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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지난호에 이어 두 번째 서신이 도착했다. <유레루>에 관한 질문과 답으로 채워졌던 첫 번째 서신에 이어 이번에는 <괴물>이 화제의 중심이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마치 자신의 영화처럼 내밀하고 조용한 어법으로 <괴물>의 이모저모를 물었고, 봉준호 감독은 거기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첫 번째 편지에서 서로 안부를 물었던 두 감독, 이번에는 편지를 뜯자마자 바로 질문과 답을 건넨다. 그러고나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아쉬웠는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더 전하고 싶지만, 그것은 다음에 직접 만나서 말하고 싶다”고 첨언을 전했다. 그건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경을 떠나 신뢰하는 두 영화감독이 서로의 영화에 대해 진심으로 묻고 답하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걸 읽는 즐거움도 크게 다르진 않다. 두 감독이 다시 만나 못다한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바라면서 <괴물>과 <유레루>, 봉준호와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두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괴물>의 봉준호 감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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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하우스>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을 4월10일 LA에서 만났다. 12년 만에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 해도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두 사람은 살가운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두 사람이 그간 꾸려온 삶과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레이크 하우스>에서의 호흡에 대해 들어보았다.
연인으로 출연하기에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은 쉽게 그림이 그려지는 커플은 아니다. 12년 전 <스피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더더욱. 12년 전 <스피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함께 액션을 하는 장면이 마지막 키스신보다 더 강렬해서, 두 사람이 <레이크 하우스>의 원작 <시월애>의 두 주인공 이정재와 전지현처럼 멜로영화에 어울리는 ‘꽃 같은’ 느낌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은 옷차림에 말수가 적은 키아누 리브스와 막힘없이 활발한 성격에 시종일관 이야기를 늘어놓는 샌드라
<레이크 하우스>의 샌드라 불럭,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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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유레루>. 봉준호와 니시카와 미와. 언뜻 상상이 안 가는 대구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서로의 열성 팬이고, 또 그들의 신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래서 반신반의했다. 게다가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봉준호 감독은 에든버러영화제에 가 있어야만 했다. 어차피 안 될 일 같았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시간을 쪼개 <유레루>에 관한 질문들을 꼼꼼하게 작성해 서면으로 보냈고,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거기에 정성스럽게 답했다. 그렇게 묶어놓고 보니 오히려 요즘은 보기 힘든 귀한 서신 왕래의 모양이 되었다. 국경을 넘어, 영화의 색깔을 넘어 오간 이 편지는 충분히 정겹고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씨네21> 다음호에는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괴물>에 대해 묻고 봉준호 감독이 답한 내용을 실을 예정이다.)
To 니시카와
봉준호 감독이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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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기다리는 자리에는 밀회(密會)에나 어울릴 법한 부적절한 긴장이 흘렀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소설 <환상의 여인>이 생각났다. 그 책에는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오렌지색 모자를 쓴 여자가 나온다. “낮게 매달린 원유회의 제등처럼” 실내를 비추는 그녀의 모자를 사람들은 못 본 체하지만 사실은 곁눈질하고 사로잡힌다. 고현정의 ‘모자’는 극적인 과거다.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로 인기를 얻은 고현정은 걸출한 드라마 <모래시계>(1995)의 윤혜린 역으로 기립박수를 받은 직후 재벌 3세와 결혼했다. 진주 단추를 턱밑까지 촘촘히 채우고 완강히 눈을 내리깐 신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미모를 떨치고, 재능을 인정받은 다음, 부(富)까지 얻자 사라져버린 셈이다. 젊고 아름다운 시신을 남기고 요절한 스타는 오로지 그리움을 남긴다. 그러나 소멸하지도 않은 채 불멸의 후광을 빌려입은 이에 대해 사람들은 어딘지 불공정하다는 감정을 품는다. 2003년 말 이혼한 고현정은 20
여우야, 女優야 뭐하니, <해변의 여인>의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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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뉴욕에서 <네버 포에버>를 촬영 중이다. <시간>의 개봉 전까지 한국에 오지 못할 거라는 소식을 먼저 전해 들었다. 그러다 그는 이미 촬영이 끝난 <구미호 가족>의 후반작업을 위해 잠깐 들어왔다. 그리고 짬을 내 <시간>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나눠 써야만 가능한 그 바쁜 스케줄이 그의 요즘 인지도를 쉽게 말해준다.
하정우가 눈에 깊이 들어온 건 물론 <용서받지 못한 자>의 태정으로 나왔을 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좀더 두고보아야 확신이 들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주연을 맡은 영화였고, 그 한 편의 호연으로 판단한다는 건 주저되는 일이었다. 주변의 몇몇이 보내는 그런 호감으로서의 보류를 하정우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가 지금 바쁘게 자신을 내몰고 있는 것도 이제부터 나를 더 주목해야 할 거라는 자기의 존재증명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 점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 다음 출연작으로 김기덕
<시간>의 배우,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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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운 여자”라는 말이 저절로 입속을 맴돌았다. 소파에 몸을 기댄 까무잡잡한 피부의 신애라는 드라마 속 친숙한 이미지와 무척 다른 모습이었다. 차인표의 아내. 여덟살난 아들 정민이와 지난해 12월 입양한 딸 예은이의 엄마. 사실 많은 기사들이 그녀의 매력이나 연기력보다 아내 그리고 엄마라는 꼬리표를 더 부각하곤 했다. 1989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 2005년 3월 드라마 <불량주부>에서 남편 대신 돈벌이에 나선 ‘최미나’로 출연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신애라. 사실 17여편의 드라마를 거친 그녀의 경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그녀가 아빠없이 자란 소년의 유년을 그린 여인광 감독의 데뷔작 <아이스케키>로 처음 영화에 도전했다. 충무로에 첫걸음을 디딘 여배우의 자의식은 얼마나 충만할까. 17년차 배우의 공고한 직업관을 캐내겠다는 각오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그것이 오산임을 곧 깨달았다. 연기 역시 삶의 일부임을 일러주던 그녀의 똑 부러지는 목소리
<아이스케키>의 신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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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겠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신하균의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은 점점 더 호기심을 부추겼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그를 햇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회사 옥상에 세워놓았다. 더위에 약하다더니 포즈를 취하는 그의 이마와 콧잔등 위에 연신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배경을 정리하느라 잠시 촬영이 중단됐을 때, 이 모든 소란 속에서 신하균은 태연히 노래를 불렀다. 주변에는 들리지 않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술만 달싹거리며 흥얼흥얼. 그때 그는 4차원 세계에서 이곳으로 툭, 내던져진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그의 입속에서 맴돌았을 그 무형의 가사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냥 혼자 지어낸 노래일 뿐이다.” 줄기찬 물음에도 말은 않고 씩 웃는다. 곤란한 상황이 닥쳤을 때 신하균의 대처법, 웃기. 입술이 반원을 그리고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할 때, 그는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 틈을 타 잽싸게 질문을 던지면 자기 얘기를 조금 풀어
침묵에 진심을 담아, <예의없는 것들>의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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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균 감독이 2000년 <청춘> 이후 6년 만에 찍은 신작 <사랑하니까, 괜찮아>는 아마도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밝고 활기있는 영화일 것이다. 열아홉살에서 스물한살에 이르기까지 짧은 사랑을 담은 <사랑하니까, 괜찮아>는 순애보와 불치병을 포개놓은 진부한 멜로드라마를 선택했지만, 죽음과 눈물에 매이기보다는 한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삶을 긍정하고자 한다. <겨울나그네> <젊은날의 초상> 등에서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젊은이들을 그렸던 곽지균 감독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기에 오십이 넘은 지금에야 청춘을 가장 빛나는 시절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일까. 창문 활짝 열어놓고 혼자 지낸다는 대전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잠시 묶어두고 나눈 대화는 <사랑하니까, 괜찮아>뿐만 아니라 그의 젊은 날과 중년에 이르러 겪게 된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6년 만에 영화를 찍었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는 많은 변
<사랑하니까, 괜찮아> 곽지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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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탕과 임수정. 새하얀 각설탕에는 비현실적인 매력이 있다. 반듯하게 떨어지는 입방체의 형태, 티끌 하나없는 순백은 순수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임수정이 그렇다. 세월의 무중력 행성에서 찾아온 듯 소녀의 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이 그렇고, 남 모를 비밀을 하나쯤 감추고 있을 것 같은 묘한 아우라가 그렇다. 죄책감이 빚어낸 마음의 감옥에 갇혀버린 <장화, 홍련>의 수미, 외로움과 상처를 가슴속 깊은 곳에 꾹 눌러안은 <…ing>의 민아, 언제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 위태로워 보였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은채. 임수정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언제나 순수함과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조숙한 소녀들이었다. <각설탕>은 임수정의 매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공했다. 흙투성이 더벅머리에서 묻어나는 소년의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라는 낯선 동물과의 조화.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드는 각설탕처럼 임수정은 동물과 사람이 하나로 교감하는 달콤한 마
난 푸른 하늘이 될거야, <각설탕>의 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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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감독은 학창 시절 남들 앞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죽도록 싫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 갈라치면 그는 속으로 줄곧 번민했다. “나는 지금 여기 왜 있는 것일까? 그냥 일어서는 게 옳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계속 앉아 있는 난 도대체 뭘까?” 하지만 그러다가 돌아가며 노래라도 부르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그는 고뇌를 멈추고 화장실로 가서 노래할 곡의 제일 높은 음을 연습해 만전을 기한 다음 자리로 돌아왔다. 대학에서 연극을 하고 영화감독이 되면서 많이 변하긴 했지만 지금도 이재용 감독은 완곡어법의 추종자다. 대놓고 거절을 못하다보니, 심지어 어떤 제의를 사양하러 나갔다가 종국에는 후속 회의를 주재하는 입장이 되어 어리둥절한 채 귀가하는 일도 있다.
<정사> <순애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침착하게 균형의 지점을 찾아가는 영화였다. 그들은 일견 명명백백해 보이는 영화였지만, 여민 옷자
네 번째 장편 <다세포 소녀> 개봉하는 이재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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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들어보지 못한 그 말을 당신은 어디서 들은 것인가?” 기자간담회 장소에서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프로듀서이자 지브리 스튜디오의 현 사장인 스즈키 도시오가 일본에서의 평은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다는 한 한국 기자의 질문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면서 그렇게 다시 반문했다. 잠시 긴장이 흐른다. 그 순간, 프로듀서의 옆자리에 앉은 감독 미야자키 고로의 표정에 얼른 시선이 간다.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아무 경력도 없는 그가 저런 대쪽 같은 노장들과 어울려 첫 데뷔전을 치러낸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는 침착하고, 예의있고, 상황을 주시할 줄 아는 것 같다. 그게 명망있고 고집스러운 노인네들과 함께하는 그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게드전기…>의 감독 미야자키 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다. 그러나 서른아홉의 늦은 데뷔 감독은 가족사를 잠깐 말할 때를 제외하곤 “아버지”라는 호칭 대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호칭으로 일관했다. 거기에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미야자키 고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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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인가. 들어서자마자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 촬영 때문에 수면 부족을 호소하더니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펄펄 난다. 피곤하다는 투정은 그저 인사말이었나 보다. 사진기자에게 어떤 느낌을 원하느냐고 꼬치꼬치 따져묻고선 곧바로 몰입이다. 언제든 꺼내마실 수 있는 활력수라도 있는 걸까. 잠깐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눈을 붙이기는커녕 김옥빈은 끊임없이 흥얼거리고 몸을 놀린다. 그것도 과하게. 예쁘다는 사진기자의 말에 코믹만화 캐릭터처럼 두손을 앞에 모으고 ‘헉헉’하질 않나, 한때 다녔던 권투도장 관장님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손짓 발짓 써가며 들려주질 않나. 그러다가도 카메라 들이대면 딴 사람처럼 갖가지 표정을 선보이니. 저 주체 못할 끼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렇죠.”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뜨고 있는 <다세포소녀>의 ‘흔들녀’ 동영상도 “음악을 들으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이상한 체질 때문에 가능했다고. “다들 그래요. 멀리서 저를
얼짱소녀의 무궁무진한 호기심, <다세포소녀>의 김옥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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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 <분홍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그리고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에서 보고 ‘들었을’ 영화가 된 <왕의 남자>. 2005년 한해 동안 음악감독에 이병우라는 이름을 올린 영화는 네편에 이른다. 연주자의 꿈을 못다 이룬 피아노 선생님과 어린 피아노 천재가 들려주는 교감과 성장의 앙상블 <호로비츠를 위하여>, 이제 막 뚜껑을 열어 보인 따끈한 화제작 <괴물> 등 올해 개봉작까지 2년 사이 여섯편의 영화에 꼭 어울리는 감성의 음계를 세심하게 조율해온 이병우. 1984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피로한 일상의 한순간에 위안처럼 떠올리곤 하는 조동익과의 듀오 ‘어떤날’의 섬세하고 다감한 시정, 기타리스트로 발표한 5장의 솔로 음반들에서 기타의 현 사이를 절묘하게 오르내리는 연주로 펼쳐 보이는 풍부한 음률의 탐색, 하나하나 파고들자면 몇 시간을 들여도 모자랄 그의 음악 세상에는 이제
<괴물>의 음악감독 이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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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男은 정부란 뜻이다. 유부녀와 정을 두고 깊이 사귀는 남자. <황산벌>의 거시기와 <마파도>의 순박한 형사를 연기했던 이문식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데 정(情)보다 더 적합한 글자가 있을까. 의미의 역설. 그의 얼굴엔 사전적 정의 따윈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순진무구한 웃음이 있다. 1995년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의 ‘달수 친구2’로 스크린 데뷔해, 이후 수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쟁터에 끌려온 농사꾼(<황산벌>), 말만 하면 핀잔 듣는 조폭(<라이터를 켜라>) 등 어리숙한 역할들을 도맡아왔다. 양아치, 조폭 등 인물의 외양과는 달리 풍겨나는 흙냄새, 이 둘의 조합을 그는 아이러니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양아치 역할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양아치, 조폭 같은 인물들을 혐오한다. 살아오면서 피해를 본 것도 있고, 참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연기 인생이
거시기의 힘찬 도약, <플라이 대디>의 이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