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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을 만든 김병욱 감독은 요즈음 보기 힘든 대가족을 중심으로 시트콤을 만들어왔다. 시청률이 가파르게 상승해온 <거침없이 하이킥> 또한 조부모와 부모, 형제, 삼촌, 갓난조카에 이혼한 삼촌의 전처와 각종 친구들까지 가세하여 복잡다단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어떻게 그 많은 인물들이 1회당 한번씩이라도 등장하여 대사를 하는지 신비로울 지경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미스터리가 있다. 개성댁과 유미 아버지가 얽힌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과거와 관계에도 비밀이 있고 미스터리가 있어 <로스트> <위기의 주부들>마저 떠오른다.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 알 수가 없고, 살인사건은 해결되었나 싶더니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인 인물도 있다. 그런 질문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릭터를 탐구해보았다.
관록의 노부부, 승자는 누구인가
이
알쏭달쏭 미스터리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캐릭터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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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이세영 VS <장미빛 인생>의 맹순이
제1라운드: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여자는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기대게 마련이다. 그점에서 세영은 순이보다 든든한 원군을 등에 업고 있다. 비록 사고로 모든 가족을 잃었지만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세영을 지극히 아끼고 있고,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쯤 대수냐고 나무랄 시할머니는 치매를 앓는다.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세영의 남편(이재룡)과 그의 첫사랑 서경(성현아)을 갈라놓았다! 그러나 순이에겐 능력있고 성미 괄괄한 여동생 맹영이뿐이다. 바람기 많은 남편에게 평생 설움받았던 시어머니는 딱 한번 순이 편을 들어주는가 싶더니 남편 애인의 물량 공세에 넘어갔고, 시누이는 원래 순이를 싫어했다. 무주공산에 외로운 초생달 처지이니, 맹순이가 불쌍한 조강지처들의 제1라운드 승자다.
제2라운드: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반드시 이혼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일단 이혼한 다
[드라마 vs 드라마] 누가누가 불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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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다. 임창정·하지원 주연의 <1번가의 기적>이 2주 연속 흥행 정상을 고수했다. 서울 65개, 전국 334개 스크린에서 상영된 윤제균 감독의 <1번가의 기적>은 서울 43만 7617명, 전국 170만 658명(이하 배급사 집계)을 불러모으며 비수기 극장가를 평정했다. 코미디언 이경규가 제작한 <복면달호>도 선전하고 있다. 차태현·이소연 주연의 <복면달호>는 <1번가의 기적>과 함께 지난주 기세를 이어가며 2위를 차지했다. <복면달호>는 서울 54개, 전국 263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서울 26만 7370명, 전국 110만 9194명을 동원했다.
예매시장에서 <1번가의 기적>과 박빙의 간격을 유지하며 기대를 모았던 빌 콘돈 감독의 뮤지컬 영화 <드림걸즈>는 서울 11만 6171명, 전국 24만 1495명을 동원했다. <드림걸즈>는 두 영화의 절반에도 못
<1번가의 기적>, 극장가의 기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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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까지 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1, 2위를 다투는 상황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선택권 차원에서 볼 때, 불행을 넘어 ‘비참’한 생각까지 든다.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과 출신 배경이 모두 유신체제이고, 이들은 결국 누가 더 본질적으로 ‘박정희 원본’에 가까운지를 경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인이다. 그런데 지난 1월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논란 중에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이상한 내용이 있었다. 이명박씨가 박근혜씨를 두고,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수 있고, 고3을 4명 키워봐야 교육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박근혜 후보는 “그런 논리대로라면 군대 안 간 남자는 군 통수권자가 될 수 없다”며,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이 후보를 공격했다.
두 사람의 발언은 일종의 성별화(性別化)된 국민 성원권, 즉 시민권 논쟁이다. 아무나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당한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여자는 애를 낳아야 하고 남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아버지 날 낳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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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목소리> 시사회였다. 우연히 마주친 한 영화인은 “이동국, 영국으로 가서 서운하겠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그에게 “기회가 된다면 이동국 다큐를 찍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미들즈브러에 입단했고 ‘목욕탕에서 처음 만나 사인을 받고 축구를 결심하게 한 가장 존경하는 선배 황선홍’이 달던 18번을 배정받은 이동국의 사진을 보며 까닭없이 눈물이 났다. “항상 좋은 길만 걷다가 월드컵에 두 차례 못 뛰어 마음고생을 말할 수 없이 겪었다. 그러나 뛰지 못하는 시간 동안 꿈을 잃지 않고 ‘축구하면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에는 웃자는 생각으로 항상 준비했다”는 이동국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번졌다. 그는 그렇게 늘 운동장에 서 있었다.
공덕리 씨네리에 입사하기 전만 해도 난 그저 구경꾼이었다. 관중석에서 충무로라는 피치를 바라보며 욕을 하고, 화를 내고, 즐거워하고, 슬퍼했을 따름이다. 한국영화 리그에서 꽤 알려진 중계방송 씨네21은 내
[오픈칼럼] 마지막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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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에로영화를 자주 본다. ‘임에도 불구하고’란 말이 스스로도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난 성별과 에로 취향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믿는 에로티시스트다. 또 에로영화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어서 ‘노모’나 ‘엑기스’ 등을 키워드로 영화의 명장면(?)이 아니면 자위가 잘 되지 않는다. 에로영화를 보는 이유는 하나다. 외로워서. 하지만 외로울 때마다 보는 에로영화가 다른 정서를 자극할 때가 많다. 불쾌함이다. 에로영화를 만드는 대다수가 남성이기에 마초적인 시선으로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불쾌한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서 내게 남성 취향의 페티시즘이 ‘눈알’에 와서 박힌다는 데 있다.
<어린이 바이엘 상권>이란 단편영화가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절, 사춘기 초등학생의 성욕을 다룬 것이다.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한국 소년의 심정을 이해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봤다. 문제는 그 뒤부터다. 나는 반나절 동안 영화
[이창] 여자가 가져야 할 적절한 페티시즘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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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퀸>은 여느 36살 여인의 폭력적 죽음을 다룬 영화들보다 재미있다. 더구나 이번 시즌의 영어권 영화들 중 가장 이국적일 것이다. 피터 모건의 시나리오를 스티븐 프리어스가 감독한 <더 퀸>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치명적인 교통사고 이후로부터 영국 대중의 요구로 성사되는 국장까지, 정신적 충격을 겪는 왕가의 일주일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주제는 기계적 재생산의 시대에 남아 있는 군주제를 다룬다. 영화는 대담하게 셰익스피어(“주군은 동요하며…”)를 인용하고 1997년 ‘현대화’를 외치는 토니 블레어의 압도적인 승리에, 민주주의를 익살스럽게 비웃어대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무색게 만들고 시작한다.
새 총리(얼굴이 닮은 마이클 신)는 관습적인 여왕과의 만남을 가까스로 마치고 몇달 뒤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첫 내각의 위기를 맞이한다. 그는 사건의 영향을 이해하지만 여왕과 측근들은 그 소식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찰스, 끔찍한 일 아니니?” 엘리자베스는 아들에게 전 부
[영화읽기] 다큐와 드라마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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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미 시게히코는 허우샤오시엔과 오즈 야스지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쓰기를, 과거를 찍는 것을 거부하는 선대의 일본 영화감독과 달리 이 현재의 대만 영화감독은 현재 자체를 상실된 어떤 것으로 본다고 했다. 현재는 지각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과거의 침윤에 방비상태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컨대 이것이 다소 미묘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영화가 <카페 뤼미에르>(2005)라면, <호남호녀>(1995)는 그걸 좀더 명백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는 서로 철저히 분리된 구획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서로 젖어들면서 공존할 수도 있다는 시각. 허우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2005)는 어쩌면 그런 관념을 구조를 통해 재차 구현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이미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한 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쓰리 타임즈>는 그 시간적 배경이 각각 1966년, 1911년, 2005
[영화읽기] 추억, 역사, 현재를 이어가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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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과 만날 일 많은 설 연휴 끝에 <록키 발보아>를 보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정서적으로 순결한 나의 단 한 가지 단점인 나이차별주의를 반성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영화 때문에 세대간의 갈등과 증오가 더 커진다는 결론과 함께 ‘나이 들면 삐이이익(0000)’이라는 망언을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기게 됐다.
인생을 탕진하던 철없는 소녀에서 뼛속까지 고달픈 싱글맘이 된 리틀 마리는 말한다. “사람에게서 가장 늦게 나이가 드는 건 마음”이라고. 나도 느낀다. 아직도 금요일 밤이면 홍대 앞 클럽에서 밤새워 놀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고 빌보드보다 먼저 날스 바클리에 열광했다는 것에 므흣해하며 20대 캐주얼복 매장을 기웃거리는 내가 서른여섯살이라니,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나 어쩌겠나. 내 체력은 더이상 바이킹 타는 것도 받쳐주지 않고, 딱 붙는 티를 입으면 사정없이 밀려나오는 살로 주변 사람들
[투덜군 투덜양] 록키! 마지막엔 쫌 주책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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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에게 특권이 있다면 누구보다 빨리 해당 잡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인쇄된 책을 먼저 보는 건 제작담당자의 몫이지만 인쇄 직전 단계의 기사나 사진은 편집장의 검열을 거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편집장은 잡지의 첫 번째 독자로 비평적 코멘트를 하는 사람이다. 편집장에게 보람이 있다면 그렇게 가장 먼저 읽은 잡지가 무지 재미있다고 느낄 때다. 본분을 잊고 글 읽는 재미, 사진 보는 재미, 디자인 보는 재미에 빠져들 때마다 얼른 이 잡지를 세상에 선보이고 싶어진다. 물론 자뻑 분위기는 경계해야겠지만 어느 정도 자뻑하지 않고 잡지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할 게다. 충분치 못하다는 자책과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불안과 함께 피그말리온 이야기처럼 스스로 만든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한주 한주 자책과 불안과 사랑의 비중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12년간 매주 만드는 잡지도 그러한데 창간하는 잡지라면 오죽하랴. 자책과 불안과 사랑의 파장이 하루에도 수십번 극에서 극으
[편집장이 독자에게] 개봉박두! <팝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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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9월29일, 도쿄에선 패전국 일본의 전범 처리를 위한 극동국제군사법정이 열렸다. 미국, 영국, 중국, 소련, 호주, 인도 등 11개국의 판사가 맡은 이 특별재판은 2년6개월, 818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400여명의 증인과 4천여개의 증거를 동원해 동아시아를 짓밟은 일제의 잔학상을 증명했다. 도조 히데키, 도이하라 겐지, 이카가키 세이시로 등 28인의 A급 전범의 화려한 망언의 기록을 함께 남긴 유명한 전범 재판의 실화가, 중국 TV에서 <정복> 등의 인기 범죄드라마를 연출해온 고군서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 옮겨졌다. <동경심판>은 중국 대표인 메이루아오 판사(류송인)와 젊은 중국인 기자 샤오난(주효천)의 눈에 비친 법정과 도쿄 거리의 풍경을 그린다. 서구 열강에서 온 다른 판사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메이는 일제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분투한다. 도쿄 유학생 출신인 샤오난은 오랜만에 만난 일본인 친구들이 패전의 상처로 망가져가는 과정을 지
중국인을 위한 격정의 애국가 <동경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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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독점에 제동이 걸릴 것인가.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이 발의한 “멀티플렉스 독점 제한을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오늘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의 멀티플렉스 독점 제한은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장 영화인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한 사실이 과거와는 달라진 상황이다. 2월 26일 천영세 의원과 만난 영화제작가협회 차승재 회장은 “현재의 영화산업 위기는 복합적 원인에서 파생되는 진짜 위기”라면서 “스크린독점 제한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며 입법화가 된다면 대찬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작자 차원에서도 올해부터 영화 한 편당 400개 스크린 이상을 걸지 않도록 배급사 측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전국영화노조의 최진욱 위원장도 “영화현장을 지키는 스텝의 입장에서는 왜곡된 영화산업구조가 중요한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천영세 의원은 “이와 같은 영화관계자의 의견은
스크린 독점 제한, 국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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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최고의 인기듀오인 ‘팝’의 멤버였던 알렉스(휴 그랜트)는 21세기인 지금 젊은 오빠로서의 칭송만을 간직한 기억 속의 가수다. 아줌마가 된 팬들의 환호는 여전하고 달라붙는 가죽바지도 아직은 쓸 만한 뒤태를 선사하지만, 골반의 힘은 예전만큼 리드미컬하지 않다. 놀이공원이나 동창회 등의 행사가수로 불려다니던 그에게 어느 날, 인기 댄스가수인 코라 콜만이 듀엣을 제의해온다. 단, 알렉스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 작곡은 손뗀 지 오래고, 작사라곤 해본 적 없는 그에겐 기회이자 위기다. 작사에 골머리를 앓던 알렉스는 어느 날 화초에 물을 주러 오던 수다쟁이 아가씨 소피(드루 배리모어)에게 작사가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 그대로 “입만 열면 옥구슬”. 한때 작가지망생이었던 소피는 알렉스의 동업 제안에 머뭇거리지만, 이내 곧 두 사람은 각각 피아노와 노트를 손에 쥐고 한곡의 노래를 완성시킨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설정은 단순명쾌하
80년대 팝음악에 대한 재현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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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렉터는 어떤 유년기를 거쳐 육식동물로 성장했을까. 한니발은 이미 클라리스에게 살인마의 탄생 설화를 설명한 적이 있다. “폭력과 관계된 유년 시절의 정신적 장애를 찾아. 빌리는 살인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학대의 세월을 통해 살인마로 만들어진 거야.” <한니발 라이징>은 한니발의 대답에 대한 영화적 각주로서의 프리퀄이자, 악마의 유년기 트라우마를 분석하려는 뒤늦은 프로파일링이다. 때는 2차대전이 한창인 리투아니아. 소년 한니발과 여동생 미셸은 오두막에 숨어 있던 중 도주하던 독일군 패잔병에게 발각된다. 한겨울의 오두막에 갇혀버린 패잔병들은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결국 한니발의 여동생을 잡아먹고, 살아남은 한니발(가스파르 울리엘)은 삼촌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탈출한다. 불행히도 삼촌은 이미 저세상으로 갔지만 숙모 ‘레이디 무라사키’(공리)가 한니발을 거둬들인다. 무라사키에게서 사무라이 법도와 검술을 익히며 의대에 진학한 한니발은 여동생을 소화시킨 위장의 장본인들을
악마의 유년기 트라우마 분석 <한니발 라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