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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다. 사진 관련 서적들이 물밀듯이 출판되고 있다. 대형서점에는 이제 전문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디지털카메라 보급에 따른 여파일 것이다. 그러나 고민이 뒤따른다. 이 많은 책들을 다 볼 순 없는 일이다. 그래서 7인의 사진 전문가들에게 청했다. 알찬 책을 추천해달라고. 그들의 Choice는 국내에 출간된 책들이다. 그들의 Another Choice는 외서와 지금은 절판된, 시중에서 손쉽게 구하긴 어려운 책들이다. 업그레이드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똑딱이 카메라와 DSLR을 잠시 놓아두라. 셔터에서 손을 떼고 책을 보자. 봐야 찍는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근심 많은 부모 같은 책
영화스틸작가 한세준의 베스트, <사진학 강의>
Choice/ <사진학 강의> 바바라 런던, 존 업튼 외 지음/ 김승곤 옮김/ 포토스페이스/ 2004년
<사진> 바바라 런던, 존 업튼/ 이준식 옮김/ 미진사/ 2003년
제목부터 ‘사진학 강의’다. 단시
사진 전문가 7인이 추천하는 사진책 14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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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 무렵, 신도림 방향 2호선 지하철은 그야말로 만원이다. 타는 사람은 많은데 내리는 사람은 없으니 상황은 점입가경. 환승이 가능한 교대역과 사당역은 혼란의 피크다. 단 일분도 안 되는 시간에 빈자리가 생겼다 없어지니 사람들의 발놈림도 빨라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몇달간 삼성역에서 저녁 7시 지하철을 타야 했던 나는 어느새 ‘2호선의 순리’를 알아차렸다. 넓게는 서울과 수도권, 좁게는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2호선은 패션과 문화, 돈과 외모의 일상을 위아래로, 양옆으로 가르고, 지르며 달린다. 정말 수긍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삼성역엔 정말 ‘삼성스러운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사당역엔 정말 ‘사당스러운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삼성과 사당 사이, 사당과 신도림 사이의 경계도 명확하다. 꽤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타야 하는 나는 다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재고, 나눈다. 매우 생리적인 이유로 작동하는 판단이지만 조금 불편하다. 외모가 지역성과 결부될 때, 어렵게 앉은 자
[오픈칼럼] 대학로 이상 압구정 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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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공항에 도착할 테니 영화를 제작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비틀스가 누군지 몰랐던 메이즐스는 그들이 대단하다는 동생의 말을 들고 계약을 맺은 뒤 카메라를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비틀스의 인기몰이에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해서인지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촬영에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고, 두 형제는 비틀스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또한 비틀스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니, <비틀즈의 첫 미국 방문>은 유명인과의 인터뷰 따위를 수록한 진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100% 가까이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완성됐다. 게다가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정말 좋아했던 비틀스였으니 금상첨화일밖에. DVD의 음성해설에서 메이즐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 메이즐스 형제는 이후에도 <세일즈맨> <그레이 가든> 등 역사에 남을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갔다. 그중엔 그룹 롤링 스톤스를 담은 <기미 셀터>도 있는데, 메이즐
[코멘터리]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비틀스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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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사회, 우범지대 밖으로 쳐진 장벽,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된 이방인과 내부인의 특이한 동조 관계. <13구역>의 기본적인 조건들은 존 카펜터의 영화에 빚진 것이다. 어이없는 건, <13구역>이 제목부터 유사한 <분노의 13번가>와 <뉴욕 탈출> <LA 탈출> 등에서 따온 이야기임에도 공동각본에 뤽 베송의 이름이 박혀 있을 뿐 카펜터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매년 10편 가까운 영화를 제작하다보니 베송이 깜빡한 걸까? 하기는 온몸을 불사른 <13구역>의 액션에 눈을 팔다보면 이런 사실쯤은 모르고 넘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가 의도했다는 자유·평등·박애의 메시지가 익스트림 스포츠에 버금가는 화려한 몸놀림 아래로 슬쩍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13구역>의 DVD가 <분노의 13번가>의 리메이크작인 <어썰트 13>의 DVD와 같은 제작사에서 출시된 것도 재미있
몸놀림과 소리만은 최고군, <13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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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로이 힐의 영화는 언뜻 보기엔 어울리지 않을 두 작품군으로 크게 나뉜다. <슬로터하우스 파이브>나 <가프>처럼 쉽사리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는 스타일에 그만큼 독특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곧잘 만드는 그는 고전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그만의 스타일로 변주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후자에 속하는 <스팅>과 <내일을 향해 쏴라>는 힐이 거둔 최고의 성과로 불린다. <내일을 향해 쏴라>는 1969년의 시대와 동떨어진 듯 퇴행적이고 마술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영화인 동시에 가장 낭만적인 서부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영화에 삽입돼 거대한 성공을 거둔 B. J. 토머스의 노래 가사는 영화의 씁쓸한 낭만을 대표한다. 이십세기 폭스 홈엔터테인먼트는 고전 작품들을 대상으로 ‘시네마 리저브’라는 새로운 DVD 브랜드를 만들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도 그중 하나인데, 기존 DVD에 비해 보강된 부록은 물론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자막
고전이란 이름표에 맞게 자막 지원, <내일을 향해 쏴라: 소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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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여자 주인공 캐롤(헬렌 헌트)에게 남자 주인공 멜빈(잭 니콜슨)은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하는 사람이에요."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누군가를 위해 무엇이 되고 싶은 것. 사랑도 그런거겠죠?
여러분이 리플로 남겨주신 사랑에 관한 명대사들. 때론 닭살스럽고, 때론 두근두근 심장을 떨리게 하는 영화 속 낭만적인 대사들을 모아 봤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감독: 도이 노부히로
배우: 다케우치 유코, 나카무라 시도우
아내 미오를 먼저 떠나 보낸 아이오 타쿠미와 그의 6살난 아들 유우지는 어설프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비오는 어느 날, 늘 놀러 가던 숲에서 산보를 하던 타쿠미와 유우지 앞에 세상을 떠났던 미오가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more
명대사: 당신인 늘 곁에 있어 마음이 늘 따듯했어요.단 한번이라도 날
콩닥콩닥, 두근두근, 마음을 설레게하는 영화 속 명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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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부산에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하나 원체 정보에 어두운데다 게으르기까지 한 필자는 올해도 역시 부산에 내려가지 못한 채, 각급 각종 영화인들이 전부 빠져나간 서울을 외로이 지키며 이렇게 늦은 밤 원고를 끼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
사실을 고백하자면 필자가 갔던 마지막 부산영화제는 지난 1999년, 그러니까 4회 부산영화제다. 그 당시의 부산영화제는 이제 막 대규모 영화제로 자리를 잡으려고 하던 참이었고, 그런, 뭐랄까 아직 노련치는 않은 패기 같은 것이 영화제 전체에 떠다니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필자는 그때 거의 철거 직전의 낡은 극장에서 흑백 다큐를 보던 일이 아직도 뚜렷이 기억난다. 스크린은 오래된 광목천 같은 누런색이었고, 극장 뒤쪽에서는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영화 사운드만큼이나 크게 들렸으며, 바닥에는 국제앰네스티 전단지와 영화제 프로그램이 적힌 리플릿, 그리고 쓰레기들이 라면다발마냥 뒤엉켜 있었다.
투덜군, 부산영화제에 대한 추억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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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발견의 순간에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수백편의 영화가 선보이는 곳에선 더욱 그렇다. 특별한 기대를 품지 않고 봤는데 가슴 떨리는 감흥을 주는 작품이라면 여행길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본 영화 가운데는 <경의선>이 그런 영화였다. 이윤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손님>, 김동현 감독의 <상어>,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등 널리 호평받은 한국영화들이 많아 영화제 관계자들이 특정한 영화 한편에 집중하는 일은 드물었던 영화제였지만 개인적으로 <경의선>은 아주 특별한 감흥을 줬다.
<경의선>을 만든 박흥식 감독은 평론가와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한 <역전의 명수>로 데뷔했다(<인어공주>의 박흥식 감독과 다른 동명이인). 찬반양론이 갈리는 영화였다면 덜했을 텐데 <역전의 명수>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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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yl Streep: 메릴 스트립
“미란다 프리슬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마나 마녀가 아니다. 나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모순되고 정의내리기 힘든 하나의 인간을 창조하는 데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원작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그저 냉혹한 악마의 캐리커처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화 속 미란다 프리슬리는 성공을 위해 버린 것들을 독한 마음속에 다잡은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 숨쉰다. 이는 시나리오작가 알린 브로시 매켄나의 능숙한 각색 덕이기도 하지만, 능숙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메릴 스트립의 능력이기도 하다. “메릴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코미디적인 잔혹함과 진실된 슬픔의 경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진다. 메릴이 지닌 엄청난 재능의 키포인트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섞는 절묘한 능력이다.”(데이비드 프랭클 감독)
Numbers: (출판) 기록들
2003년에 출간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6개월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A to Z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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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이 말하길 “패션은 하늘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다. 패션은 인간의 관념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상사다”. 그러나 동대문에서 건진 철 지난 추리닝을 입고 영화관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패션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반년마다 한번씩 바꾸어야만 하는 추악함의 한 형태”라던 오스카 와일드의 독설을 더욱 신뢰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 당신을 위해 ‘A부터 Z까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관람하기 위한 지식검색’을 준비했다. 이 정도면 샤넬과 프라다와 존 갈리아노를 걸친 악마들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는 충분하다.
Anna Wintour: 안나 윈투어
“미란다를 연기하기 위해 안나 윈투어에 대해 조사한 적은 없다”는 메릴 스트립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가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윈투어는 1970년 영국의 <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A to Z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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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안의 인민’의 외로움을 노래하다
<삼협호인>은 그 외로움이 스산하리만치 쓸쓸하게 영화 안에서 배어나오고 있다. 그것은 꼭 현대 중국을 살아가는 인민만의 외로움이 아니다. 그 감정은 모든 것이 달러로 환원되는 세계화 안에 살아가고 있는 ‘세계 안의 인민’의 외로움이다. 대낮에 UFO를 보는 것 같은 마술적 현실. 한산밍은 거의 말이 없다. 그는 맞을 때조차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셴홍은 권태로운 동작을 반복한다. 그때 그들 곁의 도시는 쉴새없이 부서져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건물을 부수고, 그들은 부서져가는 도시를 떠돈다. 그때 이 부서져가는 건물들은 한산밍의 부서져가는 마음, 혹은 셴홍의 이미 부서져버린 기다림처럼 보인다. 그때 이 부서져가는 건물들은 로셀리니의 <독일 영년>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건물을 부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부서져가는 건물 안에서 산다. 부수기 안에서 살아가기. 그때 같은 장면이 <동>과 <삼협호인>에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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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라고 노래하면서 나는 지아장커의 <삼협호인>(三峽好人, Still Life)(과 함께 찍은 다큐멘터리 <동>(東, Dong))이 보고 싶다고 간절하게 하소연하면서 글을 맺었다(<씨네21> 제572호, ‘그래, 지금은 가을이니까’). 그리고 기적이 찾아왔다. 갑자기 소원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 글은 ‘소원 성취한’ 속편이다. 나는 서울에서 그 두편의 영화를 보았고, 그런 다음 지아장커와 만났다.
솔직히 말하면 <세계>를 본 다음 나는 불안했다. 이 영화는 어딘가 부서져 있었다. 베이징에 있는 테마 파크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배신하고, 호소하고, 떠나간 다음,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유릭와이가 HD카메라로 찍은 2.35 사이즈의 시네마스코프 디지털 화면 위에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산만하게 진행되고, 결말은 음울하고 비관적이다. 지아장커는 세 번째 영화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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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지 마을에서 열리는 소박하지만 넉넉한 영화축제
아시아영화의 창 상영작 <아주 특별한 축제>
여기 한 영화감독이 있다. ‘영화는 창작자의 고통이 담긴 예술’이라고 굳게 믿는 그는 아직 자신의 영화를 대중 앞에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고향 마을에 머물고 있다. 그의 딱한 사정을 가엾게 여긴 친구는 “이곳에서 국제영화제를 열어 네 영화를 상영하자”고 제안한다. <아주 특별한 축제>는 보이는 건 사막과 산뿐인 인도의 오지 마을에서 영화제를 열면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사건들을 소박한 풍경과 넉넉한 웃음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인 미스는 후원자인 콜라회사 사장(그는 동성애자다)에게 말 그대로 몸을 바쳐가며 영화제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다. 하지만 미스처럼 후원자를 찾을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축제>의 감독 비주 비스나와스는 제작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그는 2001년 이 영화를 기획했지만, 발리우드 뮤지컬도 아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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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 휩싸인 현대 중국에 대한 냉정한 풍자
폐막작 <크레이지 스톤>
스물아홉살의 젊은 감독 닝하오는 <향> <몽골리안 핑퐁>으로 외국에 알려졌지만 중국 관객과 만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담담하고 침착한 시선을 지니고 있던 그가 할리우드영화처럼 잰걸음으로 달려가는 <크레이지 스톤>을 만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의 전작 두편은 다소 난해해서 관객이 극장에서 머리를 싸맸다. 이번엔 오락성에 치중하여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고 하여 <크레이지 스톤>이 지금까지 닝하오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린, 오직 관객만을 추구하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값비싼 비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크레이지 스톤>은 가짜 비취와 진짜 비취가 쉴새없이 뒤바뀌며 보석 전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가는 와중에도 변화와 혼돈에 휩싸인 현대 중국사회를 냉정하게 풍자하곤 한다. <크레이지 스톤>에서 한때 대의와 명분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