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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먼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최근의 문제적인 감독들이 즐겨 다루는 ‘시간’의 모티브로 출발한다. 그 시간이 선형적인 진행형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은 시간의 종착점과 출발점이 동일한, 순환적인 시간개념을 다루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보여줬던 시간의 순환성에 대한 또 다른 사유의 결과인데, 이번에는 순환의 구조 속에 동일한 인물이 배치돼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의 시작과 끝에 만날 수 없는 같은 사람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런데도 비현실적인 인물배치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허구 속에서 매듭지어 있다. 아마 우리 영화에서 시간에 관한 사유의 소재를 이만큼이라도 제공한 작품은 드물 것이다.
익숙한 소재, 희미한 사유
이런 ‘새로운’ 시간개념에 들어 있는 주내용도 문제적인 감독들이 최근에 자주 다루는 정체성의 분열에 관한 것이다.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3] - 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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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존재와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존재는 어떻게 동일성을 유지하는가? 변화하는 건 무엇이고, 불변하는 건 무엇인가?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관계의 새로움을 꾀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시간은 흐르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시간>은 철학적 난제들로 가득하다. 물론 답도 있다. 그 답은 변증법적이거나 불교적이거나 들뢰즈적이다(가장 자신있는 키워드를 골라보시라). 어쨌든 <시간>의 세계관은 안티-플라토니즘적이다.
1. 세희와 새희, 그녀는 하나인가 둘인가
그녀는 지우와의 관계(R)를 새롭게 하고자, 세희의 얼굴을 버리고 새희(New희)가 된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은 ‘신선해진 관계’(NewR=New희&지우)가 아니다. 그는 세희와 열렬히 사랑했던 당시의 지우가 아니라 세희에게 실연당한 지우, 즉 지우^이다. 따라서 관계는 새희&지우^=R^이 된다. R^은 그녀가 바랬던 NewR과 다르다. 그녀는 지우^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연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2] - 황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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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이 드디어 8월24일 개봉한다. 그동안 개봉 여부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극장에서 만난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가 한국의 극장에서 개봉될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더불어, 이 영화가 “20만명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간의 흥행실적이나 배급규모로 볼 때 상황이 좋지는 않다. 과연 우리는 김기덕 영화를 다시는 한국의 극장에서 볼 수 없게 될 것인가? 황진미, 한창호, 변성찬, 남다은 네명의 평론가가 영화평을 보내왔다. 응원이든 비판이든 <시간>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흔치않은 영화다. 4인4색 영화평을 통해 <시간>이 던지는 철학적, 영화적 질문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죽음만 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반복
고백하자면, 나는 김기덕의 영화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없다. 한때는 그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도무지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1] - 남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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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랑 비슷하다는 느낌에서 시작했다”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행간읽기다. 그는 아주 구체적인 것에만 답할 수 있거나, 아니면 어떤 큰 덩어리의 전체 생김새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애쓴다. 처음 듣는 사람은 좀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어떤 문제를 가까이서 집요하게 헤집어본 경험이 있거나, 무엇이든지 자기 식대로 한 걸음 비껴서서 조망해보려고 노력해본 사람들에게 무릎을 칠 만한 구절이 많다. 그의 대답을 상기하며 영화를 상상하는 게 필요하다. 이게 홍상수식 어법을 귀담아듣는 포인트일 수 있겠다. 개봉 전 인터뷰임을 감안하여 주로 현장 연출을 중심으로 묻고 답했다.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하자며 시작했지만, 진심으로 아는 건 모두 말해주었다.
-어떤 상황이나 단상에서 시작된 영화인가. <해변의 여인>에 관해서는 처음으로 나가는 인터뷰니, 상투적이지만 이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보통 몇 가지가 섞이는데, 처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해변의 여인> 촬영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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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신작 <해변의 여인>이 8월31일 개봉한다. 홍상수의 7번째 영화다. <씨네21>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에 이어 그의 영화현장 취재기를 세 번째 허락받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길목마다 놓인 꽤나 흥미로운 장면을 보는 행운도 얻었다. 서해안 신두리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1남 2녀의 사랑, 아니 그렇게 말하고 나면 항상 부족한 홍상수식 영화 모험을 곁에서 보고 담아왔다. 홍상수의 현장은 조용하지만, 역동적이다. 독자들에게 그 느낌을 전하고 싶다. 보충하여, <해변의 여인>에 관한 감독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동해가 아니고 서해구나, 편견이 있었구나. <해변의 여인>의 현장을 찾아가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 남자(들)의 여행은 여자의 장소로 찾아가는 행위이거나, 그 장소에 가면 여자를 만나는 신기한 사건이거나, 그녀(들)의 흔적을 뒤따르게 되는 은연중의 탐문이다. 그러나 남자와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해변의 여인>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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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서 읽으십시오.
<각설탕>의 장르는 뭘까? 우선 스포츠영화는 아니다. 마칠인삼(馬七人三)의 경마에서 천둥의 경주역량이 ‘고무줄’ 처리되고, 기수의 기승술이나 조교사의 전략구상이 전무한 영화를 스포츠영화로 보긴 힘들다. 여성영화로 보기도 어렵다. 직업세계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이 노골적으로 나오지만, 시은에게 쏟아지는 성차별이 다른 동료여성에겐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해의 본질이 ‘주인공이기에 존재하는 역경’, 즉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콤플렉스’를 형성하기 위해 동원된 역경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각설탕>의 장르는 엔딩 크레딧의 사진들이 증명하듯 ‘인간과 동물간의 우정’을 그린 ‘(반려)동물영화’이다. 인간과 정을 나눈 동물이 죽는 슬픈 영화를 ‘동물 신파’로 정의한다면, 동화 <플란다스의 개> <집없는 아이>부터 <내사랑 토람이>(TV)나 <에이트 빌로우
천둥이는 정말 뛰고 싶었을까? <각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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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로서, 그것도 한국의 건축가로서 나는 동시대의 예술가 및 창작인 중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영화적 고향이 바로 ‘지금의 여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건, 건축가건, 화가 혹은 조각가, 작곡가건,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 창작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고향 같은 것이 있다. 그 고향은 두고두고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는 여기인데 지금의 여기가 아닌 어떤 다른 시대의 여기를 꿈꾼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지금인데 여기가 아닌 전혀 다른 곳의 지금에 관심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지금에도 관심이 없고 자기 머릿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혹은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봉준호의 고향은 ‘지금의 여기’
지금까지 발표된 대표작 세편, 즉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그리고 <괴물>을 통해
한강의 재해석,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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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이 지면에 실린 정성일의 <괴물>평은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으로 끝맺고 있다. 다른 이의, 아마도 다른 의견을 초대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사적으로도 전영객잔의 다른 두 필자가 <괴물>에 대해 쓰기를 몇 차례나 권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썼고 게다가 정성일이 150매 분량으로 쓴 영화에 대해 같은 지면에 곧이어 쓴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소리 듣기 힘든 일이다.
결국 쓰게 된 건, <괴물>을 두 번째 봤을 때 첫인상과 좀 달랐기 때문이다. <괴물>은 훨씬 복잡하고 불균질한 영화였다. 한마디쯤 더 붙여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정성일의 대의에 동의한다. 이 글은 일종의 첨언이다. 나는 그와 같은 의문에서 시작해 얼마간 다른 경로를 거쳐서 몇 가지 의견을 첨부하려 한다. 그리고 <괴물>을 새로운 영웅의 도착이라고 말한 3주 전 이 지면에서의 내 결론을 보충하려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 누구인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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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음악이 흐르는 스튜디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울고 있다. 영문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던 소녀의 사진은 서태지가 부른 <Take Five>의 포스터가 됐다. 8년이 흐른 지금 신세경은 “그때는 친구 생일파티에 빠지는 바람에 햄버거를 못 먹은 일만 아쉬워하던 아이였다”며 쑥스러워했다. 서태지 앨범의 표지모델이 된 뒤 신세경에게는 드라마 출연, 화장품 광고 모델, 심지어 음반 취입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마 전 모 패션지에서 영화배우 10명을 소재로 한 화보를 촬영했을 때, 그를 최연소 배우로 추천한 김지운 감독이 “<장화, 홍련> 때는 연락이 닿지 않아 같이 작업할 수 없었다”고 말했듯이 신세경은 서두르지 않았다.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방바닥에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읽는 것을 좋아하던” 신세경이 다시 얼굴을 드러낸 영화는 <어린 신부>였다. 문근영의 친구 혜원으로 출연해
작지만 당찬 목소리, <신데렐라>의 신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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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괴력 앞에서는 부질 없었다. 신작들이 대거 박스오피스에 들어섰지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끄떡었었다. <괴물>은 스크린 수를 620개에서 580개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토요일인 12일 하룻 동안만 50만명을 동원하며 전국누계 866만1455명(배급사 집계)를 돌파했다. 주말 하룻동안 8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던 개봉 초기의 괴력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배급사는 <괴물>이 광복절 휴일인 15일까지 한국영화사상 최단기간 천만관객 동원기록을 수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8월10일 동시 개봉한 <몬스터 하우스>, <각설탕>과 <다세포 소녀>는 비슷비슷한 성적으로 각각 2, 3, 4위를 기록했다. 세 작품의 점유율(35.9%)을 모두 합산해도 괴물의 폭발적인 점유율(49.2%)에는 적지않게 뒤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한 지브리의 새 애니메이션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은
<괴물> 3주차에도 극장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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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모 촬영장에 박찬욱, 김지운 감독 등이 모였다. KBS 청소년드라마 <반올림>에서 괴짜 전교 1등 노릇으로 주목받은 이은성을 보기 위해서였다(이은성이 영화의 중요한 반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목을 밝힐 수 없다는 점 양해해주시라). 이 영화의 감독은 그저 이은성이 ‘다리가 길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어디 그 바쁜 감독들이 다리만 보기 위해서 모인 것일까마는 아무튼, 그들은 고3이라고 도저히 보기 어려운 화려하고 섹시한 분위기의 긴 다리 소녀를 보았다. 몇달 뒤 공포영화 <디데이>에서 차분하고 이지적인 재수생 보람 역의 소녀가 주목받았다. 한주 뒤에는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소녀>에 ‘시발’을 외치며 오빠를 두들겨 패는 보조개가 예쁘게 팬 터프한 소녀가 선을 보였다. 이들 모두가 똑같은 고3 학생이라는 건 꽤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먼저 동일 인물인가에 대한 확인. 보조개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차분한 재수생이 정녕 당신이었던가. “웃는 장면이
보조개 소녀의 반올림, <다세포소녀>의 두눈박이, 이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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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청어람·KTF-싸이더스…막강 제작사 장악
모바일 콘텐츠 판권 확보 겨냥 경쟁투자 불붙어
대기업 자본과 본격 대결…극장영화 위축 우려도
이동통신사 자본이 한국 영화 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매니지먼트와 영화 제작 등을 병행하고 있는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 아이에이치큐(IHQ)는 지난 1일 46억원을 출자해 영화 〈괴물〉의 제작사인 청어람의 지분 30%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이 아이에이치큐의 최대 주주는 에스케이텔레콤(SKT, 이하 에스케이티)이다. 에스케이티는 지난해 2월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44억원과 273억5200만원을 지분투자해 아이에이치큐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에 앞서 9월 케이티(KT)는 케이티에프(KTF)와 각각 196억원과 84억원을 공동으로 출자해 싸이더스에프앤에이치(F&H, 이하 싸이더스)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싸이더스는 제작 물량이 가장 많은 영화사다. 또 이미 아이필름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이치큐에 청어람까지 가세할
이통사도 영화산업 가세 ‘공룡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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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의 축제가 막을 내렸다. ‘물만난 영화, 바람난 음악’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던 제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지난 8월14일 폐막했다. 8월9일부터 14일까지 모두 6일간 열린 이번 영화제에서는 27개국 45편의 작품들이 상영됐으며, 19개의 국내외 음악팀이 방문해 모두 20여회의 공연을 펼쳤다.올해 영화제의 관객점유율은 85%, 총 참가인원은 8만여명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지난해 관객점유율 81%와 참가인원 5만명에 비해 크게 상승한 수치. 영화제 기간중 관객을 찾은 45편 80회의 상영작중 17편 29회분이 매진되었고, 올해 신설된 ‘제천 라이브 초이스’등 공연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한편, 이동준, 방준석, 조성우, 가와이 겐지 등 국내외 영화음악감독들이 강사로 참여한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역시 14일 수료식을 마지막으로 2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제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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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으로 돌아가는 영화의 타임머신이 찾아온다. 한국영상자료원이 8월의 ‘클래식 한국영화 릴레이’로 1966년에 제작된 한국 고전영화 11편을 상영한다. 오는 8월16일부터 8월31일까지 서울시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관에서 열리는 이번 상영회에서는 정창화가 감독하고 신성일, 문희가 주연한 <위험한 청춘>, 김지미 주연의 <민검사와 여선생>, 임권택 감독의 <나는 왕이다>, 고은아와 신영균이 주연한 <산유화> 등 11편의 66년작 한국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는 2000원(경로우대 1000원)이며, 자세한 상영일정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참고.
정창화, 임권택 감독의 고전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