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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으로 환생한 아빠 이야기. 권성국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 <원탁의 천사>는 사기를 일삼다가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가 우연한 죽음과 환생을 계기로 아들과 추억을 만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복역 중인 영규(임하룡)는 지금까지 아들 원탁(이민우)에게 아빠 노릇 한번 제대로 못했다. 출소만 하면 아들과 좋은 시간을 갖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발야구를 하던 영규는 우연히 사고를 당하고 뇌진탕으로 죽게 된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죽음보다 안타까운 영규. 그때 천사가 나타난다. 원탁을 향한 영규의 뒤늦은 사랑이 천사를 감동시키고, 영규는 고등학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편 천사가 구제해야 할 사람이 한명 더 있다. 조폭 장석조(김상중). 영규의 감옥 동기인 석조는 출소 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다시 등장한 천사. 영규와 원탁의 화해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하던 그는 석조의 몸을 빌리기로 결심한다. 부자의 화해를 위해 ‘다시 태어난’ 천사. 이후 영규는 천사의 힘으로
고등학생으로 환생한 아빠 이야기, <원탁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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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일 신나치들은 말 그대로 색다른 편법을 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그들은 더이상 빡빡머리에 공군화, 달라붙는 청바지와 군 점퍼가 아니라 힙합패션인 헐렁한 바지, 다양한 색깔의 윗도리, 운동화 등을 입고 다니며 체 게바라 티셔츠나 팔레스타인 스카프까지 장식해 좌파나 기타 청소년 집단들과 구별하기 어렵게 위장한다고 한다. 신나치들의 이러한 일종의 의태는 평상시나 시위 때 좌파나 경찰이라는 ‘적’을 혼동시키기 위해 게릴라 수법을 선택한 까닭이다. 생태계에서는 크게 봐 두 가지의 의태(擬態)가 있다. 하나는 잠재적인 적을 속여서 단념하게 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게 하기 위한 수법이다. 다른 하나는 잠재적인 먹이를 유인하기 위한 속임수이다. 상징으로서의 패션 문화코드를 이용한 독일 신나치들은 아마도 후자의 경우일 터인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닌자의 연막탄 효과에 가깝다. 옷이 똑같아도 사상(?)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만큼 정치적이지는 않겠지만, 요즘 한국의 일부 패션코드도 최루가스처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나도 모르는 깃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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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라디오에 상담을 해왔다. 잘생기고 로맨틱한 남친의 이면을 봤다는 거다. 은행 직원이 사근사근하지 않게 응대하자 남친은 큰소리를 냈다. 직원이 여전히 싸늘하게 굴자 “당신 이제 큰일났어. 각오해”라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때렸다. 한 가닥 하는 그의 아버지는 은행에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해왔다. 그녀는 남친이 아버지의 권력으로 위세를 부리는 게 당혹스러웠다. 반면, 내겐 좀 다른 대목이 다가왔다. “당신 이제 큰일났어. 각오해.” 단순한 감정 폭발이 구체적인 보복으로 선회하는 순간이다. 만약 그가 아버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가격했다면 어땠을까. 그건 괜찮았을까?
일전에 동생과 옷가게에 갔다. 생일인데 봐둔 옷이 있다기에 사주러 간 것이다. 한데 직원이 상당히 무례했다. “입어봐도 돼요?” “안 돼요.” “클까봐 그러는데.” “아, 그럼 사갔다가 바꾸러 오시든지요.” “얘가 오늘 지방에 갈 거라 당분간 바꾸러 올 수가 없어요.” “그건 제가 알 바 아니고요.” 나는 욱
[오픈칼럼] 비굴한 정의와 착한 폭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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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기자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늘 빚지는 직업”이라고 답하겠다. 신윤동욱 기자의 일상은 이렇다. 우선 절친하지도 않은 취재원에게 절친한 척 전화를 걸어서 취재 아이템을 구하고, 대개는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인터뷰 기회를 얻어야 한다. 기자란 변변한 보상도 없이 누군가의 시간을 뺏어야 하는 정말로 죄송한 직업인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전문가의 견해를 옮긴답시고, 남의 생각을 따옴표 치고 전하면서 절반은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반대로 급하면 자신의 생각을 전문가의 생각인 양 포장한다. 그렇게 그들의 공신력에 빌붙는다. 나에게 아이템을 주셨고, 나의 인터뷰에 응해주셨고, 나의 요청에 시간을 내주실 그분들의 음덕에 이렇게 나의 밥벌이는 지독하게 빚지고 있다. 지면을 빌려 그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름 진지하게 인과응보라고 이렇게 많은 빚을 졌으니 언젠가는 갚아야 할 텐데, 이번 생에는 어림도 없고 다음 생에라도 빚 갚으려면 고생 좀 하겠다, 걱정도 든다.
[이창] 기자라서 죄송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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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루>에 대해 도쿄의 김영희 기자가 <씨네21> 블로그에 쓴 글에 십분 공감한다. “아니, 저 정도로 동생이 생기면 당연히 형이라도 열받지 않겠어?”
<유레루>를 보기 전까지 사람들이 거품 무는 오다기리 조가 그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 <피와 뼈>에서는 지나치게 마른 몸 때문에 빈티가 흘렀던 게 사실이고, 뭐 <박치기!>나 <메종 드 히미코>에서도 차라리 만만한 ‘훈남’형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아~~ 자주색 나팔바지에서 구형 포드 자동차까지 초절정 빈티지 스타일로 짜잔 나타났을 때야 비로소 나는 그의 진가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이건 너무 멋있잖아? 이 정도로 멋있는 사람이 좀 이기적이면 어떤가. 그에게 훌륭한 인간성을 바라는 건 아인슈타인에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왜 되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래서 캐스팅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건 아니다. <유레루&
투덜양, <유레루>의 오다기리 조를 보고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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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를 보다가 내 이름이 나와서 놀라는 경우가 있다. 어린 시절 봤던 TV드라마 <달동네>에서 안소영의 애인 이름이 동철이었고 <살인의 추억>에선 송재호가 분한 수사반장 이름이 동철이었다.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흡혈형사 나도열>에 나오는 악당 이름은 성까지 같아서 남동철이란다. 꽤 촌스런 이름인데 그래서인지 캐스팅이 상당히 잘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니 주인공 동구의 동생 이름이 동철이다. 주인공 이름으로 캐스팅되진 않아도 주변 인물 이름으론 그럴듯한 모양이다. 영화를 보고나니 동철이 이름으로 형 동구에게 편지 한통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잘 지내? 형보다 20살도 더 많은 내가 형이라고 부르니까 어색하지만 감독이 동구 동생 동철이라고 이름지은 거니까 이해해줘. 옛날에 홍길동이란 사람은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 못해 가출을 하기도 했다니까 나 확 가출해버리기 전에 그냥 내 맘대로 형이라
[편집장이 독자에게] 동구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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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을 보노라면 전문지식부터 인생상담까지 없는 이야기가 없다. 지식검색은 가히 '손과 눈이 천개씩이라는 천수보살'인 듯 하다. 오프라인 상에선 고립된 이들끼리 넷상에선 엄청난 지식과 정서를 교류하며 선생이 되고 친구가 된다. <전차남>은 오타쿠 기질의 소심남이 네티즌들의 성원으로 연애에 성공했다는 2004년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의 전반은 웃기고 결말은 교훈적이다. 영화는 외로운 삶에서 벗어나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를 조목조목 가르친다. 패션, 교양, 매너, 열정, 용기 (그리고 돈)등등. 연애란 어차피 역할 극이므로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은 맞다.
<전차남>은 순진한 남자가 열과 성을 다할 때 연애에 성공할 수 있음을 가르치는 교훈극이자, 인간은 혼자일때 보다 사랑할 때 행복해진다는 것을 가르치는 우화이기도 하다. 물론 유익한 말씀이다. 그런데 나머지 캐릭터들과 달리, '에르메스'는 너무도 이상화 되어 있다. 우아하고
[전문가 100자평] <전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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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기다리는 자리에는 밀회(密會)에나 어울릴 법한 부적절한 긴장이 흘렀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소설 <환상의 여인>이 생각났다. 그 책에는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오렌지색 모자를 쓴 여자가 나온다. “낮게 매달린 원유회의 제등처럼” 실내를 비추는 그녀의 모자를 사람들은 못 본 체하지만 사실은 곁눈질하고 사로잡힌다. 고현정의 ‘모자’는 극적인 과거다.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로 인기를 얻은 고현정은 걸출한 드라마 <모래시계>(1995)의 윤혜린 역으로 기립박수를 받은 직후 재벌 3세와 결혼했다. 진주 단추를 턱밑까지 촘촘히 채우고 완강히 눈을 내리깐 신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미모를 떨치고, 재능을 인정받은 다음, 부(富)까지 얻자 사라져버린 셈이다. 젊고 아름다운 시신을 남기고 요절한 스타는 오로지 그리움을 남긴다. 그러나 소멸하지도 않은 채 불멸의 후광을 빌려입은 이에 대해 사람들은 어딘지 불공정하다는 감정을 품는다. 2003년 말 이혼한 고현정은 20
여우야, 女優야 뭐하니, <해변의 여인>의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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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가 변비에 시달렸다거나 악보를 볼 줄 몰랐다는 일화에는 친숙한 사람이 많지만, 일관된 관점으로 서술된 그의 생애를 읽을 기회는 드물었다. 1997년작인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본격적인 전기다. <하워드 휴즈-숨겨진 이야기>의 공동저자인 전기작가 피터 해리 브라운과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기자 팻 H. 브로스키가 썼다. 프레슬리의 친지들이 고인의 사후 인터뷰의 달인이 될 만큼 프레슬리를 회고하고 파헤치는 프로젝트가 많았던 미국 출판계 사정을 고려하면, 두 저자가 충족시켜야 할 기대치는 꽤 높았을 것이다.
참고문헌을 포함해 787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객관성과 방대한 리서치를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300명이 넘는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프레슬리의 의료 기록을 포함해 10년간 수집한 자료를 종합했다고 장담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연보, 디스코그래피, 영화와 TV 출연작 목록, 동시대 음악인들에 대한 소개까지 망라한 부록은 매우
로큰롤 스타의 로큰롤 생애, <엘비스, 끝나지 않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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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에서 뒹굴고 있다고 하여 모든 이들이 천상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밑바닥에 갇힌 남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탈출하고자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상승을 향한 몸부림에 휩쓸리기도 하고, 현재에 중독되어 미래를 내던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네명의 모르핀 중독자들이 한탕을 계획하는 <하이라이프>는 그저 남성적인 범죄극보다는 복잡한 속사정을 지니고 있다. 저 남자들에게 정말 꿈이 있는 걸까. 다시 돌아서지 못하도록 가속을 더해가는 <하이라이프>는 모르핀에 빠진 남자들의 나른하고 무책임한 범죄 속에서 겉과 속이 다른, 그 자신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는 삶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모르핀 중독자지만 영리한 딕은 지갑을 훔쳐 그 안에 들어 있던 카드로 현금인출기를 터는 좀도둑 도니를 보고 자기 인생을 한번에 바꿀 수 있는 범죄를 구상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함께 사고를 치며 감옥에 드나들었던 벅을 끌어들인 딕은 마약중독자 갱생모임에서 만난 미남 빌리까지 포섭해 멤버
복잡한 속사정을 담은 네 남자의 범죄극, <하이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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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는 현상은 꽤 흥미롭다. 정치적 알레고리로서 대단히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된 이 영화에 관련된 글을 저널들은 몇주째 싣고 있으며(이 글 포함!), 동시에 개봉 한달도 안 돼 1천만 관객을 거느리며 흥행 질… 아니, 폭주 중이다. 대한민국 국민 4명 가운데 1명꼴로 본 셈이다. 이건 마치 괴물 장르영화를 처음 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2002년 <프릭스>가 개봉되었을 때는 그 누구도 이 영화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폐기물 먹고 거대화된 거미가 사람을 습격한다니, 푸훗, 정말 웃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DVD 음성해설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대략이나마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자기가 만든 영화를 두고 아예 “영화학교 같은 데 갖고 가서 분석 같은 거 하지 말고요, 팝콘이나 씹으면서 즐겨주세요~”라고 정색을 하고 이야기한다. 하긴 쟤네들은 벌써 최소한 50년 전부터 괴물과 뒹굴어왔기 때문에 이제 거대 거미쯤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할 거다. 본편을
[코멘터리] 거대 거미의 코믹한 습격, <프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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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구미 예술영화 DVD 시장에서는 동구권 영화들의 출시가 붐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영국 ‘세컨드 런’과 미국 ‘파셋 멀티미디어’의 노력이 두드러진데, 그 덕에 그동안 영화사 교과서에서 이름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동구권 감독과 작품을 접할 기회를 한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밀로스 포먼, 안제이 바이다, 이리 멘첼, 미클로시 얀초 등의 작품 외에도 폴란드의 안제이 뭉크, 리스차드 부가츠키, 체코슬로바키아의 야로밀 이레스, 베라 치틸로바, 에바트 쇼름, 헝가리의 벨라 타르 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DVD로 출시되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동구권 영화들의 숨겨진 진가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소개하는 <다섯 번째 기수의 두려움> 역시 1964년 제작된 체코슬로바키아영화로 체코 뉴웨이브의 일단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나치 치하의 프라하에서 유대인 압수물품 창고를 관리하는 대가로 처형을 면제받은 유대인 전직의사 브라운
[해외 타이틀] <다섯 번째 기수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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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소녀가 길을 나서는구나. 얼마 전 <노리코의 식탁>의 마지막에 한숨을 쉬었다. 영화에서 소녀가 길을 떠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 건 꽤 오래전부터다. 멀리 <저주받은 재산>이 그랬고 가까이는 <판타스틱 소녀백서>가 그랬다. 그중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천국의 나날들>의 마지막 장면이다. 걱정과 희망의 낭만적 범벅과 까닭 모를 설렘. 로저 에버트는 “<천국의 나날들>은 10대 소녀 이야기로, 화자인 그녀의 마음속에서 희망과 기쁨이 어떻게 부서졌는지가 영화의 주제다”라고 했다. 오누이인 빌과 린다 그리고 빌의 연인인 에비는 떠돌이다. 시카고에서 사고를 치고 텍사스에 도착한 그들은 거대한 밀 농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에비를 본 농장주는 그녀에게 반한다. 악마와 천사의 경계에 선 인간이 화염에 휩싸인 세상과 천국의 정원 사이를 오간다는 종교적 메타포를 담고 있는 <천국의 나날들>은 강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처럼 언제
[명예의 전당] <천국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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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중인 뉴욕 양대 마피아 조직에 끼어든 불행한 남자 슬레븐의 이야기. 조시 하트넷이 유난히 멋지긴 하지만, 단순한 이야기를 어렵게 꼬면서 풀어내는 것이 전형적인 반전을 위한 영화 만들기로 보인다. 킬링타임용으로 적절한 영화지만 그 이상의 기대는 말 것. 부가영상으로 2개의 파트로 나누어진 메이킹 필름을 제공하며, 인터뷰 코너에서는 주요 출연진과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가진다. 깊이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메이킹 필름보다는 볼 만하다.
꼬았다 푸는 킬링타임용 영화, <럭키 넘버 슬레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