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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가장 어중간한 앵글이 예뻐 보인다”
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그러나 속깊은 인터뷰어 역할을 잘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말하면, <해변의 여인>에 대한 대화는 왠지 그래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3년 전 박찬욱 감독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영화평론가 변성찬씨에게 이번에는 홍상수 감독을 만나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영화 어떻게 봤냐”는 홍 감독의 물음과 “전작들에 비해 훨씬 풀어져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는 변성찬씨의 감상이 오가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변성찬: 오늘은 <해변의 여인>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과 홍상수의 영화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다. 언제부턴가 당신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변화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물론, 어떤 변화가 언급될 때, 거기에는 일정한 오해와 이해가 항상 동시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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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게, 차갑도록 명징하게, 그녀를 이해한다
사랑은 종종 오독(誤讀)에서 비롯된다. 희고 어린 진돗개의 이름은 ‘돌이’다. 강아지의 목줄을 틀어쥔 채 나긋나긋한 발걸음으로 바닷가를 산책하던 주인은, 국도변에 돌연 녀석을 버리고 사라진다. 녀석을 거둔 새 주인은 ‘바다’라는 새 이름을 붙인다. ‘돌이’를 기억하던 누군가가 ‘바다’와 재회했을 때, 그 희고 어린 강아지는 ‘돌이’인가, ‘바다’인가. 그러나 해변의 그 여인, 문숙은 반가이 외친다. “똘이야!”
‘ㄷ’과 ‘ㄸ’ 사이, 그 사소하고 위대한 착각이 아니라면 유사 이래 어떤 사랑도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6년 8월. 홍상수의 일곱 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을 보았다. 그의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조우한 지 십년 만이다. 십년 동안 나는 레티놀이 듬뿍 함유된 아이크림을 눈 밑에 바르기 시작했고, 내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과 투자신탁거래통장을 가지게 되었다. 싫은 사람 앞에서도 방긋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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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홍상수의 고백적 자아들
영화감독이다. 시나리오가 안 풀린단다. 그래서 후배와 함께 지방으로 떠난다. 제작자에게 진행비도 받았겠다, 다리 긴 여자도 하나 끼어 있다. 이제 바람 좋은 곳에 가서 소주나 마시며 연애 좀 하는 거다. 하긴 서울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어차피 중앙이 내 것이 아닌 바에야. 그렇게 2006년의 선비는 다시 길을 떠난다. 언제나 그랬듯이….
멀리 삼류소설가에서 출발해 대학 강사와 화가, 영화감독 지망생 등 문화예술계 언저리를 배회하던 홍상수의 고백적 자아는 일곱 번째 영화를 통해 드디어 자신의 본래 직업인 감독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맨 얼굴을 드러낸 셈이지만 소주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건 여전하고 엇박자 대사와 뒤틀린 자의식도 영락없는 홍상수표 영화의 주인공답다.
전작, <극장전>에서 선배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투정을 부리던 그 어설픈 충무로의 낭인이 이제는 알아보는 팬도 있고 그의 영화를 좋아해서 같이 자주는 여자도 있는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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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과 진실의 경계에서 유쾌하게 방황하자
소설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 나는 말한다. 소설은 갈등구조야. 갈등은 긴장을 조성해. 그 긴장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읽게 만드는 유인요소가 되지. 긴장감이 있어야 가독성(可讀性)이 높아지거든. 근데 말야. 누워서 떡먹기 식의 긴장감 조성방식이 무언지 알아? 젊은 남녀 두명을 떡하니 소설에 등장시켜 봐. 저절로 텐션이 생겨….
그런데 <해변의 여인>에서는 두 남자 사이에 한 여자를 끼워넣었다. 그러니 긴장감이 배가 될 수밖에. 문숙(고현정)은 원래 창욱(김태우)의 ‘이른바’ 애인이라는데, 배역의 중요도로 따져볼 때 아무래도 문숙은 중래(김승우)와 무슨 일인가를 저지를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첫날밤부터 자버린다. 창욱이 알았다면 기분이 더러워질 수밖에. 하여튼 그렇고 그런 삼각관계.
얼마 뒤 어럽쇼, 요상한 구조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 된다. 중래를 가운데 두고 문숙과 선희(송선미)가 배치된다.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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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홍상수는 전진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더 많은 선분과 꼭지점으로 이어진다. 이건 7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의 주인공인 영화감독 중래의 설명에 빚진 것이다. 한편으로, 그 인물 중래를 만든 홍상수가 언젠가는 단단하고 둥그런 ‘구형’에 영화적으로 이르고 싶다고 말한 것에 또한 빚진 것이다.
그 구형에 다다르는 길목에 지금 상투성이 있다. 제목도 <해변의 여인>이다. 이보다 더 어떻게 상투적일 수 있나. 그런데 홍상수는 그 뻔해 보이는 상투성이 도리어 마음에 든다고 흡족해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혹은 <강원도의 힘>이라는 비범한 제목을 선보였던 게 그다. 그런데 상투성은 지금 제목으로 있을 뿐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에 더 깊숙이 들어가 있다.
홍상수는 연애담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상투적인 것 중에 가장 널리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 사이로 그가 뽑아내려는 세상의 실마리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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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괴물>의 성공 요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스크린 위에 실감나게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의 이야기에 따르면, 괴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CG 기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100억원짜리 <괴물> 프로젝트는 아예 출발조차 할 수 없었다. <괴물>의 성패에 있어 핵심적이었던 CG 작업의 중심부에는 케빈 래퍼티가 있었다. 1982년 컴퓨터그래픽 업계에 뛰어든 이래 그는 PDI(Pacific Data Images),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 등 CG 업체에서 일하며 <배트맨 리턴즈> <클리프 행어> <고인돌 가족> <캐스퍼> <드래곤 하트>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 <맨 인 블랙2> 등에 참여해왔다. 2001년에는
<괴물> CG 총괄한 오퍼니지의 케빈 래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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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에도 9편(<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작품들로, 5부작 <코마>는 한 작품으로 친다면)의 한국 호러영화가 관객을 찾았다. 예년에 비해 많은 제작편수와 더불어 OCN과 SBS 등 TV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2006 한국 호러영화를 진단하는 글을 영화평론가 듀나에게 부탁했다. 그는 슬래셔·좀비영화의 출연을 반가워하며서도 올해의 공포영화 중 무려 7편에서 사다코 클론이나 사다코와 가야코 하이브리드 귀신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몇몇 영화들의 노골적인 표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의 글을 통해 올해 한국 공포영화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올해 한국 호러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귀찮은 부분은 여전히 사다코와 가야코의 클론들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 시즌에 개봉되고 방영된 9편의 호러영화들(<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
2006 한국 호러 영화 무엇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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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는 광대하다
물론 의문표는 남아 있다. 과연 유튜브가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하면서도 현재의 자유로운 영상 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혹여나 거대 기업들과의 결탁으로 인해 또 다른 억만장자 장사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결론을 유추할 단계는 아니다. 우량아 유튜브는 이제 겨우 1살도 먹지 않은 신생아다. 그것은 젊은 이용자들이 대기업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시작한 인터넷 미디어의 혁명이다. 냅스터와 구글이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크소프트와 애플마저) 더벅머리 젊은이들이 창고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였듯이, 유튜브 또한 가난한 천재들의 창고에서 태어났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세계는 할리우드와 화려한 힙합 뮤지션들의 자동차와 어설픈 홈비디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거대 언론의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현장들이 유튜브의 튜브를 타고 전세계 이용자들의 컴퓨터로 전송된다. <CNN>은 최근 유튜브에서 찾아낸 동영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보도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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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You)은 동영상을 자유롭게 퍼나르는 튜브(Tube)입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가 인터넷 멀티미디어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용자가 직접 동영상을 올리고 또 자신의 공간에 마음대로 퍼갈 수 있는 유튜브는 2005년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전세계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일 방문자만 1천만명, 1일 페이지 뷰(Page View)가 1억회에 1일 재생 횟수는 4천만회에 육박하고 있으니, 가히 세계적인 규모로 거행되는 디지털 세대의 놀이터라고 일컬을 만하다. 도대체 유튜브는 무엇이며 누구의 손에 탄생했는가. 또한 유튜브는 자본으로 점철된 인터넷 사회을 어떻게 동영상의 자유로운 공유 공동체로 재편하고 있는가. 유튜브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예상해본다. 판도라TV, 엠군, 다모임 등 토종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이 인터넷 멀티미디어 세계의 변화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K는 지인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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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진작부터 ‘괴물’이라 불린 배우다. <넘버.3>가 세상에 나온 1997년부터다. 그는 농부보다 사냥꾼에 가깝다. 수확을 위하여 씨 뿌리고 김매고 기다리는 것은 도무지 송강호의 스타일이 아니다. 목표물을 포획하기 위한 준비는 예리한 후각과 잘 이완된 근육, 제대로 간수된 무기로 족하다. 어떻게 덤벼들어 잡을 것이냐를 그에게 꼬치꼬치 묻지 말라. 사냥감이 눈앞에 나타나면 자연히, 아니 눈앞에 나타나야만 알 수 있는 문제다. 송강호는 바람 냄새를 킁킁대고 이따금 아랫배를 긁적이며 움막에 느긋이 웅크리고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일상에서도 송강호는 여러 번 손길이 닿지 않은 날것을 좋아한다. 장비가 많은 낚시가 싫고, 표를 사서 기다려야 하는 극장 가기가 내키지 않고, 운동복 갈아입고 샤워를 해야만 하는 헬스클럽이 질색이다.
<괴물>의 상영관에 1천만 넘는 관객이 범람하는 동안, 송강호는 신작 <우아한 세계>를 절반쯤 찍었다. 한
<괴물> <우아한 세계> <시크릿 선샤인>의 배우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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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무대에는 항상 자신감이 가득하다. 쉬지 않고 움직일 것 같은 댄스머신. <퍼펙트 맨>을 부르던 그룹 신화 속의 모습부터 M이란 이름으로 들려주던 부드러운 발라드까지, 그에게선 단단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작은 키임에도 우람한 상체가 더 돋보이고, “감히 개입할 수 없을 것 같은” 리듬감이 감돈다. “멤버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제가 어떤 일을 한다고 할 때, 멤버들은 그게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격찬을 받았던 일도 많고.” 믿음과 자신감. 어찌보면 이 두 단어는 서로에 대한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혹은 서로에 대한 동력. 실제로 그는 어떤 일이든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전쟁 같은 스케줄에 하루 정도의 휴식이 필요할 법도 한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잠도 별로 없고, 무언가를 해야 해요. 바쁜 게 좋죠.” 그래서 그가 영화 <원탁의 천사>에 출연한다는 소식도 놀랍지
M이란 이름의 자신감, <원탁의 천사>의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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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유레루>. 봉준호와 니시카와 미와. 언뜻 상상이 안 가는 대구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서로의 열성 팬이고, 또 그들의 신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래서 반신반의했다. 게다가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봉준호 감독은 에든버러영화제에 가 있어야만 했다. 어차피 안 될 일 같았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시간을 쪼개 <유레루>에 관한 질문들을 꼼꼼하게 작성해 서면으로 보냈고,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거기에 정성스럽게 답했다. 그렇게 묶어놓고 보니 오히려 요즘은 보기 힘든 귀한 서신 왕래의 모양이 되었다. 국경을 넘어, 영화의 색깔을 넘어 오간 이 편지는 충분히 정겹고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씨네21> 다음호에는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괴물>에 대해 묻고 봉준호 감독이 답한 내용을 실을 예정이다.)
To 니시카와
봉준호 감독이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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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에 촘촘하게 박힌 사과나무 그늘도 뒤늦게 전성기를 맞은 한여름 햇볕 아래에선 더위를 먹어 흐느적거리는 듯했다. 영화 <뷰티풀 선데이>가 촬영현장을 공개한 지난 8월10일, 안동의 과수원 둑길에 올라선 스탭들은 농부처럼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거나 수건을 목에 둘러 더위를 막았지만, 35도 가까이 올라간 무더위는 그날 촬영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찍고 있던 부분이 살해당하고 유기된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이었기에 보조출연자 대부분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경찰과 구급대원 제복을 입고 있었다.
이날 발견된 시신은 마약거래상 상태. 마약조직을 쫓고 있던 강 형사(박용우)는 감식반원들과 함께 둔기에 얻어맞아 뭉개진 듯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시신을 발견하고, 시신이 버려진 주변과 마을을 탐색하며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강 형사 자신도 마약조직과 관련이 있다. 그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는 아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마약조직과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고 있기 때
동구 밖 과수원길의 살인사건, <뷰티풀 선데이>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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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문화교류가 필요하다”
중국영화 100년사를 더듬어가는 CJ중국영화제가 9월1일부터 6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다. 진분홍과 금색이 어우러진 포스터에서 느껴지듯 우렁찬 대륙의 기운을 몰고 올 이 영화제의 중심에는 서현동 팀장이 있다. 한국영화의 해외배급, 외국과의 공동제작 추진 등 CJ엔터테인먼트에서 벌이는 해외사업을 책임지는 해외기획팀의 팀장인 그는 중국영화제를 총괄하는 일까지 맡아 더없이 바쁘다. 쉴새없는 업무에도 잠시 시간을 비워준 그를 만나 CJ중국영화제에 대해 들었다.
-중국영화제를 개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드라마를 통한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 콘텐츠들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지금처럼 일방적인 관계에서 문화 교류를 한다면 한국 콘텐츠들이 중국 현지 콘텐츠에 밀리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문화 교류를 위해서는 현지화된 콘텐츠를 개발하고 중국 내 크리에이티브 인력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한편,
CJ중국영화제 기획한 서현동 해외기획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