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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분류할 순 없다. 액션, 그 자체의 쾌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 또한 촬영 중에 “이 영화 속 모든 액션은 드라마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러했듯이, <비열한 거리>에서도 유하 감독은 액션보다 감정의 흐름을 우선했다고 한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최선중 프로듀서는 “평소 좋아하는 무협영화를 만든다면 또 모르겠지만”이라면서, “그의 영화에는 액션을 위한 수사가 없다. 그가 취하는 액션은 철저하게 드라마에 복속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배우들에게 멋있는 발차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개각도 촬영은 물론이고 심지어 흔한 고속촬영도 좀처럼 안 한다. 촬영 때 합이 맞지 않아서 ‘삑사리’가 나더라도 그게 진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를 순 없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액션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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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 충동의 예술관 보여주는 김기덕의 작품세계
김기덕 감독에 관한 오해가 있다. 그는 아마 최근 몇년간 상을 많이 받은 감독 중 한명일 것이다. 그런데 수상 경력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작품을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으면서 일종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김기덕 감독의 어떤 작품도 본성상 완결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의 영화 전편은 손에 손을 맞잡고 추는 길들여지지 않은 춤의 하나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이를테면 각각의 작품은 솟구쳐 오르면서, 그 속에서 다른 작품들을 이끄는 손에 손을 잡고 맞물려 있다.
동일한 주제와 장면이 맞물려 연결되는 작품들
주제들을 열거하고, 똑같은 장면들을 재현하고, 삭제하고, 지우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여러 면에서 <수취인불명>의 연결선상에 있다. 이 작품들은 6·25 전쟁과 군대의 토대에 관한 반자전적인 닮음꼴 2부작을 구성한다. 무언가에 쫓기고, 미쳐버린 미
김기덕과 <시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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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틈새 위에 존재하는 김기덕의 작품세계
“김기덕 시스템”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김기덕은 이렇게 대답한다. “시스템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물이다… 나는 단지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김기덕 영화의 힘은 특유의 내러티브와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회화적 “물방울”에 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이름과 얼굴은 바뀌지만,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다. ‘김기덕 워터 시스템’(김기덕이 “나는 물”이라고 말한 것에 빗대어 “물방울”과 “water system”이라는 표현을 썼다)은 테마적인, 그리고 시각적인 두개의 층으로 짜여진 조직이다. 첫 번째 층은 김기덕 영화의 이야기와 인물을 형상화하는 혼돈스러운 배경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몇개의 강력한 핵심들은 언제나 변증법적이고 상호 대립하는 두 요소들간의 관계로 쪼개어진다. 그의 영화세계는 많은 방들- 수많은 프레임들이 영화를 채우듯 각각 수많은 그림들로 가득 찬-로 구성된 하나의 회화적 집합체이다.
성적 행위와 폭력으로
김기덕과 <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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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의 최초 시사회가 지난 5월25일 <씨네21>과 KT&G 공동 주최로 열렸다. <시간>의 개봉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영화를 개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씨네21>은 개봉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시간>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미리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김기덕 영화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해외 필자들의 소중한 글을 같이 실었다. 한국영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피력하고 있는 프랑스 영화잡지 <포지티프> 기자인 아드리앙 공보의 글과 이탈리아의 영화평론가 안드레아 벨라비타의 글이 그것이다. 두 필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각각 자국어로 김기덕 감독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이다(유럽에서 한 한국감독에 관한 책이 두 권씩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검은 화면에 두번 연거푸 쓰인 <시간>이라는 제목이 뜬다. 마치 찌그러진 데칼코마니인 양 양편으
김기덕과 <시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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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가 끝난 것을 알았던 것일까.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두번 받았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80)이, 지난 5월30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켄 로치 감독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거장의 건재함을 알렸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죽음은 일본영화의 한 시대가 막이 내렸음을 알린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일본영화의 거장을 꼽는다면 가장 먼저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가 떠오른다. 오시마 나기사는 성과 정치의 최전선에서 투쟁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의 생명력 그 자체를 탐구하며, 일본영화의 거친 60년대를 대표했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와 오시마 나기사는 각자 일본이라고 하는 사회 혹은 세계의 근원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문제적 감독이었다. 두 감독은 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지만, 오시마 나기사는 1999년 <고하토>를 연출한 뒤 건강문제로 활동중단 상태였다. 21세기
추모, 이마무라 쇼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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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
혁명은 부족하나 너무 화사한
5월24일에 있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영은 야유와 박수소리의 불협화음으로 요란했다. 한편 5월26일자 <필름 프랑세>와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는 그때까지 상영된 그 어떤 영화들에 주어진 것보다(게다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의 영화에 쏟아진 것보다) 많은 최고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쏟아졌다. 평점은 최고가 아니었지만 최고점을 준 사람은 가장 많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닥난 국고, 무의미한 해외에서의 전쟁, 극심한 가난 등으로 성난 군중에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한국에는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로 알려진 바로 그 말)를 했다는 일화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사치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이었던 민중 봉기의 합당한 대의명분하에서 참수형을 당한 프랑스의 왕비였다. 영화는 프랑스 역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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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요정이 함께하는 슬픈 연민의 영화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부모가 살해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친구가 사라지는데도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남아야만 한다. 옛날이야기로 시작되는 <판의 미로>는 잔인하고 거대한 세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을 견디었는지 기억해주는 영화다. 겁먹지 않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2001년 <악마의 등뼈>에서 죄없이 죽은 소년과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영화의 “거울 이미지이자 쌍동이 같은” <판의 미로>에서도 차가운 돌바닥에 누운 소녀를 위해 서글픈 자장가를 불러준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이 배경이었던 <악마의 등뼈>와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다. 1944년 스페인, 몇몇 게릴라들은 내전이 끝났는데도 산속에 숨어 독재자 프랑코 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오펠리아는 어머니와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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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칸영화제가 5월28일 막을 내렸다. 개막작 <다빈치 코드>로 불길하게 시작했던 칸영화제는 유럽의 거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켄 로치, 아키 카우리스마키, 난니 모레티의 영화를 중반 이전에 공개하고도 약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고른 호평을 받았던 켄 로치의 <보리를 흔드는 바람>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럴 바엔 켄 로치의 이전 영화들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걸작이 없는 가운데 최대한 공감을 얻으려 애쓴 것처럼 보이는 칸영화제를 되돌아보고,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칸영화제의 취향을 넓혀주었다고 할 만한 수작 세편을 소개한다. 어둡고 아름다운 지하 미궁을 창조한 판타지영화 <판의 미로>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떼어놓고 탐구하여 찬반 격론에 휩싸인 <마리 앙투아네트>, 정치영화의 선동성과 탈옥영화의 긴장감을 함께 지닌 <부에노스아이레스 1977>이 그것이다. 축제는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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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플러스 이북 4호
넥스트플러스 이북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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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 서먼/
노란색 트레이닝복의 무시무시한 킬러, 우마 서먼이 로맨틱코미디 <액시덴털 허즈번드>에 캐스팅됐다. 영화는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상한 심리학자 이야기. 우마 서먼은 심리학자로 출연해 남편과의 사이에 발생하는 좌충우돌을 연기할 예정이다.
모니카 벨루치/
아름다운 여신 모니카 벨루치가 간디 집안의 며느리 소냐 간디를 연기한다. 인도의 전 총리였던 라지브 간디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던 소냐 간디는 인도 집권당인 국민의회당의 당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모니카 벨루치는 소냐 간디의 삶을 소재로 할 제목 미정의 이 영화를 앞두고 매우 신이 나 있다고. 영화는 올 9월 촬영에 들어간다.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블란쳇이 밥 딜런의 전기영화 <나는 거기 없다>에 출연한다. 토드 헤인즈가 연출하는 이 영화는 밥 딜런의 삶과 음악을 일곱명의 캐릭터를 통해 비춰낸다는, 색다른 형식의 전기영화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중 싱어송라이터 주드 역을
[캐스팅 소식] 우마 서먼의 로맨틱코미디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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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삼성르노상’을 수상한 이도윤 감독의 <우리. 여행자들>은 매우 여성적인 느낌의 영화다. 한달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임신부가 남편의 애인과 기묘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표현 못하는 두 여인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는 영화 <우리. 여행자들>의 이도윤 감독을 만났다.
-영화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에 쓴 시나리오다.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누군가가 위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영화를 생각하게 됐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임신부도 남편의 내연녀도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함께 길을 간다면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상처를 굳이 두 여인의 여정으로 풀어낸 이유는 뭔가.
=부산에서도 내가 가기 전까
<우리. 여행자들>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입상한 이도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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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대표 감독 우디 앨런이 30년지기 친구와의 싸움에서 패했다. 싸움의 시작은 2001년, 우디 앨런은 그의 제작자이자 친구인 진 두메니언이 자신에게 영화의 수익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으며, 1200만달러가량을 사기쳤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에도 앨런과 두메니언은 영화의 편집과 관련하여 말이 많았고, 2004년에는 우디 앨런이 <브로드웨이를 향해 쏴라>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등 6편의 영화를 텔레비전과 선박에서 방영할 때 두메니언의 편집본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정은 두메니언의 손을 들어줬고, 앨런쪽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30년 우정도 돈과 일 앞에선 쉽게 금이 가나보다~.
우디 앨런 감독의 씁쓸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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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션디자이너 헨리 범스테드(91)가 유명을 달리했다. <사이공>(1948)을 시작으로 60여년에 걸쳐 100편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온 그는 <앵무새 죽이기>(1962)와 <스팅>(1973)으로 아카데미 미술상을 두 차례 수상한 바 있다. 범스테드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도 오랜 관계를 유지해왔다. <용서받지 못한 자>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이스트우드의 연출작 10편을 작업했다. 범스테드의 유작은 현재 후반작업 중에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우리 아버지들의 깃발>이다.
관록의 미술 감독 헨리 범스테드,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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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 하드>(1985)에서 경찰서장을 연기했던 폴 글리슨(67)이 폐암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윈터 어 고 고>(1965)로 데뷔한 뒤 <대역전> <블랙퍼스트 클럽> <다이 하드> <죠니 비 굿>을 비롯해 60여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 의사, 형사, 교수 등의 역할을 주로 맡았다. 글리슨은 최근 인기 시트콤 <프렌즈> <도슨의 청춘일기> <말콤네 좀 말려줘> 등의 TV히트작에도 얼굴을 비춘 바 있다. 친구이자 배우인 지미 호킨스는 “그에게는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다”며 폴 글리슨의 뛰어난 유머 감각을 상기하기도 했다.
<다이 하드>의 폴 글리슨, 눈을 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