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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가 온전한 승리가 아니고, 패배도 완전한 패배가 아니다. <묵공>에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마치 실생활과 같다. 삶이라는 건 평탄하게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혁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내가 목표했던 이상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미래,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 속에서 승자를 가린다면 누구를 지목하고 싶은가.
=영화 속에선 승자가 없다. 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 속에선 모두가 패배자다.
-혁리는 서부극의 페이소스 많은 주인공을 닮았다. 훌쩍 나타나 누군가를 구하려 애쓰고, 많은 사연을 남기고 떠나간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냄새를 풍기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중국적 상황에 더 가깝게 묘사했다. 혁리도 좀더 중국적인 인물이다.
-모처럼 구슬이 잘 꿰어진 아시아 합작영화가 나왔다. 요즘의 한국은 아시아시장을 겨냥한 합작에 힘쓰고 있는데 어떤 점이 중요할까.
=제작자가 합작을
아시아의 영웅, 홍콩의 연인, 유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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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료원, 네이버, <씨네21>에 이르기까지 필모그래피가 천차만별이다.
=사실 나도 몰라. (웃음)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에 의하면 아역이 71편이라던데. 커서 한 게 일흔 몇편. 정리를 해야겠다 싶다가도 다른 사람이 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어. (웃음) 일전에 여성영화인의 밤시상식에 갔어. 이경희 여사님이 공로상을 받았거든? 그래서 <모정>이라는 영화를 상영했어. “저거 나 아니야?” 했는데 나더라고. (웃음) 내 두 번째 영화. <황혼열차> <모정> <초석> <눈 내리는 밤>까지는 내가 기억해. 여섯살 먹은 나를 스크린에서 보니까 우리 아들 어렸을 때가 생각나더라고. 둘째놈이 내 모습을 많이 가졌거든. 지금 중학교 2학년인데 나하고 비슷해.
-선친께서 제작을 해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하는 분들이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들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코미디영화를 하나 했는데 구봉서, 곽규석 선생님이 자주 오셨지.
국민배우, 아시아의 한국대표,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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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편에 출연한 1952년생 한국 배우, 141편에 출연한 1961년생 홍콩 배우. 두 남자는 <맨 인 블랙>처럼 검은 양복 차림으로 2006년 말미의 겨울밤 <씨네21>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야구라면 장훈과 왕정치, 축구라면 박지성과 나카타 조합이라 할까. 현실에서 마주친 <묵공>의 주인공 안성기와 유덕화는 무던한 형과 개구쟁이 동생 사이처럼 보인다. 바특하게 자른 머리칼의 유덕화는 스튜디오에 흐르는 자신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필름 더미를 뒤적인다. 촬영 내내 ‘선생’이라 부르던 선배 안성기에게 자투리 필름을 내미는 유덕화, ‘무슨 영화’인지를 묻는다. 엘리베이터에서 안성기에게 “<무간도> 다음 편에 출연하기로 약속해요”라고 농담을 건네던 장난기 넘치는 모습 그대로다. 촬영이 시작되고 호랑이처럼 카메라를 응시하는 유덕화와 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안성기의 표정이 조화롭다. 촬영장에는 또다른 귀한 손님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다큐
국가대표 영화배우의 밤, <묵공>의 안성기+유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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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손해보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있다
나직한 음색과 차분한 말투는 듣는 이를 안심시키는 자신의 음악과 비슷했다. 허진호, 김태용, 박흥식, 류장하…. 동료로서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서로를 ‘호수형’이라 부른다는 감독들의 영화를 위한 맞춤음악을 만들어온 음악감독 조성우.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잔잔한 호수보다는 거센 풍랑이 계속되는 망망대해에 가깝다. 그는 영화에서 사용하는 음악, 엄밀히 말하면 삽입곡의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전무하던 시기부터 창작음악을 고집했다. 작곡가로서의 영화음악가의 입지가 전무하던 시기부터 개인이 아닌 회사 차원의 작업을 도모하여 후배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편집본을 던져준 뒤 터무니없는 기간 안에 음악작업을 마칠 것을 요구하는 풍토에서 감독과의 지속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한 것은 물론이다. 음악인이 아니라 영화인으로서 영화음악을 만들겠다는 신념은 돌아보면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건 아니었다. 조성우 음악감독과 그가 이끌고 있는 영화음악
영화 7편 투자·제작하는 음악감독 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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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멈추어졌다. 17년. 창살 안에서 젊음을 소진한 남자는 변해버린 세상, 유예되어 있던 사랑의 기억과 마주한다. “아주 특별한 멜로가 탄생했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정원>은 시대의 아픔을 찬란한 사랑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다.” 임상수 감독의 전작들을 보며 특유의 ‘불편함’ 탓에 ‘저 감독 작품에는 출연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던 지진희는 <오래된 정원>의 시나리오를 접하며 망설임을 걷어냈다. 임상수식 재해석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이야기도 매력적이었지만, 혈기왕성한 청년부터 반백의 사내까지 “정말 할 것이 많다”는 점이 그를 이끌었다. “칭찬이건 질책이건 확실하게 하는 임 감독님의 명쾌한 스타일이 좋았다. 느끼한 반찬만 먹다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마시는 기분이랄까. (웃음)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게, 신나게 놀다온 것 같다.”
어린 시절 신촌에 살며 최루탄 냄새를 맡곤 했다는 지진희는 ‘운동’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세대다. “대학 신입생 때 이대 앞을 나
만개를 기다리는 남자의 향기, 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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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이란 걸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시나리오가 재미있다, 없다 그런 건 생각할 여유가 없고 임상수 감독님이 찍는 영화라는 것 때문에 사실 한 거죠. 임상수 감독님이 멜로를 찍는다, 벗는 거 없다. 임상수 감독님이랑 너무 일해보고 싶은데 벗는 게 없다. (웃음) 그런 게 제일 컸죠. 그리고 원작이 정말 유명한 소설이란 걸 알게 됐고. 다른 건 더 재볼 게 없었어요.” 염정아가 <오래된 정원>을 택했던 까닭은 이렇게 명쾌하다. 그 시원시원한 믿음에 답하듯, <오래된 정원>에서의 염정아는 씩씩하고 밝은 여인 한윤희로서 정말 곱다. 오현우(지진희)의 기억 속에 남은 ‘오래된 정원’의 볕 좋은 안뜰, 가장 아름다운 풍경. “제가 원래 기다리는 거에 굉장히 예민해요. 그래서 메이크업이랑 헤어할 때도 동시에 같이 하게 하거든요. 안 그러면 두배로 기다려야 하니까. 근데 이번 영화 현장에서 그 기다림을 참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조명에 너무 신경을 써주시
기다리는 여자의 현명한 선택, 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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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의 사랑, 그리고 17년의 이별. <오래된 정원>은 80년대 격변하던 한국사회의 질곡에 관한 초상인 동시에, 아픈 시대를 넘어 울리는 사랑 노래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지하조직의 일원으로 도피생활에 들어간 현우는 은거를 도와준 여자 윤희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녀를 뒤로한 채 감옥에 갇히고 만다. 끝내 살아 재회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그러나, 윤희가 남긴 낡은 일기장과 캔버스를 통해 비로소 조우한다. 황석영의 원작 소설이 때론 내달리고, 때론 휘감으며 섬세한 문체로 전했던 사랑의 음영을 스크린에 오롯이 옮겨놓은 것은 지진희와 염정아. 세월의 굽이를 지나 다시 한번 공명할 수 있었던 현우와 윤희처럼 지진희와 염정아는 2002년 <H>로 호흡을 맞춘 뒤 4년 만에 나란히 한자리에 섰다.
<H>를 찍을 때만 해도 파릇한 신인이었던 지진희는 어느새 ‘한류 스타’가 되었고, 염정아 역시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 등 쉬
짧은 만남, 긴 이별, <오래된 정원>의 지진희, 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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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까지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집에서 송년회를 했다. 열명이 채 되지 않는 회사 식구들을 모두 초대해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대접했다. 그런데 올해는 불가능하다. 아이필름 대표로 자리를 옮겨서다. 챙겨야 할 이들만 서른명이 넘는다. 바깥에서 회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직원만 늘어난 게 아니다. 라인업도 대폭 늘었다. 누군가는 2007년의 아이필름을 두고 제2의 싸이더스FNH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마술피리에서 개발하는 작품을 제한다고 해도 굴러가는 작품만 10여개다. 얼마 전엔 시네마서비스로부터 5편의 투자·배급 약속까지 받아냈다.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굳이 크리스마스에 인터뷰하자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여담 하나. 사진기자의 남편이 물었단다. “오늘 같은 날 누구 인터뷰해?” “영화사 대표.” “그 사람은 가정이 없어?” “없어.” 내년 이맘때도 그는 외로움을 태우는 대신 시나리오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지 않을까.
-성탄 전야엔 뭐 했나.
=종일 잠만 잤다. 그 전
아이필름·마술피리 대표 오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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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용어 중에 ‘코미디 릴리프’(comedy relief)란 말이 있다. 영화 속에 코믹한 장면을 삽입해 극의 긴장을 늦추는 것이다. 팽팽했던 이야기는 웃음에 진동하고, 작은 쉼표가 파장의 뒤를 잇는다. 숨죽였던 장면들이 안도(relief)의 한숨을 내쉬는 동안, 영화는 가벼운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고소영이 코미디를 들고 나타났다. 도도하고 섹시하며 당당했던 그녀가 복고 냄새가 진동하는 핑크색 가죽재킷을 입고 오토바이에 올라 있다. 거침없이 내뱉은 대사는 <언니가 간다>다. 우연한 기회에 12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30살 싱글녀의 이야기. 비현실적인 설정과 덤벙거리는 캐릭터가 왠지 고소영에겐 이물감처럼 낯설다고 생각했다.
“어색했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실 저는 스쿠터도 탈 줄 알거든요. 또 편한 사람들을 만나면 춤도 추고, 코믹한 노래를 부르러 가기도 해요. 물론 깐깐하고 도도한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저의 다른 면도 이젠 보여주고 싶어요.” 실제로 만나본
도도함에 쉼표를 찍다, <언니가 간다>의 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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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외모에 대한 편견은 있지 않나”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를 보면 감독이 보인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지만 어마어마한 거구 때문에 대창가수에 머물면서 폰섹스 아르바이트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한나(김아중)가 사활을 건 전신성형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만 고통스럽게 성형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린 <미녀는 괴로워>는 영리한 코미디다.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으면서도 그러한 편견을 버릴 수 없는 사회를 인정하고, 자칫 보는 이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는 코미디를 구사하다가도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 오히려 잘못은 아닌가 자문하게 만든다. 옳은 소리만을 되풀이하는 영화는 분명히 아닌데, 우리 역시 그렇게 옳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돌려 묻는다. 자학과 피학이 무분별하게 난무하는 코미디영화 속에서 <미녀는 괴로워>는 사려 깊진 않아도 겸손하고, 완벽하진 않아도 매력적인 대중영화다. 김용화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데뷔작 <오! 브라더스>를 깔끔하게
<미녀는 괴로워> 감독 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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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은 난데없는 데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데없는 이야기는 서기 2000년 어느 날 밤 이야기. TV를 켠 홍상수 감독은 파리프레타 포르테에서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주목받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몰락한 명동 백화점 사장 딸 줄리엣을 본다. 그리고는 “역할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느낌이 좋다”는 뜬금없는 이유로 예지원을 <생활의 발견>의 명숙으로 캐스팅한다. “애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한번 만나보자 싶으셨겠지.” 예지원의 뜬금없이 간결한 설명이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자면) 예지원의 작가주의 시절. <생활의 발견>과 <귀여워>를 거쳐온 그의 독특한 커리어는 일종의 속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주의 감독님들 만나서 좋은 캐릭터 연기하고 평가도 잘 받았지만 대중적이진 않았다”고 고백하는 그에게 대중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예지원은 무정형으로 발산해온 에너지를 모두가 접근 가능한 화력으로 살짝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의 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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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해야지, 뭘 어깨를 나란히 해
충무로 최고의 뉴스메이커이자 파워맨이 돌아왔다. 시네마서비스에서 손을 떼는 등 영화산업의 일선에서 물러나 연출에만 전념하겠다던 강우석 감독이 ‘백의종군 선언’을 깨고 충무로의 격전장으로 컴백한 것이다. 가족이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한달간 머물다가 귀국한 지난 11월19일 이후 그는 자신의 복귀를 선언하기라도 하듯 바쁜 행보를 펼치고 있다. 500억원 규모의 강우석 펀드를 거의 완성했으며, 시네마서비스를 다시 친정 체제로 꾸리며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고, 나아가서는 충무로의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움직임은 그의 주장처럼 “충무로에 대한 애정과 충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다시금 충무로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기 위해 ‘과욕의 승부’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우석 감독에게서 그의 귀환에 관해 들어봤다. 영화만큼이나 거침없는 그의 반말투를 그대로 살렸음을 밝혀둔다.
-강우석 펀드는 다 구성됐나.
=어제(12
영화산업 최전선으로 복귀한 강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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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유난히 남성팬을 많이 가진 남자배우다. 주변 이야기도 그렇지만 직접 현장에서 확인한 바로도 그건 확실하다. 세상에 많고 많은 멋진 남자배우 중에서 유독 “우성이 형”이 남성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반항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긴 키를 구부정하게 접고 헷,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부조리한 세계를 뜨겁게 쏘아보는 그의 눈빛은 뭇 남성들이 갈망하는 무언가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비트>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민이에게서 출발한다. 순수한 내면과 폭발적인 행동력을 가진 민이는 새로운 액션 캐릭터의 출현을 의미했다. 민이는 대의나 명분의 주먹이 아닌 허한 내면의 주먹을 휘둘렀고, 속도를 위한 질주가 아닌 절망을 향한 질주를 보여줬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정우성은 민이로 살아왔다.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는 조금씩 변주됐을지언정 본질은 민이와 그닥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정우성이
열정은 꿈을 타고 자란다, <중천>의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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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는 어린 시절 별명이 형광등이다. 선발투수로 치면 슬로스타터(경기 초반엔 좀 헤매다가 시간이 갈수록 잘하는 타입)라고 할까. “웃기는 이야기에도 반응이 느리고 둔한 편”인 1980년생 여배우. 형광등의 ‘형광’은 반딧불을 뜻한다. 물가를 날며 반짝이는 반딧불이처럼 사람들 앞에 등장한 김태희는 사실 배우로 나서기를 오랫동안 망설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복 모델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언니에게 제안이 왔는데 고등학생이라 민망해서 나를 시켰다. 너무 신나서 하더란다. ‘난 재능이 없으니까 안 될 거야’라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김태희는 의류학을 전공한 대학교 1학년 겨울 모델로 활동을 시작한다. <선물>의 어린 정연이 출발이었다. 일요일에 느닷없이 불려간 촬영에서 시를 읽는 중학생을 연기할 때만 해도 별 감흥은 없었다. “대학 생활 숙원이던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홍두현 감독의 <신도시인>에 출연을 제안받으며 그의 마음은 요동쳤다. “진로가 결
천천히 밝게 빛나는 별, <중천>의 김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