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시대>가 끝났다. 이별의 씁쓸함을 간직한 채 마주선 은호와 동진의 망설임을 지켜보던 지난 두달. 맹렬하게 달려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16부작 미니시리즈의 두텁고 촘촘한 결 속에서 우리는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빌었고, 그 안에 녹아 있는 넉넉한 여백은 매 순간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졸음처럼 나른한 열병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심한 열병을 앓았던 주인공은, 평범해서 애틋한 드라마 속 인물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아닐까. 사실 남녀주인공뿐 아니라 극중 등장인물 모두를 향한 시선이 유난히 따스했던 <연애시대>는 이혼한 부부 은호(손예진)와 동진(감우성), 동진의 친구 준표(공형진), 은호의 동생 지호(이하나)를 비롯해서 심지어 엑스트라의 연기까지 빛나는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우들 중 단 한명만을 지금 이 시점에서 만나야 한다면, 이 사람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손예진은 언제나 연애 중이었다. 그간 출연한 모든 드라마와 영화에서
종영 직후 처음으로 만난 <연애시대>의 손예진
-
조인성 <씨네21> 표지 촬영 현장 스케치 및 인터뷰 동영상 보기
낯설었다. 조인성이 조폭, 그것도 삼류 조직의 2인자란다. 애써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건 아닐까 하는 근심이 생긴 것은 조인성이라는 이름에 흔히 덧씌우곤 하는 ‘꽃미남’이라는 얄팍한 수사 때문도, 몇몇 드라마에서 맡았던 ‘부잣집 아들’ 역할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순수함이 뇌관처럼 존재했다. 비뚤어진 척 잔뜩 날을 세우다가도 한순간 폭발하듯 울음을 터뜨리며 가슴속 가장 여린 부분까지 무방비로 내보이고 마는 순수함. <발리에서 생긴 일>의 재민이 그랬고, <봄날>의 은섭이 그랬다. 사람들은 그 정제되지 않은 ‘선함’을 사랑했다. 떼인 돈을 받아내기 위해 노련하게 파렴치한 수단을 동원하는 <비열한 거리>의 삼류 건달 병두는 그 대척점에 놓여 있었고, 단번에 건너뛰기엔 그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티저 예고편을 보았을 때, 의아함은 단호한 충격에
완성을 향해 한걸음씩,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
-
지난 겨울 강원도의 인적 드문 계곡에서 원신연 감독은 행복해 보였다. 점심으로 나온 육개장 국물을 숟가락으로 뜨면 모조리 바람에 날려갈 정도의 혹독한 추위가 계속됐지만,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드는 그 현장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는 수십명에 이르는 제작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독의 지독한 열정을 배우며 스탭에게 온전히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완성될 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현장 취재 이후에 더욱 커졌다. 그로부터 몇 개월의 후반작업 기간. 여제자를 꼬시겠다는 일념으로 서울 변두리를 찾은 음대교수와 이들을 접대하는 동네 토박이들이 벌이는 폭력의 난장판이라는 만만찮은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의 편집본이 구타가 아닌 구토를 유발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뒤. 5월31일 개봉을 앞둔 <구타유발자들>이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구타유발자들>의 시나리오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된 지 2년. 자신의
<구타유발자들> 원신연 감독
-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지수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혜진과 닮았다. 당당하고 발랄하지만 변두리(혹은 시골)지역으로 떠밀리듯 이사오는 캐릭터. 자신만은 그 곳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들의 인간다움에 마음을 여는 지수와 혜진. 이 두 여인은 어딘가 모르게 엄정화와도 비슷하다. <눈동자>를 부르며 섹시하게 도발했던 그녀는 KBS 드라마 <아내>에서 한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여인을 연기했고, <오로라 공주>에서는 (뒤틀린 방식이긴 했지만) 딸에 대한 끔찍한 모성을 보여줬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통해 다시 한번 ‘색다른 모성 연기’에 도전한 엄정화,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머리가 짧아졌다. 영화 촬영 끝나고 자른 건가.
=그렇다. 나는 항상 영화가 끝나면 머리를 자르는 버릇이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끝내
<호로비츠를 위하여>로 다시 모성 연기에 도전한 배우 엄정화
-
-
外 피도 눈물도 없는 짝패가 만났구나. 장소는 서울 근교의 황량한 폐건물과 잡초 무성한 야산이렷다.
內 류승완과 정두홍이 만났구나. 장소는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의 으리으리한 박찬욱 감독집. 그 옆에 붙어 있는 서울액션스쿨과 잡초 무성한 뒷마당이렷다.
外 오늘 그들의 미션은 거대한 암흑의 조직으로 급습하는 것이렷다. 얼굴엔 상처 가득하고 주먹엔 힘줄 빳빳하니 쌈박질할 준비는 날 때부터 다 되얏다.
內 오늘 그들의 미션은 <씨네21> 표지 사진을 찍는 것이렷다. 거참 붉게 상기된 표정이 쑥스럽기 그지없구나. 분장한 상처와 반창고는 자꾸 떨어져내리니 이를 어찌할꼬.
外 까만 정장 반드르르 걸치고 들판에서 호령하니, 짝패 앞엔 천하에 무서운 놈 하나 없구나.
內 해는 중천에서 쪄대는데 검은 정장은 흡성대공으로 자외선을 쑥쑥 흡수하는구나. 원 참 뜨거워서 모델 노릇 못하겠다는 표정 못 보여드려 죄송하구나.
外 정두홍은 눈빛으로 벚꽃을 떨구고, 류승완은 이단발차기로 매화를 떨구니,
피도 눈물도 있는 액션 짝패, <짝패>의 류승완, 정두홍
-
<상상플러스>의 ‘유행어 제조기’ 탁사마를 만났다. 도산공원 근처 카페 한켠에 앉은 탁재훈의 얼굴은 주말마다 축구를 하는 탓에 검게 그을어 있었다. 출연작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는 전국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상상플러스>의 시청률 고공행진도 여전하다. 2005년 말 탁재훈은 KBS 연예대상에서 쇼·오락 부문 MC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예능의 달인’으로 인정받았다. 충무로에서도 <가문의 위기…> <맨발의 기봉이>를 통해 ‘색깔있는 흥행 조연’으로 검증받은 그는 <강철선생>과 <내 생애 최악의 사내>에 캐스팅됐고, 처음 주연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유능한 엔터테이너로 살아남은 비결과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고백을 1968년생 늦깎이 배우 탁재훈에게 들었다.
-<가문의 위기…>를 마쳤을 때 영화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그 심경은 변하지 않았나.
=다 털어버리고 배우만
<상상플러스> MC·<맨발의 기봉이>의 여창 역 맡은 탁재훈
-
일착은 막내 정유미였다. 화사하게 틀어올린 앞머리에 금색 핀을 꽂은 그가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종달새처럼 조잘거린다. 어두웠던 스튜디오가 오월의 정원처럼 밝아진다. 순서대로 오기로 약속한 걸까. 두 번째로 늘씬한 공효진이 성큼성큼 들어선다. 얼굴이 CD만한 그는 소주잔을 호쾌하게 털어넣듯 툭툭 말을 건넨다. 드디어 문소리가 왔다. “컨셉이 이게 뭐야? 우리가 안 예쁘다는 거야”라고 볼멘소리로 농담하는 큰언니 앞에 사람들이 움찔한다. 그는 불만을 표시할 때도 솔직하지만, 진행도 시원시원하다. “소풍이니까 앉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문소리의 제안에 <가족의 탄생> 버전 ‘풀밭 위의 점심’이 탄생한다.
“영화 찍기 전에는 언니가 진짜 무서운 줄 알았다.” 공효진의 한마디. “야, 그거 봉태규가 퍼트린 헛소문이야.” 문소리의 대답. 소품으로 쓰인 와인을 열면서 세 여자의 입담도 열렸다. “아, 맛있는 안주 가져올게.” 휑하고 사라진 문소리가 도시락통을 들고 돌아왔다. 깨가
<가족의 탄생>의 문소리, 공효진, 정유미
-
영화보다 감독이 더 좋다. 텍스트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더 괜찮다는 이야기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야말로 영화는 별론데 그걸 만든 사람은 영화보다 좀 낫다는 평가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에릭 쿠의 영화들을 보고 그를 만난 뒤의 느낌은 틀림없이 영화보다 감독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는 위와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그가 가진 잠재력이나 에너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이 이제까지의 영화들을 완성태라기보다는 미래에 놓인 단단한 디딤돌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자산이 많다. 부유한 집안에서 예술적 취향을 가진 어머니의 지원을 받고 자라 마음 깊숙이 기댈 곳이 있다. 또 네명의 아들이 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이 흔히 맹세하듯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사랑하는 포메라니안 강아지도 있다. 또 광고회사도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죽어라 하고 상업영화를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유머 감각도 뛰어나고, 친화력은 A플러스다.
한옥 미장 센느에
김소영 영상원 교수가 만난 <내 곁에 있어줘>의 에릭 쿠 감독
-
올해의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오프사이드>는 이란과 바레인의 월드컵 예선전이 벌어지는 동안, 금녀(禁女)의 장소인 축구경기장에 들어가려는 소녀들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그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울타리 안에 갇혀서 자신들을 감시하는 군인들과 티격태격하면서 맞선다. 그러나 작은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향하던 소녀들과 이들을 호송하던 군인들은 결국, 이란이 바레인을 이겼다는 소식에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 한마음으로 축제를 즐긴다.
<오프사이드>를 연출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키아로스타미의 연출부 출신이다.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모습을 담은 그의 데뷔작 <하얀 풍선>에는 대선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후 그는 사회의 모순을 정직하게 바라보거나(<순환> <붉은 황금>)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거울>)을 선보이면서 자신의 영화가 단순히 선배의 전략을 답습한 것이 아님을 쉼없이 증명
<오프사이드>로 전주영화제 찾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
-
올 초 <사생결단> 촬영지 부산에 놀러갔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는 바닷가 폐공장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사나운 바닷바람이 부서진 벽 사이로 들이쳤고 숨을 쉴 때마다 먼지가 뿌옇게 끓어올랐다. 매서운 밤공기를 겨우 텐트가 막아주고 있었고, 최호 감독은 조용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찍는 게 <사생결단>이 아니라 <후아유> 같은 세련되고 조용한 멜로인 것 같았다. 류승범이 간간이 정적을 깨는 농담과 활기찬 걸음소리를 들려줬을 뿐이다. 최호 감독의 취재일지에서 아주 심한 발냄새가 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얼마나 구두 밑창이 해졌는지 훔쳐볼걸 그랬다. 평단과 관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데도 그는 담담했다. 월드컵 때마다 간헐적으로 겨우 세 작품을 만든 것에 대해 스스로를 가리켜 월드컵 감독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때 윙윙거리며 살을 파고들던 겨울바람보다 최호 감독의 속이 더 독하고 강했던 것 같다. 거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머리 세고, 수줍게 인
<사생결단> 감독 최호
-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사진촬영을 하기로 약속했다. 차승원은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지난주부터 계속된 목감기 때문에 급히 병원에 다녀온 길이라 했다. 한가한 오후 땡볕이 필요한 사진이었는데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차승원은 본론부터 물어왔다. 본의 아니게 늦었지만 전체 일정에는 차질이 없게 해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제가 알아서 잘 할 수 있습니다. 모델 10년, 영화배우 10년을 합쳐 20년을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있으면서 그는 효율과 효과의 법칙들을 많이 체험한 듯하다.
법칙 하나, 될 만한 것에는 목맨다
“홍보 활동을 예로 들면, 나는 될 만한 것에는 목을 매서 하는 성격이다. 가짓수는 몇개 안 된다. 될 법하지 않은 것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맡기면 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다 하라고 하면 그건 아니란 말이다. 그럼 나는 어느 순간 확 놓아버린다.”
될 것에 매달려 최선을 다하는 차승원은 다가올 미래를 종종 내다보
<국경의 남쪽> 배우 차승원이 살아가는 법칙
-
1-1-2-3-5-8-13-21…. <다빈치 코드>의 개봉을 앞둔 톰 행크스(50)의 커리어는 한 숫자가 앞의 두 숫자를 합한 값과 같은 피보나치 수열을 연상시킨다. 시트콤에서 출발해 견실한 코미디언으로 자리를 굳힌 그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어우러진 페니 마셜의 드라마 <빅>과 <그들만의 리그>, 노라 에프런의 로맨틱코미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스타성을 공인받았고 이어 승부수를 던진 <필라델피아>(1993)와 <포레스트 검프>(1994)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따내면서 일약 할리우드의 거물로 도약했다. <댓 씽 유 두>(1996)로 시작한 감독 경력도 톰 행크스는 지극히 안전한 방식으로 가꿨다. 성공을 거둔 출연작 <아폴로 13>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뿌리를 둔 TV 프로젝트 <지구에서 달까지>(1998),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를 통해 연출
Mr. 할리우드, 루브르에 가다, <다빈치 코드>의 톰 행크스
-
이재용은 강한 인상을 가진 배우다. 나직하고 무게있는 목소리를 지닌 그는 <지구를 지켜라!>의 그로테스크한 형사와 드라마 <야인시대>의 미와 경부, <친구>의 위협적인 깡패처럼 악역이나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그에겐 다른 모습도 있었다. 한때 구국을 외치던 엘리트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택시기사 아내에게 얹혀사는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의 ‘이 선생’은 집착이나 폭력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마르고 날이 선 듯한 외모를 비집고 떠올랐던, 허영도 있지만 따뜻하고 유머러스했던 중년 남자. 이재용은 영화 <도마뱀>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의 모습과는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주인공 아리(강혜정)의 삼촌인 서정 스님은 부모 잃은 어린 조카가 여인이 되기까지, 한 걸음 거리를 두었지만 넉넉한 애정으로 감싸안아, 운명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인물이다. 불혹을 넘긴 이재용은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더
<도마뱀> 배우 이재용
-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쓰리 몬스터> <달콤한 인생> <너는 내 운명>…. 영화사 봄(대표 오정완)이 최근 3년 동안 제작한 작품 목록이다. 줄곧 화제작을 뿌리며 충무로의 고급 부티크로 불리던 봄에 ‘의아스런’ 변화들이 잇따르고 있다. 순수 작가주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봄에서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해변의 여인>을 만든다거나 송일곤 감독이 로맨스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첫 번째다. 영화사 봄과 감독 둘 중에 어느 쪽이 심경 변화를 일으켰거나 애초부터 우리가 몰랐던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이 영화 한다더라, 아니다 엎어졌다’ 등 소문만 무성하던 고현정의 첫 번째 영화가 <해변의 여인>이란 소식이 그 뒤를 이었다. 그 사이 ‘충무로 법률고문’이던 조광희 변호사가 영화사 봄의 (사실상의) 부사장으로 가기로 했고, 이유진 대표 프로듀서가 독립해 ‘영화사 집’을 차렸으며, 안수현 프로듀서
<해변의 여인> 제작하는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