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아트시네마가 올해 극장에서 개봉한 작품 중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독과점 등으로 관객과 만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거나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작품들을 선정해 상영하는 ‘시네 랑데부 II’를 연다. 11월3일부터 9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과 김기덕 감독의 <시간>을 비롯해 라울 루이즈 감독의 <클림트>,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 독일 마르크 로테문트 감독의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오프사이드>, 그리고 올해 서울유럽영화제에서 소개된 영국 숀 엘리스 감독의 <캐쉬백> 등 7편을 상영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 www.cinematheque.seoul.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주목할만한 개봉작 다시 본다
-
“제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줘.” 한 아티스트의 신실한 팬이라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씌어진 예술가의 전기를 덮으며 실망을 느낀 적이 더러 있을 것이다. <에곤 실레-세상의 하이페리온>과 <에곤 실레를 회상하며>는 그런 경지에 닿은 애호가들이 반색할 법한 책이다. 1인 출판사 미디어 아르떼의 김기태 편집자는 실레가 성장하고 활동한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직접 방문해 전문가와 관련 인사를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해 이 책들을 펴냈다. 특히 편집자는 도판만큼은 세계 수준을 고집했다고 자부한다. 과연 흔히 못 보던 그림도 많고 상태도 훌륭하다. <에곤 실레-세상의 하이페리온>은 두개의 장에 걸쳐 유년기의 원체험을 포함한 화가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정리했다. 3장은 1912년 유아유괴와 포르노그래피 제작 혐의로 수감된 실레가 쓰고 그린 옥중일기와 작품, 편집자의 노이렝박 구치소 방문기로 구성됐다. 감방 실내풍경, 수의를 입은 자화상, 실제 구치소 사진을 볼
연약하고도 예리한, 그 타락의 실체
-
EBS 11월4일(토) 밤 11시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25일, 필름포럼에서 지아장커의 <세계>를 보았다. 11월4일, EBS에서 이 영화가 방영될 예정이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뒤, 그의 영화 세계와 더불어 때마침 개봉한 <세계>에 대한 비평들은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 지면에 <세계>에 대한 또 하나의 글을 덧붙이는 것에 대해 잠시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평일 오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늘, 그 시간 나와 함께 <세계>를 본 관객은 고작 10명 내외였다),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의 목적은 오직 ‘소개’에 있다. <세계>에 대한 비평을 읽고 싶다면, 정한석(<씨네21> 574호)과 안시환(<넥스트 플러스> 13호)의 프리뷰를, 지아장커에 대
고통을 타고 흐르는 감동의 순간, <세계>
-
[정훈이 만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남기남의 명품 브랜드
[정훈이 만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남기남의 명품 브랜드
-
-
벌써 11년이 지났다. 이 나라의 집단 무의식은 그 사건을 잊으려고 부단히도 애썼나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되살아나는 침통함과 역겨움 때문에 ‘아, 이래서 그 일이 마치 없었다는 듯이 한동안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대승의 <가을로>는 한여름에 일어났던 그 재난을 짧고 충격적인 장면으로 (그러나 붕괴되는 건물의 외관과 실내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들추어내고는 서둘러서 ‘어서 가을로 가자고’ 일련의 단풍비경으로 덮어버린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그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어떤 이는 사회문제를 개인화하는 그의 방식에 불만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문제의 원인과 책임자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뿐더러 주인공들의 지워지지 않는 심리적 통증을 완화하는 것에만 철저히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는 영화만 영화가 아니다. 스크린 위의 텍스트보다 훨씬 쇼킹한 영화는 점점 색깔이 바래지는 실제 사건에 대한 집단적 사회 기억이다.
불현듯 환기되는 집단 무의식, <가을로>
-
영화 <폭력써클>의 마지막은 감옥에 갇힌 상호가 죽은 재구로부터 편지를 받는 대목이다. 충격을 받은 듯 멍한 상호의 표정과 대비되면서 재구의 목소리를 통해 사연이 전달된다. 여기에는 대중영화의 결말에서 예상할 수 있는 반성적인 사연이 적혀 있다. 만약 이 편지를 조금 더 일찍 받았더라면 상호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뒤늦게 죽은 자로부터 온 한장의 편지는 의미가 있다. 편지의 사연은 상호와 친구들이 행한 지난 4주간의 행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폭력써클>도 재구의 편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영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폭력써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또 폭력영화야, 하는 것이었고, 뒤늦게 도착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늦게 도착한 재구의 편지가 인물들의 성장과 몰락을 돌아보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듯이, <폭력써클>은 2001년작 <친구> 이후 무수히 반복
폭력의 계보학을 보여주다, <폭력써클>
-
하이, ‘전영객잔’ 오랜만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나는 사실 로우예의 <여름 궁전>에 사로잡혀 있다. 부산영화제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인상적인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의 처절한 아름다움이 어김없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차이밍량의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전작에 비해 큰 진전은 없으나 그래도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브루노 뒤몽의 신작 <플랑드르>, 프라티바 파마의 장편 <니나의 천국의 맛>(영화적으로 재앙, 그래도 그녀의 건재가 반갑다) 그리고 북한, 인도 남부, 부르키나파소, 미국 와이오밍의 영화관, 영사기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울리 가울케의 <꿈의 동지들>- 애활가들에게는 정말 꿈처럼 애달픈 영화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흠잡을 데 없이 딱 떨어지는 여성주의 윤리멜로 <나 없는 내 인생>과 퀴어멜로 <후회하지 않아>를 보았다. <후회하지 않아>는
성찰과 비전을 가진 정치영화, <여름궁전>
-
“당신이 내 팔을 고쳐준다면, 내 다리는 내가 직접 찾겠습니다.” <아버지의 깃발> 속 대사는 과장된 것이 아니다. 1945년 2월의 일본 이오지마는 2차대전 최악의 전장 중 한곳으로 기록되었다. 미군 3만여명이 이오지마에 도착하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2천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마지막에는 2만48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 사상자 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섯명의 미군이 이오지마 스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사진의 이미지는 신문, 잡지, 역사서, 영화, TV쇼 그리고 동상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재생산되었고, 미 정부가 군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버지의 깃발>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각색되었다. 책의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브래들리는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꽂은 여섯 병사 중 한 사람이자 그들 중 최후의 생존자인 존 ‘독
최악의 전장, 최후 생존자의 대가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깃발>
-
뉴욕에서 ‘킴스비디오’는 지난 20여년간 이미 문화적 산실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자선활동과 홍보지원 등으로 독립 영화인들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었던 ‘킴스비디오’ 김용만 대표가 최근 영화 <1/3>(One Third)을 뉴욕에서 개봉하며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다.
뉴요커들에게 김 감독은 ‘킴스비디오’ 사장, 독립영화의 후원자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김 감독이 킴스비디오를 시작한 것도, 영화인들과 영화학도를 도와주는 것도 모두 영화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고. 50살이 넘은 나이에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이미 김 감독은 7편의 단편을 만들며,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와 <301·302> 등 여러 작품을 제작 또는 배급하며, 킴스비디오를 통해 영화 관계자들과 인맥을 구축하며,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를 차분히 기다렸는지 모른다.
최근 인터뷰에서 ‘데뷔’라는 말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던 김 감독은 “감독 데뷔에 나이가 정해져 있
<1/3>으로 영화 감독 데뷔한 킴스비디오의 김용만 대표
-
시어머니보다 미운 사람이 시누이라고 했던가. 전장을 방불케 하는 패션 잡지사 <런웨이>에 내던져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드리아 삭스(앤 해서웨이)에게 직속상관인 에밀리는 바로 그런 존재다. 악마적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의 턱없는 요구를 들어주기만도 숨이 찬데, 에밀리는 매사에 사포처럼 까칠하기 그지없다. 촌티나는 옷차림에 싸늘한 비웃음을 날리는 것은 기본이고, “넌 잡일이나 하라”며 각을 세운다. 하지만 독감에 걸려 빨갛게 달아오른 코를 훌쩍대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이제 설사 한번만 하면 목표 체중 달성”이라며 슬쩍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자신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극중 인물 에밀리를 연기한 영국 여배우 에밀리 블런트는 새침하고 얄밉지만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오직 일하기 위해 살아가고, 미란다와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에밀리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인물이다. 관객이 그녀를 미워하는 동
미워할 수 없는 악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에밀리 블런트
-
영화잡지계, 그리고 영화판이라는 정글에서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리며 살던 그는 어느 날 홀연히 고요한 호숫가로 떠났다. <연합뉴스>와 <한겨레> 기자를 거쳐 <씨네21>의 창간 편집장을 지냈던 조선희씨는 2000년 소설가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에세이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 소설집 <햇빛 찬란한 나날>을 잇따라 발표했다. ‘<씨네21> 전 편집장 조선희’보다 ‘소설가 조선희’라는 칭호가 익숙해지면서 그는 계속 문학의 산수(山水) 속에서 우아한 학처럼 살아갈 것만 같았다. 그러던 그가 6년 만에 영화계로, 정글로 돌아왔다. 9월25일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정글 속에선 호젓한 암자 같은 곳이지만, 추진하고 지속시키고 마무리지어야 할 일이 너무 많기에 그는 다시 3년 동안 하이에나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국정감사라는 “큰 시험”을 나흘 앞둔 10월2
신임 한국영상자료원장 조선희
-
“<번지점프를 하다> 만든 뒤에 마케팅팀에서 이걸 동성애영화가 아니라고 해달라고 해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고 난 뒤 후회가 많았다. 그 뒤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터뷰는 영화 만든 다음에 내가 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과정인 것 같다.” 김대승 감독은 열의 넘치는 목소리로 운을 뗐다. 연이어 달려온 언론과의 릴레이 인터뷰 후반부라 지칠 만도 한데, 일반 관객을 상대로 한 공식 첫 상영이었던 부산영화제에서의 반응을 묻는 말에 “영화제작자들이 안부전화해주는 횟수로 대강 반응을 알 수 있는데 적지 않았던 걸 보면 그다지 나쁜 것 같지는 않다(웃음)”며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김대승 감독은 “이제 세편밖에 안 만든 감독인데…”라며 종종 겸손의 예를 갖추다가도, 영화의 어떤 부분에 행여 미심쩍어하는 티라도 내면 열정적으로 다시 설명을 쏟아냈다. <가을로>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정직한 최선의 목소리를 담았다.
-<
<가을로> 감독 김대승
-
황포강 남쪽으로는 100년 전 영국이 지은 육중한 건물이 불빛을 밝혔다. 강북 연안으로는 거대한 TV타워인 동방명주가 빛을 발했고, 강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모더니즘풍의 초고층 건물들이 거세게 발돋움하는 중국의 발전을 시위라도 하는 듯 보였다. 영화 황제 김염이 전성기를 보낸 곳, 베이징과 함께 가장 방대한 13만평 규모의 오픈 스튜디오인 상하이제편창이 있는 곳, 가장 급성장한 중국의 현대도시이자 거부들이 모여사는 곳. 극빈차와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
상하이에 한국의 브랜드 영화관 CJ CGV가 10월22일 상륙했다. VIP 상영관을 포함한 총 6개 상영관, 1천여석 규모로 5성급 영화관 인증을 받은 상하이에서는 최고 수준의 영화관이다. 이날 베이징과 이틀 간격으로 <살인의 추억>, 중국 내 개봉 불가 판정을 받은 <왕의 남자> 등 한국영화 11편도 함께 도착해 ‘2006년 한국영화전’이 8일간 함께 열렸다. 행사를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이현승, &l
[현지보고] 상하이 CGV 개막식 현장을 가다
-
한심하고 비루한 조폭의 삶, 거친 것 같지만 실은 약해 빠진 사내들...뭐 이런 것, 모르는 바 아니다. 대게 느와르의 주제는 사실 이런 것이니까. <열혈남아>는 그 부분에 더 주력한다. 그들의 내면적인 취약함,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허기'를 노골화시키기 위해, 상징이 아닌 실제의 '어머니'를 끌고 들어온다. 과연 그 대비는 효과적이다. 앗, 어머니라니! 우정의 무대에서 부르짖던 거칠고 유약한 사내들의 환호성 '어머니~' 영화는 그게 전부이다. 어쩌면 단편이나 중편에 걸맞을 정도의 시놉시스로 장편을 찍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잉여가 많고 자주 늘어진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조금 색다르게 다루어진 시골 풍경 정도이다. 시골은 아름답지도 않고,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작정 착하지도 않다. 별반 과장이나 미화가 없는 시골 묘사는 근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 가장 낫다. 설경구와 나문희의 연기는 기대만큼 좋다. 더 이상을 기대할 수도,
[전문가 100자평] <열혈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