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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보면 영화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람은 영화를 통해 자기 삶을 대신 살아보는 경험을 하며 그런 점에서 영화는 그 사람이 살아본 물리적 시간보다 오래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극장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고 나온 소년 소녀가 나누는 가벼운 대화 속에 들어 있어 크게 의미심장한 느낌은 없지만 영화에 대한 감독 자신의 생각이 투명하게 들어 있는 말이다. 그 뒤로 한동안 삶을 대신 살아보는 영화, 라는 말을 곱씹곤 했다. 쉬운 말이지만 정작 그런 영화를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가 장르로 발전시킨 영화의 대부분은 삶을 대신 살아보는 영화라기보다 꿈을 대신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하더라도 스필버그나 피터 잭슨의 영화를 보면서 삶을 대신 살아본다는 느낌을 갖긴 어렵다. 반면 에드워드 양이나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를 볼 때는 삶을 대신 살아본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는다. 그리고 이런
[편집장이 독자에게] 강추! 나루세 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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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얘기지만, 영화 <괴물>에는 세 마리의 괴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몹시 굶주린 괴물로 모양이 얄궂다. 거대하지만 날렵한 유선형 몸매에 발과 꼬리는 공룡 같고 입은 어떤 형체도 삼킬 수 있게 입체적이다. 체력과 운동신경도 발군이다. 강변을 뛰는 육상 같은 기본종목은 물론 고공다이빙과 수영, 철도 난간을 잡고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고난도의 기계체조까지 구사한다. 습성은 빨리 달리고 닥치는 대로 삼키고 배부르면 낮잠 자며 여가도 즐긴다. 아주 유능하고 낙천적인 조폭 같다. 그런데 가만 보면 머리도 괜찮고 꽤나 성실하다. 경기 좋다고 방심하지 않고 먹이를 차곡차곡 축적할 줄도 안다. 이게 메타포라면 자본을 연상시킨다.
두 번째는 뭔가에 사로잡힌 몹시 악한 괴물이다. 이 괴물은 위생학적 습관을 가진 깔끔한 괴물이다. 일체의 이물질을 투명막으로 차단하고 시선으로만 세상과 교류한다. 이 괴물은 눈으로 봐야 알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바이러스로 간주하는 습성이 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일상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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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쯤 한 독자가 메일을 보냈다. <씨네21> 기자가 되고 싶은데 주위에 답해줄 사람이 없다며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굳이 나를 지목해 메일을 보낸 이유는 ‘입사 초기 지진아에 꼴통이었다’는 요지로 내가 쓴 오픈칼럼을 읽고 용기를 얻어서라고 했다. 일찍 답을 해주고 싶었는데 게으르고 바빠서 며칠 전에야 답장을 보냈다. 언젠가는 <아랑>의 프리뷰에 대해 질문이 있다면서 또 다른 독자가 메일을 보냈다. 어떤 이는 내가 동방신기에 관해 쓴 오픈칼럼을 모 사이트에 올리고 싶다며 괜찮은지 묻기도 했다. 가끔 이렇게, 상대방의 정확한 답을 기다리는 메일들을 받는다.
평소에는 ‘독자엽서’라고 된 온라인 게시판을 종종 확인한다. 자취가 남는다고 해봐야 “기자님, 권상우가 출연한 영화는 <말죽가리 잔학사>가 아니라 <말죽거리 잔혹사>입니다”에 대해 “죄송합니다. 독자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드린 점, 독자 여러분과 배우 권상우씨
[오픈칼럼] 그래도 반응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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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의미 부여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써놓고 보니 담뱃갑의 경고문구 같다). 의미 부여가 착각의 늪으로 가는 최단거리란 건 수학적 증명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건만, 난 자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의미 부여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하나만 더 실수를 저질러볼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면, 난 내 동생과 함께 있을 때마다 이상한 일을 자주 겪는다는 사실을 고백할 테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는 붙어 있으면 서로에게 비의도적인 민폐를 끼치는 ‘덤 앤 더머 시스터스’다.
지난해에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매진 행렬을 하고 있는 모습에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던 우리 앞에 일명 ‘태풍맨’이 나타났다.
“아가씨들, <태풍> 안 봐요?”
야구 모자에 헝클어진 단발머리, 제멋대로 난 수염과 불룩한 배. 출처를 알 수 없는 남자의 출현에 우리는 좀 당황하고 말았다. <태풍>은 어디까지나 2순위였기에 우린 좀 시
[이창] 태풍맨과 블루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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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단도직입적으루다가 얘기해보자. 과연 <괴물>은 지금까지 전 언론으로부터 일제히 만장일치로 쏟아진 극찬을 먹어마땅할 드높은 완성도의 대왕걸작인가. 결론부터 말해, 필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뭐, <괴물>의 이런저런 안타까운 점들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대각선으로 누워서 자야 할 만큼 협소한 본 코너의 지면에선 불가능한 관계로, 간단한 거 하나만 얘기해보자.
필자가 보기에 <괴물>의 초반 중 최대의 분수령이 되는 대목은, 박강두(송강호)가 순경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이 대목에서, 워낙에 덜떨어진 행동을 일삼는 캐릭터인 박강두는 엄청나게 버벅이며 이 얘기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 그의 주장은 깨끗이 묵살된다. 한번쯤은 안 그래봐도 좋으련만 말이지.
그런데 이 장면에서 박강두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보자. 이 휴대폰은 삼某전자에서 지난 2003년 출시한 SCH-X800라는 모델
투덜군,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하는 <괴물>의 불친절함을 지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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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인기배우 유덕화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해 온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의 네번째 수상자로 뽑혔다.
부산영화제는 16일 유덕화가 “지난 20여년 톱스타 배우로 활동하면서 90년대 이후에는 제작자로 나서 아시아권의 유망한 감독들을 발굴 지원하는 데 쌓은 업적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 한국 영화를 국제 영화계에 소개하는 데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한국 영화 공로상’은 10년 전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다양한 한국 영화들을 영화제에 소개해온 마르시알 크네벨과 2002년부터 올 초까지 일본 문화청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일 영화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온 데라와키 겐이 공동수상했다.
‘올해 아시아영화인상’ 홍콩배우 유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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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봉준호 감독·청어람 제작)이 16일 개봉영화 사상 최단기간인 21일 만에 전국 관객 1천만명을 돌파했다. 배급사인 쇼박스미디어플렉스는 16일 “정확한 집계는 17일 중에 나오겠지만, 15일과 16일 오전의 관객 추이를 보면 16일 오후 4회차 상영에서 전국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한 것이 확실시된다”고 발표했다. 〈괴물〉이 전국 관객 1천만명을 모으는 데 걸린 21일은 지금까지 최단기간 기록이었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39일을 무려 18일이나 당긴 것이다. 〈왕의 남자〉와 〈실미도〉가 1천만명 관객을 채우는 데까지는 각각 45일, 58일이 걸렸다.
개봉 3주차에 진입하면서 첫째, 둘째주에 비해 관객 수가 3분의 1 정도 줄었지만 여전히 평일 25만명 이상, 주말 40만명대를 유지하고 있어 배급사는 〈괴물〉이 〈왕의 남자〉가 가진 최고 흥행기록을 깰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쇼박스는 “이변 없이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9월 첫 주말이 지난 직후나 둘째주 중에 〈왕
<괴물> 관람 벌써 1천만명, 최단기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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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 소리만 낸다고 에로 영화가 아니듯 비명 소리만 지른다고 공포 영화는 아니다.”
성인 비디오 영화계를 주름잡다 극장용 성인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과 국내 최초의 텔레비전용 에이치디(HD) 영화 〈동상이몽〉을 선보인 뒤 농담 반 진담 반 ‘에로 영화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봉만대(36·사진) 감독이, 이번에는 공포 영화 〈신데렐라〉를 들고 관객들을 찾았다. 〈신데렐라〉는 성형수술과 극단적인 모성애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였음에도 애써 자극적인 비주얼과 효과음을 피해간 흔적이 역력하다. 에로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뿅점’(결정적으로 야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지 않았던 그의 취향과 신념이 그대로 반영된 듯도 하다.
봉 감독은 〈신데렐라〉를 ‘봉만대 식 공포 영화’라고 정의했다. “나는 에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에로보다 멜로를 중시했는데, 공포 영화에서도 공포보다 멜로 쪽에 무게를 뒀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공포 대신 슬픔을 느끼고 극장문을 나선다면, 그것으로
<신데렐라>의 봉만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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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겠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신하균의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은 점점 더 호기심을 부추겼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를 햇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회사 옥상에 세워놓았다. 더위에 약하다더니 포즈를 취하는 그의 이마와 콧잔등 위에 연신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배경을 정리하느라 잠시 촬영이 중단됐을 때, 이 모든 소란 속에서 신하균은 태연히 노래를 불렀다. 주변에는 들리지 않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술만 달싹거리며 흥얼흥얼. 그때 그는 4차원 세계에서 이곳으로 툭, 내던져진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그의 입속에서 맴돌았을 그 무형의 가사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냥 혼자 지어낸 노래일 뿐이다.” 줄기찬 물음에도 말은 않고 씩 웃는다. 곤란한 상황이 닥쳤을 때 신하균의 대처법, 웃기. 입술이 반원을 그리고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할 때, 그는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 틈을 타 잽싸게 질문을 던지면 자기 얘기를 조금 풀어
침묵에 진심을 담아, <예의없는 것들>의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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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8월9~14일)에 다녀왔다. 주말에 잠깐 들른 것이지만, 올해 행사에선 지난해 1회 때에 받지 못했던 새로운 인상을 하나 얻었다. 이 영화제는 ‘아시아 최초의 음악영화제’, ‘국내 최초의 휴양영화제’를 표방하고 있다. 새롭게 받은 인상은 전자와 관련된 것으로, ‘이 영화제가 처음으로 국내 영화음악 종사자들이 이끌어가는(이끌어가도록 할 수 있는) 행사구나’라는 일종의 발견이었다.
‘휴양 영화제’로서 이 영화제가 갖는 장점과 가능성은 변함없이 컸다. 덥디 더운 한 여름의 영화제가, 영화만 줄창 보라고 한다면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잠시 짬을 내, 드넓은 청풍호를 옆에 낀 채 호반도로를 달리고, 정방사에 올라가 호수와 산들이 그림처럼 어울린 풍경도 보고, 내려오는 길에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 나물밥, 더덕 구이에 동동주 한잔 하고 ….(^^) 몇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영화제 상영관이 있는 제천시와, 개·폐막식
[팝콘&콜라] 제천영화제의 다른 이름 ‘음악감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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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캐스팅·유명 피디 불구
진부한 드라마문법 깼더니
처절한 시청률 “안 되면 엄태웅이라도 벗기죠”
SBS드라마 ‘천국보다 낯선’ 촬영현장
에스비에스 월화 드라마 〈천국보다 낯선〉의 추락은 이변이었다. 김민정 이성재 엄태웅이 출연하고 〈봄날〉을 연출한 김종혁 피디의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드라마가 시청률 3.5~4%에 주저앉아 버렸다. 지난 10일 〈천국보다 낯선〉 촬영현장을 찾아 남은 드라마의 성패를 가늠해 보았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초반부 〈천국보다…〉의 약점은 집중력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줄거리와 구성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주인공 3명의 캐릭터를 구축하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뒤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을 찾는 윤재(이성재), 죽은 언니를 대신해 가수가 되지만 소속사 사장에게나 아버지에게나 이용만 당하는 희란(김민정),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를 윤재에게 떠넘기려고 입양서류를 조작하는 산호(엄태
<천국보다 낯선> 너무 낯설었나? 시청률이 진면목 몰라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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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 이범수가 신작 <언니가 간다>(감독 김창래, 제작 시오필름㈜)에 캐스팅됐다. <언니가 간다>는 첫 남자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고 믿는 서른살의 여자가 인생을 바꾸기 위해 12년전 첫 연애 시절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 고소영은 주인공인 서른살 ‘나정주’ 역할을 맡았고, 이범수는 12년만에 만난 고교동창생 ‘오태훈’을 연기한다. 또한, <다세포 소녀>의 유건과 <여고괴담3: 여우계단>의 조안이 이범수와 고소영의 어린 시절을 연기할 예정이다. 지난 7월21일에 이미 촬영에 들어간 <언니가 간다>는 오는 9월말 크랭크 업 해 12월중 개봉한다.
고소영, 이범수. 로맨틱 코미디 <언니가 간다>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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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김명민과 <내 청춘에게 고함>의 김태우가 <천개의 혀>(감독 이규만, 제작 ㈜아름다운영화사)에 캐스팅됐다. <천개의 혀>는 ‘수술중 각성(覺醒)’을 소재로 한 미스테리 의학 스릴러. 김명민은 냉철하고 이지적인 외과의 역할을 맡았고, 김태우는 최면술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를 연기한다. 그외에도 <너는 내 운명>의 정유석, <나의 결혼원정기>의 유준상과 <인형사>의 김유미가 미스테리에 얽혀드는 인물들로 출연할 예정이다. 내년 초 개봉할 <천개의 혀>는 8월16일 전라남도 부안에서 촬영에 돌입했다.
김태우, 김명민 미스터리 <천개의 혀>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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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동안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 곳곳을 이리저리 소요하며, 그날 그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드로잉으로 옮긴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샘터 펴냄, 2005)는 바람을 맞으며 종이 위를 달리는 펜의 사각거림이 들려오는 독창적인 여행기였다. <깜삐돌리오…>의 저자인 건축학도 오영욱(일명 오기사)은 경유지라도 거치듯 서울로 돌아왔다가 이내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날아갔다. 지난 8월 초 출간된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예담 펴냄)는 지중해 도시에 자리잡고 더디게 보낸 1년 반 동안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은 글과 스케치, 카툰을 모은 책이다. 여느 여행기들처럼, 그의 여행기도 로망을 판다. 그러나 여행하면서 놀고 공부하고 일하는 오영욱에겐 여행법은 더이상 살아가는 법과 구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디지털 유목민의 개념을 논하는 대신, 이 스물아홉 청년의 사례를 엿보면 어떨까. 인생의 시기도 장소도 뜻대로 우회로를 고를 수 있
스케치북을 든 여행자, 행복한 이방인 오영욱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