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상상해본다. 차원이 교차하는 지점을 우연히 지나게 된다면, 그래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그곳에서도 운명은 이어질까. 오는 11월22일부터 KBS에서 방영되는 13부작 TV시리즈 <아장닷컴>은 모든 차원의 세계가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장닷컴>은 사이버 세계를 주무대로 한다. 그러나 <바스토프 레몬>이나 <유틸리티 파이터> <넷보이>와는 설정이 다르다. <아장닷컴>을 지탱하는 세계는 인간계와 정령계, 그리고 사이버 세계다. 작품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정령계가 다른 두 세계와 어떻게 결합하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자.
먼 옛날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인간과 정령은 이제 서로 별개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정령계의 신들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만들기로 하고 영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디멘션 스톤’을 만든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것은 좀처럼 드문 일. 사건은 정령계의 이단아 두퐁이 디멘션 스톤을 훔치면서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두퐁은 주위에 있던 정령들과 함께 사이버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디멘션 스톤을 찾으러 사이버 세계로 떠나는 것이 바로 주인공 아장, 즉 아기장수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지던 <아기장수> 설화를 기억하시는지? 괴력을 소유한 아기장수는 그가 역적으로 자랄 것을 두려워한 나라와 부모에게 죽임을 당한다. 자신의 힘을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민초를 대변하는 아기장수. 안타깝게 죽어간 그가 슬픈 과거를 딛고 <아장닷컴>에서 씩씩하고 밝게 되살아났다.
제작 총지휘를 맡고 있는 미지온엔터테인먼트의 이병규 프로듀서가 <아장닷컴>에 각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도 바로 아기장수가 민초를 대변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학창 시절의 이상을 다시금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처럼 남다른 제작진의 열정이 있어서다. <순수한 기쁨>의 안재훈 감독도 <아장닷컴>에서 기획과 콘티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메이저 무대에 입성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비로소 무게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태권왕 강태풍>의 스톰 애니메이션과 <하얀마음 백구>의 마고21이 맡았다. 한마디로 경험 있는 제작진이 알차게 뭉친 것이다.
신화 속 캐릭터는 아기장수뿐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님프가 물방울 이미지로 그려졌고, 전설의 새 비익이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탄생했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아구, 얼굴을 되찾은 한국 도깨비, 토끼의 간을 잘못 빼먹은 탓에 토끼처럼 변한 용왕, 변태로 오인받는 제우스가 귀여운 SD 캐릭터로 등장한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피닉스, 큐피드, 골렘, 히드라, 로렐라이, 유니콘, 스핑크스도 볼 수 있다. 정령계에서 사이버 세계로 이동한 아장이 어떻게 인간계와 접선할 지는 사이트(www.a-jang.com)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봐도 될 것이다.
깔끔한 영상과 역동적인 움직임. <아장닷컴>은 7살에서 13살 어린이를 확실한 타깃으로 잡고 진행된다. 방영을 눈앞에 둔 지금, 이제 과제는 부대사업의 활성화다. 애초 다각적 구도를 노렸던 만큼 게임과 캐릭터, 온라인 사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더불어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적 제약에도, 탄탄하게 설정을 다지며 출발했으니 중반과 후반에 전개될 스토리 또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아장닷컴>에 의하면 모든 차원은 연결되어 있고 운명은 새옹지마처럼 바뀔 수 있다는 것인데, 원고 마감에서 도피하고 싶은 지금, 차라리 차원이 열리는 문을 찾으러 다니는 것은 어떨까 생각중이다. 그곳에는 부디 마감이 없었으면.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