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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만화를 보기 전 절대 식사를 하지 마시오! 경고문을 보고 <차이니즈 봉봉클럽>이 구토를 유발할 만큼 엽기적이고 잔인한 만화라고 오해를 할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만화를 보기 전 식사를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이 만화를 보고 또 식욕이 동해 과식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차이니즈 봉봉클럽>은 아무리 포만감에 가득 차 만화를 보더라도 책장을 덮는 순간 강렬한 허기를 느낄 수밖에 없게 하는 무시무시한 음식만화다.
편의점 삼각김밥에서조차 맛의 ‘오의’를 찾는 식도락 여고생 은영은 우연한 기회에 ‘차이니즈 봉봉클럽’이라는 정체불명의 서클에 가입한다. 이 서클은 전국 273개 초중고등학교에 지부를 갖고 있으며 전국의 유명한 중국집을 찾아 식도락을 즐기는 비밀클럽이다. 은영이 가입한 청송고등학교의 클럽 멤버들은 자장면 비빌 때 나는 소리에 황홀경을 느낄 정도로 진정한 중화요리 마니아들. 덮밥류의 전문가이며 초밥왕 쇼타를 똑 닮은 쇼타, 밀가루 음식의 전문가이
넌 이미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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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놓기가 정말 힘든 책이다. 468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도, 법정스릴러다운 차가운 속도감에, 결함이 많아 인간적인 캐릭터, 빈 곳 없이 채워진 꼼꼼한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주인공 마이클 할러는 정의와 도덕은 다르며, 죄의 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수임료 지불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력 15년의 닳고 닳은 형사변호사다. 사무실처럼 쓰는 링컨 리무진 뒷좌석에서 여느 때와 같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줄기차게 돈을 댈 수 있는 이른바 ‘대박 고객’을 만난다. 의뢰인 루이스 룰레는 강간 미수, 신체 상해로 기소됐는데 할러는 룰레를 만나는 순간 그가 기다려온 무고한 의뢰인일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변호를 준비하는 동안, 2년 전 의뢰인의 무죄 주장에도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받자고 유도한 지저스 사건과 룰레의 사건에서 유사함을 발견하고 두 사건의 진짜 범인은 룰레임을 깨닫는다. 심지어 룰레는 할러가 지저스의 변호사였단 사실을 알고 고약하게도 일부러 그를 고용했던 것. 너무
묵직하면서도 꼼꼼한 법정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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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몽타주>와 <박찬욱의 오마주>, 그리고 <김지운의 숏컷>으로부터 이어지는 마음산책의 세 번째 감독 에세이집이다. 앞서 두 감독과 영화적으로도 끈끈한 동지고, 그들 못지않게 영화광의 왕성한 식탐을 자랑하는 그이기에 <류승완의 본색> 역시 잡다하고 맛깔나는 영화의 성찬이다. 머리말에서 “성격이 산만하니 글도 산만할 것”이라는 귀여운 경고로 시작하더니 <배틀 로얄> <록키 발보아> <지옥의 영웅들> <칠검> 등 인상적으로 본 영화들의 영화평과 더불어 당시 영화월간지 <키노>에 실렸던 ‘액션 명장면 베스트10’과 이대근과 박노식 등 노액션배우들에 대한 예찬론까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한다. 폐간하는 <키노>를 생각하며 쓴 ‘굿바이 키노’라는 글에서는 한때 영화잡지 기자를 꿈꾸기도 했던 그의 담담한 소회가 묻어나고, ‘버스터 키튼’이라는 글에서는 자신의 존재와 비전에 대한 조
류승완이 말하는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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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드라마. 가족과 연애를 소재로 한 통속적이고 감상적인 극. 제목부터 용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연극 <멜로드라마>는 그야말로 지독하게 통속적이고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통속에도 격이 있다면, 이 연극은 한결 격조 높은 통속극일 듯. 손 대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관계를 설정해 잘못된 이끌림의 강렬함을 다루고 있지만, 그 절실하고도 솔직한 어투가 어느새 마음을 건드린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10년차 부부 김찬일과 강유경. 그들이 엇갈린 사랑에 빠져드는 상대는 바로 오누이인 박미현과 박재현이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것도 모자라 경계성 지능 장애를 앓게 된 미현과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재현. 재현은 자신에게 심장을 제공한 남자의 여동생 안소이와 약혼까지 한 상태다. 부부, 오누이, 어쩌면 피와 심장으로 이어진 약혼. 그럼에도 자신의 사랑을 이루길 갈망하는 다섯 남녀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른다. 3년 만에 연극 무대에
지독히 통속적이라 매력적인 멜로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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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키즈 온 더 블록이 지난달 새롭게 결성해서 출시한 싱글 ≪Summertime≫을 들으며 탄식을 아니할 수 없었다. 늙어서 주책이지. 어떤 스타들은 캘리포니아의 저택에 숨어서 과거의 영광만 평생 빨고 사는 편이 현명하다. 특히 한물간 아이돌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티파니, 데비 깁슨, 마티카, 뉴 키즈 온 더 블록…. 80년대 팝계의 아이돌이 지금의 팝계에 발붙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은 한때의 청춘을 위한 한때의 아이돌일 따름이다(이렇게 말하면 30, 40대 팬들이 분노를 토하겠지만. 그래도 좀 솔직해집시다. 당신들도 뉴 키즈 온 더 블록 새 싱글을 살 생각은 없잖수?). 그래도 과거의 영광을 회고하고 싶다면 차라리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새로운 싱글과 거의 동시에 발매한 베스트 앨범 ≪New Kids On The Block Greatest Hits≫ 같은 게 딱이다. 다시 들어보니 <Please Don’t Go Girl> 같은 틴에이저 러브송들은 간지러워서 못 들어
80년대 팝계의 아이돌, 그 추억을 불 지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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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뽀샵’의 기술이 보편화되어 있는 세상일지라도 사진이 사진으로서 존재하는 한 그것이 담아내는 이미지는 적어도 진짜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진처럼 거짓말하기 쉬운 매체도 없다. 이것은 마치 사기가 성공하려면 피해자의 전적인 신뢰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스페인의 사진작가 디오니시오 곤잘레스는 되레 전시 제목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사실이냐고. 그가 사진 속에 담아낸 풍경은 브라질의 도시 빈민가 파벨라다. 빈곤한 일상을 그대로 잡아낸 아슬아슬한 주택가의 풍경 사이에는 유리나 나무 등의 자재로 사전 제작된 건물들을 함께 조작하여 하나의 풍경으로 밀어넣었다. 디지털 조작으로 재건축을 한 격이다. 결국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제목으로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의 풍경은 오묘하게 조화롭다. 세련된 가건물의 모습이 빈민 주택과 결합한 이미지는 따뜻한 하늘 빛깔과 더불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빈민가에 대한 해결책은 외부자의 시
사진으로 보여주는 로맨틱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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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형은 사실 자신의 음악보다 토이의 6집 ≪Thank You≫(2007) 수록곡인 <뜨거운 안녕>의 달콤한 객원보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십대 시절 홍대 언더신에서 ‘위퍼’라는 밴드를 이끌며 주목받았던 그는 2006년 정직한 모던록 사운드의 1집 ≪Radio Dayz≫를 발표하고 이 앨범으로 국내의 대안적인 음악상을 표방하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다부문 노미네이션과 ‘올해의 가수’ 남자 솔로 부문상 기록을 남겼다. 2집 ≪Spectrum≫은 1집에서 내비쳤던 성장 가능성을 기대 이상으로 증거하는 음반. 일상의 감정과 단상들을 무리하게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만의 장점이 훨씬 스펙트럼 넓어진 사운드와 여백, 뚜렷한 선율을 타고 흐른다. 다채로워진 동시에 더 단순명쾌해졌고, 내성적인 감성과 외향적인 표현의 조화가 뛰어나다. 대담하고 비장한 스케일의 사운드(<I Need Your Love>), 서정적이고 세련된 멜로디와 피아노의 어우러짐(<은하수>
젊은 로커, 뚝심으로 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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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는 다른 영화제에선 찾아보기 힘든 낭만이 있다. 복작대는 남포동 거리,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자갈치 시장, 고운 백사장과 유려한 해안선을 끼고 있는 해운대 바다. 그곳에서 낭만은 탄생한다. 새벽 기차를 타고 달려가 해운대 기차역에 짐을 부리며 부산 입성을 자축하는 것도 좋고, (비록 몰골은 말이 아닐지라도) 하루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꼬박 영화를 위해 투자하는 것도 좋고, 비릿한 바다 냄새 맡으며 회 한 접시 먹는 것도 좋겠다. 그곳이 부산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라면 추억이 되지 못할 일은 없다. 올해도 낭만이라는 별을 따러 부산으로 떠나보자. 10월10일까지 열리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체 개요는 물론 미리 알고 가면 좋을 영화제의 주요 행사들과 정보를 모았다.
1. 전체 개요
6개 극장 37개관에서 60개국 315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올해, 월드 프리미어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수도 역대 최다인 133편(85편, 48편)이다. 아시아 프리미어도 94편
[PIFF2008] 실용 정보: 잠깐! 부산행 낭만기차 타기 전에 체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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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최근의 북중미 영화들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간 듯 보인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극영화들은 다양한 영화적 실험을 추구하는 대신 탄탄한 이야기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특히 공포나 액션 등 장르영화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드라마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 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한뼘씩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일기
<엄마는 미용실에 계세요> Mommy Is at the Hairdresser’s
레아 폴/캐나다/2008년/99분/컬러/ 월드시네마
제목만 보고 영화의 배경이 미용실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캐나다의 대표적 여성 감독 레아 폴의 <엄마는 미용실에 계세요>는 1960년대 캐나다 퀘벡의 조용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스위스가 고향인 감독은 꾸미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고 그 속에서 힘겨운 여름의 한때를 보내는 엘리스와 그녀의 가족
[PIFF2008] 북중미영화: 인디 정신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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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월드시네마에서 주목해야 할 몇가지 지정학적 특징. 새로운 미학적 실험을 보고 싶다면 프랑스를 다시 주목하라. 이탈리아 영화들은 새로운 르네상스에 돌입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영화들은 의외의 놀라움을 안겨준다. 아래의 추천작 리스트에서 거장의 이름들은 최대한 숙청했다. 다르덴의 영화? 굳이 권하지 않아도 모두가 보러갈게 틀림없지 않은가. 올해 베니스 출품작들은 같은 호 베니스 결산 기획을 참조하시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기막힌 혼합
신의 사무실 God’s Office
클레르 시몽 | 프랑스, 벨기에 | 2008년 | 122분 | 월드시네마
더 클래스 The Class
로랑 캉테 | 프랑스 | 2008년 | 120분 | 오픈시네마
지금 유럽 예술영화의 새로운 실험을 확인하고 싶다면 두편의 프랑스영화, 클레르 시몽의 <신의 사무실>과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를 보는 것이 좋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사회적인 문제를 스크린에서 탐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PIFF2008] 유럽영화: 프랑스의 미학적 실험을 다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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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큐멘터리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동남아시아의 작품은 여전히 사회변화의 흐름과 사람들의 척박한 생활을 관찰한다. 또한 동물의 생활부터 비에 대한 감상을 담는 등 다양한 주제로 가득한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의 상영작들도 주목할 만하다.
아이들이 화장터에 간 까닭
화장터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Pyre
감독 라제쉬 잘라 | 인도 | 2008년 | 74분 | 컬러 |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경쟁
제3세계의 아이들은 다큐멘터리의 보고가 됐다. 끼니를 잇고자 일터로 나선 이 아이들이 온갖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노동을 하는 모습은 굳이 많은 설명과 연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화장터의 아이들> 또한 감독의 시선보다 소재가 가진 아픔이 먼저 다가오는 다큐멘터리다.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터에 사는 아이들에게 남의 죽음은 자신의 밥줄이다. 영화는 시체들의 수의를 벗겨 장의사에게 되팔면서 생계를 잇는 7명의 아이들과 대화한다. 5살 때부터 일을
[PIFF2008] 다큐멘터리영화: 세상은 오늘도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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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이 좋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누도 잇신 등을 비롯한 친숙한 감독들의 영화가 눈길을 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가족, 죽음, 출산 등의 소재에서 의미를 공유하는 태도가 흥미롭다. 놀랍기보다는 수긍할 수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삶의 기운을 찾아가는 불안한 가족의 1박2일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고레에다 히로카즈 | 일본 | 2008년 | 114분 | 컬러 | 아시아영화의 창
온 가족이 모였다. 이 자리가 따뜻한 화합이 아닌 팽팽한 긴장의 공간이 되리라는 건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기억들은 아무렇지 않게 터져나와 부모, 형제의 가슴에 꽂히게 마련이다. <걸어도 걸어도>는 이 불안한 모임의 1박2일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이날은 이 집 장남의 제삿날이고, 그의 죽음은 이 가족에게 공공연한 금기다. 뭔 일이 나도 날 판국. 영화는 엄마와 딸의 수다로 시작한다. 남편과 이웃 등을 소재로 한 이들의 방담은 여느 집에서
[PIFF2008] 일본영화: 일상의 풍경을 산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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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남아시아 지역의 영화들은 ‘개인’보다 ‘사회’에 주목한다.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지리적, 역사적 특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 지역 영화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종교, 민족, 세대, 정치적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필리핀영화와 (발리우드가 아닌) 인도의 사실주의영화가 눈에 띈다.
정면에 서서 당당하게 바라보는 카메라의 힘
서비스 Service
브리얀테 멘도사 | 필리핀, 프랑스 | 2008년 | 94분 | 아시아영화의 창
마닐라 시내에 있는 도산 직전의 낡은 성인영화 동시상영관. 이곳의 하루는 꽤 고단하다. 극장의 여주인 네이다는 아들 조나스의 학교 준비에서부터 극장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할머니의 푸념, 아버지의 법정 변호사의 비용, 자신을 희롱하는 극장 벽의 성적 낙서, 극장 직원들간의 싸움까지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카메라는 일관된 움직임으로 극장의 긴 하루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가령, 카메라의 움직임은 네이다를 따라가다가도 극장 직원들이
[PIFF2008] 미지의 아시아영화: 필리핀과 카자흐스탄 영화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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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화권 영화들은 신구의 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홍콩의 두기봉과 중국의 장위안, 그리고 대만의 장초치 등 기존 주목받던 중견감독들의 신작은 변화에 목말라 있고 홍콩의 팡호청을 비롯해 올해 단숨에 등장한 여러 대만 신인감독들은 선배들의 영화와는 전혀 색다른 감성으로 사회를 향해 미시적인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이처럼 중화권에서 중견과 신인의 영화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분출한 해는 드물었다. 더불어 카자흐스탄과 필리핀의 영화는 당당한 발견의 목록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 소매치기 대가들의 뮤지컬
참새 Sparrow
두기봉 | 홍콩 | 2008년 | 86분 | 35mm | 아시아영화의 창
천변만화하는 두기봉의 세공술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걸작. <흑사회> 연작 혹은 <익사일>처럼 그의 장기인 총알발레를 펼치는 영화는 아니지만, 마치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 혹은 그가 누아르영화를 만드는 가운데 종종 위가휘와 공동으로 연출했던 코미디영화를 보는 듯 시종
[PIFF2008] 중화권과 동남아영화: 거장과 신예들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