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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제597호에서 변성찬은 <이장과 군수>를 장규성 영화들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면서, ‘현실’에서 출발한 ‘착한 영화’이자, ‘웃음에서 감동으로의 전환이 자연스러우며’, 심지어 ‘실패와 과도한 복종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정치적 저항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나는 이에 반대한다. <이장과 군수>가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와 마찬가지로 농촌과 학교라는 아이콘을 통한 노스탤지어에 기대고 있으며, 주연배우를 통해 상당한 웃음을 뽑아내는 코미디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전작들과는 달리 웃음은 감동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이장과 군수>는 ‘착한 영화’도 아니거니와 ‘정치적 저항을 보여주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전작들에는 없는 억지스런 선악구도를 통해 ‘현실정치’를 왜곡하고, 그 결과 ‘정치적 (저항이 아니라) 괴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장과 군수>는 과연 ‘현실’에서 출발한 영화가 맞다.
[영화읽기] 정치적 저항이 아니라 정치적 괴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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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레녹스가 부른 <Ev’rytime We Say Goodbye>라는 노래 가사 중엔 ‘우리가 안녕을 말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간다’라는, 실로 영등포 길살롱스러운 정취 물씬 풍기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그런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어쨌든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겠다. 왜.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칼럼의 연재를 마치게 되었단 말이지.
지난 2천하고도 4년의 9월부터 시작된 연재니, 장장 2년 반 동안의 시간이었다. 뭐, 정훈이님의 연재기간 같은 시간에 비한다면야 63빌딩 아이맥스 영화관 앞의 청량리 런던극장 정도의 스케일밖엔 안 되겠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어떤 연재든 1년 이상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게 뭐 놀랍냐구. 그럼, 언제나처럼, 마시구. 여튼.
처음엔 길어봐야 일년 이상 계속하지 않을 줄 알았던 이 연재가 이리도 오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씨네21>이라는 매체의 태생적 훌륭함이라든가
[투덜군 투덜양] 다들 가끔은 구린 영화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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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이지스>는 젊은 일본인 사관생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방패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고 군함에 사용되는 최첨단 방어시스템인 ‘이지스’를 들먹이며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과연 방어가 자신을 지키는 방안이 될 수 있을지 회의한다.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제공격을 할 수 없게 된 자국의 군대를 일깨우는 그의 목소리에선 가느다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렇듯 이 영화는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인 센고쿠 상사(사나다 히로유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반전 메시지를 담으려 하지만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제시하는 한편 첫머리에 제시되는 사관생도의 주장을 순수하고 애국적인 것으로 포장한다는 점에서 진정 평화를 지향하는지 의심케 한다.
사건이 발발하는 곳은 이지스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 군함 이소카제함. 군사 훈련을 위해 바다로 출격한 이소카제함에 함대훈련소에서 나왔다는 미조구찌 대위(나카이 기이치)와 야마자키 소위가
강한 일본에 대한 열망 <망국의 이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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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일본 자위대 소속의 제3 특별실험 부대가 비밀 실험 중 전국시대에 착륙한다. 이처럼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이동해 기존의 역사를 훼손하자 일본 곳곳에 정체불명의 허수공간인 ‘홀’이 나타나 인류의 목숨을 위협한다. 이에 특별실험 부대를 구출하는 한편 손상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마토바 잇사(가가 다케시)가 이끄는 로메오 부대가 꾸려지고 한때 마토바의 휘하에 있었던 카지마 유스케(에구치 요스케), 비밀 실험에 책임을 느끼는 칸자키 레이(스즈키 교코), 전국시대 사무라이 이누마 시치베(기타무라 가즈키) 등이 여기에 합류한다. 당시와 태양의 자기장이 같아져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2005년, 로메오 부대는 1954년으로 옮겨가 마토바와 만나지만 오다 노부나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는 더욱 강한 일본을 건설할 야심으로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다. 미래로 가는 길이 다시 열리는 시간은 74시간27분 뒤.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선 이 시간 내에 마토바의 계략을 저지한 다음 도착한 곳
일본 자위대의 시간여행 <전국자위대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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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일기>는 일본 작가 시게마쓰 기요시가 쓴 동명의 연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옴니버스영화다. <비타민 F>로 나오키상을 받았고, <소년, 세상을 만나다> <나이프>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시게마쓰 기요시의 이 소설은 <하얀방> <동심> <애처일기> <연기가 눈에 스며든다> <향연> <작은 소스병> 등 6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모두 부부 관계를 소재로 삼아 다양하고 관능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쇼치쿠, 포니캐년 그리고 일본위성극장이 손을 잡고 함께 제작한 영화 버전 <애처일기> 또한 원작과 마찬가지로 6편으로 구성됐지만,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은 <동심>과 <향연> 두편이다.
<동심>의 주인공은 주택가에 살고 있는 주부 후지사와 요코(나카하라 쇼코). 그녀의 삶은 별다른 자극이나 변화없는 평범함 그 자체다. 남편 신이
두 남녀의 접붙이기 <애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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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코믹스의 익히 알려진 매력은 혼란스러운 괴력이 확신에 찬 괴력과 싸운다는 데 있다. 스파이더 맨은 흉측한 거미인간이 된 대가로 힘에 대한 조정자와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 사이에서 줄타기 곡예를 벌여야 한다. 4500만부의 책을 팔아냈다는 <고스트 라이더> 역시 이 범주다. 악마 메피스토텔레스(피터 폰다)에게 영혼을 판 바이크 스턴트맨 자니 블레이즈(니콜라스 케이지)는 불멸의 힘과 굴종의 노예라는 이중의 캐릭터가 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빌려온 흥미로운 구도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넣으려 했던 지적 욕망 탓에 유혹을 자초했던 파우스트와 달리 자니는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영혼을 건다. 욕망이 스스로에 향해 있다기보다 애초부터 일방향의 희생정신에 봉사한다. 마블 코믹스 캐릭터의 복합적 갈등이 일차방정식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구도는 아들 블랙하트(웨스 벤틀리)가 아버지 메피스토펠레스를 없애고 세상에 군림하려는 반역이다. 아버지 메피
우왕좌왕하는 거대한 함대 <고스트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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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오정해)와 동호(조재현)가 어렵게 재회한 곳이 백사 노인의 칠순잔칫집이다. 송화는 님과의 이별을 아파하는 소리로 심금을 울리지만, 서릿발 같은 조 명창에게 ‘모욕’당한다. 소리를 내면서도 그 소리의 뜻과 법을 모르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상전(뽕나무밭)이 벽해(푸른 바다)로 바뀌는 긴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간절하게 드러냈지만, 송화는 상전의 뜻을 몰라 ‘쌍전’으로 소리냈던 터였다. 송화를 감싸준 건 동호가 아니라 주인장 백사 노인이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나 듣기 좋으면 그만이지.”
예술의 생명은 법도로 따질 게 아니라 그 값어치를 매겨줄 손님의 손에 달리긴 했다. 그런데 백사 노인은 소리만 품은 게 아니라 송화의 몸뚱이까지 안았다. 친일의 대가로 해방 뒤에도 호사를 누리는 노인은 고운 송화의 소리에 감싸여, 눈처럼 휘날리는 희디흰 꽃송이들의 환송을 받으며 세상을 뜬다. <천년학>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다. <천년학>은 그렇게 아름다워 슬프다.
아름다워 슬픈 영화 <천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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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리브스는 1950년대 미국의 영웅이었다. 1951년부터 58년까지 방영된 TV시리즈 <슈퍼맨의 모험> 하나로 리브스는 18년간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단숨에 미국 모든 서민 가정과 아이들의 꿈이자 이상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91%까지 치솟았다. 소년들의 방에는 슈퍼맨 타이츠가 하나씩 구비되어 있었다. 8년간 리브스는 다른 영화들에 출연해서는 대중과 할리우드의 인정을 좀처럼 받지 못했다. 리브스는 <슈퍼맨의 모험> 첫 방영 무렵에 이미 MGM의 사업부장 에드거 매닉스의 아내이자 8살 연상인 토니 매닉스와 연인 관계를 지속 중이었는데, 할리우드의 모든 이가 알았지만 공식화된 적은 없는 이들의 관계는 1958년 중반 리브스가 젊은 배우지망생을 사귀면서 끝났다. 이듬해 6월16일 리브스는 자신의 침실에서 관자놀이에 총알이 박힌 채 발견됐다. 공식적으로 조지 리브스는 자살했다.
타살에 관한 의혹과 주장들에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조지 리브스
위험한 진실, 할리우드의 이면 <할리우드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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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도쿄에서 2년째 자취 중인 청년 쇼(에이타)의 생활은 무기력하다. 이는 여자친구 아스카(시바사키 고우)도 확인하는 바다. “너랑 있으면 사는 게 재미없어. 아니 사는 게 싫어져.” 그러던 어느 날 쇼는 조그맣고 흰 상자를 든 아버지의 방문을 받는다. 상자 안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의 유골이 들어 있다. 20대에 집을 나간 그녀는 53살에 이르러 아라카와 강변에서 맞아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아버지의 당부로 망자의 아파트를 정리하던 쇼는 고모의 유품과 지인들의 회고를 통해 명랑한 소녀가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이웃에게 불리기까지 걸어온 가시밭길을 알게 된다.
성실한 고교 음악교사였던 20대의 마츠코. 그녀는 수학여행 도중 절도 사건이 일어나자 학생 류 요이치를 감싸려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다가 누명을 쓴다.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그녀가 가진 성격의 치명적 결함은 상대방을 일단 기쁘게 해주고 보자는 충동. 그리고 윽박지르면 마음에 없는 일을 해버리
삶의 달인 마츠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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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떤 영화들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스쳐지나간 그곳에 흘린 것은 없는지,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 잊은 것은 없는지. 기억을 헤집으면 아스라이 떠오르는 잔상들이 쓰지 않던 감각을 일깨운다.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등 이런 영화의 대가들은 노스탤지어에 투항하는 법이 없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되 향수에 머물지 않고 후회와 탄식의 눈물을 자아내는 경지를 보면서 사람들은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임권택의 <천년학>은 그런 영화다. <씨네21> 27쪽을 할애한 이번 특집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를 기념하는 의례적인 기사가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감독 임권택에 대한 예의 이전에 <천년학>이 걸작이기 때문이다.
<천년학>은 사연 많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도, 소리라는 사라진 예술에 관한 이야기로도, 인정사정 볼 것 없던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걸작 <천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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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극락도 살인사건>을 여는 첫 번째 컷은 멀리서 바라본 극락도의 전경이다. 검은 파도를 겹겹이 두른 그 모습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누군가처럼 비밀스럽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오페라 극장 살인사건>) 등 밀실연쇄살인 추리물의 대표작들 역시 모두 등장인물이 외딴섬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스무명을 넘지 않는 등장인물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시체 수에 비례하듯 남은 이들의 갈등과 광기는 증폭되며, 인간의 추악한 욕망 혹은 본성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섬이라는 물질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이자 주제를 은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변주된다. 제한된 공간 속 익숙한 얼굴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공포가, 눈앞에 펼쳐진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박한 고립감이, 섬이라는 공간을 택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제목이 자신이 속한 장르와 심지어 줄거리의 일부까지 명시하
순수한 장르적 쾌감 <극락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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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의 늦여름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로프트> 촬영현장을 3일간 따라다니며 나카타니 미키와도 꽤 오랜 시간을 동행하게 됐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일본의 여배우란 다가서기 힘든 인종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탓에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유들유들한 척이라도 해볼까. 고민하는 사이 나카타니가 한국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능숙하지는 않으나 정갈한 한국어였다. 자연스레 화제가 <역도산>으로 흘러가자 나카타니가 반색하며 또박또박 찬사를 내뱉었다. “설경구야말로 진짜 배우. 괴물 같은 남자.”
그로부터 1년 뒤 나카타니 미키는 <역도산>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존경하는 괴물 설경구와의 협연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는지 인터뷰마다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하지만 <역도산>은 두 나라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놓지 못했고, (<로프트> 취재 당시 슬쩍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자면)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
진짜 배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타니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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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여름 <불량공주 모모코>가 개봉했을 때, 다케모토 노바라의 원작 소설 <시모쓰마 이야기>를 먼저 읽었던 사람들은 정상적인 방법의 영화화가 가능하지 않으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중고 신인 나카시마 데쓰야는 CF의 순발력과 순정만화의 감성을 무기로 원작 소설의 달콤함을 어른의 성장영화로 치환해내는 재주를 부렸다. 다음에도 이런 식의 영화 만들기가 가능할까. 사람들이 묻는 사이 나카시마 데쓰야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들고 찾아왔고, 결점 가득한 여인의 비극을 초현실주의적인 손길로 감싸안으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혹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영화적인 실험이 사라진 시대에 당도한 새로운 세대의 영화는 아닐까.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나카시마 데쓰야의 지난 궤적과 영화적인 힘을 짚어보았다. 절반의 몫을 해낸 괴물 같은 여배우 나카타니 미키를 돌아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혐오스런’이라는 형용사는 그녀의 일생이 아
달콤하고 유쾌한 비극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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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일찍이 기지촌과 매음굴, 군대와 절 등 한국사회의 주변부를 거침없이 내달리며 온갖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김기덕의 발걸음은 이제 물 한가운데 고립된 <섬>을 건너 <빈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급기야 그의 영화적 공간은 서너평 남짓한 좁은 감방 안으로 축소된다.
10년 전 가을, 단풍 든 설악산에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연은 사형수 장진을 찾아가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시간을 연장해주는 대신 자신의 행복했던 시간을 되돌려받고자 한다. 그들의 과거와 미래가 이렇게 엇갈리는 바, 그들은 좁은 면회실 안에서 처절하고 절박하게 욕망과 기억의 무화된 시간들을 복원해내고자 애쓴다. 이렇게 확장된 시간은 그동안 김기덕이 꾸준히 공간을 축소하고 지워내는 가운데 발견한 새로운 길의 모습이다. 따라서 그의 열네 번째 영화 <숨>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숨> 영화평 ④ 공간의 축소, 시간의 탐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