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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까지 졸졸 따라오는 멜로디
우리는 간혹 논증을 비난으로 오인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인생 별거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 똑바로 보자는 이야기다. 조롱도 냉소도 아닌 영화가 맑고 예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해변의 여인>에 흐르는 정용진(37)의 음악은 홍상수 영화에 산들바람을 불어넣었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버둥대는 여자와 남자 곁에서 투명하고 간소한 정용진의 음악은 시냇물을 흘리고 나뭇가지의 잎사귀를 흔든다. <해변의 여인>에 이르러서는 소주처럼 맑은 눈물마저 솟게 한다. 4살부터 피아노를 연주한 정용진 음악감독에게 건반은 가장 사랑스럽고 긴요한 악기다. “피아노는 자유로워요. 느낌을 받는 즉시 열 손가락만 뻗으면 모든 음과 리듬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요. 기타만 해도 줄을 뜯는 손으로는 음높이를 조절할 수 없죠. 그래서 피아노를 쓸 때는 전능함을 남용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단순하고
<여자는 남자의..> <극장전> <해변의 여인>의 음악감독 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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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목구멍까지 슬픔이 차오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곧 어깨를 들썩이는 통곡으로 바뀐다. “그녀의 남다른 신통력은, 그녀가 농사를 지어도 충분할 정도로 많이 흘렸다는 눈물의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가 이외수의 표현은 굿판으로 흘러온 넋의 설움에 울고 또 우는 이해경의 모습을 적확하게 짚어낸다. 무당 혹은 무당 아줌마, 무당 선생님이라고 불린다는 이해경. 점집 근처에 가본 적조차 없던 그녀는 신병을 앓는 중에도 무당 되기를 맹렬히 거부했었다. “숙명은 타고나는 것이라서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숙명이다.” 이후 한 무당에게서 눈이 동그란 아기가 엄마를 살려달라며 자꾸 맴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이해경은 숙명처럼 내림굿을 받기로 결심한다. 5살 난 아들의 죽음을 되새기며 들어선 무속인의 삶.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사이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껴안”는 무당 이해경을 전면에 내세웠다. 신과 인간 사이, 이승과 저승 사
이승과 저승 사이에 서있는 중재자, <사이에서>의 이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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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현장공개 때의 일이다. 따로 마련된 룸에서 최동훈 감독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한 기자가 물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정확하게 옮길 자신은 없지만, 적지 않은 비중의 아귀 역을 김윤석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에게 맡긴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최 감독은 나중에 영화를 보면 이 알려지지 않은 연극 출신 배우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자신에 찬 답변을 내놓았다. 김, 윤, 석, 이라. 그 무시무시한 저력을 맛보는 날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8월31일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면 최 감독의 이야기가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극중 동구 아버지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10년 넘게 대학로에서 수련하다 느지막이 충무로를 노크한 이 사내. <범죄의 재구성> <시실리 2km>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야수> 등 최근 2년 동안 단역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내비쳤던 그가 드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의 배우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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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지난호에 이어 두 번째 서신이 도착했다. <유레루>에 관한 질문과 답으로 채워졌던 첫 번째 서신에 이어 이번에는 <괴물>이 화제의 중심이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마치 자신의 영화처럼 내밀하고 조용한 어법으로 <괴물>의 이모저모를 물었고, 봉준호 감독은 거기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첫 번째 편지에서 서로 안부를 물었던 두 감독, 이번에는 편지를 뜯자마자 바로 질문과 답을 건넨다. 그러고나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아쉬웠는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더 전하고 싶지만, 그것은 다음에 직접 만나서 말하고 싶다”고 첨언을 전했다. 그건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경을 떠나 신뢰하는 두 영화감독이 서로의 영화에 대해 진심으로 묻고 답하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걸 읽는 즐거움도 크게 다르진 않다. 두 감독이 다시 만나 못다한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바라면서 <괴물>과 <유레루>, 봉준호와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두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괴물>의 봉준호 감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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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주의는 모두가 한곳만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제작 현장의 수직적 구성은 업무 중복은 물론, 작업 효율을 떨어뜨리고, 팀원간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 영진위 인적자원 육성과 제작환경 개선 소위원회 산하 실무추진단이 내놓을 ‘한국 영화산업의 직무분석과 직무표준을 위한 연구’(가제)의 골자는 지난주 기획리포트에서 강조했듯이 “그러한 일렬 종대를 수평적인 횡대로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수직적 위계와 남아 있는 도제 시스템은 스탭 업무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혼란을 일으킨다. 개인 능력과 상관없이 직급으로 업무영역과 기능이 설정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팀장(혹은 헤드급 기사)이 되거나 그렇지 못한 인력은 현장을 떠나는 일이 지속적으로 벌어진다. 이것은 충무로 전체의 경쟁력 저하이며, 노하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이러한 악순환은 충무로뿐만 아니라 영화교육 현장에서도 악몽처럼 반복된다. 최근 충무로에서는 “유능한, 아니 제대로 된 포커스풀러나 붐오퍼레이터 구
수평적 시스템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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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Labor’s Day) 휴일이 있던 4일 연휴의 1위는 디즈니의 <인빈시블>이 차지했다. 주말 수입 1520만 달러로 2주 연속 1위를 지켜낸 <인빈시블>은 지난 주와 비교하여 30% 하락한 수치를 보였으며, 스튜디오가 발표한 개봉 후 11일 동안의 누적수입은 3780만 달러다. 마크 월버그가 스포츠영웅으로서의 인생역전을 보여주는 ‘불굴의’ 빈스 퍼페일로 출연한다.
이번 주 북미 박스오피스 2위와 3위는 신규 진입한 <크랭크>와 <위커 맨>으로 두 영화 모두 1위를 넘기에는 부족했다. 2위는 라이온스게이트에서 만든 저예산 영화 <크랭크>로 <스내치><이탈리안 잡>에 출연한 제이슨 스테이섬이 독극물에 노출된 자신을 위해 해독제를 구하는 암살자로 등장한다. <크랭크>의 개봉성적은 1300만 달러다. 3위로 데뷔한 워너브라더스의 <위커 맨>은 1170만 달러의 개봉 성적을 기록했다.
<인빈시블>, 2주연속 1위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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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끝나는 영화보다 더 큰 영화적 스릴을 주는 게 과연 있을까? 영화는 모름지기 다이아몬드나 다른 보석과도 같아서, 원석의 질이 중요하지만 어떻게 빛나게 할지 결정하는 세공 기술이 더 결정적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세공은 마지막 부분에 온다. 드물긴 하지만 영화가 정말 딱 맞게 끝나면 관객은 극장 밖으로 나올 때 머리가 어찔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제일 좋은 결말은 고통스러운 결말이다. 먼저 영화가 끝났다는 실망의 충격이 있다. 그리고 재빨리 지나가버린 것을 갈망하는 느낌이 뒤따르고, 관객은 돌아가서 그것을 다시 보고 싶어하게 된다. 더 많은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그런 결말은 일종의 놀라움으로 다가오지만, 생각해보면 영화는 말해야 할 것을 이미 다 말했다. 일본영화 <나나>는 아마도 그런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영화는 흥미롭고, 잘 만들어졌지만, 극히 잘 만들어졌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완벽하게 자리에 맞게 들어간 결말은 그 영화를 전체적으로 훨씬 더
[외신기자클럽] 완벽한 결말을 만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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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흑인 예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이어 또 한편의 예수 영화가 논쟁을 불러일으킬 조짐이다. 8월23일 미국의 뉴라이트 엔터테인먼트 영화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흑인 유대인으로 묘사한 독립영화 <컬러즈 오브 더 크로스>을 올해 10월27일 개봉한다고 발표했다. 뉴욕, LA 등 미국 7대 도시에서 먼저 개봉할 이 작품은 점차 미국 전역으로 확대 개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개봉이 발표되자마자 <컬러즈 오브 더 크로스>의 홈페이지는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직접 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기도 한 감독 장 클로드 라마르는 “내 영화는 흑인 예수에 대한 스파이크 리식의 논쟁적인 영화는 아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자신의 피부색과 다른 신을 믿는 유일한 사람들이며, 그들에게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로 영화와 관련한 인종 논쟁을 일축했다. 역사적으로도 흑인 유대인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집
[What's Up] 검은 예수는 안 된다굽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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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 프랑스 아르데슈 지역의 작은 도시 뤼사스에는 전세계에서 온 다큐멘터리스트들이 모여든다. 1989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18회를 맞는 뤼사스영화제는 프랑스의 중요한 창작다큐멘터리영화제의 하나로 창작다큐멘터리스트들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지난 8월20일부터 26일까지 열린 뤼사스영화제는 TV 저널리즘과 차별되는 창작성이 담보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다큐멘터리영화를 중심으로 한 공식경쟁부문과 다양한 테마의 회고전으로 일주일간 진행되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의 여정’(La Route du doc)이라는 제목하에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특별전이 3일간 프로그램되어 있었다. 그런데 영화제 개막 즈음 사태가 심각해진 이스라엘-레바논 사태는 결국 이 특별 섹션 프로그램 축소로 이어졌고, 3일에서 1일로 상영일수가 줄어들었다. 프로그래머 크리스토프 포스틱에 따르면, 이번 프로그램의 수정은 현 중동사태의 심각성을 고민한 끝에 이스라엘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레바논/팔레스타인 다큐멘터리를 함께
[파리] 영화에서 현실로, 다큐멘터리의 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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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만연하는 요즘 <하프 넬슨>이란 ‘보석’이 발견됐다. 라이언 플렉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하프 넬슨>은 주연 라이언 고슬링과 14살 된 신인 여배우 샤리카 엡스의 열연으로, <뉴욕타임스> <타임 아웃 뉴욕> <빌리지 보이스> 등의 대표적인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올해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이 작품은 라이언 플렉과 파트너 아나 보든이 집필한 것으로, 3년 전 발표했던 단편 <그와너스, 브루클린>을 장편화했다. 흑인과 스패니시계 학생이 대부분인 브루클린의 한 중학교에서 역사과목을 가르치는 이상주의 교사 댄(라이언 고슬링)과 13살의 제자 드레이(샤리카 엡스)의 약간은 어긋난 듯한 우정을 그린 작품. 그러나 백인 선생이 흑인 학생을 선도한다는 <위험한 아이들>(1995)과는 전혀 다른 영화다.
댄은 8학년짜리 제자들에게 역사의 중요성을 교과서가
[뉴욕] 교사와 학생이 전하는 작지만 강한 감동, <하프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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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우리들의 행복한 신파'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언젠가 장정일이 공지영을 "김수현 뺨치게 통속적"이라 평하던 말이 떠오른다. 서로 다른 사회적 신분에 속했으나, 내면의 상처에 공감하고 우정과 연대를 나눈다는 줄거리는 대단히 지적일 것 같지만, 사실 극단적 신파이다. 강간, 자살미수, 살인, 사형 등 선정적인 죽음의 냄새는 차치하더라도, 이 서사를 통해 기대되는 정서가 '연민'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형제도 반대' 등의 담론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가엾은 윤수'는 대실패이다.) 이 영화의 목적은 '잘 울고, 순화된 감정으로 자신을 상처 준 이들을 가급적 용서하고, 삶이 소중한 줄 알며 살라'는 것. 좋은 말씀이다. 이해하기도 참 쉽다. 게다가 차고 넘치게 울려준다. 하지만 그 눈물은 너무나 맑고 '직선으로 흐른다'. <파이란>처럼 오래도록 밑바닥에 가라앉는 비릿한 눈물의 화수분을 안기진 않는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너무 일찍 놓인) '
[전문가 100자평]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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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손에 축제를 돌려주고 싶었다”
전세계 40여개 도시를 순회하며 영화, 뮤직비디오, 모션 그래픽스 등 다양한 영상물을 상영하는 레스페스트영화제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12월6일 개막을 앞두고 다채로운 이벤트가 진행 중인 올해 영화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캠퍼스 투어’라는 이름의 행사다. 전국의 대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캠퍼스에서 레스페스트영화제의 상영작과 본인들이 기획한 전시·공연을 함께 묶은 축제를 개최할 수 있는 것. 독특한 행사를 직접 기획한 레스페스트영화제 사무국 신한나 기획팀장을 만났다.
-캠퍼스 투어란 정확히 어떤 행사인가.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4명의 학생들이 팀을 구성해 축제를 여는 행사다. 2005년 레스페스트영화제 상영작 중 원하는 섹션을 4개까지 선택할 수 있고 전시, 공연, 파티 등 스스로 기획한 다양한 행사들을 영화 상영과 함께 진행할 수 있다. 레스페스트의 모토에 걸맞은 하이브리드 축제다.
-기획하게 된 의도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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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투어’ 기획한 레스페스트영화제의 신한나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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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감옥에 간다? 오스먼트는 7월20일 로스앤젤레스 교외에서 운전 중 우체통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오스먼트가 만취 상태였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경찰당국은 사고 직후 오스먼트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규정량의 2배가 넘었으며 그의 소집품에서 마리화나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18살에 불과한 오스먼트는 21살 미만자의 운전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 주법에도 저촉되는 상태. 음주운전 사고가 끊이지 않는 할리우드. 음주운전 퇴치 캠페인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을까?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감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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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라 기쁘다.” 마크 윌버그가 최근작 <인빈서블>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윌버그는 그동안 아이들이 자신의 출연작을 보는 것을 금지해왔다. 섹스와 마약, 폭력에 대한 것이 많아 미성년자가 관람하기에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 윌버그는 포르노 업계의 흥망성쇠를 다룬 <부기 나이트>를 비롯해 <더 야드> <쓰리 킹즈> 등에 출연해왔다. “내 조카들이 <부기 나이트>를 본다니, 세상에!”라던 윌버그는 “나는 지금까지 PG등급영화(부모 동반시 전체 관람가)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착한 아빠가 된 포르노 스타, 마크 윌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