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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하나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고 먼 순례길. 유럽 전역에서 이어지는 여러 길 가운데 프랑스 남쪽 국경마을에서 출발해 피레네산맥을 넘어가는 길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길이는 장장 800km.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한달은 훌쩍 넘겨야 순례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닿는다. 친구와 나는 둘 다 영화판에서 촬영팀 일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서로의 일정을 맞춰보니 한달 남짓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조금은 모자란 일정이었다. ‘빨리빨리’가 온 사방에서 난무하는 한국에서의 황망한 삶을 잠깐 멈추고 영혼의 안식을 위해 떠나는 여행인데, 거기 가서도 서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자전거 여행이었다. 아무리 천천히 페달을 굴려도 걷는 것보다야 빠를 테니까. 지금도 딱히 부자는 아니지만, 10여년 전 여행할 당시 친구와 나는 영화판에서 번 돈으로 빠듯하게 객지 생활
[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자전거를 탄 순례자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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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는 영화의 영원한 숙제다. 최근 탈출에 관한 흥미로운 영화 두편이 개봉했다. 하나는 <8번 출구>다. 이 영화는 탈출의 방법보다는 ‘무엇’으로부터 탈출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관객은 뫼비우스의띠 같은 지하철 복도를 같이 걸으며 탈출할 방법을 주인공과 함께 익힌다. 하지만 게임은 허울에 불과할 뿐 주인공이 탈출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주인공이 미로에 갇힌 것은 인생을 재고해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영화는 8번 출구 밖을 구경시켜주지 않는다. 다시 첫 장면과 비슷한 상황에 주인공을 데려다놓고 그의 변화된 행동을 지켜본다. 이상 현상으로 복도 바깥을 비추는 장면 역시 주인공의 과거나 미래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8번 출구>는 탈출극을 표방하지만 심리극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김유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바얌섬>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인물들이 탈출할 의지가 없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때는 조선
[비평] 불가항력의 섬, 오진우 평론가의 <바얌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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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니아>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미쉘(에마 스톤)은 미리 잠복해 있던 테디(제시 플레먼스)와 돈(에이든 델비스)에게 습격을 당한다. <지구를 지켜라!>의 강만식(백윤식)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납치되었던 것과 달리, <부고니아>의 미쉘은 또렷한 맨정신이다. 강만식이 부도덕한 자본가의 초상이었다면, 미쉘은 자기 계발의 성공 신화로 점철된 젊은 기업가의 표본이다. 미쉘은 매일 아침 요가를 하고, 호신술을 배우며, 선수 수준의 고강도 유산소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테디가 그녀를 덮쳤을 때 미쉘은 거세게 저항하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던 중 공간이 일순간 전환되고, 카메라는 통창이 난 수영장 안쪽에서 난투 장면을 유리 너머로 지켜본다. 치열한 바깥과 달리 방음된 수영장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왜 카메라는 갑자기 현장을 이탈했을까. 약간 과장을 보태 해석하자면, 이 숏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인장이다. 인물들을 실험실 안에 가두고
[비평] 기이함 없는 기이함, 프런트 라인 연속 기획 <부고니아> ② - 김예솔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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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의 25주년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을 꼽아달라 하니 너나없이 이 사람을 지목했다. 개관부터 지금까지 영사실을 지키고 있는 홍성희 영사실장이다.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에게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는 고된 일”이라며 영사 일을 만류한 것처럼 홍성희 영사실장은 쉬는 날에도 문제가 생기면 영화관으로 달려왔다. 50년을 영사기사로 일하며 인터뷰 요청도 수차례 받았지만 그저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해왔을 뿐인데 내세우고 싶지 않아 나서기를 마다했다. 지난날, 영사실에서 예술영화를 틀며 살아온 것만이 자부심이라고 그는 나지막이 덧붙인다.
- 씨네큐브가 25주년을 맞았다. 이 극장의 첫 영사기사였으니 근무한 지 25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영사기사로 일한 건 언제부터인가.
내가 20대이던 1970년대 동대문에 있는 영화관에서 이 일을 처음 시작했다. 그때는 영화를 좋아하고 말고 그런 것도 없었다. 영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영화를 볼 형편도 못되었으니
[인터뷰] 직업인으로서의 영사기사, 홍성희 씨네큐브 영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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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심은경
언제나 굳건히 아트영화관으로서의 존재감을 지켜온 씨네큐브. 몇편의 영화 GV를 진행하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특히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와 <해피엔드>GV 행사가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씨네큐브의 아늑한 공기와 관객들의 영화를 향한 열기가 어우러져, 그 좋은 분위기 속에서 여느 때보다 긴장을 풀고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씨네큐브에서 더 좋은 작품들을 보고, 관객과의 만남도 자주 이어가고 싶다. 항상 응원합니다. 한국영화, 그리고 씨네큐브!
배우 이솜
사랑하는 영화관 씨네큐브는 나의 영화 취향을 만들어준 곳이다. 지금도 씨네큐브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들이다. 씨네큐브에 내 영화가 상영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배우 일을 하면서 항상 했었는데 영화 <소공녀>가 씨네큐브에서 상영되었다. 좋아하는 공간에, 애정하는 내 작품이라니! 잊지 못할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배우
[특집] 영화관의 추억, 극장의 친구들에게 묻다, 당신에게 씨네큐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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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장소에 쌓인다. 극장은 수많은 관객들영화와 함께 울고 웃었던 극장의 시간들, 관객의 추억들, 우리의 이야기들씨네큐브의 25년 역사 돌아보기special이 두고간 이야기가 쌓여 있는 영화의 도서관이다. 올해 25주년을 맞이한 씨네큐브에도 2000년 이후 한국영화계의 크고 작은 추억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씨네큐브가 관객과 함께 호흡해온 25년을 돌아보며 극장의 시간들, 관객의 추억들, 우리의 이야기들을 전한다.
<옥자> 개봉 당시 씨네큐브에서는 6월29일 전관에서 <옥자>를 상영하는 ‘옥자 DAY’를 개최했다. 관객과의 만남을 가진 최우식·변희봉 배우, 봉준호 감독(왼쪽부터) . 당시 <옥자>는 넷플릭스와의 갈등으로 멀티플렉스 개봉이 어려워지며 씨네큐브 등 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씨네큐브 최고 흥행 감독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태풍이 지나가고><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특집] 영화와 함께 울고 웃었던 극장의 시간들, 관객의 추억들, 우리의 이야기들, 씨네큐브의 25년 역사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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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001년 3월1일 개봉)
선정의 변 씨네큐브 초기 흥행작 중 하나로, 개관 기념작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를 비롯해 <타인의 취향><프린스 앤 프린세스>와 함께 예술영화전용관으로서 씨네큐브의 시작을 널리 알린 작품. 당시 씨네큐브를 운영했던 백두대간이 수입해서 씨네큐브 단관 개봉만으로 3만명을 동원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피나>, 가장 최근의 <퍼펙트 데이즈>까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들이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도 주목할 포인트.
2. <원더풀 라이프>(2001년 12월9일 개봉)
선정의 변 씨네큐브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된 작품. <원더풀 라이프>는 씨네큐브 개관 1주년을 기념해 개봉한 작품으로, 개봉 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주연배우 이우라 아라타가 내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특집] 씨네큐브 25주년 특별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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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11월12일부터 25일까지 ‘씨네큐브 25주년 특별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을 개최한다. 하나는 <씨네21>과 함께 50여명의 영화인들의 설문을 진행, 지난 30년간의 영화 중 최고의 영화들을 뽑는 ‘<씨네21>-최고의 영화들’ 섹션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25년 동안 씨네큐브 상영작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10편을 모은 ‘씨네큐브 25주년-최고의 영화들’ 섹션이다. 2000년대 예술영화 시장의 불씨를 당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을 시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토드 헤인스, 빔 벤더스 감독 등 그간 씨네큐브가 사랑했던 거장들의 걸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여기 씨네큐브를 운영하는 티캐스트에서 엄선한 10편의 영화를 선정의 변과 함께 소개한다. 인연으로 시작해 운명이 된 영화들이 지금, 당신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이어지는 글에서
[특집] 원더풀 씨네큐브 라이프, 씨네큐브 25주년 특별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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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일부터 6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에선 ‘2025 FLY 영화제’(이하 FLY 영화제)가 개최됐다. 한국과 아세안(동남아시아 10개국이 수립한 지역 협력 기구)에서 모인 ‘한-아세안 영화공동체 프로그램’의 졸업생들이 부산을 찾았다. 그들이 만든 4편의 장편과 24편의 단편, 총 28편의 작품이 영화의전당에서 상영됐다. 아시아영화의 허브라는 부산의 명성에 걸맞게 부산광역시와 부산영상위원회가 공동 주최·주관하고 한-아세안협력기금(AKCF)이 후원한 대규모 행사였다. 11개국에서 날아온 ‘한-아세안 영화공동체 프로그램’의 졸업생과 참여 강사진 66명이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개막식 땐 한국 외교부 관계자 등 80여명의 게스트를 포함해 300명 넘는 관객이 극장을 가득 채웠다.
올해 FLY 영화제는 2012년부터 ‘한-아세안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 FLY’(주관 부산영상위원회·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어진 관련 사업의 역사가 집대성된 자리였다.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
[영화제] 한-아세안 신진 영화인들의 비상, 2025 FLY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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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스웨덴영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주한스웨덴대사관과 스웨덴영화진흥원이 주최하고, 영화사 백두대간, 스웨덴명예영사관이 주관하는 스웨덴영화제는 한국에 스웨덴영화를 알리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어느덧 14회를 맞이한 올해 영화제의 개막작은 음악을 매개로 서로 다른 두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 <노바와 앨리스>다. <노바와 앨리스>의 엠마 북트 감독, 요한 르헤보리 배우의 방문과 더불어 올해는 한층 더 폭넓은 산업 교류를 위해 스웨덴영화방송프로듀서협회의 주요 인사인 요한 홀메르 협회장과 얀 블롬그렌 드라마국 국장이 내한했다. 여기 오늘 스웨덴의 목소리를 전한다.
- 어느덧 14회를 맞이한 스웨덴영화제에 개막작 <노바와 엘리스>로 한국을 찾았다.
엠마 북트 한국은 첫 방문이라 굉장한 모험을 하는 기분이다. 일주일간 많은 경험과 영감을 얻어갈 거라는 확신이 든다. <패스트 라이브즈>와 <머터리얼리스트>를 매우
[인터뷰] 한국에서 열린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 엠마 북트 감독, 요한 르헤보리 배우, 스웨덴영화방송프로듀서협회 요한 홀메르 협회장, 얀 블롬그렌 드라마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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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록이지만 고교 육상선수 민재(이레)에겐 탐탁지 않다. 곧 있을 시 대표 선발전에 출전하려면 2등 안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 대표로 선발돼 실업팀에 입단하고 숙식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이 흔들릴까 불안한 민재는 코치인 지수(금해나)에게 진위를 묻지만 돌아오는 건 받아들이라는 말뿐이다. 그사이 치고 올라오는 동료 혜림(김세원)을 보며 민재는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한다. 이를 알게 된 코치는 사건의 은폐를 대가로 민재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불운한 상황에서 타협의 질주와 양심의 중단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내일의 민재>는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찾아가는 영화다.
지난 10월27일 개막한 제38회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의 미래’ 섹션에 초청된 박용재 감독과 이레 배우를 월드프리미어 직전 도쿄에서 만났다. 생각을 빼곡히 적은 종이 여러 장을 정독하던 신인 연출자의 긴장을, 13년차 배우가 톡톡 터뜨려주며 대화는 쏜살같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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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필요한 건 멈출 용기, <내일의 민재> 박용재 감독, 배우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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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종>의 냉철한 윤자유에 이어 배우 한효주가 분한 인물은 넷플릭스 시리즈 <로맨틱 어나니머스>의 이하나였다. 쇼콜라티에인 하나는 천재적인 실력과 감각을 지녔지만, 시선공포증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남들과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는 제과회사의 후계자이자 초콜릿숍 ‘르 소베르’의 대표인 소스케(오구리 슌)와 만난다. 결벽증으로 타인과의 교류에 어려움을 겪던 소스케는 이상하게도 하나와 접촉할 때만큼은 아무렇지 않고, 하나 역시 소스케의 눈을 편히 마주할 수 있다. 초콜릿에 관한 열정을 토대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한일 합작품인 <로맨틱 어나니머스>는 공개 직후 약 40개국의 시청 순위 톱10을 기록하고 일본에선 ‘오늘 일본의 톱10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여전히 순수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한효주) 매력을 지닌 하나가 숱한 상처와 실패를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배우
[인터뷰] 정말 사랑하는 일, <로맨틱 어나니머스> 배우 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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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년에 종종 나갔던 한 모임이 있다. 대화의 주제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건 ‘딴나라당’, ‘쥐명박’, ‘닭근혜’ 욕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한겨레><경향신문>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좀더 어울리며 기다리다 보면 풀뿌리 운동을 같이할 수 있겠거니 했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자 선거 궁리밖에 없었다. 그즈음 발길을 끊었다. 그해 선거들은 그들의 적(이자 나의 적)이 이겼다. 일차적으로는 정치인들이 책임질 일이겠으나, 이기는 데 필요한 일을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했던 욕을 또 한다고 해서 적의 지지율이 깎이지는 않는다. 지지 진영이 없는 시민들을 만나지도 않았으니 우군을 늘릴 수도 없다. 때마침 출현한 뉴미디어로 인해서 모임은 더 활기를 띠고 신규 참여자도 들어왔겠지만, 이미 모인 사람들의 동질성이 더 강화되고, 원래 성향이 흡사한 사람들이 더 모이고, 늘 하던 말의 열기만 더 오른 것에 불과하다. 그때
[김수민의 클로징] 파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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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엘리아스(마크 앙드레 그롱당)는 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비보를 접한다. 오랜 기간 연을 끊고 지내온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찝찝함을 안고 홀로 고인이 떠난 집을 수습하던 엘리아스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마주한다. 데뷔작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가정폭력을 다룬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두 번째 장편 <후계자>로 다시 한번 가족 내부로 들어간다. 가부장제의 그늘이 드리운 사회에서 “남성은 어떻게 같은 남성에게조차 최악의 상대가 되었나”를 논하고 싶었다는 감독은 오이디푸스, 이카루스, 햄릿과 같은 인물을 떠올리며 이 비극의 회로를 꾸렸다고 한다. 반복되는 나선형 이미지와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가는 열쇠들도 일종의 대물림을 시각화한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부터의 전개가 개운치 않은 감도 있지만, 고전적이면서 직관적인 매력을 갖춘 스릴러.
[리뷰] 나선형 회로에 갇힌 남성성을 비관하다, <후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