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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신성일 인터뷰집. 506편에 이르는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영화 흥행을 주도했던 그의 삶과 영화 이야기를 담고 있다. 6·25 때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들여다보는 만화경 같은 책이다. 1957년, 신상옥 감독을 처음 만났던 순간, 바로 눈에 들어 “야, 너 나하고 3년 동안 고생할래?”라는 말을 듣고 신필름에 입사하던 때부터의 이야기는 특히 눈길을 끈다. 그는 ‘뉴 스타 넘버원’을 한자로 풀어 성일이라는 이름을 지은 뒤 신상옥 감독의 성을 받아,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그리고 <로맨스 빠빠>의 막내아들로 데뷔하기 전까지 2년간 영화사에서 사원으로 일하며 인맥을 넓히고 자신을 알려나갔다.
신성일의 청춘을 함께했던 나이 지긋한 관객만 흥미를 가질 책은 아니다. 1970년대 이야기에 접어들면 장미희에게 “너처럼 빈대떡같이 생긴 애가 어떻게 배우가 됐어” 하고 놀렸다든지 여운계와 <산불>을 찍으며 티격태격 말을 나누었던 이야
[도서] 신성일, 회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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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식 유머 지수 ★★★★
독서에의 유혹 지수 ★★★
“어째서 내게 <미스틱 리버>가 <무죄추정>과 <레드 드래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을까? 내가 그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다. 지난 3주 동안, 다섯명가량의 사람들이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이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말해주었고, 나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책을 제일 먼저 읽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 옛날 <무죄추정>을 읽다가 그랬듯이, <아름다움의 선>을 읽다가 가로등에 부딪힐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어판 제목에 붙은 ‘런던스타일 책읽기’라는 말과 별 상관없는 책. 읽는 내내 여러 번 웃음을 터뜨렸다. 문화적으로 예민하지만 전반적으로 찌질하게 살아가는 닉 혼비 소설의 남자 주인공 내레이션 같은 이 책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 책은 <빌리버&
[도서] 투덜투덜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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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문화 이해도 상승 지수 ★★★★
시끌벅적 지수 ★★★★★
인도를 생각하면 어쩐지 시끌벅적한 느낌이 든다. 원색의 천이 모자이크처럼 얽히고설킨 빨래터, 사람들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코끼리, 어느 인도영화든지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집단 가무까지.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돈다. 그런데 인도의 요지경은 다른 나라의 시끌벅적함과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혼란과 소란스러움은 환경에 따른 필요악으로 간주된다. 사람이 너무 많은 중국이나 인종이 다양한 미국이 그렇다. 그들은 국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치기 위해 고유의 색을 흡수하거나, 중도의 색깔을 찾아 개개인을 적당히 버무려넣는다. 그렇다면 인도는 어떤가. 신분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그들은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은 채 따로 또 같이 존재한다. 이런 환경에서 비롯되는 혼란과 시끌벅적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인도’스러운 문화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바로 인도 현대
[전시] 현대 인도, 그 혼란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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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La Roue
1923년 감독 아벨 강스 상영시간 263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DD 2.0 무성영화
출시사 플리커앨리(미국, 2장)
화질 ★★★☆ 음질 ★★★☆ 부록 ★★☆
초기 무성영화의 영광은 대부분 미국의 D. W. 그리피스, 소련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독일의 프리츠 랑에게 돌아간다. 뤼미에르 형제의 나라인 프랑스로서는 그런 상황에 많이 서운했을 터다. 근래 출시된 두편의 DVD- 마르셀 레르비에의 <돈>과 아벨 강스의 <바퀴>- 는 프랑스 무성영화의 영광을 재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돈>이 초기 영화예술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면 <바퀴>는 세계영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기억된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내게 심오한 영향을 끼친 첫 번째 영화다”라고 밝혔고, 장 콕토는 “영화는 <바퀴>의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의 작가들이 <바퀴>
[dvd] 프랑스 무성영화의 영광,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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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때마다 하던 생각. 1주일 전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라는 인간은 과거로 돌아가도 역시 공부를 안 하겠구나 하는 ‘주제파악’이 되고 나면, ‘지금의 자각을 가진 채’ 과거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을 수정한다. 마치 생각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듯이. 홍승표의 웹툰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를 보며 놀랐던 이유는, 딱 그런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역시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나와 남기한의 차이는, 남기한이 만화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가정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점.
여튼, 주인공 남기한은 공무원 시험준비생이다. 벌써 세 번째 낙방. 시간은 가고 나이는 들고. 후회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는 건데”에 이른다. 그래서 내린 결론. “만약 지금 이 생각 그대로 어릴 적으로 돌아간다면?” 그 생각을 품고 잠에 든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1992년, 11살 때로 돌아가 있
[스크롤잇] 어린이로 살기도 힘들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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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이란 음악가는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녀는 (그야말로) 불현듯 등장해 급성장한 인디신의 스타이자 20대 여성들의 감수성에 최적화된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다. 데뷔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홈페이지에서 기부금을 모금했고 그 앨범이 입소문을 타고 히트했으며 자신의 레이블 누에바사운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창작자의 자의식 가득한 태도와 사업가적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래서 오지은이 홍대 앞 인디신의 확장을 거론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지위를 가진 건 당연하고, 그녀의 2번째 앨범이 기대작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2집의 제목은 1집과 똑같은 ≪지은≫이다. ‘어떤 음악이든 내 이야기’라는 의도다. 자의식 과잉으로 보여도 개의치 않을 자신감도 엿보이는데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인생론> 같은 곡이 그런 단상을 지지한다. 중요한 건 오지은이란 가수의 파장이다. 그녀의 지명도를 높인 건 블로그와 웹 커뮤니티고 작가주의와 진정성이 해석의 키워드로
[음반] 작가주의와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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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심장.”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서 존 코너와 카일 리스의 만남을 돕는 마커스는 영화에서 두번에 걸쳐 같은 말로 설명된다. 사형이 집행됐으나 과학기술의 재료로 사용되고 15년 뒤 초토화된 LA의 황무지에서 깨어난 이 남자는, 금속 골격이 펄떡이는 심장을 감싼 인간과 사이보그의 결합형이다. 왜 살아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언제인지 혼란스러운 그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포효한다. 액션블록버스터가 마땅히 채워야 할 아드레날린의 수치를 한껏 높이는 장면이다.
마커스는 호주 출신의 샘 워딩턴이 연기했다. <터미네이터> 월드의 창조자 제임스 카메론이 복귀작 <아바타>를 위해 손수 고른 워딩턴은, 카메론의 추천을 받아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도 승선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눈빛과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 러셀 크로와 휴 잭맨의 몇년 전이 떠오르는 이 알파메일은, 미키마우스클럽과 헬스클럽을 거쳐 대량생산되는 배우들과는 다
[샘 워딩턴] 강력한 심장, 야성적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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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시크남’ 얼렌드 오여의 팬이라면 이미 들어봤을 이 앨범 ≪Rules≫는 그의 사이드 밴드인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The Whitest Boy Alive)의 2009년 앨범이다. 2006년 여름에 릴리즈된 데뷔앨범 ≪Dreams≫로 활동을 시작한 이 사이드 밴드는 독일을 기반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밴드의 음악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는 질감이 ‘약간’ 다르게 들린다. 이를테면 좀더 미니멀하고 좀더 이성적이다.
그렇다고 냉정한 건 아니다. 오히려 냉탕과 열탕 사이를 오가며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감수성과 얼렌드 오여의 개성을 교차시킨다. 수록곡인 <Gravity>만 들어봐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얼렌드 오여는 그의 소박한 음악만큼 작은 사업도 꾸리고 있다. 버블스(bubbles)란 회사를 세우고 음반과 티셔츠를 판매하는데 마이스페이스닷컴이나 구글에서 그의 이름과 함께 검색하면 깔끔하고 모던한 웹사이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반] 냉탕과 열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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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5월 8일(금) 오전 11시
장소 대한극장
이 영화
핑크 궁전 아파트로 이사 온 소녀 코렐라인은 불만이 많다. 엄마와 아빠는 일 하느라 바쁘고 위, 아래에 사는 이웃들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그러던 어느날 코렐라인은 벽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발견한다. 갑자기 나타난 생쥐를 따라가 들어간 이 문은 ’또 다른 세계’로 통하고, 숨겨진 세계에는 ’또 다른 아빠’, ’또 다른 엄마’가 살고있다. 현실 세계와 달리 모든 게 완벽한 벽 속의 세계. 코렐라인은 기뻐하지만 그 곳에 숨겨진 어둠도 알아차린다.
100자평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일단 독특한 질감의 화면으로 상당한 시각적 만족을 선사한다. 음악 역시 감상의 즐거움을 더하는데, 이처럼 '세계 최초의 3D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관객에게 일찌기 체험해보지 못한 시청각적 쾌감을 주는 것으로도 기대 이상이다. 서사와 판타지 역시 좋은 편인데, 특히
<코렐라인 : 비밀의 문> 언론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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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미아리. 함경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이마를 맞대고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던 곳. 김소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장석조네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솟아오르는 마천루의 그림자 아래 달동네들이 숨죽인 채 늘어가던 당시 미아리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이다. 양은 장수 끝방 최씨, 겐짱 박씨 형제, 비운의 육손이 형 등 여덟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나가는 건 ‘한지붕 아래 아홉 가구가 모여 사는 기찻집 사람들’. 방언은 물론 입말의 풍미를 잘 녹여낸 원작 소설의 문장에서 95% 이상의 대사를 가져왔다니,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한 작품으로 다가오지 않을는지.
김소진 작가는 마지막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미아리 산동네를 두고 “여태껏 나를 지탱해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온 육체”라고 표현할 만큼 애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공연시간이 3시간10분에 이른다는 이 길고 긴 공연을
[공연] 소박했던, 따뜻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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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긴 수명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르크 샤갈(1887~1985)은 97살에 타계했다. 호안 미로보다 2년을 더 산 그는 유럽 모더니즘을 개창한 예술가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제정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게토 지역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의 본명은 모세와 연관돼 있고 샤갈이라는 성에는 갈매기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름의 예언처럼 그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러시아로 돌아간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서방을 전전하며 살았으나, <나와 마을>을 비롯한 숱한 작품을 통해서 새처럼 부단히 귀향했다. 평생 왕성하게 창작한 샤갈이지만, 그의 가장 눈부신 작품은 대부분 35살 이전에 생산됐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특히 샤갈 말년의 그림은 메아리와 여진으로 가냘프게 진동하는 기나긴 에필로그처럼 보인다. 그의 전성기를 정의했던 열정과 관능, 입체파의 세례를 드러낸 구성적 예각이 사라져버린 자리에, 희부연 거울에 비춘 과거가 일렁인다. 선은 극도로 가늘어지거나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늙은 예술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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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얄팍한 팬심인 줄 몰랐다. “아~ 준표”, “우리 범이”를 외치던 게 불과 한달 전이었다. 기력 쇠한 내가 이제 더이상 무슨 닥본사질을 하랴 싶었는데 월요일 밤 10시 광고에서 귀염 떠는 준표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꺼져! 지호철호상현이를 내놓으란 말이다!!!”
<내조의 여왕>에 빠졌다. ‘꽃남’들이 아무리 섹시해도 도무지 길티하게 느껴져(기저귀 갈아주던 조카랑 동갑이다) 감정이입할 수 없었던 쾌락의 상상에 풍덩 빠져 배영한다. 어쩌면 누구 하나 고르기 힘들 만큼 셋 다 이렇게 멋진 거니.
아저씨가 이렇게 섹시하게, 그것도 떼로 등장했던 드라마가 있었나. 생각이 안 난다. 밤샘근무로 멍 때리는 두뇌활동 때문인가, 옆자리 동료에게 물어보니 불륜의 사회학에 대한 <한겨레21> 표지기사까지 등장했던 <애인>의 유동근을 말한다. 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적 매력이 사라지지 않은 아저씨가 드라마에서 주
[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남의 남편, 섹시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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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서로 어울리지 않을 “길티”와 “플레저”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꼭지의 원고 청탁 전화를 받고 나자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내가 <씨네21> 기사에서 꼭지 제목을 못 보고 지나친다는 것과 내게도 “길티”한 “플레저”가 있다는 것. 전자는 몇번이나 되묻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돼서 깨달았고, 후자는 내가 쓸 원고의 마감이 언제인지 묻는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마감 무시하는 걸 즐긴다는 것을. -_-;;;;
모든 것에는 각자의 마감이 있게 마련이다. 더이상 할 필요가 없어지거나(원고를 안 넘기는 경우), 수명이 다 되거나(휴대폰 배터리가 다 방전될 때까지 안 쳐다보기), 썩어 문드러지거나(장바구니 안의 채소),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거나(농담이 지나쳐 얼굴이 몹시 붉어지는 경우) 하게 되는 것은 모두 마감의 선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 마감의 선을 넘는 순간부터, 즉 뭔가 망가져도 단단히 망가져버린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짜릿해진다. 물론
[나의 길티플레저] 자꾸만 넘고 싶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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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상인 무시 말아. 니 아빠도 그 돈 벌어 다 너 유학시킨 거야!” <신데렐라맨>에서 ‘거지’ 권상우는 카피를 등한시하는 윤아에게 이렇게 호통친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지론에 따르면 카피는 곧 먹고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드라마가 이렇게 카피의 도덕성을 대변할 지경이니 실제는 더하다.
최근 친구가 핫하다며 귀띔해준 인터넷 의류사이트는 아예 카피를 대놓고 ‘즐긴다’. ‘미우미우’의 땡땡이 원피스와 ‘마크 바이 마크제이콥스’의 깜찍한 플랫슈즈를 그대로 재현한 솜씨는 못돼도 중국의 가짜 계란 만들기에 버금간다. 아이템에 누구누구의 디자인임을 밝혀놓은 건 기본. 심지어 같은 카피품끼리도 자신들의 제품은 오리지널을 직접 ‘바잉’해 입어보고 그대로 만들어서 더 진짜에 가깝다는 걸 비교분석한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허락지도 않은 아이템을 뻔뻔하게도 100% 도용하고서는 제품마다 어디서 배웠는지 ‘Inspired’라는 영어 단어는 꼭꼭 넣는다. 이름 꽤 들
[오픈칼럼] 가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