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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화라 당연히 긴장할 거라 예상했는데 4년의 경험과 경력 때문에라도 노련할 수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얘기한 게 거의 맞다. 왜냐하면 누구나 하는 말처럼 (겸손한 말투로 바꾸어) 첫 영화라 긴장됐고요,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신인의 자세로 봐주세요, 그런 것보다는 (본래의 말투로) 굉장히 열심히 했고, 이제는 감히 배우라는 이름을 쓰면서 첫 계단을 밟을 수 있게 돼서 행복하고, 촬영하면서도 행복했다. 드라마를 세 작품 했지만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와 시선이 있지 않나. 그런 게 많이 바뀌었고 이 영화를 통해서도 많이 바뀔 거다. 아, 저 사람이 저런 능력과 저런 욕심이 있구나, 연기에 대한 배우에 대한. 그런 것들이 보일 것 같다.
-연기자로서의 준비는 어떻게 해온 건가. 드라마 세편의 연기는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엄청난 노력과 준비의 결과일 것이다.
=실은 연기자로 데뷔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운이 좋아서 가수로 성공하고 배우의 길도 가려고 하는데, 글쎄 나는
이제는 겸손해지고 싶지 않다,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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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때 본 게 마지막인데 굉장히 밝아진 것 같다. 무려 3년이 흐르긴 했지만.
=나는 맡은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다행스럽게도 점점 더 외향적인 캐릭터를 맡게 된 것 같다. 처음보다. 그래서 그렇게 그들을 닮아가는 것 같다. <각설탕>이 아주 큰 작용을 했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최고 절정이 아닐까 싶다. 나조차도 하면서 이 정도까지 나 자신을 표현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영군의 캐릭터가 감정의 기복이 크다. 막 울다가 웃다가 화냈다가 좋아했다가. 그런 친구라 연기하면서 처음은 나와 많이 달라 걱정했는데, 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내 부분들이 많이 발견됐고 무척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정말 즐겁게 촬영한 것이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연기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라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조금은 그것을 떨쳐내고 나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래서 연기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그전까지
아직은 실험대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다, 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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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온 여자, 지구를 떠난 남자
마침내 개봉을 코앞에 두었다. <상두야, 학교가자!> <풀하우스> <이 죽일놈의 사랑> 등 세편의 드라마를 마치고 (<바람의 파이터>(2004)를 위해 가라테 훈련을 받던 시절도 지나) 첫 주연작이자 데뷔작을 소개하게 된 정지훈은 매우, 매우 노련하고 차분했다. 2002년 솔로 데뷔 이후 지금의 정지훈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미국(<타임> 선정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5월8일 발행), 영국(<타임스> 10월18일자, ‘The Billy Elliot of pop riding on a wave of success’)에서까지 주목받은 자타 공인 월드스타다. 그 같은 위치도 ‘신인배우’의 타이틀 앞에서 조금은 무력해지지 않을까 했으나 정지훈은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았다. 쌓아온 자신감과 노력에 대한 확신 그리고 아우라로, 새로 얻은 타이틀을 자신이 원하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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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정윤철 감독은 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치동 학원 강사로 지금쯤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달변가다. 소싯적에 전교 7등은 놓치지 않았을 날선 외모에서 쏟아져나오는 조리 분명하고 강약 확실한 문장의 추임새가 그 증거다. “원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로도 아인슈타인처럼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맺는 관성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근사한 말은 두 번째 증거다. 물론 첫 영화 <말아톤>으로 생각에 넘치는 성공을 거둔 정윤철 감독은 현재 대치동 학원 강사만큼 바쁘다. 한편의 영화를 막 개봉시켰고 또 한편의 촬영을 두달 전에 끝내고 편집 중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인권옴니버스영화 <세가지 시선>의 <잠수왕 무하마드>, 후자는 김혜수, 천호진, 박해일, 정유미가 출연하는 장편 <좋지 아니한家>다. 유독성 가스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알고보니 타이의 잠수왕이었다
<잠수왕 무하마드> <좋지 아니한家>의 정윤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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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를 꼽으라면 그건 단연 이한위일 것이다. TV에서는 낯익은 존재였지만, 영화로 치면 불과 몇년 전까지 아주 가끔씩만 등장했던 그가 최근 스크린 속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이한위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그해 <외출> <형사 Duelist> <박수칠 때 떠나라> <야수>에 등장했던 그는 올해 들어 <한반도> <예의없는 것들> <원탁의 천사> <거룩한 계보>에 이미 출연했고, 곧 개봉할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미녀는 괴로워>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에도 얼굴을 비친다. 현재 영화 <만남의 광장>과 <바르게 살자>를 찍고 있으며 TV드라마 <열아홉 순정>에도 출연하고 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 속에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기발한 코믹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미녀는 괴로워>의 배우 이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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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에서 막 뜯은 바비 인형처럼, 김아중의 외모는 비현실적이다. 가늘고 긴 팔다리에 어딘가 도도해 보이는 얼굴까지. 옷을 거듭 갈아입히고 액세서리를 바꾸고 동작을 정지시키면서 촬영을 하고 있노라니 인형놀이를 하는 듯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인형은 말까지 할 줄 안다. “사실 S라인이라느니 섹시하다느니 불렸는데 처음에는 왜 그런 식으로만 불려야 하는지 불만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감사해요. 결국 좋은 작품 한편이면 제 이미지나 연기에 대한 평가가 될 테니까요.”
김아중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좋은 작품’은 12월14일 개봉하는 <미녀는 괴로워>다. 95kg의 여성이 전신 성형수술로 쭉쭉빵빵 미녀가 된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코미디 <미녀는 괴로워>에서 그는 일생일대의 베팅을 했다. “제가 캐스팅 일순위가 아니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저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출연 결정을 했어요.” 특수분장을 통해 체중
똑똑한 미녀의 인형놀이,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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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필름마켓에서는 뜬금없는(?) 발표가 있었다.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호러영화가 시놉시스만으로 프랑스와 타이에 사전 판매됐다는 소식이었다. 김지운, 한재림 감독과 함께하는 옴니버스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서 <멋진 신세계>라는 40분짜리 중편영화를 찍는다는 근황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그는 새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을 투여했던 <남극일기>가 지난해 흥행에서 실패해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였건만, 임필성 감독은 오히려 3개의 프로젝트를 굴리며 의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동지’인 봉준호 감독의 강권으로 <괴물>에서 ‘뚱게바라’라는 역할로 출연하면서 ‘연기력’까지 보여준 그는 이제 <헨젤과 그레텔>의 본격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갔고, <멋진 신세계>의 촬영을 마무리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 프로젝트를 끝낸 뒤
호러영화 <헨젤과 그레텔> 준비 중인 임필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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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가 충무로 남자배우의 주요 공급처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다. 주연급으로 성지루, 박희순(김수로는 잠시 거쳐갔다)을 배출한 극단 목화는 특히 손병호 등 굵직한 성격파 배우의 요람인데 올해 돋보이는 건 김응수와 김병옥이다. 오랜 세월 대학로를 지키던 김병옥을 충무로로 본격적으로 끌어낸 건 박찬욱 감독이었다. <올드보이>의 유달리 과묵한 경호실장과 <친절한 금자씨>의 이상한 헤어스타일을 한 전도사로 나와 쏟아질 듯한 두눈으로 오싹함을 전달하던 이가 김병옥이다. 유달리 높은 전압을 발산하지만 또한 그 안에 숨은 이완된 너스레를 눈 밝은 감독들은 알아보았다. <그때 그사람들>의 육군본부 대령으로 나와 김 부장을 사지로 몰아갔던 그는 올해 <짝패>의 어수룩한 동네 청년회장 역을 맡아 연약한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냈다. 올해 충무로는 그의 어두운 뒷그림자에 조명을 밝혔다. <잔혹한 출근>에서 사채업자로 나오더니 <해바라기>에선 야
<잔혹한 출근> <해바라기>의 배우 김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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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두 남자의 하모니
<타짜>의 평경장과 <방과후 옥상>의 남궁달이 만났다. 그것도 부자지간이다. 주말 이른 아침, 공덕동의 뒷골목과 놀이터를 거니는 백윤식과 봉태규의 얼굴은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한 장면처럼 다정하다. 난간에 올라서는 사진기자에게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조심해”라는 백윤식의 걱정어린 음성도 평범한 아버지의 그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이혼녀 미미(이혜영)를 차지하기 위해 이종격투기로 대결하고, 이부자리에 서로를 묶고, 험담을 늘어놓는 불꽃 튀는 연적이기에 사진 촬영 중에도 묘한 긴장감이 언뜻언뜻 묻어나지만. 코미디언 밥 호프의 “웃음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고, 급기야는 희망으로 돌려놓는다”는 말처럼 그들이 보여주는 악다구니와 충돌은 관객에게는 그저 유머로 여겨질 터. “임상수 감독, 독특한 코믹 연기, 흥행의 안전판”이라는 공통분모의 두 남자는 충무로에서 일명 ‘연기파’로 불린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백윤식, 봉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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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달라도 인간은 공통분모가 있다”
신동일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방문자>는 영화과 시간강사 호준(김재록)과 신학도 계상(강지환)이 만나 서로 이해와 우정을 쌓아가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다소 껄렁해 보이기까지 하는 냉소적 지식인과 순수하고 강건한 종교론자가 우정을 맺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영화는 그걸 향해 고집을 세우며 나아간다. <방문자>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변화를 품으려고 하며, 보이는 서로의 간극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더 큰 이해의 연대에 다가서려 한다.
신동일 감독은 올해 두 번째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고 호평을 얻었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그의 인물들은 의외로 이해의 결렬 관계로 나아간다. 즉,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방문자>와는 정확히 반대로 신뢰를 쌓았던 두 친구가 어떻게 파국을 향해가는지를 다룬 영화다. 그의 두 번째 영화는 인물
첫 장편영화 <방문자> 개봉하는 신동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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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식 감독이 말했다. “두 배우가 이미 멋지고 예뻐서 내가 별로 할 게 없고, 공짜로 가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지난 8월 영화 <그해 여름>의 촬영현장 공개 때 여기저기 났던 기사들 중에 실린 멘트다. 감독의 말은 아마도 이런 속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았을까. 멜로영화 속의 이병헌과 수애, 같이 있기만 해도 말이 되고 그림이 되는 조합. 배우 이병헌과 멜로 장르의 궁합지수는 이미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확인해왔던 바이고, 배우 수애와 멜로 장르의 궁합지수는 (<가족> <나의 결혼원정기>에서는 명징하지 않았지만) 모 브랜드 커피CF만 보더라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녹음해서 간직하고 싶은 나지막하고 편안한 목소리, 뇌리에서 곱씹게 되는 다정한 말투, 벽에 붙여두고 싶은 그윽한 눈빛에 있어서 이병헌과 수애는 서로 닮기까지 했다. 두 사람에 관해 부정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의 속성은 멜로영화 <그해 여름>이 개봉하면 가장 큰
그림 같은 배우, 그림 같은 멜로, <그해 여름>의 배우 이병헌·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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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질의 도중 인터뷰에 응하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잠깐의 인사 뒤에 “국정감사 해야 하는데…”라고 말을 흐리더니, 상대가 인터뷰 준비를 하는 동안 중계 모니터를 보면서 문답을 체크하느라 정신없다. 오죽했으면 곁의 보좌관이 말상대를 자처하고 나섰을까. 국회 정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영주 의원. 3년 연속 국정감사 모범생으로 뽑힌 그는 올해에는 공정거래위원회 국감 때 거대 멀티플렉스의 독점에 대한 폐해를 지적해 영화계 안팎의 주목을 끌었다. 1970년대 중반 서울신탁은행 실업팀 농구선수로 활동했고, 1980, 90년대에는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을 지냈으며, 이제는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그를 만나 영화계까지 오지랖을 휘날린 이유를 캐물었다.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올해 국감에서도 초반부터 피감기관 이외의 이슈들까지 건드려 주목을 끌었는데.
=나보다는 보좌관들이 고생을 많
국감에서 멀티플렉스의 독과점 지적한 김영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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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머무르는 장소마저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배우들이 있다. 배우면 당연한 것 아니겠나 싶지만, 모두 그렇진 않다. 체화된 몸의 리듬, 나름의 철학과 믿음의 실현이 있을 때 그렇게 되고, 오광록이 그렇다. 조연으로 많이 등장한 오광록을 주연보다 더 뚜렷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도 영화 속에서 그가 만들어낸 ‘자기 무대화’의 독창적 능력 때문일 것이다. <잔혹한 출근>에서도 오광록의 자리는 분명하다. 만나보니 말도 연기의 리듬과 비슷하여서, 끝났나 싶어 물어보려 하면 다시 이어지고, 덧붙이나 싶어 기다리면 그냥 쳐다보고 있다. 특유의 굴곡이 있다. 오랫동안 시어와 함께 살아 그런지 어떤 답변은 거의 시적이다. 종종 쓰인 말줄임표는 더듬거리는 시간을 활자화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생각하고 말하는 시적 침묵의 시간을 대신하여 쓰였다. 최근 출연작 <잔혹한 출근>과 그 밖의 삶과 연기의 몇 가지에 대해 느리게, 느리게 오광록이 말한다.
-텃밭 가꾸기는 잘되고 있나
<잔혹한 출근>의 오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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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은 외로웠다. <공공의 적2>에서 강철중이 내지르는 교훈적 대사들은 공허했다. <사랑을 놓치다>의 우재의 눈빛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중무장한 설경구가 돌아왔다. “<열혈남아>를 기점으로 내가 잃었던 뭔가를 붙들어보려고 한다”던 설경구가 연기한 <열혈남아>의 재문은 제목처럼 ‘더운 피’로 그득하다. “직업은 조폭인데 별로 싸움도 안 해. 눈에 힘도 많이 안 주고. 그런데 좀 묘해”라고 눈앞의 설경구가 말한다. <역도산> <공공의 적2>를 마무리한 그는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8개월 동안 푹 쉬고 있을 때 <사랑을 놓치다>보다 <열혈남아>가 그를 먼저 찾아왔다. “아무 관계도 없는 세 사람의 관계가 일주일 만에 모두 변해버린다는 이야기야. 가슴에 뚫렸던 구멍이 메워지는 영화라고 할까. 죽이려는 상대를 바로 만났다면 후다닥 해치우면 그만인데, 죽일 놈 엄마가 중간에 딱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열혈남아>의 설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