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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과 만화의 판권이 팔렸다는 뉴스는 더이상 신기하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바보> <오래된 정원> 등이 이미 서점에서 영감을 찾아냈고, 인터넷 소설도 몇년 전부터 연이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황진이>와 <순정만화>도 미묘한 창작의 과정인 각색을 시도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잊혀진 우리말과 시와 노래를 싣고 있는 <황진이>와 네명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순정만화>는 유독 각색이 어려운 작품들이겠지만, 그만큼 원작이 다른 매체로 변화했을 때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특별하지 않은 이들의 특별한 사랑, <순정만화>
시놉시스/ 서른살 회사원 김연수는 출근길 아침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나운 여고생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여고생 한수영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 숙맥 아저씨가 마음에 든다. 어느 날 교복 넥타이를 잊고 집에서 나온 수영은 연수에게 넥타이를 빌려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4] - 원작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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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3각 게임에서 제멋대로 몸을 놀렸다간 얼마 못가 넘어지기 마련이다. 한데 발을 묶은 두 사람이 보폭과 호흡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얼마나 빨리 결승점에 가닿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6월12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1관과 5관에서 동시에 첫선을 보인 <강적>. 한데 묶이기 쉽지 않은 살인범죄 용의자와 망나니 형사가 함께 수갑을 차고 도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2인3각' 버디 무비 <강적> 은 얼마나 성공적인 계주를 벌였을까.
<강적>의 수현(천정명)은 맘 먹고 새 삶을 차린 젊은이다.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여자친구와 함께 라면가게를 운영하는 수현은 어느날 밤 어린시절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재필(최창학)의 연락을 받는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아들고서 수현은 재필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약속대로 수현은 사채 놀리는 건달 김중만을 찾아가 그의 옆구리에 칼을 먹인다. 따라붙는 김중만 일당을 어찌하지 못하던 도중 수현은 음주단속을
박중훈, 천정명 주연 <강적> 첫 시사 (+100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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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큼 애증이라는, 모순된 감정과 어울리는 존재가 있을까.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림자를 드리워서, 그 흔적이 없는 영화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 그러나 장애인과 그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허브>와 판자촌 식구들의 힘겨운 투쟁과 새로운 시작을 그리게 될 <특별시 사람들>은 가족의 미묘한 의미를 직접 화법으로 고민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두편의 영화 속 가족은 가깝고도 멀고, 당연하면서도 낯설다. 우리네 가족들과 제법 닮았다.
장애인 아가씨의 꿋꿋한 홀로서기, <허브>
시놉시스/ 생머리에 마른 체구를 지닌 스무살 아가씨 상은(강혜정)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 정신연령이 일곱살에서 멈춰버린 정신지체자이고, 아버지 없이 꽃집을 운영하는 엄마 현숙(배종옥)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고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가차없이 물어버리고, <미녀와 야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은은 자신만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3] - 가족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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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은 만만찮은 장르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고증에서 재연까지 드는 수고는 물론이고 과거를 끌어와 현재와 어떤 접점을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도 적지 않다. 5·18 광주민중항쟁과 베트남 전쟁처럼 아직도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역사를 되짚어야 한다면, 그러한 부담은 배가 될 것이다. <화려한 휴가>와 <무기의 그늘>은 누구도 선뜻 택하지 않는 소재와 배경을 택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받는 프로젝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제 막 돌리기 시작한 김지훈, 필감성 두 젊은 감독들로부터 고투의 과정 일부를 들었다.
정면으로 80년 광주를 바라본다, <화려한 휴가>
시놉시스/ 민우(김상경)는 택시기사다. 넉넉지 않은 생활이지만, 그는 공부 잘하는 동생 진우(이준기)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직장 동료의 부추김으로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간호사 신애(이요원)와 극장 데이트를 하게 된 민우. 첫 데이트의 설렘은 그러나, 갑작스럽게 극장에 들이닥쳐 곤봉을 휘두르는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2] - 시대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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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신작 촬영준비에 여념이 없는 충무로 제작진들이다. 과연 그들은 월드컵 개막일이 며칠인지 알고 있을까. 한국의 예선 경기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알고 있을까. 이것만은 분명하다. 월드컵에 나선 축구선수들 못지않게 그들 또한 오랜 시간 사활을 걸고 프로젝트 진수를 위해 애써왔다는 것만은.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개봉할 한국영화 중 최근 몇년 동안 상업영화의 트렌드라고 할 만한 소재, 배경 등을 택한 10편의 영화를 꼽았다. 청춘을 되묻고, 시대를 거스르고, 가족을 내세우고, 원작을 택하고, 속편이 뒤따르는 영화로 범주를 나누고 제작이 가시화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2편씩 선정했다. 그 다음 과거 비슷한 트렌드의 영화들의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하고 단점들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지를 물었다. 올해 하반기부터 쏟아져 나올 한국영화 기상도의 일부분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아.
두편의 청춘영화 &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1] - 청춘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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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지만 있는 듯, 괴물의 존재를 고려한 촬영
이와 동시에 호주의 특수효과업체 존 콕스팀에서는 애니매트로닉스(전자적으로 재현되는 로봇) 작업이 진행됐다. 애니매트로닉스는 <쥬라기 공원> 등에서 사용된 것으로, 크리처가 배우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등장할 때 CG가 아니라 실제 크기의 로봇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괴물>에서도 괴물의 입 부분이 애니매트로닉스로 만들어져, 괴물이 사람을 삼키거나 뱉을 때 등에 사용됐다. 한국에서도 괴물의 존재를 고려한 촬영이 진행됐다. 배우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있는 듯 연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수효과업체 퓨처비전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일으키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괴물이 물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드럼통을 정해진 각도로 빠뜨린다든가 하는 ‘프랙티컬 이펙트’ 작업이었다. 한편 한국의 CG업체 EON은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의 CG를 만들기도 했다.
시각적인 요소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괴물이 일으키는 실감
<괴물> 속 괴물 제작 과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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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칸영화제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마치고 7월27일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국내와 해외의 매체를 통해 다채로운 찬사를 끌어낸 <괴물>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괴물’ 그 자체다. 그것은 괴수 캐릭터가 그동안 한국 주류 영화계에서 거의 등장한 적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고, 촘촘하게 영화를 만들기로 정평이 난 봉준호 감독이 만든 괴수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괴물> 속 괴물의 탄생과정을 되돌아보고,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다만, 마케팅 방침상 괴물의 스틸 이미지를 공개할 수 없다는 영화사의 입장으로 다소 동떨어진 이미지를 덧붙이게 된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킹콩>과 달리 <괴물>의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괴물에게 물려간 딸 현서(고아성)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박강두(송강호)와 그 가족이다. 그럼에도
<괴물> 속 괴물 제작 과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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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오멘> 그 아인 악마의 자식이오!
[정훈이 만화] <오멘> 그 아인 악마의 자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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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혼자 집 앞 골목에 나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달콤한 바다의 기억’, 비내리는 날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나의 기타소리 그리고 절친한 내 친구도 함께했던 우리 ‘트리오’. 여기까지의 묘사를 이미지를 그려보면 그것은 아련하고, 예쁘고,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따뜻하다. 시부야계 밴드 폴라리스의 2집 <Family>의 음악을 설명하자면 딱 그렇다. 처음 3개의 문장에서 작은따옴표로 표시된 것들은 <Family>에 수록된 노래 제목들이다.
폴라리스는 90년대 시부야계의 전설적인 밴드 피쉬만즈의 베이시스트 가시와바라 유즈루가 만든 밴드다. 이번 2집에 담긴 음악은 피쉬만즈의 색깔을 물려받으면서도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바탕으로 훨씬 간결한 팝을 구사한다. 드럼과 베이스가 가세한 3개 악기가 주연을 맡았고 노래마다 주·조연급의 악기가 등장한다. <심호흡>(深呼吸)에서는 재지한 피아노 선율
아련하고도 달콤한 낮잠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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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길모퉁이에서 로큰롤과 맞닥뜨리면 깜짝 놀라잖아. 보통은 그럴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맞닥뜨렸어. 위험한 거지.” 고만고만한 연애담들의 연속처럼 느껴지던 일본 소설들 사이에서 이사카 고타로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은 <사신 치바>에 나오는 구절처럼 아찔함을 동반한다. 이사카 고타로는 <칠드런> 한권만 국내에 소개된 작가지만, 무려 네 차례나 나오키상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하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탓인지 <러시 라이프>(2002), <중력 삐에로>(2003), <사신 치바>(2005)가 각기 다른 출판사의 이름을 업고 일시에 출간되었다.
<러시 라이프>는 도시의 현실과 도시의 전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표지 그림인 M. C. 에셔의 ‘상승과 하강’과 똑 닮은 구조로 처음과 끝이 연결되고 각 인물들의 상승과 하강이 역전된다. 무대는 일본 센다이(작가가 살고 있는 곳이다). 연
삶을 아찔하게 버무려내는 감각, 이사카 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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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글을 쓰게 된 이 코너의 이름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다. 유토피아란 말을 처음 안 건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그 옛날에도 사람들은 꿈꾸기를 좋아해서 유토피아란 말을 널리 애용했다. 그런데 디스토피아란 말을 들은 건 불과 얼마 전이다. 그 사이 아마도 유토피아인 줄 알고 다가갔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유토피아를 온몸으로 야유하는 조어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디스토피아란 말을 만든 사람은 혹시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테크노피아를 표방한 가전회사의 전기장판에 엉덩이를 덴 사람이거나 홈토피아 건설회사의 아파트에서 날마다 옆집 부부 싸움을 청취해야 하는 사람.
이 칼럼의 코너명이 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일까 잠시 생각해봤다. 서로 반대 의미인 두 단어의 관계는 세 가지로 해석이 가능했다. 첫째는 두 단어가 대등한 병렬관계로,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단순히 질문하는 경우이다.(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둘째는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를 부정하는 관계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If 유토피아, Then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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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동안 볼 섹스신을 칸영화제 시작, 이틀 만에 다 봤다. 주인공들은 만나면 거두절미하고 섹스를 하곤 했다. ‘거두절미’라는 표현은 물론 약간의 뻥이 섞인 것이지만, 어쨌건 빈도 면에서나 강도 면에서나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미처 못 봤지만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는 영화 한편으로 1년치 섹스신은 다 보여준다고들 했다. 그런 상황이니 섹스신을 보는 것만으로 인물들간의 관계와 상황 전개를 대략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아, 이것이야말로 심도깊은 예술세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로우예의 <서머 팰리스>에서 중국 내 정치상황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거칠게 삽입된(원래 이 말이 이렇게 야한 표현은 아니었다, 맹세한다) 베를린 붕괴나 천안문 시위 장면 등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보다 여주인공의 성적 분방함이 도를 더해가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느끼면’ 된다. 교르기 팔피의 <박제> 첫 에피소드에서, 남자주인공이 놓인 극한
[오픈칼럼] 흡연유발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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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좋아했던 후배는, 단편집 <임신 캘린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대체로 취향이란 명백한 것이다. 나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별로였다. 잘 쓴 소설인 것은 분명하지만,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 따뜻한 이야기는.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가, <임신 캘린더>를 읽었다. 빨려들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빛이라면, <임신 캘린더>는 어둠이었다. 온다 리쿠의 말처럼 ‘자기가 쓸 또 하나의 소설’을 본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과거의 한 장면과 직면했다. 가끔 그런 소설을 만나면, 한동안 멍해진다. 고등학교 때, 김성동의 소설을 읽고 그랬던 것처럼.
<임신 캘린더>는 일종의 악몽이다. 그 악몽은 공포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건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불면의 밤을 지새다가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볼 때의 절망감 같은 것이다. 결코 원하지 않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지만, 반드시 겪
[B딱하게 보기] 빛까지 감지하는 어둠의 포착, <임신 캘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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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국정홍보처의 ‘공식’ 견해에 따르면, “다이내믹 코리아!”뿐이다. 위성채널을 돌리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CNN> 같은 외국 방송에 멈추게 되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한국어 방송으로 돌리려는 순간, 우연히 한국 홍보 광고를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익숙한 화면이 스친다. 남대문시장 앞에서 난데없이 난타공연을 벌이다가, 양복 입고 휴대폰‘질’하는 아저씨가 등장했다가 아니나 다를까 월드컵 응원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마무리 멘트, “There is only one word to describe this place. Dynamic Korea!”
볼 때는 짜증스럽지만, 어느새 따라하게 되는 광고 카피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붙인 카피인 것 같은데, 어쩌다 현실에 딱 맞아서 자꾸 웅얼거리게 되는 문구가 있다. 내겐 “다이내믹 코리아”가 꼭 그랬다. 누군가 하는 짓을 보다가, 혼자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웅얼거린다. “다이내믹 코리아
[이창] 다이내믹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