에 있고, 로렌조는 흑인 거주지의 대부 격인 인물이며, 브렌다는 흑인 거주지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라는 게 드러나면서 영화는 ‘후더닛’(whodunit)에서 흑백 갈등의 드라마로 이동한다.
브렌다의 동생인 대니 형사가 사태에 끼어들면서, 오히려 영화는
첨예한 갈등 사이에 뒤엉킨 진실, <프리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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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두(조인성)가 밥상머리에서 부하들에게 묻고 답한다. “식구가 뭐여?” “같이 밥먹는 입구멍이여.” 병두는 두 종류의 입구멍에서 밥숟가락이 떨어지지 않도록 피땀 흘린다. 달리고 또 달리며, 죽이고 또 죽인다. 병두는 로타리파라는 조폭 조직의 2인자이지만 동시에 여섯명의 새끼 조폭을 자기 식구처럼 거느리고 있다. 그는 식구, 곧 가족이라는 조직 원칙을 부하들에게 무척 강조한다. 유사가족을 먹여살리는 일도 보통이 아니지만 진짜 피를 나눈 식구의 보스 노릇도 만만치 않다. 남편없는 어머니는 병환에 시달리고, 남동생은 건달 동네를 기웃거리며, 여동생은 노심초사해야 할 만큼 어여쁘고 여리다. 철거 위기에 처한 집도 시급히 구해내야 한다. 중간 보스라는 지위와 온몸을 휘감은 용 문신의 품위에도 불구하고 떼인 돈 받아내는 주요 임무를 성심성의껏 치러내는 건 이 많은 식구들 때문이다. 그렇지만 채무 해결의 떡고물로 위신과 생계를 동시에 꾸리기엔 곤란함이 크다. 초등학교 첫사랑 현주(이보영)를 아주
<말죽거리 잔혹사>의 액션 확장판, <비열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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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는 진화의 더딘 과정에 이따금 찾아오는 비약, 이라고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는 <엑스맨>(2000) 도입부에 정의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과 <엑스맨2>(2003)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영화의 소사(小史)에서 수행한 역할도 비슷했다. <엑스맨>이 없었다면 <스파이더 맨> 시리즈, <헐크> <배트맨 비긴즈> 그리고 <슈퍼맨 리턴즈>의 기획안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엑스맨>의 ‘X’는 게이, 10대, 유색인, 여성 등 어떤 이유에서든 사회의 소수자라고 느끼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유혹적인 미지수다.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엑스맨>의 돌연변이들에게는 초인이라는 사실이 절체절명의 기밀이 아니다. <엑스맨> 시리즈는 파워를 이미 거기 있는 문제 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해석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스파이더 맨>
숨가쁜 액션블록버스터, <엑스맨: 최후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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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들의 작품을 시상하는 로카르노영화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스위스와 영화를 결합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시네필을 자처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난감한 사항이다. 로카르노영화제를 제외하고 스위스가 영화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경우란, 고다르가 80년대 스위스에 거주하면서 비디오 매체를 통해 영화적 실험을 진행했던 시기를 ‘스위스 시절’이라 약칭할 때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실제로 스위스영화는 영화 연구에서도 변방에 위치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꽤 꼼꼼한 기술을 자랑하는 영화사 저서에서도 스위스영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면에서 ‘필름 포럼’과 ‘시네마테크 서울’이 공동 주최하는 ‘미지의 영화대국 스위스’는 한국의 시네필들에게 영화 보기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6월15일(목)부터 23일(금)까지 열리는 ‘미지의 영화대국 스위스’는 1960년대 후반의 ‘뉴 스위스 시네마’의 영화에서부터 2000년대 발표된 영
다채로운 영화체험, 스위스영화의 발견, 스위스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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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타티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나의 삼촌>은 그에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안겨다줬다. 그 바람에 그는 아카데미쪽으로부터 특별한 ‘향응’을 제공받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타티가 요구한 것은 스탠 로렐, 맥 세넷, 버스터 키튼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그는 현재 자기가 속한 세계를 자신보다 앞서 풍요롭게 만들어준 대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소문에 따르면, 타티와 만난 키튼은 그에게 그의 영화들은 유성영화로 무성코미디영화의 진정한 전통을 이어가는 것들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렇듯 막스 랭데에게서 혹은 맥 세넷에게서 발원지를 찾을 수 있는 영토 안에서 활동하고 그러면서 그 앞선 세대의 것과는 다른 그만의 세계를 축조해낸 이가 바로 타티였다.
이 프랑스 코미디영화의 대가는 우선 윌로씨(Monsieur Hulot)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다. 레인코트를 입고 파이프를 물었으며 구부정하게 걷는 이 키 크고 마른 남자는
새로운 영화 우주를 창조한 시네아스트, 자크 타티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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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에서 박찬욱 감독이 김기영 감독에 대해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만약 김기영 감독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오늘날 영화계에서 세계적인 대가로 인정받았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김 감독은 1960∼70년대에 영화감독으로 작업하는 데 있어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검열, 물적 자원의 부족, 지지를 보내지 않는 관객 등 너무 많았다. 그렇지만 박 감독이 언급했던 것이 이런 실질적인 곤경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녀>나 <이어도> 같은 영화들은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성공하여 영화 매체를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세계 영화계는 결코 알아채지 못했다. 김기영 감독은 작은 나라에 갇혀 있었고, 그는 영원히 세계적인 감독이 아닌 한국 감독으로 머물러 있다. 현대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에서 체코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에 대해 유사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20세기의 가장 혁
[외신기자클럽] 작은 맥락과 큰 맥락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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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은 슈퍼맨의 성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이같은 논쟁이 수면에 드러난 것은 미국 게이잡지 <어드보킷>이 ‘슈퍼맨은 얼마나 게이인가’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내면서부터. 기사에 따르자면 슈퍼맨은 이보다 더 게이일 수 없다.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을 즐기고, 사회로부터 조금 소외되어 있는 존재이며,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슈퍼맨 리턴즈>의 감독이 <엑스맨>을 연출한 동성애자 브라이언 싱어라는 사실 또한 <어드보킷>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제는 슈퍼맨의 성 정체성 논란이 흥행에 끼칠 영향력이다. <LA타임스>의 조사에 응한 홍보 전문가들은 이같은 논쟁이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지역의 십대들은 게이 관객의 지지를 받는 작품의 관람을 꺼릴 것이며, 3억달러짜리 블록버스터 이미지가 게이 논쟁으로 인해 지나치게 말랑말랑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명백한 동성애 코
[What's Up] 슈퍼맨이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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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다빈치 코드>가 이탈리아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상업성과 결탁한 영화제인가?’, ‘예술성은 사라지는가?’라는 제목을 단 언론들은 <다빈치 코드>의 화려한 등장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법적으로 가톨릭 국가라는 명시는 없지만, 국민 90% 이상이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바티칸 시국의 영향 아래 있는 이탈리아인들은, <다빈치 코드>가 ‘예수를 팔아먹은 영화’라며 분개했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돈 빈첸소 피라르바 신부는 시민들이 모인 광장에서 <다빈치 코드> 서적을 불태워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빈치 코드>는 3주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거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상업성과 결탁했다고 비판하던 언론들도 이탈리아영화를 4편 초청한 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관심을 지켜본 피렌체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을 세울 것을 추진하기로 했다.
[로마] 칸, <리베로도 괜찮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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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감독 겸 배우 장원(姜文)이 <귀신이 온다> 이후 6년 만에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의 신작을 발표한다. 차라리 부족할망정 아무 작품이나 찍을 수는 없다는 의지를 줄곧 내비쳐온 장원 감독이 선보이는 세 번째 작품은 헤밍웨이의 동명소설에 대한 헌사로 알려진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이다. 전작들처럼 소설을 각색한 이번 작품의 원작은 중국 여류작가 예미의 단편 <벨벳>. 문화혁명기간 중 농촌으로 하방된 화교 탕위린 부부와 마을의 나이 어린 생산대(사회의 전 분야를 통합, 운영하는 말단의 농촌 조직) 대장 리동팡 사이에 얽힌 치정을 다루고 있다. 부인과 리동팡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챈 탕위린은 부인이 무심코 던진 “어떤 사람이 말하길 내 피부가 ‘벨벳’ 같다더라”는 말에 분노하게 되고, 리동팡을 죽일 작정으로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지만, 농촌에서 자란 리동팡은 ‘벨벳’이라는 단어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헤밍웨이가 동명소설에서 보여준 전후 ‘잃
[베이징]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중국식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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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아시아영화 수입 전문 레이블 ‘드래곤 다이너스티’ 런칭을 발표한 웨인스타인 형제가 아시아영화를 향한 본격적인 구애를 시작했다. 6월6일자 <스크린 데일리>에 따르면 웨인스타인 형제는 장쯔이와 함께 세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교섭 중이다. 세편의 영화는 <뮬란> <7인의 사무라이> 리메이크작, 그리고 현재 시나리오 집필 중인 미지의 프로젝트. 웨인스타인 형제는 2004년 <영웅>을 세계 배급하면서 장쯔이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바 있는 <뮬란>은 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간 소녀가 주인공인 중국 고대 전설을 소재로 한 것으로 왕휘링(<와호장룡> <적벽대전>)이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배우인 양자경과 제작자 테렌스 창 등이 함께 참여할 인물로 거론 중이다. <7인의 사무라이>는 웨인스타인 형제가 미라맥스에 있을 당시 리메이크 판권을 획득한 뒤 더 웨인스타인
웨인스타인 형제, 아시아영화 제작 가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