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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교외에서 살고 있는 하루노 가족의 일상은 저마다 분주한 편이다. 아들 하지메(사토 다카히로)는 짝사랑하던 소녀가 전학갈 때까지 고백을 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전학생과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딸 사치코(바노 마야)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커다란 자기 자신의 환영이 언제쯤 눈앞에서 사라져줄까 궁금하다. 엄마 요시코(데즈카 사토미)는 살림을 하는 틈틈이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고, 비밀스러운 골방에 틀어박힌 할아버지는 소리굽쇠의 소리를 즐기거나 이상한 쿵후 동작을 해보이곤 한다. 삼촌 아야노(아사노 다다노부)는 자신을 찼던 여자가 결혼했다는 사실에 쓸쓸해한다.
<녹차의 맛>은 사치코가 철봉 거꾸로 오르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정도를 제외하면 궁금한 사건이 거의 없는 영화다. 그 대신 <녹차의 맛>은 길게 호흡하면서 순간을 바라볼 수 있는 여백을 주곤 한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우산을 줄 수 있었던 남자아이가 비를 맞으며 달리는 길이 어떻게 물리적인 법칙을
문득 녹차를 마시고 싶어지는 영화 <녹차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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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조잡한 욕망을 세련된 형태로 만드는 게 교양의 힘이다. 그건 학교는 물론 학원에서도 가르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감수성을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흑인 친구를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놀리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차별하는 한심한 태도는 누가 바꿔주지 못하는 것이다. 메마른 감성의 눈을 뜨는 길 말고 다른 길이 없다. 그런데 그 둔감한 감수성은 누가 일깨워주나. 영화는 좋은 교양의 학교가 될 수 있는가. 문제는 이 까다롭고 거추장스러운 인권이라는 주제를 건드리면서 영화적 깊이도 훼손하지 않고 영화적 즐거움까지도 포획할 수 있느냐는 거다. 박찬욱 감독이 <여섯개의 시선> 중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섯개의 시선>의 박찬욱, 박진표, 임순례 그리고 <다섯개의 시선>의 류승완, 정지우에 이어 정윤철, 노동석, 김곡·김선 등이 <시선> 세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 경력을 따진다면
야만스런 사회를 꼬집는 감성교육, <세번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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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조총련의 간부였다. 세 오빠는 철이 들기도 전에 모두 북한에 보내졌다. 김정일 수령님, 김일성 장군님에 대한 충성은 집안의 불문율이었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딸은 아버지의 사상을 거부했고, 아버지는 딸의 선택을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받아들였다. <디어 평양>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화해의 과정이 담긴 드라마다. 재일동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은 캠코더 2대로 10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고, 일견 홈비디오처럼 투박해 보이는 화면 안에 빛나는 진심을 담아냈다. 일본과 북한을 오가며 펼쳐지는 <디어 평양>은 평양의 인간적인 얼굴을 조명하는 동시에, 재일동포들의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데뷔작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과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양영희 감독은 “맥주를 너무 좋아한다”며 명랑하게 웃음을 터뜨리다가
어느 조총련계 재일동포 가족 이야기, <디어 평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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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우리나라 영화사에서는 한번도 주류 장르로 존재한 적이 없을뿐더러 거의 만들어진 적도 없었다. 그래서 영화팬들에게 뮤지컬이라는 단어는 40∼50년대의 휘황찬란한 스펙터클을 자랑했던 할리우드영화들만을 상기시킬 뿐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국의 영화사 속 장르로만 여겨진다. 그런데 올해는 노래방 스타일로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다세포 소녀>와 뮤지컬을 전면에 표방한 <구미호 가족>에 이어 <삼거리극장>까지 세편이나 만들어졌다. 두편의 선배들을 접한, 소수의 관객의 반응에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낯선 장르를 맞닥뜨린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건너온 뮤지컬들이 비싼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열띤 관심 속에 소비되는 현상이 한국영화 속의 뮤지컬에 대한 관심과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순진한 기대일까.
<삼거리극장>은 8억원이라는 적은 예산을 들였다는 것부터 호화 뮤지컬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짐
감각적인 스타일, 패기만만한 시도, <삼거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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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리얼리즘 멜로'이다. 멜로 영화가 흔히 뽀샤시한 판타지라는 것은 기지의 사실이다. 순수하고 아름답고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 그들은 진공상태로 만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한다. 사회관계도 없고 일상의 삶과도 무관하다. 섹스는 영원히 유보되거나, 한번의 섹스가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 이따금 이런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한다며 일상성을 강조하는 멜로가 시도되기도 한다. 결과는 두 갈래인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류의 무덤덤하고 아리송한 욕망 속에 결국 또다른 판타지를 제공하는 식이거나, 홍상수 영화류의 '사랑 없음!'을 일갈하는 신랄한 '안티-로멘스'가 그것이다.
하지만 어찌 사랑이 없기야 하겠는가? 사랑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능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팍팍한 삶속에 위로와 안식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딱 그 지점에서 사랑은 논한다. 주인공들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전문가 100자평]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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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혼원정기>의 라라
<가족>으로 인상적으로 데뷔한 수애의 두 번째 스크린 출연작. 한국 노총각을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맺어주는 통역관 겸 커플매니저로 등장한다. 여자 앞에서 고개도 못 드는 만택(정재영)과 유부녀를 꾀는 희철(유준상), 성격은 다르지만 배우자 없이 늙어가는 신세는 마찬가지다. 결혼을 위해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나선 둘은 그곳에서 탈북자임을 숨긴 채 돈을 버는 라라(수애)를 만난다. 라라는 만택의 순박함을 못견뎌하지만 실은 따뜻한 사람이다. 만택이 선사한 보라색 스카프를 꼭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해 여름>의 서정인
부드럽고도 강한 인상을 남겨온 수애가 처음으로 슬픈 사랑의 주인공에 도전한다. 1969년 여름, 서울에서 대학생 무리가 농촌봉사활동차 수내리에 내려오고 아버지에 반발해 농활에 참가한 석영(이병헌)은 시골 도서관 사서 정인(수애)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끌리는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두 사람
[VS] 수애가 사랑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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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재미없다’는 불만만큼 종종 등장하는 코멘트가 바로 ‘저게 말이 되냐?’는 불평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라.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시나리오로 만들어지고 영화로 제작되는 것 아니겠나. 주인공에게 미션을 부여한 영화들도 그런 맥락에서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또 직업적 신념이나 생존 때문에, 주인공들은 항상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그러나 진실은… ‘영화가 끝나버릴까봐’일지도. 일례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게임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주인공인 중국음식점 배달원 주(김현성)가 ‘아니오’를 선택했다면, 영화에 들인 약 100억원의 제작비와 4년간의 제작기간이 무의미해진다는 말씀. 각설하고, 치밀하고 정교한 영화적 장치 탓에 진퇴양난, 빠져나올 구멍 하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주인공들을 꼽아봤다. 적어도 똥폼 잡으면서, ‘나의 신념은~’하는 영웅적
[Rank by Me] 울며 겨자 먹기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주인공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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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업>의 반항적인 테일러(채닝 테이텀)에게 힙합은 자신을 드러내는 단 하나의 도구다. 이처럼 타일러가 사랑하는 ‘힙합’(hiphop)은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유행한 춤, 음악, 패션, 의식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로 주로 쓰이는데, 더 자세히는 19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의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들이 선두한 일종의 문화운동을 지칭하는 데서 출발했다. 타일러에게서도 볼 수 있듯 힙합의 본질은 주류 질서에 대한 거부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욕설이나 폭력 등을 동반한 과격한 행위만이 힙합에 포함된다고 오인하기도 한다.
대체로 그래피티(graffiti), 랩(rap), 브레이크댄스(break dance) 등이 힙합에 속한다. 그래피티가 전철, 교각을 비롯한 갖가지 건물의 벽면에 페인트 등으로 낙서를 하는 시각적인 행위라면 랩은 빠른 리듬에 맞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청각적인 행위다. 그래피티와 랩이 힙합의 미술과 노래인 반면, 랩이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
[배워봅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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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동생이 아팠다. 나와 그 녀석 둘 다 어디선가 감기를 집어먹고 온 거다.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며 시체놀이한 건 마찬가지였는데, 일요일 밤께가 되니 나는 좀 살 만해졌고 녀석은 별반 차도가 없었다. 쌕~ 쌕~. 숨구멍으로 바람 새는 소리 비슷한, 뜻 모를 소리가 수상했다.
아프다는 녀석이 집을 나서기에, 방문만 삐죽 열고 “어디 가는 거냐” 물었다. 숨이 차서 누워 있기 불편하다며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천성이 무심한 나는 “같이 갈까?” 건성으로 말을 건넷고, 동생은 예상대로 “괜찮다. 금방 갔다 올게” 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했겠다 싶을 무렵 전화했더니, 동생은 “감기 때문에 온 천식”이라며 “입원해야 할 모양”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그제야 아뿔싸 싶어, 이것저것 동생의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내가 도착했을 즈음에는 상태가 좀 나아진 모양으로, 의사 선생님은 “일단 집에 가되 행여 안 좋으면 다시 오라”고 일렀다. 그렇게 집에 온 녀석은 숙제를 다 못했다며 날
[칼럼있수다] 엄마의 마음은 못 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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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국, 인도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인도영화제가 열린다. 우리에게 인도영화는 낯선 느낌이 있지만, 사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수의 영화를 제작하는 나라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영화시장을 갖고 있다. 인도영화의 중심지 봄베이(지금은 뭄바이)와 할리우드를 합성한 ‘발리우드’(Bollywood)라는 용어만 보아도 인도영화가 자치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할리우드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매우 낮다. 인도인들은 자국에서 생산된 영화의 문법에 익숙하고 그 영화들을 즐기며 인생을 보낸다. 전체 인구 중 빈곤층이 대다수인 인도는 TV 보급률이 낮고, 영화 외의 오락거리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극장을 찾는다. 이런 현상을 현실도피적인 대리만족이라 지적하기도 하지만, 인도인의 삶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인도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노래, 무용, 연기가 어우러진 독특한 양식에 있다. 인도영화는 할리우드처럼 뮤지컬, 멜
춤추는 발리우드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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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을 시각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곤 하는 지금의 관객이 고전적 할리우드영화를 다소 싱겁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전적 할리우드 시기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묘한 매력은 바로 그 밋밋한 듯 보이는 스타일에서 발견되곤 한다. 그들 영화의 스타일은 마치 레몬으로 쓴 편지와 같아서,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다가도 그 밑에 약한 불이라도 쐬어주면 그 문체와 의미가 선명하게 솟아오르는 쾌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회고전이 열렸던 ‘오토 플레밍거’나 오는 11월24일(금)부터 30일(목)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특별전의 주인공인 조셉 맨케비츠는 겉으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스타일을 영화적 미덕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한 이들이다.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출생한 맨케비츠가 영화에 눈을 뜬 것은 독일 우파(UFA) 영화사에서 일하면서이다. 이후 할리우드로 돌아온 그는 시나리오작가로서 먼저 인정을 받았고, 1946년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은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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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영화사가 장 피에르 장콜라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범주 아래 속할 영화들은 1930년대의 프랑스영화라는 거대한 빙산의 드러난 일부일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주변부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운명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의 염세적인 이야기를 낭만적인 우수로 가득한 비주얼 위에 그려낸 그 영화들이,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과 매혹을 새겨놓았고 그럼으로써 그만의 특별한 존재감을 내세우게 되었다는 점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영화의 그 경향에 기여한 감독들로는 마르셀 카르네, 쥘리앙 뒤비비에, 장 그레미용, 피에르 슈날, 자크 페데 등이 주로 거론되는데, 그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두 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프랑스 영화사의 중요한 경향과 자취를 돌아보는 자리가 시네마테크 부산(11월28일부터 12월14일까지)에서 마련된다.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아무래도 ‘시적 리얼리즘의 얼굴’이라 불리기도 했던 프랑스영화의 스타 장 가뱅부터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을 탐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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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포스터> 11월25일(토) SBS 밤 12시5분
당신은 복제인간이자 살인병기다. 충격적인 전언과 함께 천재 과학자 스펜서(게리 시나이즈)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는 인물은 헤서웨이 소령을 연기한 빈센트 도노프리오. 그는 치안을 명분으로 살인마저 정당화하는 캐릭터를 “밤마다 아이처럼 잠을 푹 잔다”는 아이러니한 대사에 담아냈다. 대학을 중퇴하고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익힌 빈센트 도노프리오는 단역을 전전하며 꿈을 키웠다.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 ‘뚱땡이’ 신병 로렌스를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35kg나 불린 도노프리오는 억압적인 군대 조직 속에서 광기에 사로잡히는 남자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이후 팀 로빈스의 손에 살해되는 시나리오작가(<플레이어>), 악몽을 선사하는 연쇄살인범(<더 셀>) 등 인상 깊은 조연으로 등장한 그는 <맨 인 블랙>에서 인간을 뒤집어쓴 벌레 외
[앗! 당신] 층층이 쌓아올린 묘한 마력, 빈센트 도노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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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1월25일(토) 밤 11시
지금 이 도시에 존재하는 자들은 ‘남겨진’ 자들이다. 이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떠난 자들의 흔적들이다. 그래서 흔적과 함께 남겨진 자들에게 고독은 운명이다. <토니 타키타니>는 땅 위를 감싸는 희뿌연 안개처럼 도시를 흐르는 고독의 공기를 담는다. 토니 타키타니는 한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정밀한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런데 그의 영혼에는 휑한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은 도시인의 영혼에 찍힌 낙인이다. 그 구멍으로 고독의 바람이 통과한다. 완벽한 작품으로 영혼의 쓸쓸함을 달래듯, 그는 완벽한 이미지의 여자, 에이코를 만나 고독을 잊으려고 한다. 그러나 에이코의 쇼핑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둘의 관계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에이코의 공허함이 수많은 옷가지들로 메워지지 않듯, 토니의 고독은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토니 타키타니>가 보여주는 도시의 풍경은 치솟은 빌딩들과 혼잡한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다. 영화 속 공간
도시를 부유하는 고독한 유령들, <토니 타키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