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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원해진다. 선남선녀란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속의 킹카 퀸카와는 뭔가 다른, 선계(仙界)에서 온 듯한 남과 여의 조우. 정우성과 김태희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상상 속 공간 ‘중천’의 두 주인공이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들은 조동오 감독의 판타지 무협액션영화 <중천>에서 이승에서의 사랑을 사후세계에도 이어가는 커플로 등장한다. 열렬히 사랑하던 두 사람 중 세상을 먼저 뜨는 것은 연화(김태희)다. 그녀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곽(정우성)은 어느 날 괴이한 기운에 끌려 중천 속으로 떨어지고 두 사람은 재회한다. 하지만 이곽이 만난 것은 연화가 아닌 소화다. 중천으로 오면서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은 연화는 소화라는 이름의 천인이 된 상태. “판타지적인 요소나 액션보다 중요한 것은 이곽과 소화 또는 연화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라는 조동오 감독의 말에 따른다면 결국 <중천>을 이끌어가는 핵심은 두 배우의 멜로 연
선남선녀의 로맨틱 홀리데이, <중천>의 정우성,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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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운동을 많이 한다는데, 원래 좋아했나.
=의무감으로 시작했는데 요새는 재미를 붙였다. 헬스 트레이닝을 한다. 되게 고독한 운동이다. 그런데 나랑 맞는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단순하게 하나를 꾸준히 하는 건 힘들지만, 그 순간을 이길 때의 쾌감이 있다. 끝내고 샤워할 때. 그러면 술도 많이 마실 수 있고. (웃음)
-<조용한 세상>은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다양성에 굶주려 있을 때였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와 비슷한 시기에 결정했는데, 영역 확장을 하고 싶었다. 청춘물을 하고 싶지만 이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 아쉬움이 쌓였었나보다.
-어떤 청춘물을 하고 싶었나.
=춤영화를 하고 싶었다. 살이 맞닿을수록 인간은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는데, 춤이 영화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원래 춤을 좋아하나.
=매일 나이트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웃음) 대학교 1학년 때인
오래 가고 싶다, 그래서 갈 길 멀다,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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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는 말이 없는 사람이어서 자기 마음이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처럼 말없이 상처를 표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서 가장 대사가 적었기 때문에 몸으로만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는 문제를 많이 고민했다. 그냥 보기만 했는데도 사연이 묻어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지 않나. 나는 모니터를 보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집중을 하고 감독이 컨트롤하는 대로 따라가려고만 했다. 주변 사람도 관찰했고. 스탭 중에 내가 ‘가을이’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었는데 정말 가을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궁금하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외로워 보이고 사연이 많아 보였을까.
-아직도 모니터를 보지 않는 건가.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불안할 때도 있을 텐데.
=그건 내가 개발한 나만의 방법이다. 나는 내 얼굴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이런 표정을 하면 여자들이 죽었지(웃음), 하는 걸 모두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 매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연기엔 답이 없다. 그래서 연기가 좋다, 김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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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과 박용우는 영화 <조용한 세상> 안에서 그리 자주 마주치지는 못했다. 두 남자는 어린 여자아이들만을 납치하여 살해하는 범인에게서 착하고 맑은 아이 수연을 지키고자 하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싸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고요한 세상에 머무는 사진작가 정호(김상경)는 위탁아동인 수연 곁에서 아이를 돌보고, 게으르고 허술해 보여도 반장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김 형사(박용우)는 비정한 도시를 헤매며 연쇄살인의 흔적을 추적하는 것이, 각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나란히 스튜디오에 도착한 김상경과 박용우는 정호와 김 형사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던 <조용한 세상>의 지난한 과정을 생략하고선 눈빛만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마지막 순간만을 가져온 듯 다정했다. 편안한 스웨터 차림으로 이어폰을 나누어 음악을 들으며 고등학생처럼 깔깔댔고, 역시 어른인지라 진지한 표정으로 술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비법을 논하고는 했다. 그들이
1%가 다른 두 친구 이야기, <조용한 세상>의 김상경,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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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40년 전 사랑을 되밟아가는 <그 해 여름>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사랑이 시대의 폭압 때문에 깨져버리는 아픔을 담고 있다. 스무살 초반에 겪었던 그 짧은 사랑은 순수하고 안타까운 기억으로 봉인되어 60살이 된 남자의 눈에서 여전히 눈물이 나게 한다. 조근식 감독의 데뷔작 <품행제로>(2002)가 우리의 학창 시절에 관한 기발한 화술의 회고였다면 <그 해 여름>은 멜로 세계의 규칙을 크게 뛰어넘지 않는 익숙한 방식의 추억담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 장편을 개봉하고 난 조근식 감독을 만났다.
-편집 기간은 얼마나 됐나.
=개봉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보니 그리 여유롭진 못했다. 한달 정도?
-편집할 때 포인트를 둔 부분이라면.
=개봉하고, 결과물을 보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기자와 평론가들이 좋아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품행제로>에 비해서 뭔가 새롭고 자극적이고 재치있고 기발한 걸 기대했다면 이번 영화
두 번째 장편 개봉한 <그 해 여름>의 조근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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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개봉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스포츠다큐멘터리는 더욱 드물다. 그런데 임유철 감독은 그걸 밀어붙였다. 월드컵 때면 온 나라가 붉은 물결을 이뤄도 K리그에는 냉담한 현실. K리그 중에서도 돈없고 백없어서 늘 선수를 뺏기고 연습구장을 찾기 위해 전국을 전전해야 하는 시민구단 인천유나이티드팀을 주인공으로 장편다큐멘터리를 만들더니 결국은 개봉까지 했다. 그의 영화 <비상> 속 인천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 이하 선수들 역시 무모하기로 치면 뒤지지 않는다. 지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팀에 감독대행으로 부임한 장외룡 감독은 대뜸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랍시고 내놓고, 스타 플레이어 하나없는 팀의 선수들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쟁처럼 그라운드에 서는 이들을 전쟁처럼 카메라에 담은 사연을 듣기 위해 임유철 감독을 만났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 영화동아리 영상촌 활동을 하면서 각종 시위대를 비디오카메라에 담을 당시만 해도 문화학교 서울 등의 시네마테크 활동가들을
인천유나이티드 축구팀 다룬 다큐멘터리 <비상>의 임유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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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왔다. 올 겨울 엄정화는 시끌벅적한 두개의 선언문으로 막을 올렸다. 순결한 척하는 자들이 신곡 <Come 2 Me>의 무대를 향해 내뱉은 단발마가 수그러들기도 전에, 대니얼 헤니와 공연한 로맨틱코미디 <Mr.로빈 꼬시기>가 개봉을 알려온 것이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궁금하나 그녀는 언제나처럼 세련되게 무심하다. “음, (3초간 숙고) 특별히 힘든 게 있나 뭐. 7집이랑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함께 내면서도 그랬으니 처음도 아니고. 사실 둘을 동시에 가자는 계획은 아니었다. 9집 음반을 여름에 내놓을 생각이었는데 촬영이 딜레이되면서 음반도 늦어진 거다.” 별다른 설명없는 이 말은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자신이 있다는 조용한 배짱이기도 하다.
운좋게도, 사람들은 스크린에서의 엄정화와 쇼 무대에서의 엄정화를 철저하게 구분해서 받아들인다. 엄정화의 9집 앨범 <Prestige>와 영화 <Mr.로빈 꼬시기&
언니가 왔다, 의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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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1919∼98). 한국 영화사의 가장 기이한 천재 중 한 사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김기영 회고전을 파리에서 연다. 11월29일부터 12월24일까지 생전에 만든 32편(22편만 존재) 중 18편을 상영하는 최대 규모다. 김홍준 감독은 김기영과 지금의 세대를 잇는 오마주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파리로 들고 갔다. 김기영 감독의 조감독을 할뻔한 김지운, 송일곤 등 생전에 근접조우를 했거나, 황학동 시장에서 김기영의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던 봉준호 등 그에게 열광하는 22명의 감독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것을 김기영의 매혹적인 영화적 순간을 중심으로 짠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기적’이라고 회고하고 신재인은 ‘또라이’라고 증언하지만 이들 모두는 김기영을 향한 사랑을 나름의 방식으로 간증한다. 김홍준 감독은 이 작품에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 주요 감독들의 무의식에 김기영의 세계가 영향을 끼쳤다는 ‘무의식의 상상된
고 김기영 감독 오마쥬 다큐멘터리 만든 김홍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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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청춘의 후일담”인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로 김중기는 처음 얼굴을 알렸다. 그러고 나서 독립영화의 주연을 지나 충무로의 조연계 진입을 시도하는 것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는 겉돌았다. 배우로서의 매력으로 평가되기보다는 학생운동의 기수로 활동했던 경력이 더 많이 알려지는 이상한 장애가 뒤따랐다. 그러나 2002년 <선택>에서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역을 해낸 뒤로 그의 연기가 짐을 좀 덜었다는 느낌이다. 김중기가 올해 들어 맡은 역은 악한 자이거나 나사 풀린 자다. 그게 꽤 잘 어울린다. 갑자기 그가 스타급 배우가 된 것은 아니지만, 배우의 기초적인 살림이 의미가 아니라 본능이라고 가정할 때 요즘 들어 생생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강적>에서 이미 악역을 한번 했고, 11월 말 같은 날 개봉한 두편의 영화에도 굳이 선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조연으로 출연한다. <그 해 여름>에서는 취조실의 형사로 잠깐 나와 극의 정서가 뒤바뀌는
<아주 특별한 손님> <그 해 여름> 배우 김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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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화라 당연히 긴장할 거라 예상했는데 4년의 경험과 경력 때문에라도 노련할 수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얘기한 게 거의 맞다. 왜냐하면 누구나 하는 말처럼 (겸손한 말투로 바꾸어) 첫 영화라 긴장됐고요,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신인의 자세로 봐주세요, 그런 것보다는 (본래의 말투로) 굉장히 열심히 했고, 이제는 감히 배우라는 이름을 쓰면서 첫 계단을 밟을 수 있게 돼서 행복하고, 촬영하면서도 행복했다. 드라마를 세 작품 했지만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와 시선이 있지 않나. 그런 게 많이 바뀌었고 이 영화를 통해서도 많이 바뀔 거다. 아, 저 사람이 저런 능력과 저런 욕심이 있구나, 연기에 대한 배우에 대한. 그런 것들이 보일 것 같다.
-연기자로서의 준비는 어떻게 해온 건가. 드라마 세편의 연기는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엄청난 노력과 준비의 결과일 것이다.
=실은 연기자로 데뷔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운이 좋아서 가수로 성공하고 배우의 길도 가려고 하는데, 글쎄 나는
이제는 겸손해지고 싶지 않다,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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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때 본 게 마지막인데 굉장히 밝아진 것 같다. 무려 3년이 흐르긴 했지만.
=나는 맡은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다행스럽게도 점점 더 외향적인 캐릭터를 맡게 된 것 같다. 처음보다. 그래서 그렇게 그들을 닮아가는 것 같다. <각설탕>이 아주 큰 작용을 했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최고 절정이 아닐까 싶다. 나조차도 하면서 이 정도까지 나 자신을 표현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영군의 캐릭터가 감정의 기복이 크다. 막 울다가 웃다가 화냈다가 좋아했다가. 그런 친구라 연기하면서 처음은 나와 많이 달라 걱정했는데, 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내 부분들이 많이 발견됐고 무척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정말 즐겁게 촬영한 것이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연기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라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조금은 그것을 떨쳐내고 나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래서 연기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그전까지
아직은 실험대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다, 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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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온 여자, 지구를 떠난 남자
마침내 개봉을 코앞에 두었다. <상두야, 학교가자!> <풀하우스> <이 죽일놈의 사랑> 등 세편의 드라마를 마치고 (<바람의 파이터>(2004)를 위해 가라테 훈련을 받던 시절도 지나) 첫 주연작이자 데뷔작을 소개하게 된 정지훈은 매우, 매우 노련하고 차분했다. 2002년 솔로 데뷔 이후 지금의 정지훈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미국(<타임> 선정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5월8일 발행), 영국(<타임스> 10월18일자, ‘The Billy Elliot of pop riding on a wave of success’)에서까지 주목받은 자타 공인 월드스타다. 그 같은 위치도 ‘신인배우’의 타이틀 앞에서 조금은 무력해지지 않을까 했으나 정지훈은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았다. 쌓아온 자신감과 노력에 대한 확신 그리고 아우라로, 새로 얻은 타이틀을 자신이 원하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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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정윤철 감독은 감독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치동 학원 강사로 지금쯤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달변가다. 소싯적에 전교 7등은 놓치지 않았을 날선 외모에서 쏟아져나오는 조리 분명하고 강약 확실한 문장의 추임새가 그 증거다. “원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로도 아인슈타인처럼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맺는 관성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근사한 말은 두 번째 증거다. 물론 첫 영화 <말아톤>으로 생각에 넘치는 성공을 거둔 정윤철 감독은 현재 대치동 학원 강사만큼 바쁘다. 한편의 영화를 막 개봉시켰고 또 한편의 촬영을 두달 전에 끝내고 편집 중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인권옴니버스영화 <세가지 시선>의 <잠수왕 무하마드>, 후자는 김혜수, 천호진, 박해일, 정유미가 출연하는 장편 <좋지 아니한家>다. 유독성 가스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알고보니 타이의 잠수왕이었다
<잠수왕 무하마드> <좋지 아니한家>의 정윤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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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를 꼽으라면 그건 단연 이한위일 것이다. TV에서는 낯익은 존재였지만, 영화로 치면 불과 몇년 전까지 아주 가끔씩만 등장했던 그가 최근 스크린 속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이한위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그해 <외출> <형사 Duelist> <박수칠 때 떠나라> <야수>에 등장했던 그는 올해 들어 <한반도> <예의없는 것들> <원탁의 천사> <거룩한 계보>에 이미 출연했고, 곧 개봉할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미녀는 괴로워>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에도 얼굴을 비친다. 현재 영화 <만남의 광장>과 <바르게 살자>를 찍고 있으며 TV드라마 <열아홉 순정>에도 출연하고 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 속에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기발한 코믹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미녀는 괴로워>의 배우 이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