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수다>에서 음악을 맡은 한재권은 장진 감독의 오랜 파트너이다. 그는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극단적 하루> 등의 영화뿐만 아니라 <박수칠 때 떠나라> <택시 드리벌> 같은 연극에서도 장진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도 한재권은 비교적 편안하게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스릴을 느끼게 하는 긴장어린 분위기에서부터 코믹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다양한 단면을 화면에 담고자 한 장진 감독의 의도에 발을 맞추고 있다.
계속되는 반전이 있기는 하나 음악의 대강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초반전에는 스릴러 분위기, 중반전에는 코믹한 분위기, 그리고 클라이맥스라 할 <햄릿> 상연장면에서는 웅장한 분위기. 끝에 가서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와 강렬한 록 비트의 혼합.
초반 스릴러 분위기의 음악은 관객의 심리를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깡패 두목인 탁문배의 의뢰를 받아 이루어지는 암살 과정을 그린 초반의 분위기는, 네명의 주인공들이 약간 깨는 애들이긴 하지만 실제 킬러라는 사실을 일단 관객에게 주입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음악도 약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긴장감 있게 처리됐다. 물론 음악에 조금 더 위트를 부여하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그렇게 하여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는 실제 킬러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라기보다 킬러라는 낯선 직업을 일상으로 끌고 들어와 거꾸로 우리 일상이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영화, 다시 말해서 일종의 ‘우화’라는 걸 음악적인 복선을 통해 암시하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나서 영화는 점차 킬러들의 일상성을 장진 특유의 독설적이고 썰렁한 유머가 담긴 대사들을 통해 보여주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음악은 초반의 분위기보다 눈에 띄게 가벼워지고 코믹한 느낌을 많이 보여준다. 때로 음악이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 어딘지 ‘드라마 음악’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있지만, 그건 오히려 관객에게 편안함을 안겨주는 특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햄릿>의 상연과 오영란이 의뢰한 연극배우 암살이 조 검사의 추격전과 함께 겹쳐지며 벌어지는 오페라 하우스 장면은 어쩌면 이 영화의 백미일 수도 있다. 영화의 일상성과 연극의 신화적 비극성을 오버랩시키는 이 대목에서, 영화음악은 그대로 연극음악이 된다. 한재권은 오케스트라적인 웅장함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이 대목을 무리없이 처리해냄으로써 영화음악과 연극음악 양쪽 모두에 경험이 많은 작곡가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영화에는 하드코어밴드 어비스의 강렬한 노래, 펑크밴드 레이지 본의 신나는 노래, 그리고 본 조비의 록음악 등 몇곡의 록음악도 삽입되어 있다. 다른 곡들도 꽤 괜찮지만 특히 자막이 올라갈 때 들리는, O.S.T에도 삽입돼 있는 레이지 본의 음악은 들을 만하다. 장진 영화의 묘미는 기지와 독설, 그리고 그뒤에 숨어 있는 따뜻함이라 할 수 있겠다. <킬러들의 수다>에서도 그러한 것을 표현해내는 그의 재능은 여기저기서 번뜩인다. 그런데 그 ‘여기저기’서 발휘되는 기지와 독설이 전체적으로 폐부를 찌르는 신랄한 메시지나 진한 감동으로 모아지는 걸 느끼기는 조금 힘들다. 그런 건 아마도 재능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음악 역시 약간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