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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이 영화는 삶을 집에 비유하는 영화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버지(케빈 클라인), 그는 살 수 있는 남은 4개월 동안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망가진 가족관계를 돌이킬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과연 집은 완성될 것인가? 무력했던 아버지는 집과 더불어 다시 태어난다.
이야기의 뼈대만으로 짐작이 되듯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는 다소 보수적인 가족 멜로드라마다. 가족의 문제는 가부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데서 발생한다. 아버지는 이혼을 했고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들은 마약에 찌든 문제아다. 직장에서 밀려나고 시한부 판정을 받는 최악의 상황에서 아버지의 권위 회복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들도, 헤어진 아내도 잊고 있던 아버지의 넓은 가슴을 그리워하게 된다. 영화의 보수적 태도는 이야기의 밑그림이 되는 선악구도로도 드러난다. 펑크 스타일
보수적인 가족 멜로드라마 속 빛나는 배우들,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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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날아와 언제 자신의 목숨을 끊을지 모르는 저격수의 탄환, 그것만큼 전쟁의 판타지를 박살내는 것도 없다. 하지만 며칠이고 한자리에 매복해 2km 바깥의 표적을 명중시키고야 마는 이들의 초인적 능력에 대한 매혹도 동시에 존재한다. 90년대 초, <플래툰>의 인상적 악역 톰 베린저를 맞아들여 만든 <스나이퍼>는 사실 이 매혹에 기초한 영화였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이라기보다 차라리 심리적 충돌에 가까운 이 살인기계들끼리의 대결은 (아마도 본의 아니게) 심리드라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선악의 구분이 무의미한 파나마의 검은 정글에서 드러났던 것은 그들이 맡은 임무의 부도덕성과 미국 정부의 세계적 암약, 그 더러운 실체였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미국의 은밀한 개입주의를 고발하게 된, 93년의 <스나이퍼>는 걸작은 아니지만 쉴새없는 광장공포증으로 아득한 장렬한 소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 손가락을 잃고 시력마저 온전치 않아 퇴역했던 파나마의 저격수가 다시
돌아온 해병의 후일담을 위해 준비된 특설 스파링, <스나이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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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의 원형은 <플래시댄스>다. 허니 역의 제시카 알바는 “어린 시절 보았던 <플래시댄스>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고, 이런 영화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 스트리트 보이즈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빌리 우드러프 감독 역시 자신의 장편 데뷔작이 될 <허니>의 시나리오를 보고 떠올린 작품이 <플래시댄스>였고, <플래시댄스>처럼 인상 깊은 삽입곡이 만들어지길 원했다. 오마주의 장면도 있다. <플래시댄스>의 제니퍼 빌즈가 친구와 함께 길거리에서 흑인 소년들이 추는 브레이크 댄스를 보고 감탄했던 것처럼, 제시카 알바도 친구와 함께 힙합 댄스로 신이 올라 있는 거리의 흑인 소년들을 보고 잠시 넋을 놓는다. <허니>와 <플래시댄스>의 ‘운명’은 여기서 상징적으로 갈린다. 마이클 잭슨이 <빌리진>에서 <문워커>를 선보이기 전, <플래시댄스>
제시카 알바의 매력이 돋보이는 ‘계몽적 힙합영화’, <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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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장수를 해도 서울대를 나와야 대박이 난다. <맹부삼천지교>는 이 오래된 미신을 굳게 믿고 있는 아버지 맹만수(조재현)의 ‘삼천지교’ 일대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맹만수는 아들 맹사성을 서울대 보내는 게 유일한 꿈인 홀아비다. 생선가게를 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던 그는 어느 날 학교와 학원과 집의 거리가 1km 이내, 그것도 대치동에서 1km 이내가 아니면 서울대 가기 힘들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리를 접한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이 바로 대치동. 만수는 사채를 써서 대치동 아파트로 이사가지만, 바로 앞집으로 모의고사 전국 1등 소녀 현정의 조폭 삼촌 최강두(손창민)가 은신하고자 찾아온다. 이제 조폭을 쫓아내기 위한 만수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맹부삼천지교>는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아버지와 궁지에 몰린 조폭이 빚어내는 코미디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감하고 현실적인 주제 때문에 이 영화는, 학원비리를 소재로 삼은 <두사부일체&g
물불 안 가리는 아버지, 궁지에 몰린 조폭을 만나다 <맹부삼천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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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 아홉살은 지나치게 행복했던 편은 아니었고, 그리하여 나 또한 세상을 느끼기 시작했다.”(위기철의 <아홉살 인생> 중) 모두가 같은 시기에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는 건 아니지만, 욕망과 현실의 괴리에 참담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건 대체로 열살 언저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년의 아픔을 담아낸 한국영화는 거의 전례가 없다. 순수로의 회귀, 동심을 통한 교화, 각성과 성장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테마였을 뿐이다.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의 성장기 <아홉살 인생>이 극장으로 간 것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조숙하고 의젓한 아이 여민. 깡도 있고 싸움도 잘하지만, 그는 언제나 약자 편이다. 동네 쌈장을 제압한 뒤에도 “내가 이겼다고 소문내지 않겠다. 대신 애들 별명 부르지 마라”고 경고하는 식이다. 효심도 지극하다. 똥지게 수를 세고, 아이스케키를 팔고, 심부름을 해서 모은 돈으로 ‘애꾸’ 엄마에게 색안경을 선사하려 한다. 그렇게 듬직하고 무던하던 그의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의 성장기, <아홉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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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심하게 다투며 헤어지자고까지 말했던 정남과 혜숙이 평화로운 아침을 맞고 화해한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온전한 하루의 생이 이 연인들 앞에 남아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 하루가 끝나면 헤어질 것이다. 결말은 예정되어 있고 이제 그 과정을 돌아볼 차례. <후회해도 소용없어>는 이처럼 연애의 종점에 해당하는 단 하루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영어제목인 〈Irreversible〉이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과 같다고 해서 영화가 시간을 역순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 평온하기만 하던 이들의 관계는 정남의 선배이자 혜숙의 옛 애인인 동률을 만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들의 사이는 급격하게 벌어지고 사소한 오해에도 상대를 상처 줄 말들을 줄줄 읊는다. 그리고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서로의 간격이 드러난다. 이처럼 영화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의 ‘돌이킬 수 없음’을 장탄식하기보다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그들의 관계와 말라
헤어진 연인들의 마지막 하루, <후회해도 소용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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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번의 긍정> <울리불리 다이어트> <슬픈 크리스마스 푸딩> <몰락취미를 꿈꾸다>
<좀비처럼 걸어봐!>는 전방위 문화게릴라를 자처하는 창작집단 파적필름이 제작한 디지털 단편옴니버스영화다. 네명의 감독이 슬픔을 주제로 만든 이 영화는 좀비처럼 휘적휘적 걷는 한 남자의 그림자로 영화를 연결하고 있다. 첫 번째 <만번의 긍정>은 헤어진 연인에게 집착하는 한 남자의 파괴적인 행동을 뒤쫓는다. 김설우 감독은 붓으로 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휘청이는 카메라로 상실을 인정할 수 없는 남자를 담아냈다.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어도, 그는 영원히 죽어버린 자신의 한 부분을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슬픔으로 무거워진 화면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꿈처럼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마지막까지, 짧은 시간 안에 변화하는 호흡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 <울리불리 다이어트>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자가 다이어트 컨설턴트로 변신
디지털 단편 옴니버스영화, 좀비처럼 걸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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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이터’(Sin Eater)라고 들어보셨는지? 중세판 안락사를 시술한 이 별난 ‘사면자’는 죽어가는 자의 가슴에 빵과 소금을 얹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그 사람의 죄를 먹어주는(사면해주는) 일을 했다 한다. 이런 특이한 면죄의식(免罪儀式)은 교회에서 거부된 이단종교단체에서 실재했다고 전해진다. <씬>에서 사면자는 특히 완고한 교권에 저항한 아웃사이더 사제이자, 온갖 죄를 흡수하여 영생을 누리게 된 악마적 존재로 나온다. 젊은 신부 알렉스(헤스 레저)가 아버지와 다름없던 노신부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로마를 뒤지다 마주친 인물도 바로 이 사면자다. 한데 알렉스는 사면자가 살인자임을 확신하면서도 그에게 말려들고 종교를 버리면서까지 사랑에 탐닉하더니, 끝내 연인이 죽을 찰나 자신도 사면자가 되기에 이른다.
기독교의 한 사파를 파고드는 <씬>은 연쇄살인을 둘러싼 고문자 해독과 교회 비판의 모티브 등이 <장미의 이름> 같은 중세 미스터리스릴러를 떠올리게 하
B급 정서를 풍기는 종교 미스터리스릴러,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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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녀에게 할리우드 스타와의 데이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아이디어는 이처럼 간단명료한 소망실현의 신데렐라 스토리로부터 출발한다. 슈퍼마켓 점원 로잘리는 우연히 ‘할리우드 스타 태드 해밀턴과의 데이트’ 이벤트에 당첨되고 할리우드로 가서 꿈에 그리던 데이트를 한다. 이는 스캔들로 얼룩진 태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에이전시의 아이디어였지만, 순박한 소녀에게 반해버린 태드는 웨스트 버지니아로 날아가고야 만다. 시골 마을은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으로 술렁이고, 가장 심사가 꼬이는 사람은 로잘리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피트다. 그러니까 애초에 말했듯이 모든 것은 간단명료하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삼각관계로 살짝 양념하고 싱그러운 청춘들을 배치하면 영화는 완성된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그 뜬금없이 실종된 시대성이다. 영화 속 웨스트 버지니아는 마치 50년대 클래식영화들의 무대처럼 보인다. 로잘리가 할리우드로 떠나는
싱그러운 청춘들의 시대착오적 로맨스,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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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카우보이 프랭크 T. 홉킨스(비고 모르텐슨)에게는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는 운디드니의 학살장면을 목격한 뒤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못한 채 술에 절어서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의 구경거리로 스스로를 전락시킨다. 하지만 우연히 아라비아 사막 3천 마일을 횡단하는 죽음의 경주 ‘불의 대양’에 출전할 기회를 잡게 된 프랭크는 자신처럼 ‘잡종’인 말 히달고와 함께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실존인물인 프랭크 T. 홉킨스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히달고>는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고전적인 액션어드벤처영화에 향수를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소박한’ 영화 앞에서 기꺼이 무장해제당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엄청난 상금을 얻기 위해 살해와 모략을 서슴지 않는 무시무시한 경주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내적 투쟁을 극복함으로써 동시에 외적인 난관까지 헤쳐가는 과묵한 영웅 프랭크는 고전 서부극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보
익숙한 고전영웅의 전형적 숭고미, <히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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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 속 모나리자는 행복했을까? 질문을 바꿔보자. <모나리자 스마일>의 각본가는 어느 날 1950년대 웰슬리대학의 연감에서 한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깔끔한 드레스를 입고 한손에는 책을, 다른 한손에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젊은 여자가 찍힌, ‘결혼이 최고의 학생을 만든다’라는 제목의 사진을. 그리고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하게 묻는다. 사진 속 그 여자는 행복했을까?
<모나리자 스마일>의 전반부는 자유분방한 서부 출신의 미술사 교수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이 동부의 명문여대로 부임하면서 겪게 되는 문화적 충격을 비교적 정교하게 묘사한다. 똑똑하고 능력있는 젊은 학생들의 일생의 목표가 완벽한 결혼임을 알게 되면서, 그는 결혼 이외의 인생의 목표를 그들에게 제시하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어쩔 수 없는 기시감으로 인해 <죽은 시인의 사회&g
여성이 삶의 딜레마와 선택, <모나리자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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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 탓인지 수맥 탓인지 몰라도 남해 물건리는 고독한 중년과 노년으로 북적인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고독하다기보다 낙이 없다. 결혼을 회피하는 노총각 동생 중범(박영규)과 단둘이 사는 타조 농장주인 배중달(주현)도, 자식에게 외면당하고 혼자 살며 중달과의 멱살잡이로 소일하는 허풍선이 조진봉(김무생)도, 어린 손녀 하나 바라보며 배를 모는 필국(송재호)도, 중범을 짝사랑하는 이혼녀 순아(진희경)도 사는 게 적막하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가까운 중증 건망증 탓에 도통 소통이 안 되는 구멍가게 주인 찬경(양택조)과 그의 아내(이주실)의 생활 역시 진봉과 중달의 싸움을 말리는 일 외에는 별 이벤트가 없다. 이처럼 심심한 마을에 일대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미모의 서울내기 송인주 여사(선우용녀)의 방문. 그러나 속내를 알고 보면 인주 역시 자식들도 편들어주지 않는 황혼 이혼을 결행한 쓸쓸한 처지다. 게다가 위자료로 남편에게 받은 섬의 실상이 손바닥만한 암초라는 사실을 발견하자 낙담한 인주
마음을 느슨히 풀고 보는 한가로운 마당놀이, <고독이 몸부림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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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은 김동원 감독이 10년 동안 찍은 비전향 장기수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비전향 장기수 두 사람을 봉천동으로 데려오자는 한 신부의 부탁을 받아들여 습관처럼 카메라를 챙겨 나간 것이 질긴 인연의 시작이 됐다. 조창손, 김석형 두 비전향 장기수가 머물고 있다는 대전의 한 요양원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신부에게서 ‘그들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귀띔을 전해 듣고서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했다는 그는 봉천동에 정착한 뒤로 이질적인 체제 아래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빠짐없이 담는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들은 좀처럼 카메라에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남파 당시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그들은 “그것까지는 물을 필요없습니다. 그런 정도로만 아시고”라고 고개를 젓거나 “뭐 그런 소리를 담아. 그러다간 큰일나지”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다고 <송환>이 변죽만 울리다 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자신에게로 되돌린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단 며칠 아니 몇
시대와 이념에 거세당했던 인간들에 대한 진심어린 고백,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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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젤 워싱턴이 돌아왔다, 고 말하기엔 그는 꽤나 자주 돌아온다. 달리 보면 해마다 한두번씩 스크린을 방문하는 성실성만큼은 신뢰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작은 드물지만 매번 자기보다 인지도 낮은 감독과 작업해서인지 모든 영화가 ‘덴젤 워싱턴의 00’처럼 보일 정도로 존재감도 확고하다. 이런 아우라는 정의의 경찰이라는 단골 캐릭터 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스카를 안겨준 <트레이닝 데이>가 그 이미지를 뒤집어서인지, <아웃 오브 타임>에선 선악 이분법이 제법 흐트러져 있다. 가령 매트(덴젤 워싱턴)는 존경받는 수사반장이면서도 사생활은 복잡해서, 유부녀 앤(산나 라단)과는 불륜 중이고 아내(에바 멘데스)와는 이혼 준비 중이다. 앤이 암 선고를 받았을 땐 공금을 빼내면서까지 그녀의 치료를 도우려한다. 그러나 앤의 집이 화재로 불타자, 매트가 보험금을 노리고 앤을 죽인 것처럼 오해될 정황들이 속속 드러난다. 그는 이 증거들을 감추면서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
어디에도 방점을 찍지 못한 어정쩡한 영화, <아웃 오브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