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린이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가장 기본적인 성공요건은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집중력이 산만한 어린이들을 90분여 동안 그 작품에 몰입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난제를 풀기 위해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원작이 만화이고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극장용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유희왕>은 1996년 일본 만화주간지 <소년점프>에 연재한 이래 총 38권의 단행본과 총 224화 분량의 TV시리즈, 게임소프트 회사 코나미에서 출시되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희왕 카드게임’ 등의 원천소스가 된 만화이다. 극장판 <유희왕>은 원작 만화의 시작과 똑같이 학교에서 거의 왕따 수준의 나약한 소년 ‘유희’가 게임가게를 하는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천년퍼즐을 풀면서 ‘어둠의 유희’가 등장하게 되는 시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유희’가 천년퍼즐을 풀자 5천년 전 세상의 멸망을 계획하려다 ‘어둠의 유희’에게 패한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부활하게 된다. 아누비스는 카드 속의 몬스터를 실체화하는 가상현실 시스템을 개발한 다국적 하이테크 기업의 CEO이자 주인공의 가장 큰 숙적이기도 한 ‘카이바’의 복수심을 이용하여 ‘유희’의 최강카드인 ‘이집트 신의 카드’를 봉인할 수 있는 ‘빛의 피라미드’ 카드를 발동하게 된다. ‘빛의 피라미드’ 안에서 게임하는 플레이어들이 실점하는 생존점수가 아누비스의 부활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눈치챈 ‘유희’는 ‘카이바’의 게임을 중지시키려 하지만 ‘카이바’는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한다.
<유희왕>의 미국 지역의 배급을 맡은 ‘4KIDS ENTERTAINMENT’의 지원과 미국, 유럽 등의 흥행을 의식한 탓인지 초밥을 먹으며 우유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영어삽입곡이나 엔딩송, 가끔씩 오버하는 듯한 대사 등이 관람에 방해가 되는 등 어색한 요소도 없진 않지만, 기존 만화와 TV시리즈의 종료로 아쉬움이 많은 <유희왕>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원작을 잘 모르는 관객도 어느 정도 이 작품에 흥미를 가지도록 하기에 비교적 잘 절충된 양의 ‘재미’를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풀하우스’라는 단어로 모 드라마 제목밖에 연상되지 않는 사람이 포커 도박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 만화단행본 초반 10여권 정도는 읽고 ‘듀얼몬스터즈’ 게임의 룰과 캐릭터 정도는 알고 관람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보너스로 극장판 후반부에 등장하는 ‘유희’와 친구들이 우정의 표시로 손을 모으면 나타내는 문양의 의미와 배경 역시 책을 읽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