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 북>은 제목 ‘그린 북’(흑인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이란 걸 충분히 예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연출은 <덤 앤 더머>(1994)를 비롯해서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와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2001) 등 특유의 코미디영화 연출로 잘 알려진 피터 패럴리 감독이다. 그동안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주제와 스타일을 고려하면 이번 영화 <그린 북>은 그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주제의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상반된 성격(바른생활의 교양과 우아함을 갖춘 완벽한 천재 피아니스트/원칙보다 반칙이 우선인 주먹만 믿고 살아온 다혈질 운전기사)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익히 보아온 전형적인 인물 설정으로 대략적인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린 북>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백인 운전기사 토니
인물 설정은 전형적인 <그린 북>, 낯섦은 어디에서 오는가
-
“아직 미완성이야.” 빅토르(유태오)는 마이크(로만 발릭)가 자신의 음악을 칭찬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어떤 방점도 없이 툭 던진 이 말이 유독 귀에 박히는 건 그가 빅토르 최이기 때문이며, 빅토르 최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완성형이자 완료형으로 너무 늦게 도착한 가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빅토르 최가 알려진 건 그가 죽고 몇해가 지난 뒤였다. 한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어지는 러시아의 추모 열기를 조명하면서 빅토르 최 붐이 일었다. 우리에게 빅토르 최는 요절한 천재 가수이자 영웅의 이미지로 박제되었다. 전파를 타고 들려오던 밴드 키노의 라이브 공연 장면은 선명하지 않은 음질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가사에도 나의 뇌리에 박혔다. 오래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가 당시 부른 노래 제목은 <여름이 끝났다>였다. <레토>는 끝나버린 여름을 다시 출발점에 불러 세운다. ‘여름이 끝났다’고 노래한 빅토르 최 이전에 ‘여름’을 노래한 또 다른 뮤지션 마이크를
<레토>, 미완의 노래를 완성한 것은…
-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라이빗 라이프>는 지난해 10월 5일 공개된 타마라 젠킨스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불임으로 고통받는 레이첼 비글러(캐서린 한), 리처드 그라임스(폴 지아마티) 부부는 전형적인 뉴욕 예술가 사회의 일원으로 “나이 마흔이 훌쩍 넘도록 여전히 임대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 경제적 불안 때문에 결정적으로 우디 앨런의 세계와 분리된다. 어쨌거나 영화는 아슬아슬하나마 끝까지 품위를 유지하려는 지식인의 태도로 불임 치료와 입양 절차를 동시에 전개해나간다. 그런데 뉴요커를 그린 많은 영화가 대사 중심의 서사적 디테일에 주력한 것과 달리, <프라이빗 라이프>는 영화적 장치와 리듬감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숏의 크기, 몽타주의 반복 등을 통해 <프라이빗 라이프>가 체득하게 만드는 삶의 지속태가 흥미로웠다.
인스타그램 사이즈와 풀숏
<프라이빗 라이프>는 두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오프닝 시퀀스로 나열한다. 가장 먼
<프라이빗 라이프>가 사생활의 클리셰를 마주하는 법
-
지난 2015년, 마이클 베이가 ‘워 룸’이라는 별명을 가진 라이팅룸을 운영한다는 풍문이 할리우드에 떠돌았다. 유능한 시나리오작가들을 고용해 한자리에 모아놓고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건 피치 못한 선택인 듯 보였다. 2014년 개봉한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4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 쏟아진 혹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 2007년 첫 <트랜스포머> 영화가 로봇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이래 이 프랜차이즈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명분 없는 액션 장면과 개성이 부족한 로봇 캐릭터, 지나치게 헐거운 플롯은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단점으로 누누이 지적돼왔지만 4편에 이르도록 해법을 찾지 못하고 지지부진했으니 그간 꾹 참고 영화를 본 관객의 인내심이 바닥날 법도 했다. 마이클 베이로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였다. 아니
<트랜스포머> 시리즈 안에서 <범블비>의 성취
-
-
기분 같아서는 <아쿠아맨>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지난 10년 동안 나온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영화 중 최고작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없이 쏟아져 나온, 같은 유니버스에 갇힌 비슷비슷하고 둔중한 코믹북을 각색한 할리우드영화들이 지금까지 어떤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는지 발랄하고 경쾌하게 정곡을 찌르며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분이 그렇다고 해서 고객의 요청을 멋대로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큰 그림에 무심한, 유니버스 속 성공작들
제임스 완의 <아쿠아맨>은 DCEU에 속해 있다. 이는 ‘The DC Extended Universe’의 약자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DC 확장 유니버스라고 번역한다. 매스컴에서는 DCEU가 MCU, 그러니까 ‘Marvel Cinematic Universe’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두 진영의 팬들에게 할리우드는 이 두 세력이 싸움을 벌이는
DC 확장 유니버스에 힘 실은 <아쿠아맨>, 하지만 유니버스 존속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
영화가 시작되면 현관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총을 겨눈다. <더 파티>는 이 강렬한 오프닝부터 제어장치가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70여분 동안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려간다. 그리고 집이라는 하나의 한정된 공간에서 리얼 타임으로 달리며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갈 비밀을 폭로하고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증폭시킨다. 파티에 초대된 어느 누구도 이로부터 숨을 수 없다. 마지막까지 등장하지 않는 마리안조차 말이다. 카메라는 경쾌하고 빠르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2.35:1의 클로즈업으로 우정, 사랑, 헌신, 배신, 회한, 의심, 위기, 투쟁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표정을 현미경처럼 가까이에서 관찰한다. 그것은 냉철하면서도 친밀하고, 지적이고도 열정적이며, 세련되면서도 원초적이고, 비극적이면서도 웃긴 시점이다. 샐리 포터는 이 시선을 ‘법의학적 친밀성’(forensic intimacy)이라 부른 바 있다.
검은색과 흰색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새삼 황홀하게 느끼게 해주는 이
<더 파티>, 샐리 포터의 작가적 스타일이 정점에 오른 영화
-
이래도 될까 싶었다. 다짜고짜 만화 프레임을 집어넣고 말풍선 내레이션이 끼어들고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등장할 때마다 코믹스 커버가 타이틀로 등장한다. ‘BOW’, ‘BooM’ 같은 타이포그래피 의성어가 그래픽으로 화면 한자리를 차지하고 위기를 알리는 스파이더 센서가 간단한 선 몇개로 처리된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이하 <뉴 유니버스>)를 보는 내내 적재적소의 만화적 표현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식의 파격적인 접근이 제대로 이해될까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중간에 킹핀의 에피소드가 짧게 처리되는 순간 문득 그게 다 쓸데없는 ‘지식과 관습의 저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쳤다.
겹쳐지는 세계
<뉴 유니버스>는 고갈되어가던 시리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코믹스의 인기 캐릭터이던 흑인 소년 마일스로 옷을 갈아입어 활력을 더함과 동시에 히어로 팀이라는 트렌드도 재치 있게 반영한다. 이 모든 신선한 변화의 동력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움직이는 그림(moving picture)이라는 오래된 미래
-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는 1896년에 초연한 이래 전세계에서 수천번 무대에 올랐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적은 거의 없다. <갈매기>가 무대에 최적화된 텍스트이고,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작품이기에, 영화화 할 엄두를 내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화는 매우 성공적이다. 마이클 메이어 감독은 19세기 희곡을 각색한 뮤지컬로 토니상을 받았던 관록을 십분 발휘하였다. 여기에 시나리오작가 스티븐 카람과 의상감독 앤 로스가 합류하고, 아네트 베닝과 시얼샤 로넌이 캐스팅됨으로써 드림팀이 완성되었다.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옮기면서도, 영화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다. 1900년대 러시아 코스튬의 완벽한 재현과 러시아 전원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4막에 해당하는 부분을 오프닝 시퀀스로 끌어오는 등 편집의 묘미를 살린 데다, 딱 떨어지는 클래식 음악의 사용으로 관객의 감정선을 매끄럽게 조율한다. 영화는 클로즈업을 활용하여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 각색한 마이클 메이어의 <갈매기>, 다른 듯 같은 서사를 따라서
-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하나의 장면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에피소드4 ‘황금빛 협곡’에서 한 사내가 노인을 총으로 쏜다. 쓰러진 노인을 보던 사내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새 한 마리가 창공을 비행하고 있다. 왜일까. 사내는 잠시동안 홀린 듯 새를 응시한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나도 홀린듯이 그들을 바라본다. 총구를 겨누던 긴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를 향한 아득한 시선만이 이 장면을 가득 채운다. 곧이어 사내가 시선을 거두고 노인에게 다가가자 그는 갑자기 죽음을 맞는다. 지극히 코언다운 죽음이다. 다만 그 직전에 등장한 새의 형상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매혹적이다. <카우보이의 노래>에는 이런 순간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누군가의 죽음의 직전에 찾아오는 미혹적인 순간들. 그것은 위기의 상황에 홀연히 등장하여 주인공의 넋을 낚아채고서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버린다. 그 장면들을 회상하며 <카우보이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시
코언 형제가 <카우보이의 노래>에 담고 싶었던 삶의 모습
-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국 복수의 이야기였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에게 고백한 밤, “마음 주지 말걸…. 처음부터 우릴 찾아오지 말지”라는 향숙의 한탄을 우연히 엿듣게 된 영주(김향기)가 바로 다음 장면, 커튼 뒤에서 나타나 승일의 침대 곁으로 다가갈 때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영주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 있는 승일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딸깍’ 하는 소리조차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잠시 후 서서히 포커스가 승일에게서 생명유지 장치로 옮겨가면 향숙에게 선물받은 영주의 머리 끈이 장치에 묶여 있다. 이상하게도 이 신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마치 스릴러영화의 한 장면처럼 촬영돼 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영주가 승일의 생명유지장치를 뽑고 (딸깍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소행’임을 알리기 위해 머리 끈을 남긴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지
<영주>, 영주가 왜 그렇게 고통받아야 했는지에 대해 영화가 더 생각했어야 하는 이유
-
세월호 참사 후 숱한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더없이 끔찍한 말 중 하나는 “내년 대학입시 경쟁률이 낮아져서 좋겠네”라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 인터넷 포털엔 “지금 단원고로 전학 가면 대입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도 올라왔다.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인간이길 포기해도 된다는 걸까. 괴물의 말임에 틀림없지만, 뒤집어보면 ‘좋은 대학 못 가면 인간대접 못 받는다’라는 인식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남을 밟아야 밟히지 않을 거라는 현실감. 현재 비정규직이 받는 대접이나 ‘을’의 처지를 떠올려보면, 이 현실감을 비난만 하고 넘어가는 건 사태 파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이 아닌 사회적 괴물이기 때문이다.
IMF 금융위기와 세월호 참사
<국가부도의 날>을 놓고 세월호 이야기부터 꺼낸 건 한국 현대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두번의 재앙이 IMF 금융위기 사태와 세월호 참사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괴물은 비참한 일이 벌어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국가부도의 날>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에필로그가 의미하는 바
-
상영이 끝나고 나서 생각하니 마음에 걸리는 장면 하나가 있다. 영화의 앞부분, 주인공 크리스티안(프란츠 로고스키)은 지게차 운전을 배우던 도중 선배인 브루노(피터 쿠스)를 밀치게 된다. 물건이 진열된 선반쪽으로 차를 돌린 것이다. 작은 실수인 듯 보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교육의 과정을 생각하면 머리가 오싹해진다. 마트의 지게차는 편리한 물건이지만 자칫 큰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지게차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이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 같다. <인 디 아일>은 캐릭터의 이름을 딴 3개 챕터로 진행되는 영화다. ‘크리스티안, 마리온, 브루노’가 각각 나열되는 에피소드의 명칭이 되고, 이들은 이후 3단계 고통의 주인공이 된다. 프로듀서는 영화를 본 뒤 관객이 ‘지게차를 통해 바다를 떠올리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전하는 멜랑콜리의 핵심에 물 속 울림이 자리하고 있다. 깊고 푸른 바닷속, 새벽녘 마트에서 흘러나오는 <아
<인 디 아일>, 정치적 시를 쓰는 영화
-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좋은 장면들은 종종 생략을 통해 완성된다. 코끼리를 말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부터 코끼리가 계속 생각나는 것처럼 어떤 장면들은 때론 보이지 않는 행간을 전달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수면 위에 뜬 몇몇 강렬한 장면이 시선을 빼앗을 때 수면 아래 잠긴 방대한 일상의 시간들, 잉여의 순간들, 프레임 바깥의 이미지들이 슬그머니 차올라 인식의 한구석을 점령하는 것이다. <툴리>는 독박 육아와 우울증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찰 보고서 같은 영화다. 출산을 소재로 한 호러영화라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이 영화가 낚아올리는 첫 번째 감정은 공포다. 육아의 의무를 홀로 떠맡는 무게.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되고, 영혼이 어떤 방식으로 고갈되며, ‘내’가 어떻게 지워져가는지, 엄마의 시점에서 반복되는 우울하고 지난한 노동의 시간.
급작스런 엔딩. 생략된 것들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엄마란 이름 위에 얹힌 유무형의 압력들이 있다. 어렴풋이 짐작은
<툴리>가 생략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독박 육아의 민낯
-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뷰티풀 데이즈>는 다큐멘터리 <마담B>(2015), <레터스>(2017), 극영화 <히치하이커>(2016) 등을 찍은 윤재호 감독의 극영화다. <마담B>에는 돈을 벌기 위해 탈북한 여성이 중국 농촌 총각에게 매매혼을 당한 뒤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탈북한 가족들을 만나는 사연이 나오는데, <뷰티풀 데이즈>는 전작의 굉장한 사연과 문제의식을 극영화의 방식 속에 절충하여 담고 있다. 영화는 탈북여성이 겪는 착취를 다양하게 그리지만 이를 신파나 <인간극장>의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알아가는 아들의 시선을 통해, 가부장적 통념이 놓치는 지점을 폭로해낸다. 영화에서 가장 신선한 점은 여주인공 캐릭터다. 그는 모성애적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다만 인간으로 책임과 의리를 다하고, 자기 삶을 갱신해나가려는 의지를 지닌다.
매매혼이나 성매매나 여성 착취라는 점에서
<뷰티풀 데이즈>, 착취 속에서도 책임의 주체를 다한 여성 캐릭터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