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상을 입고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하나의 문구는 ‘대통령이 암살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 사막투성이의 황량한 뉴멕시코시티다. 이곳에 대통령이 올 일이 없지 않은가.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를 프랭크라고 부르며 자신이 그의 약혼녀였다고 주장하는 미모의 여인 클로이, 극장과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묘한 시선을 던지는 두명의 낯선 남자, 암호 ‘롬버스’, 삼각형 모양의 암살 구도…. 프랭크는 불분명한 기억의 편린들을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기 시작한다.
마돈나와의 작업으로 유명해진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마이클 하우스만은 이미지 중심의 개인기를 펼치기보다는 를 작업한 각본가 F. 폴 벤즈를 기용하여 정연한 내러티브 중심의 정공법적 스릴러를 선택하는 야심을 부린 듯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라인드 호라이즌>은 스릴러로서 합격선을 결코 넘지 못한다. 일단 대통령이 자동
롬버스 작전과 JFK 암살의 맥없는 조우, <블라인드 호라이즌>
-
게임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이미 <파이널 판타지>의 대담한 실험에서 영화와 게임의 성공적인 합방은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다. 다만 다른 점은, <파이널 판타지>가 ‘영화를 흉내내는 게임’이었다면 <오토기리소우>는 ‘게임을 흉내내는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축약해놓은 게임 설명서 같다. 나미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산으로 저택을 물려받는다. 게임회사 사장인 전 애인과 함께 아버지의 저택을 찾아간 그녀는 아버지의 정체가 공포스러운 작품들을 남긴 전설적인 미술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로 같은 저택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아버지의 그림들, 그 이면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들과 나미의 쌍둥이 여동생의 존재를 조금씩 알아간다. ‘복수’라는 꽃말을 지닌 ‘오토기리소우’(고추나물)로 둘러싸인 저택에서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토기리소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흉내낸다. 대화창을 화면에 띄우는 것
게임을 흉내내는 영화, <오토기리소우>
-
한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나가던 작가 프란시스(다이앤 레인).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맞는 바람에 졸지에 집에서도 쫓겨나 신세 처량한 이혼녀가 된다. 신세 비슷한 이들이 수두룩이 투숙한 호텔에 칩거한 그녀에게 정말 큰 문제는 삶의 의욕 내지는 창작에 대한 열정까지 모두 사라졌다는 것. 벽을 타고 들리는 울음소리에 공명하며 자살의 유혹까지 직면했으니 정말 위기의 여자랄밖에. 그나마 그녀에게 남은 행운은 마음 써주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정도. 그녀가 레즈비언 친구 패티(산드라 오)의 권유를 받아들여 투스카니 여행 티켓을 손에 쥐면서 실의에 빠진 여인이 삶을 되찾는 희망의 갱생스토리가 펼쳐진다.
하지만 어떻게? 영화는 <투스카니의 태양>이 그녀에게 필요했던 처방의 모든 것이라는 식의 순진함을 보이진 않는다. 처방의 요점은 유쾌하고 낭만적인 일련의 일탈. 낙천적인 게이들 사이에 파묻혀 일종의 묻지마 관광을 떠난 것도 그렇지만 있는 돈 탈탈 털어 다 쓰러져가는 투스카니의 전원주택
인생을 재건하려는 어느 이혼녀의 묻지마 프로젝트, <투스카니의 태양>
-
“내가 농부라면 오시마 나기사는 사무라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이야기처럼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그의 영화는, 칼날 같았다. <청춘잔혹이야기>(1960)에서 <교사형>(1968), <의식>(1971), <감각의 제국>(1976)에 이르기까지 오시마 나기사는 영화를 통해 전후 일본사회를 통찰했다. 그의 영화는 모두를 적으로 대했으며 또한 그것을 예리하게 베고 또 베었다. 상대는 늘 바뀌었다. 부패한 일본사회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국가, 도덕적 관념, 이데올로기일 경우도 있었다. 영화형식을 극단적으로 실험함으로써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영화를 현대화시킨 당사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거장의 행보는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고하토>는 10여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극영화를 만들지 않았던 오시마 나기사의 1999년작이다. 이 영화에 세계적인 관심과 비평의 시선이 쏠렸던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예상외로 <고하토>는 거
한 미소년을 둘러싼 사무라이들의 암투와 대결, <고하토>
-
-
베트남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전쟁은 죽음을 낳고, 사랑을 낳으며,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낳는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영화화한 <콰이어트 아메리칸>은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정치적 음모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의 징후들이 유령처럼 맴돌던 프랑스 식민치하의 베트남, 1952년의 사이공, <런던타임스>의 특파원인 토마스 파울러는 전쟁의 기운에 대해 “나는 아무런 의견도 없다.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말려들지 않는다. 나는 그저 기자일 뿐이다”라고 독백한다. 젊고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 ‘풍’과 사랑에 빠진 늙은 영국인 유부남에게 독립과 이데올로기 정쟁으로 가득 찬 베트남 민중의 삶은 그저 관망의 대상일 뿐이다. 그 평화로운 파울러(마이클 케인)의 일상은 미국인 파일(브랜든 프레이저)이 그들 앞에 나타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활달하고 매력적인 미국 젊은이는 파울러의
사랑은 떠나고 전쟁의 기운은 그의 세상을 흔드네, <콰이어트 아메리칸>
-
상류층에서 순진하게만 자라난 아가씨가 낯선 곳에 도착해서 낮은 신분의 남자와 만나 그가 속한 하부문화와 춤에 매료된다. 소녀의 준거집단에서야 금기나 다름없지만 소녀는 이 문란한 춤을 배워, 신분을 뛰어넘는 관능과 사랑에 눈을 뜨고 여자가 된다. 물론 진부하고 과잉이다. 하지만 62년의 한적한 여름 휴양지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가 강렬하고 예민한 성장드라마로 기억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그래미를 석권한 와 <더티 댄싱>의 춤이 보여준 마술 덕택일 것이다. 그리고 <더티 댄싱2: 하바나 나이트>는 58년 쿠바의 아바나로 또 한명의 순진한 아가씨 케이티(로몰라 게리)를 데려오며 이 마술을 다시 한번 더 재현하려 든다. 전편이 87년에 제작됐으니 17년 만의 귀환이다.
그러나 원래 이 영화의 안무가이기도 한 조앤 젠슨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려는 프로젝트로 시작해선지 <더티 댄싱2: 하바나 나이트>는 거의 동일한 플롯인 전편과 그렇게 많이 상관있어 보이지 않는다.
17년 만에 돌아온 <더티 댄싱>의 속편, <더티 댄싱2: 하바나 나이트>
-
그들은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그들의 일상을 여지없이 부숴버린 그 비극을 작정하고 의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그저 순간의 선택에서 비롯됐고, 그 선택은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사소한 욕망이 낳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진짜 공포스러운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어느 날 유괴범한테 쫓기던 소녀가 우연히 사토(야쿠쇼 고지)의 가방에 숨어들고, 유괴사건의 담당 형사는 단서를 찾기 위해 혼령을 불러내는 능력을 지닌 준코(후부키 준)에게 접근한다. 준코는 결국 소녀를 남편 사토의 가방 속에서 발견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망상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 순간부터 이들 부부가 보여주는 변화들은 영화의 전반부에 이미 암시된 것들이다. 준코는 자신만 볼 수 있는 원혼들로 인해 괴로워했지만, <식스 센스>의 소년과 달리 그들의 사정에는 귀기울이지 않았
소리없이 출몰하는 건조한 심리적 공포, <강령>
-
<라이어>는 레이 쿠니의 희곡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영화다. 한국에서도 연극으로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두었던 <라이어>는 적절하게 바꾸어놓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원제는 다) 거짓말만으로 전체를 이끌어나간다. 사소한 사고와 그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한 한 남자의 삶, 그 삶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에 끌려든 몇몇 인물이 전부인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뼈대 위에 영화 한편을 올려놓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김경형 감독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성공작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이모티콘으로 얼버무리고 지나간 원작 인터넷 소설의 여백을 에너지로 채웠고, 그저 나열하기만 하는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흘러가는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김경형 감독은 또 한번 부딪힌, 집 한채를 뜯어고친다고 할 만한 어려운 각색을 어떻게 만들어왔을까. <라이어>는 구멍 하나없이 촘촘한 원작과 함께 그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에도 흥미로운 영화다.
설정과
거짓말에 휩싸여 자신마저 잃어버린 남자의 비애, <라이어>
-
당신이라면 청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일본영화의 위대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절망에 굴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키즈 리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배틀로얄>에서 후카사쿠 긴지는 시스템에서 탈주하는 소년 소녀들에게 외쳤다. “뛰자!” 여기 <밝은 미래>에서 구로사와 기요시가 덧붙인 것은 ‘가라’는 사인이다. “지금까지 난 뭘하고 있었던 걸까요. 가라는 신호는 벌써 떨어졌는데.” <밝은 미래>의 주인공 니무라(오다기리 조)가 극중에서 던지는 이 한마디는 그간 인간 본성의 지옥도를 주로 그렸던 구로사와가 품고 있는 젊은 세대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절망의 심연에서만 찾을 수 있는 희귀한 희망 한 조각을 건져올린다.
<밝은 미래>는 24살 젊은이 니무라가 자신의 꿈에 대해 독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꿈에서 행복한 미래를 보는 이 청년은 그래서 꿈
절망의 심연에서 건져올린 희귀한 희망, <밝은 미래>
-
서양영화에서 ‘유령들린 집’이라는 소재는 끊임없이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흡혈귀만큼이나 자주 출몰하는 고전이며 전통이다. <샤이닝>은 인디언의 묘지 위에 지어진 휴양지에 한 가족을 초대하고, 원인 모를 광기로 미쳐가다 결국 죽음을 맞는 아버지를 통해 가족 단위를 붕괴시킨다. <싸이코>의 미친 아들을 조종하는 것은 죽었으나 존재하는 무서운 어머니의 육성이다. 유령들린 집의 매력은 근래의 할리우드 경향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윌리엄 캐슬의 <하우스 오브 헌티드 힐>은 조엘 실버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헌티드 힐>로 리메이크됐고, 로버트 와이즈의 <악마의 집>은 얀 드봉의 손에 의해 <더 헌팅>으로 다시 태어난 바 있다. 대개의 경우 이 저택에는 원혼이 스며든 미완의 과사들이 점철되어 있으며, 그 안에 발을 딛는 집단의 단위는 종종 가족이고, 그들은 처참하게 무너져간다. 아니라면, <디 아더스>의 어머
즐거운 놀이동산 유령의 집, <헌티드 맨션>
-
수백만명이 몰려 살고 표준화된 정보관리를 받는 도시의 삶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만 몇개의 숫자로 표현될지 모른다. 거기서 공포의 연원을 읽는 스릴러영화 <테이킹 라이브즈>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사실 공동체적 기반을 잃고 살아가는 도시의 독신자들만을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의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범작에 그치긴 했지만 <왓쳐>의 경우도 피해자를 예고하는 데도 정작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속수무책인 도시 생활의 삭막한 익명성을 파고든 적이 있다. 그러나 <테이킹 라이브즈>의 연쇄살인범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사람을 살해하고 난 다음 그 사람의 이름과 신분증, 카드를 사용하며 아예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야말로 정체성 도둑인 것. 그리고 미모의 FBI 프로파일러 스콧(안젤리나 졸리)이 천재적 직관과 관찰력으로 결정적인 증인 코스타(에단 호크)와 함께 범인의 심리를 추적하며 수사망을 좁혀간다. <쎄븐
남의 인생을 훔치는 연쇄살인마와 섹시한 여형사의 매치업, <테이킹 라이브즈>
-
네드 켈리는 19세기 호주의 전설적인 대강도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그는 로빈후드, 윌리엄 텔 그리고 우리의 홍길동처럼 지배층에 맞서 싸우며 민초들을 도왔던 영웅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할리우드의 스타 공급지로 각광받는 호주 영화계가 이 흥미진진한 인물을 가만히 놔두고 있을 리는 없었다. <네드 켈리>는 자국산 스타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획된 호주 영화계의 야심적인 웨스턴 프로젝트다. 네드 켈리에 대한 소설 <아워 선샤인>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은 그가 체포되기 직전의 5년간이다. 이 짧은 기간에 네드 켈리라는 인물을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가 발을 딛고 있었던 대지에 대한 통찰력이다. 영화는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가 묘사하는 궁핍한 이민자들의 삶은 생생하다. 호주의 대지를 메마르고 척박하게 묘사하는 미술과 촬영은 가끔 너무 과장되어 있기는 해도 적절한 박진감이 있다.
영화는 자칫 ‘영웅담’으로 빠져들기 쉬웠
소영웅의 투박한 선전포고, <네드 켈리>
-
상대를 바꾸지 않고도, 오래된 연인 사이로도, 그 사랑이 매일 새로울 수 있을까. 매일 사랑에 빠지고, 매일 첫 키스를 나누는 기쁨에 취할 수 있을까. <첫키스만 50번째>의 연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루만 지나면 전날 기억을 까맣게 잊는 여자, 수많은 여성들과 하루 동안의 ‘시한부 로맨스’ 만들기에 열중하던 남자가 만나 눈이 맞아버린 것이다.
아내의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사진과 문신으로 기록하는 <메멘토>의 레너드, 동네 미아 찾기에 동참해 ‘내가 누구지?’를 연발하는 <니모를 찾아서>의 파란 물고기 도리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루시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1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루시가 인지하는 시점은 사고 이전과 사고 당일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헨리는 루시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예감하지만, 루시에겐 바로 전날 데이트한 헨리를, 다음날 소 닭 보듯 하는 망각의 일상이 반복된다. 헨리는 그런
매일 새로 시작하는 오래된 연인, <첫키스만 50번째>
-
갱스터영화가 도시의 불안을 먹고 자란 장르라면 사기극은 자본주의의 허영심이 키운 장르일 것이다. 돈은 모든 사기극의 원점이요 귀결이며 인간은 화폐의 잔인함과 우스꽝스러움을 연기할 뿐이다. 적어도 이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선 그렇다. 김 선생(백윤식)이 어느 기업 연수원에서 이라크 화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때 그 말엔 정말 큰 사기는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큰 건이 있다면 패를 놓을 수가 없다. 그런 욕망이 아니라면 이 세계는 돌아가지 않는다.
<범죄의 재구성>은 간단히 말하면 한국은행을 속인 사기꾼들의 이야기다. 일군의 전문가 집단이 의기투합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한다. 짐작하겠지만 여기까지는 <오션스 일레븐>과 크게 다르지 않다. 11명이 필요했던 <오션스 일레븐>과 달리 <범죄의 재구성>은 5명으로 팀을 구성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이 영화가
한국은행을 속인 사기꾼들의 이야기, <범죄의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