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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외모에 대한 편견은 있지 않나”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를 보면 감독이 보인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지만 어마어마한 거구 때문에 대창가수에 머물면서 폰섹스 아르바이트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한나(김아중)가 사활을 건 전신성형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만 고통스럽게 성형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린 <미녀는 괴로워>는 영리한 코미디다.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으면서도 그러한 편견을 버릴 수 없는 사회를 인정하고, 자칫 보는 이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는 코미디를 구사하다가도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 오히려 잘못은 아닌가 자문하게 만든다. 옳은 소리만을 되풀이하는 영화는 분명히 아닌데, 우리 역시 그렇게 옳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돌려 묻는다. 자학과 피학이 무분별하게 난무하는 코미디영화 속에서 <미녀는 괴로워>는 사려 깊진 않아도 겸손하고, 완벽하진 않아도 매력적인 대중영화다. 김용화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데뷔작 <오! 브라더스>를 깔끔하게
<미녀는 괴로워> 감독 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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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은 난데없는 데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데없는 이야기는 서기 2000년 어느 날 밤 이야기. TV를 켠 홍상수 감독은 파리프레타 포르테에서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주목받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몰락한 명동 백화점 사장 딸 줄리엣을 본다. 그리고는 “역할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느낌이 좋다”는 뜬금없는 이유로 예지원을 <생활의 발견>의 명숙으로 캐스팅한다. “애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한번 만나보자 싶으셨겠지.” 예지원의 뜬금없이 간결한 설명이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자면) 예지원의 작가주의 시절. <생활의 발견>과 <귀여워>를 거쳐온 그의 독특한 커리어는 일종의 속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주의 감독님들 만나서 좋은 캐릭터 연기하고 평가도 잘 받았지만 대중적이진 않았다”고 고백하는 그에게 대중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예지원은 무정형으로 발산해온 에너지를 모두가 접근 가능한 화력으로 살짝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의 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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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해야지, 뭘 어깨를 나란히 해
충무로 최고의 뉴스메이커이자 파워맨이 돌아왔다. 시네마서비스에서 손을 떼는 등 영화산업의 일선에서 물러나 연출에만 전념하겠다던 강우석 감독이 ‘백의종군 선언’을 깨고 충무로의 격전장으로 컴백한 것이다. 가족이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한달간 머물다가 귀국한 지난 11월19일 이후 그는 자신의 복귀를 선언하기라도 하듯 바쁜 행보를 펼치고 있다. 500억원 규모의 강우석 펀드를 거의 완성했으며, 시네마서비스를 다시 친정 체제로 꾸리며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고, 나아가서는 충무로의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움직임은 그의 주장처럼 “충무로에 대한 애정과 충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다시금 충무로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기 위해 ‘과욕의 승부’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우석 감독에게서 그의 귀환에 관해 들어봤다. 영화만큼이나 거침없는 그의 반말투를 그대로 살렸음을 밝혀둔다.
-강우석 펀드는 다 구성됐나.
=어제(12
영화산업 최전선으로 복귀한 강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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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유난히 남성팬을 많이 가진 남자배우다. 주변 이야기도 그렇지만 직접 현장에서 확인한 바로도 그건 확실하다. 세상에 많고 많은 멋진 남자배우 중에서 유독 “우성이 형”이 남성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반항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긴 키를 구부정하게 접고 헷,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부조리한 세계를 뜨겁게 쏘아보는 그의 눈빛은 뭇 남성들이 갈망하는 무언가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비트>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민이에게서 출발한다. 순수한 내면과 폭발적인 행동력을 가진 민이는 새로운 액션 캐릭터의 출현을 의미했다. 민이는 대의나 명분의 주먹이 아닌 허한 내면의 주먹을 휘둘렀고, 속도를 위한 질주가 아닌 절망을 향한 질주를 보여줬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정우성은 민이로 살아왔다.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는 조금씩 변주됐을지언정 본질은 민이와 그닥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정우성이
열정은 꿈을 타고 자란다, <중천>의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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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는 어린 시절 별명이 형광등이다. 선발투수로 치면 슬로스타터(경기 초반엔 좀 헤매다가 시간이 갈수록 잘하는 타입)라고 할까. “웃기는 이야기에도 반응이 느리고 둔한 편”인 1980년생 여배우. 형광등의 ‘형광’은 반딧불을 뜻한다. 물가를 날며 반짝이는 반딧불이처럼 사람들 앞에 등장한 김태희는 사실 배우로 나서기를 오랫동안 망설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복 모델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언니에게 제안이 왔는데 고등학생이라 민망해서 나를 시켰다. 너무 신나서 하더란다. ‘난 재능이 없으니까 안 될 거야’라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김태희는 의류학을 전공한 대학교 1학년 겨울 모델로 활동을 시작한다. <선물>의 어린 정연이 출발이었다. 일요일에 느닷없이 불려간 촬영에서 시를 읽는 중학생을 연기할 때만 해도 별 감흥은 없었다. “대학 생활 숙원이던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홍두현 감독의 <신도시인>에 출연을 제안받으며 그의 마음은 요동쳤다. “진로가 결
천천히 밝게 빛나는 별, <중천>의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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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원해진다. 선남선녀란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속의 킹카 퀸카와는 뭔가 다른, 선계(仙界)에서 온 듯한 남과 여의 조우. 정우성과 김태희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상상 속 공간 ‘중천’의 두 주인공이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들은 조동오 감독의 판타지 무협액션영화 <중천>에서 이승에서의 사랑을 사후세계에도 이어가는 커플로 등장한다. 열렬히 사랑하던 두 사람 중 세상을 먼저 뜨는 것은 연화(김태희)다. 그녀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곽(정우성)은 어느 날 괴이한 기운에 끌려 중천 속으로 떨어지고 두 사람은 재회한다. 하지만 이곽이 만난 것은 연화가 아닌 소화다. 중천으로 오면서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은 연화는 소화라는 이름의 천인이 된 상태. “판타지적인 요소나 액션보다 중요한 것은 이곽과 소화 또는 연화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라는 조동오 감독의 말에 따른다면 결국 <중천>을 이끌어가는 핵심은 두 배우의 멜로 연
선남선녀의 로맨틱 홀리데이, <중천>의 정우성,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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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운동을 많이 한다는데, 원래 좋아했나.
=의무감으로 시작했는데 요새는 재미를 붙였다. 헬스 트레이닝을 한다. 되게 고독한 운동이다. 그런데 나랑 맞는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단순하게 하나를 꾸준히 하는 건 힘들지만, 그 순간을 이길 때의 쾌감이 있다. 끝내고 샤워할 때. 그러면 술도 많이 마실 수 있고. (웃음)
-<조용한 세상>은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다양성에 굶주려 있을 때였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와 비슷한 시기에 결정했는데, 영역 확장을 하고 싶었다. 청춘물을 하고 싶지만 이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 아쉬움이 쌓였었나보다.
-어떤 청춘물을 하고 싶었나.
=춤영화를 하고 싶었다. 살이 맞닿을수록 인간은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는데, 춤이 영화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원래 춤을 좋아하나.
=매일 나이트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웃음) 대학교 1학년 때인
오래 가고 싶다, 그래서 갈 길 멀다,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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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는 말이 없는 사람이어서 자기 마음이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처럼 말없이 상처를 표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서 가장 대사가 적었기 때문에 몸으로만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는 문제를 많이 고민했다. 그냥 보기만 했는데도 사연이 묻어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지 않나. 나는 모니터를 보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집중을 하고 감독이 컨트롤하는 대로 따라가려고만 했다. 주변 사람도 관찰했고. 스탭 중에 내가 ‘가을이’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었는데 정말 가을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궁금하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외로워 보이고 사연이 많아 보였을까.
-아직도 모니터를 보지 않는 건가.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불안할 때도 있을 텐데.
=그건 내가 개발한 나만의 방법이다. 나는 내 얼굴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이런 표정을 하면 여자들이 죽었지(웃음), 하는 걸 모두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 매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연기엔 답이 없다. 그래서 연기가 좋다, 김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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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과 박용우는 영화 <조용한 세상> 안에서 그리 자주 마주치지는 못했다. 두 남자는 어린 여자아이들만을 납치하여 살해하는 범인에게서 착하고 맑은 아이 수연을 지키고자 하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싸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고요한 세상에 머무는 사진작가 정호(김상경)는 위탁아동인 수연 곁에서 아이를 돌보고, 게으르고 허술해 보여도 반장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김 형사(박용우)는 비정한 도시를 헤매며 연쇄살인의 흔적을 추적하는 것이, 각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나란히 스튜디오에 도착한 김상경과 박용우는 정호와 김 형사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던 <조용한 세상>의 지난한 과정을 생략하고선 눈빛만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마지막 순간만을 가져온 듯 다정했다. 편안한 스웨터 차림으로 이어폰을 나누어 음악을 들으며 고등학생처럼 깔깔댔고, 역시 어른인지라 진지한 표정으로 술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비법을 논하고는 했다. 그들이
1%가 다른 두 친구 이야기, <조용한 세상>의 김상경,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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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40년 전 사랑을 되밟아가는 <그 해 여름>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사랑이 시대의 폭압 때문에 깨져버리는 아픔을 담고 있다. 스무살 초반에 겪었던 그 짧은 사랑은 순수하고 안타까운 기억으로 봉인되어 60살이 된 남자의 눈에서 여전히 눈물이 나게 한다. 조근식 감독의 데뷔작 <품행제로>(2002)가 우리의 학창 시절에 관한 기발한 화술의 회고였다면 <그 해 여름>은 멜로 세계의 규칙을 크게 뛰어넘지 않는 익숙한 방식의 추억담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 장편을 개봉하고 난 조근식 감독을 만났다.
-편집 기간은 얼마나 됐나.
=개봉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보니 그리 여유롭진 못했다. 한달 정도?
-편집할 때 포인트를 둔 부분이라면.
=개봉하고, 결과물을 보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기자와 평론가들이 좋아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품행제로>에 비해서 뭔가 새롭고 자극적이고 재치있고 기발한 걸 기대했다면 이번 영화
두 번째 장편 개봉한 <그 해 여름>의 조근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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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개봉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스포츠다큐멘터리는 더욱 드물다. 그런데 임유철 감독은 그걸 밀어붙였다. 월드컵 때면 온 나라가 붉은 물결을 이뤄도 K리그에는 냉담한 현실. K리그 중에서도 돈없고 백없어서 늘 선수를 뺏기고 연습구장을 찾기 위해 전국을 전전해야 하는 시민구단 인천유나이티드팀을 주인공으로 장편다큐멘터리를 만들더니 결국은 개봉까지 했다. 그의 영화 <비상> 속 인천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 이하 선수들 역시 무모하기로 치면 뒤지지 않는다. 지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팀에 감독대행으로 부임한 장외룡 감독은 대뜸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랍시고 내놓고, 스타 플레이어 하나없는 팀의 선수들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쟁처럼 그라운드에 서는 이들을 전쟁처럼 카메라에 담은 사연을 듣기 위해 임유철 감독을 만났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 영화동아리 영상촌 활동을 하면서 각종 시위대를 비디오카메라에 담을 당시만 해도 문화학교 서울 등의 시네마테크 활동가들을
인천유나이티드 축구팀 다룬 다큐멘터리 <비상>의 임유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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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왔다. 올 겨울 엄정화는 시끌벅적한 두개의 선언문으로 막을 올렸다. 순결한 척하는 자들이 신곡 <Come 2 Me>의 무대를 향해 내뱉은 단발마가 수그러들기도 전에, 대니얼 헤니와 공연한 로맨틱코미디 <Mr.로빈 꼬시기>가 개봉을 알려온 것이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궁금하나 그녀는 언제나처럼 세련되게 무심하다. “음, (3초간 숙고) 특별히 힘든 게 있나 뭐. 7집이랑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함께 내면서도 그랬으니 처음도 아니고. 사실 둘을 동시에 가자는 계획은 아니었다. 9집 음반을 여름에 내놓을 생각이었는데 촬영이 딜레이되면서 음반도 늦어진 거다.” 별다른 설명없는 이 말은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자신이 있다는 조용한 배짱이기도 하다.
운좋게도, 사람들은 스크린에서의 엄정화와 쇼 무대에서의 엄정화를 철저하게 구분해서 받아들인다. 엄정화의 9집 앨범 <Prestige>와 영화 <Mr.로빈 꼬시기&
언니가 왔다, 의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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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1919∼98). 한국 영화사의 가장 기이한 천재 중 한 사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김기영 회고전을 파리에서 연다. 11월29일부터 12월24일까지 생전에 만든 32편(22편만 존재) 중 18편을 상영하는 최대 규모다. 김홍준 감독은 김기영과 지금의 세대를 잇는 오마주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파리로 들고 갔다. 김기영 감독의 조감독을 할뻔한 김지운, 송일곤 등 생전에 근접조우를 했거나, 황학동 시장에서 김기영의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던 봉준호 등 그에게 열광하는 22명의 감독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것을 김기영의 매혹적인 영화적 순간을 중심으로 짠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기적’이라고 회고하고 신재인은 ‘또라이’라고 증언하지만 이들 모두는 김기영을 향한 사랑을 나름의 방식으로 간증한다. 김홍준 감독은 이 작품에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 주요 감독들의 무의식에 김기영의 세계가 영향을 끼쳤다는 ‘무의식의 상상된
고 김기영 감독 오마쥬 다큐멘터리 만든 김홍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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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청춘의 후일담”인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로 김중기는 처음 얼굴을 알렸다. 그러고 나서 독립영화의 주연을 지나 충무로의 조연계 진입을 시도하는 것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는 겉돌았다. 배우로서의 매력으로 평가되기보다는 학생운동의 기수로 활동했던 경력이 더 많이 알려지는 이상한 장애가 뒤따랐다. 그러나 2002년 <선택>에서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역을 해낸 뒤로 그의 연기가 짐을 좀 덜었다는 느낌이다. 김중기가 올해 들어 맡은 역은 악한 자이거나 나사 풀린 자다. 그게 꽤 잘 어울린다. 갑자기 그가 스타급 배우가 된 것은 아니지만, 배우의 기초적인 살림이 의미가 아니라 본능이라고 가정할 때 요즘 들어 생생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강적>에서 이미 악역을 한번 했고, 11월 말 같은 날 개봉한 두편의 영화에도 굳이 선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조연으로 출연한다. <그 해 여름>에서는 취조실의 형사로 잠깐 나와 극의 정서가 뒤바뀌는
<아주 특별한 손님> <그 해 여름> 배우 김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