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다큐공동체 푸른영상 대표,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 인디다큐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이상은 모두 김동원 감독을 수식할 수 있는 직책이다. 두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 <다섯개의 시선> 중 <종로, 겨울>을 만든 그를 만나, 다양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많은 감투(?) 중 어느 것 하나 그저 이름만 걸어놓은 것이 없는 까닭에, 어떤 질문에도 그는 허투루 답하지 못한다. 그는 <송환>의 인기 때문에 끈끈한 지인들과 본의 아니게 멀어진 푸른영상이 한결같음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부산국제영화제나 EBS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덕분에 입지가 좁아진 인디다큐페스티벌을 염려하며, 여전히 영진위 내부에 남아 있는 관료주의를 걱정한다. 글로 옮겨놓으니 마치 자신이 속해 있거나 책임지는 모든 조직의 고쳐야 할 지점만을 지적하는 엄격한 수장 같다. 그러나 그는 인연을 맺는 그 순간, 끝까지 함께할 수 있
<다섯개의 시선> 중 <종로, 겨울> 만든 김동원 감독
-
정초부터 ‘음침한’ 한겨레 사옥 옥상으로 걸음을 해야 했던 정준호는 (유수의 코미디영화에서 줄곧 보아왔던) 수더분하고 약간은 어수룩한 느낌의 인물이 아닌, 노련하고 젠틀한 사업가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95년 MBC 공채로 데뷔한 지 10년, 16개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자 영화사와 호텔, 그 외 여러 사업에 몸담고 있는 실업가가 된 그다. “개인적으론 <아나키스트>에서 맡았던 역할(이근)이 기억에 남는데 사람들은 <두사부일체>를 가장 많이 기억하시죠. 피트니스센터에 가면 어르신들까지 영화 재밌게 봤다는 말씀을 건네실 정도로.” 실제로 그가 사용한 단어는 ‘어르신’이 아니라 ‘회장님’이었는데, 피트니스센터에서 ‘체력단련’을 하다 회장님과 인사를 주고 받는 모습을 떠올리자, 본좌, 잠시 뜨악한 기분이 되었다. ‘어, 뭐으야?’하는 표정을 지으며 반쯤 입을 벌리고 ‘왜이래? 왜 이러세요?’라고 할 것 같은 두식이, 대서, 내지는 명수, 백두 등
노련하고도 편안한 솔직함, <투사부일체>의 정준호
-
<비트> <태양은 없다>의 시나리오 작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7년 반 동안 900명이 넘는 후학을 길러낸 시나리오 선생님,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공동대표 심산을 만났다. 그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DB 사업은 1년 반 동안 12편의 시나리오 계약을 성사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동안 영진위 공모전 당선작의 영화화 비율이 평균 5%선에 머물던 전례를 생각하면 시나리오 DB사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는 이 사업을 시나리오 마켓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오는 2월 국내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문을 여는 시나리오학교 심산스쿨에서 심산 작가와 나눈 시나리오 마켓에 관한 이야기.
-오랫동안 유지됐던 영진위의 기존 공모전과 제도적 변화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영화진흥공사 시절부터 시나리오 공모전의 목적은 작가의 발굴이었다. 임상수와 김기덕 같은 감독들이 이곳을 통해 입문한 점만 봐도 성과
시나리오 마켓 만드는 시나리오 작가 심산
-
장진 감독은 아침부터 시작한 이사가 채 끝나지 않은 듯한 K&J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삿짐을 푸는 사람답게 들뜨고 활기있어 보였지만, 그 생기가 이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장진 감독이 제작과 공동각본을 맡은 <웰컴 투 동막골>은 8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연출한 <박수칠 때 떠나라>도 관객 300만명을 넘기며 선전했다. 스스로 ‘호남 누아르’라고 정의한 신작 <거룩한 계보>도 벌써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요즘 “일에 미쳐 있다”는 장진 감독. 1월13일에 개봉하는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 개의 시선> 중에서 <고마운 사람>에 관한 기억을 청하고자 그를 만났지만, 대화는 수시로 방향을 바꾸어, 뿌듯했던 지난해와 촘촘히 들어찬 금년 계획에까지 이르렀다.
-<웰컴 투 동막골>이 대한민국 영화대상 작품상을 탔다. 수상무대에서 이 영화를 친북·반미 영화로 몰아갔던 사람들에게 뼈
<다섯 개의 시선>의 <고마운 사람> 연출한 장진 감독
-
-
잠깐 차이를 두고 도착한 설경구와 송윤아는 <사랑을 놓치다>라는 제목의 애잔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서로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짓궂게 장난을 걸고 흘긴 눈으로 받아치는 초등학교 아이들 같다고 할까, 혹은 속정을 툭툭 치는 말투로만 표현하는 오빠와 그 속을 알면서도 새침하게 토라진 척하는 누이동생 같다고 할까. <광복절 특사> 이후 두 번째로 만난 이들은 사실 처음 영화를 찍으면서는 서로를 그리 깊이 알지 못했다고 한다. 둘만 있는 대목은 고작 한두 장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선 연인이다. 대학 시절 짝사랑했으나 한번도 입 열어 좋아하노라 말하진 못했던 연수와 십년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다가온 연정에 당황해하는 그 짝사랑의 대상 우재. 영화는 두시간에 불과하지만 십년 애정을 응축해 표현해야 했던 설경구와 송윤아는 그처럼 당기고 밀어내며 가슴 태우는 사랑을 익혔나보다. 화사한 크리스마스 장식 앞에서, 꽃으로 꾸며놓은 그네 위에서, 설
<사랑을 놓치다>의 설경구 & 송윤아
-
수다쟁이라고나 할까. 진가신 감독은 상대가 기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염없이 풀어놓을 법한 사람이다. 홍콩 현지 프리미어 때 한차례 인터뷰를 가졌지만 서울에서 다시 2라운드를 가지게 된 데는 진가신 감독에게도, 아니 그의 수다 본능에도 책임이 있다. 당시 주어진 시간은 30분 남짓이었음에도 그는 홍콩과 중국의 영화시장과 범아시아 프로젝트 등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식견을 드러내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한번 시작된 이야기의 방향을 튼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결국 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을 시간은 거의 없었던 거다.
그의 입을 통해 얘기를 꼭 듣고 싶었던 영화는 <퍼햅스 러브>다. 정통 뮤지컬이라기보다 ‘음악을 곁들인 멜로드라마’라고 표현하는 게 올바른 이 영화는 그동안 진가신 감독이 만들어왔던 영화와 일맥상통하면서도 커다란 변화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세 사람의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를 밀도있게 다룬다는 점에서는 <첨밀밀> 같
뮤지컬 <퍼햅스 러브>의 진가신 감독
-
건강해진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입니까? 제가 요즘 독할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기사를 미리 읽고 인사치레로 하는 얘기는 아닙니까? <데이지> 촬영으로 타국 네덜란드에서 두달 내내 지내는 것은 별로 쉬운 일이 아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제대로 된 방법도 모르겠고 사실 재미도 없지 않습니까? 트레이너에게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도 자기가 좋다고 느껴야 좋은 법이라고, 운동도 그렇습니다. 이두 운동을 한다 치면 이 팔뚝 안에서 이두 근육이 벌떡벌떡 움직이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열심히, 밥 먹는 것처럼 습관이 될 때까지 운동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옆에서 보기도 지겹다” 할 정도로 집과 헬스클럽만 오가며 살았습니다(제 마음속은 나름 되게 바빴는데 남들은 몰랐나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잡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진자추처럼
다시 출발점에 선 여배우의 고백, <데이지>의 전지현
-
<와일드 카드>의 김유진 감독과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이미 정진영을 캐스팅해두었다. 그들은 모두 “믿는다”는 간결한 문장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믿는다, 그를 믿는다. 파고들자면 숱한 파동으로 쪼개어질 수도 있을 답이었지만 묻는다는 게 구차한 듯도 싶었다. 믿음에 단서를 달아보아야 무엇하겠는가. 누군가 믿는 배우라는 사실만 마음에 새기고선, 10년 전에 영화배우로 데뷔했지만, 왠지 그보다 오래 있어온 듯한 정진영을 만나러갔다. 매니저도 코디네이터도 없이 혼자 다니는 정진영은 소박한 차림새였고, 몇 차례 인터뷰를 하며 단골이 되었다는 카페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친근했다. 냉정하고 지적인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이미지도, 마음을 붙일 데가 없어 홀로 헤매는 연산의 추운 고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왕의 남자>와 연산군을 두고 이야기하는 그는 여전히 매서운 데가 있었다. 정진영이 다시 친절한 아저씨의 모습이 된
<왕의 남자>의 연산군 역 정진영
-
권상우는 솔직하다. 권상우를 만나본 기자들은 그를 ‘가장 시원하게 얘기하는 배우’ 중 하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권상우 앞에서는 부러 예의 바른 인사성 멘트를 읊지 않아도 된다. 올 한해, 유독 구설에 많이 오른 그를 만나면서 ‘말조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작은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야수>의 권상우가 이전과 달라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는 <천국의 계단>이나 휴대폰 CF에서처럼 매끈하니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동갑내기 과외하기> 때처럼 치기어린 소년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성장한 모습의, 아주 아주 어두운 버전처럼 보였다. 악과 싸우기 위해 자신 안에 더 큰 악을 키워야 하는 외로운 남자처럼…. 쿨함보다 처절함이 어울리는….
<야수>는 특수효과가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날것의 액션으로 가득한 영화다. <야수>에서 권상우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성깔
솔직해서 더 매력적인 남자, <야수>의 권상우
-
정말이지, 나도 이런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걸레짜기, 애들 싸움 구경하기 등 소소한 일상 속에 존재하는 엄연한 싸움의 기술, 삶의 기술을 농담처럼 건넨다. 그러나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물총놀이를 하다보면 지옥 같은 일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신한솔 감독의 데뷔작 <싸움의 기술>은 학원폭력에 시달리는 병태(재희)가 독서실에 은둔한 미스터리한 싸움 고수 판수로부터 한수 배워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 여타의 고수들과 마찬가지로 제자를 들이는 것이 영 마뜩잖고, 그럼에도 자꾸만 불쌍한 청춘에게 마음이 가는 이 매력적인 스승 판수로, 백윤식이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백윤식의, 백윤식을 위한, 백윤식에 의한 캐릭터라 불러도 좋겠다. 캐스팅 뒤 백윤식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모두 다시 썼다는 감독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윤식은 <지구를 지켜라!> 이후, 충무로의 패기만만한 젊은 감독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캐스팅 1순위가 됐다. 감독들
<싸움의 기술>의 싸움 고수 오판수 역 맡은 백윤식
-
언니가 돌아왔다. 장진영에 대한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다. ‘언니’라는 호칭이 손위의 여성을 향해야 하는 거라면, 혹은 허물없이 가까운 지인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장진영을 그렇게 부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장진영에겐 같은 여성이기에 감지할 수 있는 ‘언니스러움’이 있다. 그가 <소름>에서 보여준 연기의 깊이나 <싱글즈>에서 체현한 독신녀의 희로애락에서 연기를 넘어선 삶의 내공 같은 것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함께 수다 떨고 싶고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지는 이웃집 언니의 품, 그런 친근함. “작품뿐 아니라 제 실제 모습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안티가 별로 없는 걸 보면, 제가 ‘비호감’은 아닌가 봐요. (웃음) 너무 여자이려고 노력하거나,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요.” 장진영이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 박경원이 되었다는 영화 <청연>의 소식은,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았다. 이 언니, 이제 형님으로 거듭나겠구나, 하는 예감이 잠시 머리를 스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로 남다, <청연>의 장진영
-
배우 이정재가 해군장교 강세종의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했다. <태풍>의 실질적인 개봉을 하루 앞둔 화요일 오후, 평소 그가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이 건물은 이정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크런키’ 광고를 제작했던 광고사 사무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배를 따라 인사나 하려고 들렀던 사무실에서 그는 초콜릿 광고의 주연으로 발탁됐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바특하게 잘렸던 머리칼도, 검게 탔던 피부도 사라지고 하얀 얼굴로 돌아온 그는 긴장한 기색없이 케이크를 먹고 차를 마시며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간간이 터지는 활짝 웃는 웃음도 여전했다. 열네 번째 출연작 <태풍>을 말하는 충무로 11년차 이정재의 이 배우가 살아가는 법. 그리고 이 남자가 살아가는 법.
-2004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필모그래피에 빈칸이 생겼다. <태풍>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것이 언제였나.
=지난해 3월에 시나리오 1고를 받았다. 사실 <태풍
<태풍>의 배우 이정재
-
때로는 영화 한편이 한 국가의 영화산업을 뒤흔들어놓는다. 러시아산 판타지영화 <나이트 워치>(Ночной Дозор)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이트 워치>는 수세기 동안 전쟁을 치러온 빛과 어둠의 대변자 ‘나이트 워치’와 ‘데이 워치’의 보이지 않는 전투를 다루는 판타지영화. 2004년 러시아에서 개봉한 이 작품은 약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러시아 흥행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고, 쿠엔틴 타란티노를 위시한 서구의 영화광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재발견되었으며, 이십세기 폭스에 의해 영어로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러시아의 첫 번째 블록버스터라는 영예를 발판 삼아 러시아판 <반지의 제왕>을 꿈꾸는 티무어 베크맘베토프와의 대화.
※인터뷰는 티무어 베크맘베토프가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지난 7월에 성사되었다. 현재 그는 모스크바의 어스름 속에서 후속편인 <데이 워치&g
러시아 최초의 블록버스터 <나이트 워치>의 티무어 베크맘베토프
-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개봉하는 <파랑주의보>는 바닷가 마을에 사는 두 고등학생의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다. 차태현은 “거제도의 풍광이 아름답게 담긴, 자극적인 양념을 많이 안 친 영화”라고 설명한다. <파랑주의보>는 멜로영화로서 소재나 드라마의 개성이 딱히 뚜렷하지는 않다. 일본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맘만 먹으면 결말도 알 수 있다. 차태현의 수호는 순수하고 귀엽고 심성 착한 아이라는 점에서 배우의 이전 모습들과 닮아 있다. 송혜교의 수은은 남자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라는 점에서 역시 배우의 이전 모습과 닮아 있다. 이미지를 바꾸어가는 커다란 작업에서 두 사람은 물 흐르듯 하고 싶어한다.
차태현/ 요새는 인터뷰하면 그거 물어보더라. 만날 코미디하다가 <새드무비> <파랑주의보>로 멜로 두편 연달아 찍으니까 멜로영화 많이 찍는다고. 예전에 코미디 찍을 때는 계속
<파랑주의보>의 차태현 & 송혜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