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시, 여행의 시간> 감독 론 하빌리오/이스라엘, 프랑스/246분/인디비전
지난 것은 모두 흔적을 남긴다. 떨쳐내기 어려운 악몽이 아니라면, 그 흔적은 끊임없이 되살아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곱씹는 것만으로 향수를 견뎌내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흔히 여행을 떠난다. 게으른 일상을 제쳐두고, 기억의 저장고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포토시, 여행의 시간>의 론 하빌리오 감독이 택한 장소는 29년 전 신혼여행을 떠났던 포토시다. 아내의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결혼식을 치른 뒤 두 사람은 안데스 산맥에 자리한 잉카 문명의 고도(古都) 포토시를 찾았다가 매력에 흠뻑 빠진다. 세 딸과 함께 30년을 거슬러 오르는 부부의 여행. 그러나 이들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시간에 의해 풍화되고 문명에 의해 침윤된 포토시일 뿐이다.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현상하는 흑백사진들과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영상을 반복해서 배치하는 식으로 여정을 소개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저 “누군가의 여행을 기록한 단순한 영상”이 아니다. 포토시에 들어서기 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터트리는 아내와 달리 고된 여행에 이미 지쳐 있는 딸들을 보라. 딸들에게 포토시는 곧바로 기억에서 지워낼 디지털 정보일 따름이다. “포토시의 흥망성쇠에 관한 많은 정보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은밀한 감정 작용을 비추는” 방식의 이 다큐멘터리는 포토시로의 여행을 거울 삼아 세대간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7년 동안의 제작기간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