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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은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낯선 길,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연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게 마련이다. 파리에서 알제리까지의 5000km를 자동차와 배와 두 다리에 의지해 가는 <추방된 사람들>의 주인공 남녀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날 불현듯 알제리행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남녀는 이 긴 여정이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지 못했겠지만. 사실, 연인인 자노(로맹 뒤리스)와 나이마(루브나 아자벨)가 무료함을 떨치기 위한 여행의 행선지로 알제리로 잡은 건 뜬금없는 일만은 아니다. 자노의 조부모는 알제리가 프랑스 식민지이던 시절 이곳에서 반식민 운동을 펼쳤고, 나이마는 알제리 출신 부모를 두고 있다. 결국 원하지 않더라도 이 여행은 그들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될 게 자명하다.
그러나 이 뿌리찾기는 단지 부모나 조부모를 향한 그것만에 머물지 않는다. 남녀는 스페인의 황량한 한 지방에서 알제리에서 왔다는 소년과
나에게로 가는 길, <추방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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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자축하며 도달불능점의 정복 의지를 다지는 6인 탐험대의 애틋한 분위기에 미스터리의 그림자를 처음 드리우는 건 내부로부터다. 그들 옆, 눈으로 채운 용기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 카메라가 그 내부를 투시한다. 끓고 있는 건 얼음덩어리라기보다 섬뜩하게 꿈틀거리는 무엇이다. 첫 번째 암시다. 겉은 차분하고 단단하지만 속은 정복의 욕망으로 끓고 있는 탐험대의 내부에서 뿌리를 키우다가 터져나오고야 말 그 무엇을 은유하는. 문제는 그 정복욕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끔찍한 현실로 귀환할 것이냐에 있다.
<남극일기>는 미스터리 드라마이지만 무보급 행군으로 남극의 도달불능점에 이르려는 지난한 탐험의 형식을 취한다. 우리도 탐험의 끝에 귀환하는 모종의 실체와 마주하기까지 몇 가지 의혹의 관문 혹은 장애물을 거쳐야 한다. 첫 번째 크레바스는 크레바스 자체다. 빙하 유동의 속도 차이로 생긴 균열을 가리키는 크레바스는 눈에 덮여 가려진 경우가 많아 대원들을 기습적으로 삼켜버릴
남극이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남극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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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형식으로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하는 게 정형시다. 기껏해야 스무자, 스물다섯자에 불과한 오언(五言)절구는 몇개의 낱말로 우주와 인간을 담아낸다. 결구의 짧고 간결한 맺음은 긴 여운을 이끌어내지만 어떻게 보면 느닷없기도 하다. <당시>는 그런 영화다. <당시>를 즐기려면 문자 하나하나에 파묻혀야 하고, 구에서 구로 넘어가는 사다리를 조심스레 타야 한다. 등장인물의 작은 몸짓 하나에 줄거리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꽃 지고 바람 부는 서정성 넘치는 작품이라 넘겨짚으면 안 된다.
자막이나 크레딧 없이 <당시> TV 강연 프로그램 소리를 들려주며 첫장이 열린다. 이윽고 전화벨과 초인종 같은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의 소리들이 화면을 채운다. 카메라는 아파트 복도와 실내 바깥으로 벗어나는 법이 없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피사체에 집중한다. 카메라가 골똘히 잡아내는 건 손을 떠는 한 중년 남자와 춤을 추는 나이든 여자다. 남자의 일상
한없이 느리고 적막한 정형시 같은 영화,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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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벌의 원인이다. 벌은 죄의 결과다. 죄지으면 벌로 다스린다는 것. 국가가 개인에게 부과한 도덕률의 제1원칙이다. <프락치>는 이러한 전제의 일방향성을 문제삼는다. 국가의 죄는 어떻게 물을 수 있나. <프락치>는 자신이 정한 도덕률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가 죄없는 개인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권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제의가 필요했고, 얼마나 많은 희생양들이 필요했느냐고, 국가를 추궁한다. 30대 후반의 기관원 권과 20대 초반의 프락치 희철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기거하는 여관방은 또 다른 감옥이다. <프락치>는 뜨거운 여름 푹푹 찌는 여관방을 실험실 삼아 카메라를 장치하고 국가라는 괴물의 흉포함을 고발한다.
<프락치>는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정체가 드러나 도피한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의 관계는 명확한 드라마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바퀴벌레를 희롱하거나 묵찌빠를 수행하며 매일을 버티던 이 금
국가라는 괴물의 흉포함을 고발한다, <프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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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은 <스타워즈> 열성팬을 위한 영화다. 최첨단의 특수효과와 화려한 디자인들로 장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는 <스타워즈>에 대한 ‘향수’가 물씬 풍겨난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다양한 음조로 변형시켜 되풀이하는 교향곡에 비유한다. <스타워즈>가 루크의 이야기이고, <보이지 않는 위험>은 그의 아버지 아나킨의 이야기이지만 스토리 전개는 거의 비슷하다. 우주에서 위험에 처한 레아, 아미달라는 구원을 요청한다. 타투인 행성에 살고 있던 루크, 아나킨은 제다이의 꿈을 안고 집을 떠난다. 그래서 새로운 장면들이 등장할 때에도 관객들은 <스타워즈> 3부작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된다. 무역연합과의 공중전이 벌어질 때는 ‘데스 스타’와의 격전이, 겅건족의 전투에서는 이워크족의 전투가 연상된다. 이야기만이 아니다. 기본의 <스타워즈>
특수효과로 뒤덮은 미국인의 신화, <스타 워즈 1:보이지 않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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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이리나 비요클룬트)는 왜 사람이 따분하게 일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쾌락주의자다. 그녀는 열정이 많다. 그러나 그 열정을 쏟을 대상이 없어 일상이 더 따분하다.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집세도 내지 않고 막연히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밀라는, 바에서 만난 남자 아키 모리슨(새뮬리 에델만)과 하룻밤을 보내고 연인이 된다. 아키는 헤로인 중독자였던 아내와 이혼하고 열살 남짓한 아들 요나스(루프 카리스토)와 둘이 사는 남자. 아키는 마약 밀수단의 일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밀라에게 숨기지만, 뒤늦게 밀라가 눈치챈다.
제법 의도가 분명해 보이는 국내 제명을 가진 영화 <정사3>는 원제가 ‘Me and Morrison’이다. 말하자면 밀라와 아키의 이야기이고, 정말 두 사람만의 이야기다. 세상을 탈출하고 싶다는 건 밀라만의 얘기가 아니라 아키의 꿈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서 나는 상상을 해봐”, “네가 경도를 지정하면 내가 위도를 정할
철딱서니 없는 사랑과 삶, <정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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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무라 류헤이의 <아라가미>에 이은 ‘Duel Project’의 두 번째 작품. 제목인 동시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2LDK’는 원래 ‘2 Living Room, A Dining Room, A Kitchen’ 즉 방 2개, 거실에 부엌이 딸린 아파트나 맨션의 일본식 약어. 그러나 쓰쓰미 유키히코는 이 평범한 공간을 ‘2 women, Love, Die, Kill’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곳으로 바꿔놓는다.
같은 연예 기획사 소속인 라나(노나미 마호)와 노조미(고이케 에이코)는 도쿄의 2LDK 아파트에서 동거 중인 여배우들이다. 선후배 사이인 둘은 성격과 취향이 완전히 다르다. 포르노 배우 출신인 라나는 구찌, 샤넬 등만 걸치는 명품족에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성공에 목숨 건 여자. 반면 섬 출신으로 도쿄에 상경한 노조미는 ‘도시에서는 승자가 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규칙’이라고 믿는 배우 지망생이다. 평소 계란에까지 자기 이름 이니셜을 써둘 정도로 기본 규칙에 철저한 노조미에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죽음을 각오한 대결, <2L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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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상황과 소재를 놓고 두명의 감독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들게 하자.” 이같은 요지의 기획안을 집어든 가와이 신야. 쓰쓰미 유키히코와 기타무라 류헤이 두 감독에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죽음을 각오한 대결’이라는 과제를 던졌다. 과제는 ‘듀얼 프로젝트’(Duel Project)라 명명됐고, 두 감독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주인공들마냥,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결을 벌여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기타무라 류헤이는 싸움의 신과 평범한 인간간의 무협 판타지를 골랐다. 이상한 신사에 머물게 된 한 사무라이가, 자신이 사람을 잡아먹는 ‘텐구’이자 싸움의 신 ‘아라가미’라 주장하는 막강한 남자와 서로의 목숨을 놓고 대결하는 것이 줄거리다. ‘아라가미’라는 인물은 인간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이 ‘미야모토 무사시’라 한다. 일본의 ‘검호’라 불리는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으로 세상을 해쳐나가며 검으로 도에 이른 무사의 표상이다.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에서 무사시를
무사시 대 사무라이, <아라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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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에 기반한 영화 <코치 카터>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농구부 감독 켄 카터(새뮤얼 L. 잭슨)가 커다란 자물쇠로 체육관을 폐쇄할 때다. 그는 농구부 아이들이 자신과의 계약과 달리 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수업일수를 채울 때까지 농구부 훈련은 물론이고 다른 팀과의 경기마저 포기한다.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 지역사회까지 반발하지만 카터의 의지는 굳세다.
카터가 리치몬드 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부임할 때 아이들과 맺은 계약은 그의 말마따나 ‘단순한 규칙’에 불과해 보인다. 모든 학생이 C+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하고 기본 수업일수를 채워야 하며 수업 때는 맨 앞줄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조건은 아이들에게 가혹하기 짝이 없다. 실업과 빈곤,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슬럼인 리치몬드의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꿈으로부터 차단돼 있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마저 학생들을 거의 포기한 상태. 카터는 비록 농구부 감독일 뿐이지만 아이들에게
스포츠는 스포츠고 인생은 인생이다, <코치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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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제이 보고서>는 센세이셔널하지 않다. 성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통계내는 킨지 보고서의 본질처럼 영화 역시 성적 욕망에 대한 활화산 같은 시선 대신, 건조하고 지극히 ‘보고서’적인 시선을 택한다. 그것은 영화의 초점이 킨지 보고서의 질문과 답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언어를 수집하여 숫자를 매기는 연구자들에게 맞춰져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대를 너무 앞서 살아 피로했던 인간 킨지가 있다. 성 해방론자, 성 개척자와 부도덕한 연구자, 신을 거스르는 섹스주의자 사이를 오갔던 인물. 이미 반세기 전, 1만2천명의 입을 열게 하여 그들의 ‘낯 뜨거운’ 성행위를 낱낱이 밝혀낸 인물.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럽다고 일컬어지던 영역을 단순한 숫자로,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해낸 인물. 영화는 이 희대의 인물을 전혀 모나지 않은 방식, 어찌보면 지극히 전형적인 전기적 구조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영화가 택한 킨지 일생의 순간들은 그가 설파했던
건조하고 지극히 ‘보고서’적인 시선, <킨제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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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은 줄의 탄력으로 쏘는 무기다. 줄이 팽팽하지 않으면 화살은 날아가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첫머리에 활처럼 팽팽하게 살고 싶다고 쓴다. 영화는 팽팽하게 살고(활: 活) 싶은 사람의 이야기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잘못 읽으면 앳된 소녀를 사랑하는 노인의 엇나간 도착적 사랑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정욕은 인같이 우리 몸에 따라붙는 게 아닌가” 하는 노인 역 전성환의 소회는 영화를 이해하는 좋은 실마리가 된다. 나이가 들어도 떨쳐지지 않는 정욕이 인생이라는 현을 팽팽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활(活)은 사전에 따르면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물결이 합치고 하여 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김기덕 감독은 물과 물이 부딪치는 애증의 관계가 삶을 만든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표피적인 독해일지 모른다. 활은 화살을 메워서 쏘는 무기란 뜻과 더불어 현악기의 현을 켜는 기구란 뜻이 있다. 두 번째 활의 뜻은 팽팽한 현을 마찰시키고 어루만져 소
<사마리아>의 근심을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간 버전,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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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을 꾸는 비다르(트론 에스펜 세임)는 환자 레온(얀 군나 뢰이스)이 앰뷸런스에 치어 죽는 꿈을 꾸자, 이를 막고자 한다. 레온은 어린 시절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의 재회를 앞두고 두려울 때의 버릇대로 밤길을 달린다. 강도죄로 복역 중인 레온의 형 트리그베는 모범수로 외출을 허락받지만, 다른 범죄를 모의한다. 프로데와 밀라는 어렵게 얻은 첫아이가 희귀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수술할 돈을 구하지 못해 절망에 빠진다. 거리를 배회하는 어린 형제, 자살 상습범인 왕년의 여가수, 그녀를 구하는 앰뷸런스 기사, 신문을 배달하는 흑인 소녀. 우리는 이들 모두가 한자리에 있는 것을 첫 장면에서 보게 된다. 그로부터 정확히 24시간 동안 이들은 서로 스쳐 지나가고, 결국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변하지 않은 것보다 변한 것이 많은 채다.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하와이, 오슬로>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영화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밤, 그 절망과 희망의 변곡점, <하와이,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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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쥬케이터>의 주인공들은 분노한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티셔츠에 박혀 팔려나가는 이 시대가 싫다면서 분노한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로 오역되고,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갖기 위해 못 가진 자들을 더 못살게 구는 것에 분노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른바 혁명의 도래이다.
15년간 우정을 지켜온 얀(다니엘 브륄)과 피터(스티페 에르켁)는 젊은 혁명가들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여 그들은 제도의 불의에 반항하는 못 말리는 행동불사파다. 얀과 피터는 휴양지에서 돌아온 갑부들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서리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없는 틈을 타 빈집에 들어가 집안의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놓고, ‘너희는 너무 많은 돈을 가졌다’ 등의 메시지를 벽에 써놓는다. 그들을 지칭하는 말은 그래서 ‘에쥬케이터’다. 틈입하고 교란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성스러운 의식처럼 거행하고, 재미있는 놀이처럼 즐긴다. 그것이 그들만의 혁명의식 고취법이다.
피터의 여자친구 율(율리아
혁명가를 꿈꾸는 모험가들의 모험, <에쥬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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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용돈을 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타이르는 어머니들의 주요 레퍼토리가 있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줄 아니?” 영화 <밀리언즈>에서는 그렇다. 아버지의 재테크를 위해 신흥 주택단지로 이사한 데미안과 안소니 커닝햄 형제. 데미안은 먼저 이사 직후 빈 박스로 자신만의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짓는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나이키 가방이 종이로 지은 데미안의 안식처를 덮친다. 지퍼를 열면 100만파운드의 돈다발. 데미안은 하느님이 내리신 돈벼락을 두살 터울 형인 안소니에게 즉시 보고한다. 끙끙거리며 집으로 가방을 끌고 오던 안소니는 어른스럽게 세금문제를 거론하며 데미안에게 비밀로 하자고 설득한다. 졸지에 거액을 거머쥔 두 형제의 삶은 럭비공처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갑자기 생긴 거액’은 장르영화에서는 들꽃처럼 흔한 소재, 하나 해마다 재활용이 가능한 매력적인 원재료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두 아이, 시간적 배경은 유로화 통합까지 열흘이라는
강박적으로 포장하지 않은 현실적인 가족영화 <밀리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