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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을 시작하는 새벽 0시부터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아진 오전 11시까지의 자갈치 시장.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가 친근한 얼굴인 듯 보인다. 영화의 바다가 열리는 날, 자갈치 시장의 새벽도 그렇게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있던 12일, 자갈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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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를 미리 내다보고 싶다, 상업적으로!”
개막식장으로 향하려는 김대승 감독을 만났다. 그는 급박했던 후반작업 일정에도 불구하고 <가을로>를 볼 관객들의 반응을 궁금해 하며 다소 설렌듯 보였다. 삼풍백화점 사고를 다룬 <가을로>는 멜로영화인 동시에 재난영화로도 읽힐 수 있었고, 김대승 감독의 영화세계를 보다 긴밀히 엿볼 수 있는 영화로 완성되었다.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맞추어 영화를 완성하느라 시간이 촉박했던 것으로 안다. 후반작업은 만족스럽게 끝난 건가.
=붕괴 장면의 CG 디테일들을 중심으로 아직 손보고 있다. 사운드 역시 강렬한 효과를 좀 더 살려야 한다. 믹싱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하는 거고, 편집을 만질 가능성도 약간이지만 있다.
-과거와 현재를 편집으로 잇는 장면들에서 ‘김대승 감독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 그리고 <가을로>까지 수수께끼를 만들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수단으
개막작 <가을로>의 김대승 감독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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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 일이다. 21살이던 나는, 총 5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16mm 단편영화 하나를 만들었다. 누나와 예비 매형을 주연배우로 기용해 만든 가내수공업적인 영화였다. 첫 영화였고, 운 좋게 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일반관객에게 나의 영화를 보여준 경험은 전무했기에 그 ‘첫 경험’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마침내 상영일이 다가왔다. 내 영화 상영에 앞서 다른 단편영화들이 상영되었다. 35mm 필름으로 찍었는지 와이드한 스크린을 가득 메운 그 영화들은 화려하고, 뭔가 있어보였다. 영화가 끝날 때마다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드디어 내 차례. 입 속의 침만 꼴딱꼴딱 넘어간다. 잠시 후, 저 멀리서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얼라려? 영화가 너무 초라했다. 넓은 스크린을 가득 메우던 앞의 영화들과는 달리, 내 영화는 커다란 스크린 위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돛단배 같았다. 16mm 필름의 화면은 너무나 작았고, 집에서 믹싱한 사운드는 특유의 ‘가내수공업’적인
민용근의 부산유랑기1, 10년 전, 아픈 첫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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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이면 남포동 PIFF 광장을 메우곤 하던 인파를 올해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부산영화제 주요 상영관 중의 하나였던 남포동 부산극장이 상영관에서 빠지고 해운대에서 가까운 장산 CGV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영화제의 무게 중심이 해운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올해 남포동에 있는 상영관은 대영극장 한군데. 부산영화제 측은 “상영관이 작아서 티켓이 빨리 매진되는 현상은 부산영화제로서도 부담스럽다. 부산극장 1관은 1천석 규모의 상영관이어서 대중적인 영화를 상영하는데 적합했지만 임대료를 비롯한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부산극장을 포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포동 PIFF 광장에서 열리던 야외무대 행사도 해운대와 분산되어 열리게 됐다.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남포동 야외무대는 강동원과 쓰마부키 사토시 등의 스타들이 눈에 띄게 많이 방문했던 2005년에 특히 많은 인파가 몰려 위험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좁은 공간에 사진과 방송카메라 기자를 위한 임시구
해운대, 부산국제영화제 중심으로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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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에 사는 23살의 신뚜는 한국인 배낭여행객 전문 가이드였다. 역시 가이드였던 두형의 조언을 따라 일찌감치 한국어를 배웠고 힌디어와 영어까지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이 구김살없는 청년은 가이드 아르바이트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여행사를 차려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다. 지난해 4월 말, 발리우드를 취재하기 위한 열흘간의 출장 기간 동안 현지 코디네이터였던 그의 원대하고도 소박한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아득한 기분이 되곤 했다. 우리는 이후로도 몇달에 한번씩 안부를 전했고, 그때마다 인도에 놀러오면 특별 무료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것이 그의 인사였다. 올해 신뚜는 드디어 여행사를 차렸고 나는 가끔씩 그의 가이드로 인도를 여행할 날을 상상한다.
베니스대학 영화학도 다비드는 언제나 친절했다. 베니스영화제 기간 동안 마주쳤던 이탈리아의 뭇 청년들은 꽃처럼 아름답지만 왠지 느끼했으나, 그는 좀 달랐다.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사이트를 운영하는 그
[오픈칼럼] 아주 특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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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에서 200여년 전에 네덜란드인이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 수집한 씨가 발견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형편없는 조건하에서 보관되었는데도, 물을 뿌렸더니 씨 몇개가 싹을 틔워 긴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여정 끝에 잠에서 깨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자라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할 때 한참 상상했다. 1803년 당시에 얀 테르링이라는 상인이 무거운 가죽가방을 들고 먼 아프리카 끝에 갔다 온 장면과 그렇게 시끄러웠던 19, 20세기에 걸쳐 조용히 런던 타워 보관실에서 가만히 있었던 씨들. 갑자기 2006년에 와서 누군가가 그놈들에게고 물을 좀 뿌렸더니 막 부활하는 이 자연의 기적은 참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 최첨단 컴퓨터보다 더 놀라운 자연의 영원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말이다. 자연은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한다!
요즘 사람의 마음과 뇌에 관한 연구가 많아서 사람의 내적 생활세계에 대해서도 놀라운 사실들이 알려진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불량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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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에는 ‘올 추석에는 성룡 영화가 없어서 버럭 안타깝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다행히도 아니어서 참으로 흐뭇했다. 그것도 CG로 발라놓은 헐렁헐렁한 액션만이 난무하던 할리우드산이 아닌, 확실하게 성룡다운 영화여서 개인적으로 무척 기뻤더랬다. 물론, 액션을 위해 스토리상의 말 됨이 희생된 경향이 없지 않아 많았다만, 뭐 그 정도야 충분히 접어줄 수 있다. 그 연세에 그 액션인데 말이야.
소싯적 성룡 영화의 훌륭함의 원천은 단지 근면 성실한 액션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세계 정형외과 환자 연합 의장을 먹을 만큼 화려하다는 그의 부상에 대한 얘기와 그 순도를 공증해주는 인증서와도 같던 엔딩의 NG 모음을 볼 때, 필자는 그것을 단지 액션의 감흥을 증폭시켜주는 장치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더랬다. 심지어 NG 모음에서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위해 했다는 피아노줄을 보았을 때 실망 비슷한 것까지 하려 했더랬다. 한데 이번 <BB프로젝트>의 NG 모음을
투덜군, 염치의 중요성을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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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와 대만을 보면서 내뱉는 깊은 안도의 한숨, 노무현 대통령(정권)이 무능했기에 망정이지 유능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유능해서 부패까지 했으면 우리도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까. 탁신 치나왓 타이 총리와 천수이볜 대만 총통의 약한 고리는 부패였다. 탁신은 놀부처럼 한손에는 권력 또 한손에는 금권을 쥐고 끝까지 놓지 않으려다 제대로 당했다. 타이 제일의 갑부는 어찌나 한푼도 아까워하는지 가족이 보유한 통신회사 주식을 싱가포르 자본에 19억달러에 넘기고도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천수이볜도 부패문제로 일촉측발의 위기에 처했다. 부인에 이어 측근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뇌물 스캔들이 터져나온다. 노무현이 부패했다면, 그들이 얼마나 개거품을 물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들은 그들을 파퓰리스트라고 부른다. 노무현도, 탁신도, 천수이볜도 조국의 보수한테 파퓰리스트로 불린다. 하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념없는 변화, 말로 떠드는 개혁은 파퓰리즘과 반끗 차이다. 그들의 창대한 시작은
[이창] 아시아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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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1949년 9월24일 스페인의 라만차에서 태어났고, 그의 17번째 장편 <귀향>의 무대는 자신의 고향 라만차이다.(우연히 그의 생일에 그 영화를 보았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그 곳에는 고향이라 불리는 곳에서 우리가 기대하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오고, 돈키호테를 실성케 한 풍차가 현대화된 형상으로 탈바꿈해 그 바람을 분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첫 번째 신의 무대는 뜻밖에 공동묘지다.
마드리드에 살다 고향을 방문한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가 여동생 쏠레, 딸 파울라와 함께 부모가 묻힌 무덤의 비석을 닦고 있다. 모래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온 듯 곳곳에서 무덤과 비석을 청소하는 데 열중하고 있으며, 한 여인은 곧 자기의 육체를 받아줄 자신의 무덤 주변을 배회한다. 라이문다의 부모는 4년 전 화재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 망할 바람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위대한 모성의 힘 그린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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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단순하게, 수다스럽게, 즐겁게
무심한 듯 흘러가는 일상에서 건져지는 온기는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선경이 노래한다. 경석이 구슬을 달아준 드레스를 입고 있다. 동작에 따라 구슬이 반짝반짝 빛난다. (중략) 옷이 계속해서 화려한 색깔로 변한다. 갑자기 선경이 선녀처럼 펼쳐져 하늘로 오른다. 와- 함성, 박수갈채. (중략) 하늘에 폭죽 터진다.’ <가족의 탄생>에서 선경(공효진)이 합창하던 중 공중부양하는 장면의 묘사는 시나리오를 들추면 이렇다. 김태용 감독과 함께 쓴 <가족의 탄생> 시나리오는 공기처럼 일상 주위를 흐르다가 식상할 수도 있는 진심을 이렇게 재치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세개의 이야기가 별도로 진행되다가 만나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감독님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내 얘기는 채현(정유미)과 경식(봉태규)에게서 시작했다. 너희들 사랑이 새롭고 예뻐 보이지만 결국 너희 부모님도 그런 사랑을 했었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8] - 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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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2%를 채우는 마음으로
영화사에서 꺼려하는 시나리오작가들의 부류는 대개 이렇다. 먼저, 함흥차사형. 정해진 날에 시나리오를 토해내기로 하고서 감감무소식이다. 또 하나는 멋대로형. 작업 포인트에 합의해놓고서 정작 가져오는 결과물은 완전히 딴판이다. 시나리오작가는 킬러와 비슷하다. 목표를 앞에 두고 미적대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덤벼드는 킬러에게 의뢰가 쏟아질 리 없다. 이숙연이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건 ‘감성이 뛰어난 멜로 전문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함께 작업한 한 영화인은 “말처럼 쉽지 않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왔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고 전한다.
성실은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라디오 방송작가로서 15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 일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뭔가 쓰는 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는 지금도 아침 6시30분이면 일어나 <유열의 음악앨범> 대본을 쓴다. 시나리오를 집중해서 쓸 수 있는 건 방송이 끝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7] - 이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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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벽돌공처럼 튼튼한 이야기를 쌓는다
강제규 감독과 함께 쓴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김성수 감독의 20페이지짜리 트리트먼트를 기초로 했던 <야수>의 시나리오는 무엇보다 뜨겁다. 전쟁으로 상처입는 뜨거운 형제애가 있고 사회의 부조리함 또는 악함과 싸우려는 뜨거운 정의가 있다. 이 두편을 쓴 한지훈 작가는 실제로 호수 표면처럼 잠잠한 사람이다. 그는 시나리오작가를 기능공에 비유했다. “기획영화가 많아지면서 그런 측면이 더 강화되는 것도 있지만, 제작사의 성향과 감독의 의도라는 게 있다. 그런 것에 최대한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작가 혼자 작업할 때조차 기능공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런 현실적인 태도 때문인지 그는 “스타일이 잘 맞는” 감독과 함께했던 <야수>에 대해서도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유강진(손병호)의 캐릭터가 다소 진부하지 않았나 싶다. 악의 화신으로만 그려졌던 것이 아쉽다. 피의자 사망사건으로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검사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6] - 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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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저리 사람들을 희곡에, 시나리오에 담는다
조범구 감독의 장편영화 두편 <양아치어조>와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를 작업한 박수진 작가는 감독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살 터울인 친형의 친구이기도 해서 중학교 때부터 알아왔고, 근 20년을 본 사이라 이제는 같이 술을 마셔도 2시간만 지나면 할 얘기가 없을 만큼 서로를 많이 안다. <뚝방전설>은 제작사 싸이더스FNH와 먼저 계약을 맺은 조범구 감독이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박수진 작가에게 각본을 맡긴 경우다. “감자탕에 소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우리 고등학교 때 얘기나 해볼까 해서 쓰게 됐다. 경희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때 있었던 노타치파, 물레방아파에다가 친구들 실명까지 다 끌어왔다.”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20일 만에 써내려간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는 비록 주인공의 실패를 담고 있어도 덧칠된 추억 덕에 따뜻하다. “양아치 청춘과 양아치 같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5]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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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접어두고, 끝없이 달리고 달린다
정서경 작가는 4년 전 예비 감독으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다. 영상원 시나리오과 3학년 때 쓴 <전기공들>이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뽑혀서다. 필름 맛을 봤으니 지금쯤 충무로에서 감독 데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전업 시나리오작가라니. 작가 출신 감독들이 속속 데뷔하는 걸 보면, 잠시 택한 우회로인가. “감독은 애초 생각이 없었다. 사실 학제가 바뀌어서 영화를 만들어야 졸업이 가능했다. 그래서 낸 건데 덜컥 됐다. 촬영 첫날 어떻게 슛을 부르는지, 언제 컷하는지도 몰라서 스탭들한테 눈총받았다. 한컷 찍고 20분 쉬다가 촬영감독한테 욕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목 매달고 싶더라. 정말이지 돈 주고 감독을 사고 싶었다.”
이후 메가폰을 다시 들지 못했지만, 그는 이제 꽤 유명한 시나리오작가다. <모두들, 괜찮아요?>로 충무로에 발디딘 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4] - 정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