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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는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다. 포르말린 용액 속에 담긴 상어나 전기 충격기로 돌진하는 파리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현대 미술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허스트 작품의 핵심은 전위적이고 충격적인 오브제가 아니라, 그 오브제가 담은 철학과 의미다. 즉 허스트의 등장은 ‘사물보다 작가의 의도가 우선한다’는 개념미술이 미술계의 강력한 트렌드로 떠올랐음을 증거한다.
마이클 크레그 마틴은 오늘날의 데미안 허스트를 있게 한 스승이자 선구자다. 그는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허스트와 그의 동료들, 즉 YBA(Young British Artist: 젊은 영국의 예술가)그룹을 세계적인 아티스트 집단으로 키웠다. 마틴은 영국 개념미술의 1세대 주자지만, 허스트를 포함한 이후 세대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의 작품은 한층 일상적이고도 화려하다. 사물을 깔끔하게 단순화하는데다 강렬한 원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마틴의 세계에서 평범한 샌들은 핫핑크색을 덧입고 터키시
[전시] 데미안 허스트를 키운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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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표현주의 미술 작품으로 유명한 독일 화랑 디 갤러리가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열었다. 아시아에 분점을 내는 건 한국이 최초다. 디 갤러리는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전위예술가집단 코브라(CoBrA) 그룹의 작품과 초현실주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기획하고 소개해왔다. 전시물의 컨셉과 선정 의도가 뚜렷한 화랑인 만큼 국내 갤러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동시대 유럽 미술의 한 경향을 꾸준히 살펴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 갤러리는 서울점 개관을 기념해 독일 본점과 교류전을 연다. ‘독일조형미술전’이란 타이틀의 이번 전시회는(본점에서는 동시에 <한국조형미술전>이 열린다) 독일 작가 16명의 작품 30여점을 소개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마커스 루퍼츠와 같은 세계적인 독일 거장의 작품과 현재 유럽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에크하르트 크레머 등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표현주의’란 사조 아래 얼마나 다양한 표현방식들이 공존하느냐다.
[전시] 독일의 거장들이 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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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미 대중음악의 새로운 흐름이라면 신시사이저를 앞세운 싱어송라이터들과 걸파워의 대두일 것이다. 라 룩스, 리틀 부츠, 레이디호크, 프랭크뮤직 등 신시사이저에 기반한 싱어송라이터들이 치고 올라오는 한편, 인디 록밴드부터 메인스트림의 팝가수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이름부터 퀸의 히트곡 <Radio Ga-Ga>에서 따온 레이디 가가는 이 새로운 댄스뮤직 흐름에서 메인스트림쪽 변화에 해당하며, 새해 벽두부터 위세도 당당하게 싱글 <Just Dance>와 <Poker Face>가 미국과 호주, 유럽 차트를 점령했다.
마이클 잭슨과 신디 로퍼를 들으며 자란 뉴욕 출신의 레이디 가가는 그러나 데뷔앨범에서 80년대 음악에 대한 남다른 해석보다는 여러 전형들을 환기시킬 뿐이다. 80년대 음악을 바탕에 깔고, 비트에선 90년대 초 전세계를 유로팝 일색으로 물들였던 에이스 오브 베이스를, 그리고 다분히 캠피(campy)한 패션과 공
[음반] 차세대 일렉트로 팝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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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목록 보다가 숨 넘어갈 지수 ★★★★★
미국 이해도 상승 지수 ★★★★
“모타운을 이해하면 미국도 이해할 수 있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회장이자 대표적인 흑인 지식인인 줄리언 본드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모타운은 미국 대중문화를 정의한 어떤 축이자 기준이다.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모타운을 기념하는 작업들이 각별한 건 그 때문이다. 심지어 2009년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취임한 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드라마 같은 설정이 현실로 이뤄진 감탄과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특히 흑인시민권, 그러니까 흑인의 참정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1950년대의 미국에서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 마침내 백인들의 지지와 돈을 끌어모은 모타운으로서는 그 감회가 특별했을 것이다. ‘모타운이 곧 미국’이라는 수식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모타운 50주년 기념 앨범은 지난 반세기 동안 모타운이 탄생시킨
[음반] 흑인음악 50년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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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폴 요원 루이 샐린저(클라이브 오언)는 국제적인 범죄와 전쟁의 배후세력인 은행 IBBC를 추적하고 있다. IBBC의 간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빼내려던 동료가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그 간부마저 사망하자 샐린저는 뉴욕 검사 엘레노어 휘트먼(나오미 왓츠)과 함께 공격적으로 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IBBC는 각국 정부의 비호 아래 범죄의 흔적을 지우고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압력을 행사한다. 샐린저와 휘트먼은 IBBC의 명운이 걸린 무기 거래를 가로막음으로써 은행을 파산시키려 하고 IBBC는 강력하게 저항한다.
“은행이 미사일 유도장치를 사는 이유가 뭐요?” 초반부, 인터폴 요원이 IBBC 간부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 영화의 화두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개막작 <인터내셔널>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은행과 미사일 유도장치 사이의 밀접한 관계, 그러니까 금융과 구조화된 폭력의 일체성을 폭로하는 영화다. 은행이 미사일 유도장치를 사는 이유는 미사일을 샀기 때문이다. 은
현대 금융사업의 ‘보이지 않는 폭력’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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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도쿄. 시립병원 응급센터에 한 환자가 실려온다. 의사인 마츠오카 츠요시(쓰마부키 사토시)는 단순한 감기라 판단하고 간단한 조제약을 주고 보낸다. 하지만 다음날 환자는 고열과 출혈 증세를 보이며 다시 실려오고 급기야 사망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환자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이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일본 후생성은 이 질병을 신형 인플루엔자라 진단한다. 감염의 확산이 심각해지면서 WHO의 메디컬 담당자인 코바야시 에이코(단 레이)가 도쿄로 파견되고, 병원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힘을 모아 질병에 맞서 싸운다.
일본 재앙 블록버스터에는 항상 두 가지 테마가 보인다. 언젠가 일본 열도 전체가 파멸될 거란 공포심과 그 안에서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이 안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기도 하고 연인을 잃은 자의 후회와 슬픔이 묻어나기도 한다. <블레임: 인류멸망 2011>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미확인 바이러스로 일본 전체가 무너져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블레임: 인류멸망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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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 전쟁 당시 일본군의 강제적인 위안 행위를 입증해주는 정부의 공식 문서가 1992년 일본에서 발견된다. 시민단체들은 ‘위안부 110번’이라는 연락망을 만들어 피해 사례를 모으던 중, 송신도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다. 전쟁 당시 조선에서 중국으로 끌려갔던 송신도 할머니는 그 뒤 일본에 남아 살고 있다.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자, 그녀를 지지하는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모임)이 결성된다. 그 뒤 할머니와 지원모임은 힘을 모아 10여년간이나 재판을 이어간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10년간의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일본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재판에 지고 만 송신도 할머니가 “그래도 마음으로는 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서 빌려왔다. 영화는 송신도 할머니가 왜 이 싸움에서 결코 질 수 없는 사람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송신도 할머니는 거칠다. 처음에는 자기
재판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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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망나니’ 아들의 갱생기. 엄마의 금고에서 훔친 돈으로 밤문화를 즐기던 정환(최성국)은 어느 날, 딱 걸린다.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엄마가 아들에게 선고한 처벌은 직접 택시를 몰아 돈을 벌라는 것. 물론 운전대를 잡은 정환이 제대로 일을 할 리는 없다. 근무태만은 물론이고 승차거부도 모자라 택시를 담보로 사채까지 쓰던 정환은 어느 날 택시비 대신 반지를 담보로 맡기겠다는 은지(이영은)를 만난다. 며칠 뒤, 택시비 정산차 다시 만난 두 사람. 그 사이 반지를 잃어버린 정환은 하는 수 없이 은지의 몇 가지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구세주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나를 구원한 그가 결국에는 나로 인해 구원받는 이야기다. 기본적인 틀거리는 같지만, 색깔은 달라졌다. 1편이 <가문의 위기>를 연상시키는 가족주의 조폭코미디였다면, 2편은 <파이란>의 정서에 기댄다. 물론 이 말 자체가 농담처럼 들릴지 모른다. <구세주2>는 아
몇 가지 개그 늘어놓기 <구세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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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식당, 정말 고마웠습니다.”
지난주, 회사로 온 편지 한통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며 알게 된 20대 중반의 여자후배였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편지의 발신지는 남쪽 지방의 도시였다. 함께 동봉한 책에는 올해 신춘문예에 입상한 자신의 희곡 작품도 실려 있었다. 한데 카모메식당이라니…. 편지를 읽으며 과거를 더듬자 새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다. 내가 그 영화를 보라 했었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07년 12월의 어느 토요일, 한 대형서점에서였다. 책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해서 3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뭔가 서성이는 느낌이었다. 낮 12시경이었는데, 오후에 뭐할 거냐고 묻자 머뭇거렸다. 뚜렷한 스케줄이 없다고 했다. 나는 “혼자 처량하겠지만, 심심하면 극장에 가서 영화나 보라”고 반농담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식당>이 재미있다고
[에디토리얼] 예측불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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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히어로’처럼 보인다.
따뜻한 손길로 20세기 한국 현대사와 종교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김 추기경의 선종 3일째인 2월18일,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 일대는 조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월19일까지 그 수가 10만명에 이르렀다. 이 구름 같은 추모인파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사회적 약자는 무자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정부의 손길은 따뜻하기는커녕 잔인하다. 용산 참사는 그 상징적 사건이다.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희망은 희미해져만 간다. 야당도 불신의 도마에 오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더욱 간절하게 추기경이 그리운지도 모른다.
[shoot] 그가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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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일이다. 친구 하나가 이상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빠 친구가 인형을 준다고 해서 아저씨 집으로 따라갔는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문을 쾅쾅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더니 자기를 끌고 나왔다는 거다.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아저씨’라고 엄마가 설명했다는데, 나쁜 짓이 뭐냐고 물었더니 “나쁜 짓이라면 나쁜 짓인 줄 알아!”라고 윽박지르더라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놓친 인형을 아까워했다. 그 사건의 의미를 깨달은 건 고등학교에 가서였다.
이혜진, 우예슬양 사건의 범인은 검거된 직후, 귀엽다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아이들이 반항해 죽였다고 했다. 범인의 집은 높은 언덕에 있는 데다가 계단도 가팔라 아이를 둘이나 ‘강제로’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범인이 “강아지가 아픈데 돌봐주겠니?”라고 아이들을 유인했다고 실토했다. 강아지를 핑계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건 유괴범과 아동 성범죄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 아이가 무엇을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나쁜 아저씨에 대항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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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의 시작인 월요일 밤부터 난 남몰래 갈등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재석과 멋진 여자 김원희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볼 것이냐, 강호동과 그의 친구들은 물론 완전 소중한 아저씨 최양락의 합류로 시작된 <야심만만2>를 볼 것이냐. 뭔 같지도 않은 고민이라고들 비웃겠지만 난 그렇다.
그뿐이 아니다. 좀 시들해지긴 했으나 화요일엔 <상상플러스>를 수요일엔 알토란 같은 재미의 <황금어장>을 목요일엔 편하고 사랑스러운 <해피투게더>를 꼭꼭 챙겨본다. 웃겨주는 프로그램 보기가 취미이며 그것들을 되도록이면 실시간으로 봐야만 찜찜하지 않을 정도의 마니아다. 얼마 전까지도 좋아하는 프로그램 본방 사수를 위해 주말엔 외출을 삼갔을 정도니 어디 가서 자랑 삼긴 참 부끄러운 취미를 가진 셈이다. 아침잠을 포기하더라도 일요일 오전 9시에 성당을 다녀오는 이유는 3개 방송사의 저녁 오락 프로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의 거침없는 수다판 &
[나의 길티플레저] ‘텔레걸’은 곗돈을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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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같은 업무가 주를 이루는 온라인팀에 최근 신나는 일이 생겼다. Cine21 Japan 사이트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cine21.co.jp라는 도메인으로 오는 4월1일 오픈을 앞둔 cine21 Japan은, 영화를 중심으로 드라마·쇼·오락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한국 대중문화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할 예정이다. 1년여 넘게 준비기간을 가져오던 이 프로젝트가 전격적으로 성사되면서 온라인팀은 무척 들떠 있다. 왜일까?
첫째, 우리는 사이트 만들기를 좋아한다
영화 좋아하고 <씨네21> 좋아해서 모인 온라인팀이지만, 우리의 업무 수행 DNA를 반분하는 특성은 인터넷, 그리고 웹사이트다. 돈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사이트를 끝없이 만들고 바꾸고 개선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cine21 Japan 사이트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본능 충족의 호재다.
둘째, 돈을 벌고 싶다
플래시 동영상 사이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엠앤캐스트(mncast.com)가
[오픈칼럼] 야호! Cine21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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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위해 마시고, 기념하기 위해 마신다. 스스로를 치하하려 마시고, 벌하려고 마신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마시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마신다. 우리는 수천의 핑계를 싸들고 술에 투항한다. 그림 속 남자는 혼자다. 어쩌면 친구들과 어울린 거나한 술자리를 파한 뒤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한병의 마개를 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독대했던 술병마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남자는 마침내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알코올은 육신을 마비시키고 의식을 펌프질한다는 속설을 확인하듯, 사내는 몸뚱이가 없고 머리만 있다. 주름이 고랑을 판 이마, 수염 그루터기가 까칠한 턱, 그의 얼굴에는 입이 없다. 커다랗게 열린 외눈만이 징그럽도록 부릅뜬 의식을 증명한다. 남자는, 화가다. 갓도 없이 늘어진 백열전구가 초라한 붓 한 자루와 그보다 더 미력해 보이는 책에 빛을 떨구고 있다. 필립 거스톤의 <머리와 술병>은, 그가 사랑했다는 화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작품과 더불어, 내가 아는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외설적인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