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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후보 리스트가 공개되기도 훨씬 훨씬 전인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더 퀸>이 개봉할 때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의 핵심”인 헬렌 미렌이 “오스카 후보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고 장담했다. “(그가 하는 연기는) 그의 캐릭터가 화면 밖에서도 계속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다큐드라마를 볼 때처럼. 말해지지 않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설명되지 않는 것들 위로 노련한 연기를 이루었다.” 그보다 한달 전인 9월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는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작가 피터 모건, 토니 블레어 역의 마이클 신에 이어 엘리자베스 2세 역의 헬렌 미렌이 소개되자 기다렸다는 듯 기자석이 환호하더니 뜨겁게 박수를 쳤다. 진심과 감동에서 우러난 갈채는 2분간이나 이어졌다. 이튿날 저녁 공식시사 때 터진 5분의 기립박수도 현존하는 여왕을 그 혼까지 조각해내는 듯했던 여배우의 연기에 향해 있었다. 1997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장례
연기상을 휩쓴 카리스마의 여왕, 여배우 헬렌 미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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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의 아들 역 제이든 스미스가 말하는 배우 윌 스미스, 그리고 아빠
아들: 제이든 스미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제이든 스미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이든 크리스토퍼 사이어 스미스입니다. 너무 어렵다고요? 그럼 그냥 제이든이라고 부르세요. 저는 올해로 8살이 됐어요. 근데 제가 누구냐고요? 우선, 우리 아빠는 윌 스미스입니다. 아빠랑 저는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에 함께 출연했어요. 그러니까, 음, 저는 제이든이라는 ‘배우’입니다. (웃음) 쉿, 근데 말이죠, 연기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걸까요? 영화 속에서 아빠랑 저는 정말 아빠랑 아들로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냥 평소처럼 행동했는데, 아빠는 저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다녀요. 제가 아빠를 콕 찌르는 불꽃(spark) 같았다나요.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 하루 종일 아빠랑 함께 있는 건 정말 좋았어요. 아, 우리 아빠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고요? 에헴, 저한
아들아 네가 도전이자 영감이었다, <행복을 찾아서>의 윌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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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동그란 음표를 연주하듯 맑고 경쾌한 리듬이 입가에 감돈다. 순정 만화에서 톡 튀어나온 듯한 이름이지만, 가는 펜으로 조심스레 그려낸 듯한 유아인의 외모는 사실 동화적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소녀들의 마음을 꼭 사로잡았던 ‘얼짱 고딩’은 곧 그에게서 예쁜 아이돌 이상의 가능성을 읽어낸 사람들을 만났다. 노동석 감독은 “외모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인 내면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정윤철 감독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광적인 느낌까지 변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고 유아인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향해 총을 겨누는 종대(<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여과되지 않은 감정을 거칠게 내뱉는 용태(<좋지 아니한가>)를 거치며 마냥 곱던 소년은 이제 바람 같은 청춘의 옷을 입었다. 흘러갈 방향을 탐색하며 자유로이 여행 중인 그 푸른 바람을 찾아줄 7개의 나침반을 놓아봤다. 붙잡을 수는 없지만, 느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테니
내일로 가는 일곱 빛깔 청춘, <좋지 아니한가>의 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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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로서의 역사가 아닌 한 시기, 그러니까 <송환>의 완성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평가해보면 역사가 항상 진보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남과 북의 수반이 만나 손을 잡고,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녘으로 떠난 뒤 6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오래전 분단을 획책한 세력이 여전히 통일을 가로막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하지만 <송환>을 다시 보는 건 단지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원수로 삼는 미국을 똑바로 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송환>은 신념을 위해 30년 넘는 세월을 0.75평 감옥에서 보낸 장기수들을 무기력한 혁명가나 고집불통 늙은이가 아닌, 존재 자체로 통일운동의 희망과 힘을 주는 사람으로 그린 작품이다. 더불어, 꼭 그런 뜻이 아니어도 좋다. 필자는 ‘젊은 시절의 열정을 지켜낸 자가 성취한 특별한 삶’과 ‘노동의 숭고함’ 같은 보편적인 메시지를 <송환>보다 사무치게 전달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김동원의 다큐멘터리는 지적이고 전
다큐멘터리스트의 의로운 작업, 4900만 관객을 기다린다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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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는 1940년 전후의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끈질기게 악의 근원을 찾아낸다. 그는 간혹 그것과 만화적 상상력을 결합하기도 하지만,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에 이르러 프랑코 독재 시기를 통과하는 소녀에게서 선과 악의 대결과 순수의 파괴를 그려내며 <악마의 등뼈>를 넘어 빅토르 에리세와 카를로스 사우라의 작업에 근접한다(델 토로는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망명한 영화인과 교류했고, 스페인 내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더군다나 <벌집의 정령>과 <까마귀 키우기>가 시대를 은유했던 것과 달리 <판의 미로…>는 피와 고통이 난무하는 현실과 직접적으로 대면한다. 소녀가 떠난 방에 분필 자국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소녀가 넘나든 세계는 존재하는 곳이 아닌 상상 속의 위안처일 뿐이고, 판타지가 흘린 피가 다시 현실을 물들게 한 결과, 두려움, 사랑, 애정 같은 순수함의 상징조차 탈출구로 기능하지
고통의 현실에서 피어난 소녀의 상상, <판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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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 특별판> 1991년 /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 96분 / 1.66:1 아나모픽 / DD 2.0 폴란드어 & 프랑스어 / 한글, 영어 자막 / 태원엔터테인먼트(2장)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990년대가 보여줄 변화의 시작이었다. 과거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느끼고 극영화로 옮겨오면서 카메라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이끌렸던 그는 이제 환상적이고 시적인 양식으로 존재의 수수께끼 같은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프랑스와 폴란드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얼굴로 태어난 베로니크와 베로니카의 엇갈리고 교차되는 삶을 그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로 키에슬로프스키를 처음 만난 필자는 영화를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써야 했다. 이미 그가 가고 없는 지금,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DVD에 감독의 음성해설이 들어 있을 리 없다. 대신 여기엔 영화 제작 당시 그와 나눈 대화(53분)가 수록되
[서플먼트] 키에슬로프스키 생전의 영화철학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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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 창간은 미친 짓이다?
잡지의 꿈 버리지 못하는 어느 잡지쟁이의 고백
만화전문 출판사인 ‘거북이북스’ 간판을 세운 지 이제 20개월째다. 21년 전 <보물섬> 기자로 만화동네에 들어와 아직도 버티고 있다. 새로운 만화책을 만든다는 재미와 고통에 여전히 빠져 있다. 최근엔 키워드 무크지 2호인 <에로틱>도 출간했다. 한 지붕 열다섯 작가의 은밀한 상상을 보자는 거다. 아직도 내게 잡지의 꿈이 남아 있는 걸까? 매거진과 북의 타협점인 무크(mook)지를 발간하고 있으니까.
이 바쁜 와중에 만화잡지의 창간 소식을 들린다. 창간이라니! 내게 있어 ‘창간’은 늘 가슴이 벌렁벌렁거릴 만큼 특별한 의미이자 환상이다. 궁금증이 도발한다. <씨네21>에서 왜? 컨셉은? 작가진은? 독자 타깃은? 판형은? 제호는? 심지어, 용지는 뭘 쓸까?
만화잡지를 만드는 일에는 구조적인 아픔이 있다. 일단 큰 수익을 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누부시게 변화
만화잡지 편집장들이 말하는 만화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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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참 많은 만화잡지들이 있었다.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캐릭터들이 가득했던 <보물섬>, 수많은 순정만화작가들을 발굴하고 키워냈던 <르네상스>, <드래곤 볼> <원피스> 등 일본 만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소년 챔프>와 <아이큐 점프>, 언더 혹은 인디만화로 일컬어지는 젊은 작가주의 만화의 <화끈> <네모라미> 등…. 청소년 유해매체라는 낙인찍기와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서의 지원책이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면서 만화라는 매체를 쥐락펴락할 때 만화잡지들도 흥망을 반복했고, 인터넷과 휴대폰으로도 만화를 보는 시대에 만화잡지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만화잡지는 각각의 취향이 나름 분명한 만화독자들을 위한 최선의 매체 중 하나이다. 여기 그간 한국의 만화잡지들이 걸어온 굴곡의 시절을 돌아보고, 만화잡지를 만
만화잡지여, 영원히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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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공포> 파스칼 키냐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섹스 토킹> 앙드레 브르통, 만 레이 외 지음/ 싸이북스 펴냄
섹스에 대한 두편의 논픽션이 출간되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섹스와 공포>는 로마로 거슬러 올라가 섹스를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해석, 에이즈로 인해 섹스가 공포와 맞닿아 있는 현대인의 태도의 뿌리를 로마시대에서 찾는다. <섹스 토킹>은 앙드레 브르통과 만 레이를 위시한 초현실주의 그룹의 40명이 12회에 걸쳐 섹스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일종의 대담집이다. 전자는 섹스가 공포와 저주로 변하기 시작한 로마시대에 대한 일종의 주석서와 같은 구실을 하며, 후자는 해설이 아닌 섹스라는 행위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이다.
“욕망은 매혹한다. 파스키누스(fascinus)란 음경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돌이 하나 있다. 돌에는 음경이 거칠게 조각되어 있고,
섹스? 하거나 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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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1편이 제작될 당시에 주연이자 각본을 쓴 실베스터 스탤론도 무명이었지만 음악을 맡았던 빌 콘티도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이탈리아 혼혈의 서른살 무명 복서가 세계 챔피언과 시합을 벌인다는 비장한 이야기를 위해 그가 작곡한 메인 테마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관객의 입에서 흥얼거리는 명테마로 남았다. 두 마디만 불러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록키>의 테마는 그러나 2편까지만 사용됐다. 3편과 4편에는 팝그룹 서바이버가 부른 <Eye of the Tiger>가 메인 테마 역할을 했고, 록키가 권투 글러브를 끼지 않은 5편에서는 이런저런 노래들이 테마 자리에 있었으나 딱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없었다.
아무래도 가장 ‘록키’답다고 할 수 있는 테마는 1, 2편의 <Gonna Fly Now>다. 상승조의 멜로디에 록과 클래식을 힘차게 결합시킨 이 테마는 듣는 이의 가슴을 이유없이 뜨겁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이제 와 다시
이제 달릴 시간이다, <록키 발보아: The Best of Rocky>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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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3월3일(토) MBC 밤 12시40분
1968년 일본 교토, 히가시고와 조선고의 혈기왕성한 청춘들은 연일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다. 재일조선인들을 대놓고 조롱하는 일본 학생들에게 “이것이 박치기야!”라며 냅다 머리를 날리고, 버스를 통째로 뒤집어버리는 다혈질 고교생 리안성으로 등장하는 것은 다카오카 소스케. 원래 프로야구 선수를 지망했다는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제임스 딘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엉뚱하게도 제임스 딘과 자신의 생일이 같다는 사실에서 ‘운명’을 느꼈다는 그는 열일곱 되던 해 드라마 <천국의 키스>로 데뷔했고, 2000년 <배틀로얄>의 순정파 고등학생 스기무라로 등장하며 얼굴을 알렸다. 이듬해 <우울한 청춘>에서 마쓰다 류헤이, 아라이 히로후미 등과 패를 이루어 연기력을 인정받은 다카오카는 <박치기!>를 통해 대중적인 사랑을 선사받았다. 지난해 <박치기!>
[앗! 당신] 청춘의 향기, 다카오카 소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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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3월3일(토) 밤 11시
우리에게 <안녕, 나의 집!>으로 잘 알려진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과 함께 옛 소련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이다. 그는 노골적인 발언이나 비판 대신 풍자와 유머를 통해 현실에 대한 근심을 시적으로 표현해왔다.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은 무심하지만 반사회적이고 그들의 일상은 무료하면서도 부조리하다. 그래서 계몽적이거나 긍정적인 메시지와 거리가 먼 그의 영화들, 특히 <낙엽>(1968), <옛날에 종달새가 살았다>(1970)와 같은 영화들은 자국 내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곤 했다. 80년대 초 프랑스로 망명한 뒤 만든 <달의 애인들>(1984)은 이오셀리아니만의 색채가 여전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익하다. 일관된 내러티브를 떠올리기에 인물들은 너무 많고 시공간은 분산되고 사건 또한 파편적이다. <달의 애인들
판타지와 사실주의의 즉흥연주 <달의 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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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 놀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드림걸즈>의 주인공은 제니퍼 허드슨이다. 등장 횟수와 갈아입고 나오는 의상 수로 따지자면야 비욘세 놀스가 <드림걸즈>의 여신임은 당연한 일. 그러나 에피 역의 허드슨이 그룹에서 쫓겨나며 <And I’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부르는 순간 전세는 역전되었다. 허드슨은 관객의 갈채와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가져갔고 오스카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약간 과체중의 생짜 신인이 스포트라이트를 앗아가는 과정을 지켜본 비욘세의 기분은 어떨까. “제가 연기할 캐릭터가 스타가 아니라는 사실쯤 알고 있었어요. 저는 이미 스타잖아요? 이미 그래미상을 9개나 받았어요. 세상 모든 사람은 제가 노래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한 20파운드쯤 살을 더 찌워서 에피 역을 맡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죠.” 인터뷰의 행간이 조금 삐딱하다. <배니티 페어> 표지에서 제니
여신도 질투한 뜨거운 목소리, <드림걸즈>의 제니퍼 허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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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대학원장, 오후에는 영화사 대표. 지난 3년간 동국대학교 영화과 교수를 역임했던 차 대표는 3월부터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장을 맡게 됐다. 최근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으로 선출된 차 대표는 "아직 너무 빠르고 내가 맡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참 쑥스러운데 '강의가 줄어 오히려 외부활동을 하는 데는 낫지 않을까'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제협회장, 영화사 대표, 대학원장이라는 세 자리를 겸직하게 된 차대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영화제작에 대한 집중력 분산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년에도 교수직을 겸했지만 싸이더스FNH는 13편의 영화를 개봉시켰고, 그는 제협의 교섭단장을 맡아 2주에 한번씩 영화노조측과 단체협상을 수행했다.
차 대표에 따르면 올해도 싸이더스FNH는 “황석영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필감성 감독의 <무기의 그늘>, 이승무 감독의 시대극 <자객>, 김용균 감독의 액션멜로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정영아 감독
싸이더스FNH 차승재 대표, 동국대 영상대학원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