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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맡은 사기스 시로는 솔직히 말해 한국영화에서 그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완성도를 지닌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는 알려져 있다시피 공전의 성공을 거둔 <에반게리온>의 음악을 맡았던 사람이다. 이 만화영화의 음악은 정말 훌륭했다. 만화다웠고, 때로는 그 이상이었다. 어른스러운 음악이었다. 걸작 영화음악을 만든 사람답게 사기스 시로의 음악은 <무사>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깔끔하고 탄탄하다. 그가 속해 있었던 의 퓨전재즈는 오히려 너무 깔끔해서 별게 아니었는데 <무사>의 음악은 완성도 자체가 우리에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멜로디나 리듬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이만하면 ‘표준’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음악이다. 일본사람들, 기본이 확실한 음악은 우리보다 월등하게 잘 만든다.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악기나 사운드의 선택에서 군더더기가 전혀 없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브라스 사운드, 피리 소리, 팀파니 소리, 스트링 소리
<무사>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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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워낙 황당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다보니 웬만한 사건은 ‘특보’나 ‘속보’로 취급되지 않는다. 설사 ‘속보’나 ‘특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조차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큰 규모가 아니면 직접적으로 와닿는 심리적 충격의 정도는 그리 크지 않게 마련이다. <CNN>과 뉴스전문채널이 생겨나면서 전쟁조차도 생중계가 되다보니 해외 긴급뉴스도 여간해선 단순한 사건뉴스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을 정도로 자극불감증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9월11일 저녁에 본 ‘미국 동시다발 테러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빌딩이자 최대의 건물 면적을 자랑하는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의 중추인 ‘펜타곤’ 등을 납치된 민간여객기가 들이받는 장면은, <다이 하드>나 <아마겟돈> 같은 할리우드 불록버스터의 특수효과를 방불케 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1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난 ‘현실’이라는 점이다. 세계경제의 중추라 할 수 있
일본 경시청 테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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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찾아가는 세계만화의 23개 보물섬이라는 부제를 달고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가 출간되었다. 인하대 교수이며 2002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이며 미술 및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에 체계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서구와 제3세계의 만화를 소개하는 저작을 발표했다.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괄에 해당하는 만화의 세계, 그리고 서구만화의 역사를 토픽을 중심으로 그림과 함께 서술한 세계만화사를 통해 책의 전체를 간단하게 발제하고, 이어 세계의 만화가라는 섹션을 통해 <엘로 키드>의 리처드 펠튼 아웃콜트에서 <애크미 노벨티 라이브러리>의 크리스 웨어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가와 작품을 개별적으로 서술한다.물론 우리가 보는 만화들이 아닌 전혀 낯선 새로운 세계의 만화이지만 최근 몇년 동안 열풍처럼 계속된 유럽만화 출판은 23명의 작가와 작품 중 낯익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놓았다. 고시니와 우데르조의 <아스테릭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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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펴면 추억이 밀려온다. 섬세한 펜, 수채물감의 미묘한 농담, 화려한 컬러, 꽉 짜여진 화면의 일러스트들은 1993년 처음 만날 때부터 박희정의 만화를 대표해온 기호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그의 일러스트는 자신이 연재하는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잡지의 창간을 알리는 브로슈어가 되었고, 캘린더가 되었으며, 전화카드로 탄생했다. 박희정의 일러스트는 주인공들에게 컬러를 선사하는 단순한 수공에서 벗어나 배경과 소품, 캐릭터의 표정을 통해 작품 전체를 대표했다. <호텔 아프리카>의 일러스트가 보여준 황무지와 도로, 푸른 하늘 그리고 낡은 소파의 이미지는 그대로 작품의 의미를 드러내는 기호였다. 자연과 도회를 넘나들며, 잡지와 술잔이 뒹구는 일상과 거대한 달과 앙상한 나뭇가지와 금붕어가 존재하는 환상이 함께하며, 실존적 슬픔을 보여주는 캐릭터의 표정까지. 박희정의 일러스트는 일러스트를 넘어서는 독자와의 의미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의 하나였다.박희정 만화 기호의 모든 것2001년
달콤한 낮잠 속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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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백인들은 틀림없이 미국의 흑인음악을 미국의 백인들보다 더 잘 받아들인 것 같아 보인다. 미국의 백인들이 감탄과 경멸감이 섞인 방식으로 흑인음악을 받아들이고 모방했다면, 영국의 백인들은 약간은 숭배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60년대 모드족 가운데에는 제임스 브라운을 실제로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그 숭배는 기본적으로 영국의 ‘성난 젊은이’들의 허탈감이 블루스에 이입되는 방식으로 행해졌으며, 그 이입에 따라 흑인음악은 새로운 가치와 스타일을 부여받게 된다. 그 전통이 깊어서 그런지 이른바 ‘애시드 재즈’ 같은 최근의 장르를 통해서도 영국식의 ‘이입법’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그 방식은 늘 흑인음악을 ‘내 것’이라고 거짓말하는 미국사람들과는 달리, 흑인음악에 ‘힘을 더 실어주는’ 방식이다. 그 숭배/거리두기와 이입의 변증법이 영국에서 벌어지는 흑인음악 실험이 미국 본토에서보다 역동적인 무엇이 되도록 한다.이번에 새 앨범 <A Funk Odyssey>을 낸 자미
검은 그루브, 흰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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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희맨쇼>‘뒤숭숭한 세상,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연극’을 표방하고 지난 1999년 연우무대가 초연했던 작품. 당시 젊은 연극인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늘 쫓기며 사는 현대인의 전형 ‘나다’와 삶 본래의 여유를 지니고 있는 ‘너두’가 일상을 엮어나가는 이야기다. 천상의 마법주 ‘참이슬소주’를 마시고 슈퍼맨으로 변신한다는 등 만화적인 발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극 중간중간 ‘락희맨’들이 등장해 고달픈 인생에 대한 위로차 막간 쇼를 연다. 고선웅 작, 최우진 연출. 황택하, 오오영 등 출연.<이상은·어어부 프로젝트 ‘가을용 구름’>폴리미디어씨어터/ 9월15, 16일 7시30분/ 좋은콘서트/ 1588-7890어떻게 보면 비슷하고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두 음악가, 이상은과 어어부 프로젝트가 마련하는 조인트공연. 이상은이 상처를 치유하는 노래를 한다면, 어어부 프로젝트는 비수를 품은 듯한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두 아티스트 모두 동양적
공연... <락희맨쇼><이상은·어어부 프로젝트 `가을용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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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Diddy & The Bad Boy Family>
노터리어스 B.I.G, 페이스 에반스, 크레이그 맥 등을 배출한 배드보이 엔터테인먼트를 세운 사업가이며 머라이어 캐리, TLC 등의 음반에 참가한 프로듀서, <I’ll Be Missing You> 이후 래퍼로서도 성공을 거둔 퍼프 대디가 피 디디로 이름을 바꾸고 낸 첫 음반. 페이스 에반스, 칼 토머스, 블랙 롭, 지 뎁, 마크 커리 등 배드보이 사단의 식구들이 총출동했다. ‘샘플링의 천재’라는 평가처럼 여전히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Sir.ius>, 알 그린의 <Love & Happiness> 등을 세련되게 샘플링한 곡들도 실려 있고, 자신의 사운드를 정련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음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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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약속블랙홀과 우주론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파리 뫼동 천문대의 천체물리학자 장 피에르 뤼미네가 쓴 첫 번째 장편소설. 1761년과 69년 금성이 태양면을 통과하는 과정을 관측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던 천문학사의 대사건을 배경으로 그려낸 ‘열정적’인 과학모험담. 선의의 경쟁자이며 절친한 친구,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연적인 랄랑드와 르 장티, 샤프는 영국해군의 폭탄,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멕시코의 티푸스와 맞싸우며 ‘우주적 만남’의 현장에 동참한다. 근대를 가능하게 했던 과학, 모든 것이 뒤집히던 격동의 역사, 흥미로운 픽션을 적절하게 배합한 지적인 소설이다.타고난 지능 만들어지는 지능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 궁리 펴냄/ 1만원<타고난 지능 만들어지는 지능>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인간, 동물, 기계, 외계생물편으로 나누어 ‘지능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인가 환경인가’, ‘머리를 좋게 하는 약물을 찾아서’, ‘동물도 사유를 하는가’, ‘말하는
책... <금성의 약속> <타고난 지능 만들어지는 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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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The End. 이 영화의 오프닝은 도어즈의 <The End>, 끝이다. 끝이 시작인 영화다. 터질 듯한 살인에의 욕정과 혼돈, 습기와 광기의 상징인 야자수들의 느린 흔들림. 그 야자수의 정글 안에 숨겨진, 사랑과 돌봄의 인간성과 작별을 고하고 살육과 광기의 세계로 진입하는 신의 아이들의 놀이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 끝이 어디인지 엿보기 위해 날아다니는, 파리와도 같은 헬리콥터들. 이윽고 불이 지펴진다. 야자수들은 화염에 휩싸인다. 네이팜 탄. 이미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관객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화염과 함께 도어스의 <The End>는 고조되면서 이 영화가 끝에 관한 영화임을 알려준다. 종말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종말이 맨 처음에 미리 와 있다.종말은 희망이 아니라 정글 속에 들어 있는 끔찍한 전쟁 지옥에 와 있다. 짐 모리슨은 영화의 맨 처음에 “This is the end”(여기가 끝이야)라고 말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식 인사법이
영화음악 <지옥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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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시즌이 되면 서구, 특히 미국쪽에서 항상 들려오는 해외토픽이 있다. 그해 인기있었던 캐릭터 상품들의 매진과 그걸 구하지 못해 안달인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런 해프닝이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솔드 아웃>처럼 영화화할 정도로 이미 정기적인 사회현상이 돼버린 가운데, 최근에는 ‘파워 레인저’나 ‘포켓몬’ 같은 일본 캐릭터를 찾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과거부터 ‘테디베어’나 ‘바비인형’과 같은 캐릭터 상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 기획 당시부터 구상돼 수많은 변종 캐릭터 상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70년대까지만 해도 ‘탱크’, ‘군함’, ‘자동차’와 같은 실제 사물을 축소한 것이나 우주선이나 SF메커닉, 로봇의 플라스틱 모형이나 봉제완구가 그러한 상품의 주류였다. 하지만 80년대 들어서는 사람 형태의 캐릭터를 활용한, 고무와 같은 연성 재질의 모형들이 많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남자가 인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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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아프리카> <마틴 앤 존>의 만화가 박희정이 개인 일러스트레이션집 <시에스타>(Siesta)를 출간했다. 박희정은 세련된 스타일 감각과 화려한 컬러링으로 만화잡지의 브로마이드와 캘린더의 단골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해왔는데, 이번 화보집은 데뷔한 이후 8년간 그린 주요 일러스트레이션 113점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만화가들의 고급 화보집이 왕성하게 발간되고 있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만화 팬과 만화가 지망생들의 소장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번 <시에스타>의 출간은 국내에서도 만화출판이 좀더 고급화하는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희정은 또한 화보집 출간에 맞춰 오는 10월 초 홍익대 앞 예술전문서점 아티누스의 갤러리에서 개인 작품전을 가질 예정인데, 이 또한 만화가 고급문화와 만나는 청신호로 여겨진다. 박희정은 1993년 만화잡지 <윙크>에 단편 ‘썸머타임’으로 데뷔했는데, 이번 화보집의
박희정 일러스트레이션집 <시에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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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화는 눈동자가 절반을 말한다고들 한다. 정말이다. 강경옥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의 세배는 될 만한 큰 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검은 눈동자가 차지하고 있다. 눈동자는 마치 우주와 같아 그 속에 작은 은하계가 춤을 추고 있다. 눈부신 태양과 별들이 반짝거리며, 그 미묘한 빛으로 주인공의 깊은 심상을 드러낸다. 그녀의 SF가 복잡다단한 과학적 장치의 박람회가 아니라 외로운 우주 속에 태어난 한 존재의 깊은 감정의 탐험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눈동자가 말해주는 작가의 특성황미나 역시 별빛 반짝이는 로맨틱한 눈동자를 그려내길 좋아한다. 그러나 강경옥에 비해서는 부피가 작고, 검은 동자 역시 짧은 직선의 맛이 살아날 정도로 단단하게 그려내는 편이다. 가끔은 극도로 촉촉한 눈동자를 그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과장된 패러디에 가까워 보인다. 판타지를 추구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만화가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정제된 보석처럼 가로로 균형있게 자리잡은 눈, 그
눈으로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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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l Kid>
90년대 들어 주춤했지만, 여전히 마니아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헤비 메탈의 현 주소를 알려주는 편집음반. 새롭게 부상하는 신예밴드, 십년 이상 한 우물을 판 중견 밴드와 함께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익스트림 뮤직 밴드까지 다양하게 선곡했다. 바로크 메탈의 창시자 잉베이 말름스틴, 멜로딕 스피드 메탈의 대명사 헬로윈, 딥 퍼플의 기타리스트였던 리치 블랙모어의 블랙모어스 나이트, 레인보 보컬 출신인 로니 제임스 디오가 결성한 디오 등 중견밴드와 데스 메탈계의 크레이들 오브 필스, 인 플레임즈, 다크 트랭퀼리티와 최근 부상하는 로열 헌트, 페어 워닝, 소나타 아티카 등의 무거운 금속성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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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버>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만든 <파이트 클럽>의 원작을 쓴 미국의 소설가 척 팔라닉의 99년작. <서바이버>는 집단자살을 기도한 사이비 종교집단의 유일한 생존자 텐더 브렌슨을 둘러싼 연쇄살인사건을 파헤친다. 연쇄살인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소설 첫머리에서 과거로 쭉 거슬러올라가는 파격적인 형식도 재기가 넘친다.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피델리티, 텐더의 쌍둥이 형이며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담 등 상상력의 끝머리쯤에 자리잡고 있을 법한 비범한 인물들이 펼치는 ‘착란’의 파노라마가 독자를 황홀경으로 몰아간다.<단편영화 이렇게 만든다>에드먼드 레비 지음/ 한나래 펴냄/ 1만2천원영화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쉽고 명료하게 단편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 시나리오 작가이자 단편영화감독인 에드먼드 레비는 모든 영화의 출발점인 단편영화 제작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영화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단편영화의
책... <서바이버>, <단편영화 이렇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