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은 사연 많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도, 소리라는 사라진 예술에 관한 이야기로도, 인정사정 볼 것 없던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이야기로도 보인다. 어디에 방점을 찍든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은 사라진 어떤 정취에 젖게 된다. 그것은 시각적으로는 학이 날개를 펴고 물 위를 나는 듯한 선학동의 풍경이고 청각적으로는 <춘향가> <심청가> 등 더이상 불리지 않는 소리라는 예술형식이다. 그리고 인물로 보면 다름 아닌 눈먼 누이 송화다. 실패한 소리꾼 유봉에겐 자신이 못 이룬 예술가의 한을 달래줄 딸이고, 유봉 밑에서 혼자 도망친 동호에겐 평생을 따라다니는 죄의식이자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며 선학동 주막의 용택에겐 감히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신적 존재인 송화. 동호는 그녀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년가봐”라고 말하지만 날개옷이 없는 송화는 승천하지 못하고 속세에서 기구한 삶을 이어간다. 선학동의 물이 말라 땅이 되듯, 소리가 대중예술의 자리에서 밀려나듯, 송화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보이다가도 자꾸 멀어진다. 애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이어지는데 눈물을 보이지 않는 <천년학>은 누구를 탓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들어 있는 장면들은 물러서지도 앞서 나가지도 않으면서 그 시대 그 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을 지켜본다.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주어진 삶을 안간힘을 다해 살아갈 때 왜 저들은 저렇게 미련하고 못나게 살았나, 라고 묻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천년학>은 그렇게 시대와 운명을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 조건을 말하는 중이다. 동호가 송화를 위해 지은 집을 그 상징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집이 완성됐을 때 정작 찾아온 것은 송화가 아니다. 동호의 바람은 다시 한번 유예된다. 송화는 그렇게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정복할 수 없는 숙명을 의인화한다. 모두가 얘기하는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에선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라는 송화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천년학>은 간절히 이루고 싶었으나 이룰 수 없던 어떤 꿈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번호 표지 제목에 ‘거장 임권택, 걸작 <천년학>’이라고 달면서 얼마간 망설였다. <천년학>이 걸작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지만 임권택 감독에게 거장이란 수식어는 지나치게 관습적인 것이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천년학>이 보여주는 지혜와 통찰력은 젊은 영화작가들이 보여주는 개성과는 다른 차원인데 그걸 압축하는 다른 표현을 찾지 못해서다. 부디 거장이라는 표현을 식상한 관용어로 받아들이지 마시길. 우리가 이 말을 원래 의미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하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천년학>이 임권택 감독을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준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영화평론가 김소영·허문영·정성일, 김선두 화백, 김대승·김태용·김지운·김성수·정윤철·윤제균·이현승·민규동·봉준호·정재은 감독 등 이번 특집에 참가한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