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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발명가 월래스와 그의 과묵한 동거인 그로밋이 돌아왔다.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이하 <거대토끼의 저주>)는 점토로 빚은 인형들을 움직여 한 장면씩 촬영해 만드는 수공예적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인 아드만 스튜디오와 드림웍스 스튜디오가 손을 잡고 5년 만에 완성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슈퍼 야채 선발대회’를 앞둔 영국의 작은 마을. 집집마다 공들여 키운 야채들의 마지막 관리에 정신이 없는 이 마을의 골칫거리는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토끼다. 월래스(피터 살라스)와 그로밋은 토끼 퇴치를 업으로 삼고, 고객들의 집에서 경보가 울리면 즉시 출동, 야채들이 탈없이 자랄 수 있게 한다. 문제만 일으키는 발명품들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월래스는 토끼들을 세뇌하는 기계를 발명, 토끼들이 야채를 싫어하게 만들겠다고 장담하지만 실험은 사고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거대한 토끼가 온 마을의 야채를 온통 먹어치우는 사고가 발생한다. 우아한 귀족
수공예적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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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끔찍함은 현재에 있지 않다. 오늘이 아무리 비루해도, 내일이 맑다는 희망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 모름지기 지옥이라고 부르는 상황은 끝을 알 수 없는 순환, 안으로만 깊어지는 절망의 나선구조에서 비롯된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바깥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채 밑도 끝도 없는 타락을 거듭한 브라질 슬럼가, ‘시티 오브 갓’의 악랄한 연대기를 묘사한 <시티 오브 갓>은 그러한 지옥의 본질을 꿰뚫는다.
이제 막 빈민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마을을 지나가는 배달 트럭을 털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텐더 삼총사가 주름잡던 그 시기에는 엄연한 룰이 존재했다. 갱이라 부르기에도 뭔가 석연찮은 그들 모두는, 돈은 훔치되 살인은 삼갔고, 언젠가 이 생활을 그만두고 사랑 혹은 번듯한 미래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도 있었으며, 엉뚱한 용의자를 사살하고도 지갑을 챙기는 악질 경찰에 비하면 약자에 불과했다. 텐더 트리오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코흘리개 때부터 범죄에 탁월
브라질 슬럼가의 악랄한 연대기, <시티 오브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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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가 자신의 성장기였던 30대들은 칠흑 같던 그 시기에 대해 저마다 할 말을 가졌다. 누군가 대신해준다고 자신에게까지 씻김굿이 되진 않는다. 자기가 검은 교복을 입어야 한다. 박흥식 감독도 교복을 꺼내들었다. <사랑해, 말순씨>는 79년 박정희 사망에서 80년 전두환 대통령 취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중1 소년 광호(이재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누구나 억압당하고 상처입었던 바로 그 시절의 이야기다.
예민한 성장기 아이는 많은 것을 기억한다. 꼭 광호 또래였던 감독이 90% 이상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만든 이 영화는 시대를 환기시키고 대변하는 은유와 디테일로 가득하다. 어릴 때 불발탄을 갖고 놀다 손가락을 잃은 태호(이한위)는 선생들에게 불량아로 낙인찍혔다. 이웃에 사는 다운증후군 환자 재명(강민휘)이는 동네 골목 어귀에 퍼질러진 똥 같은 존재다. 광호네 집에 셋방사는 은숙(윤진서)은 간호학원을 나왔으므로 죽어도 정식 간호사가 될 수 없는, 불우한 시골 처녀다
섬세하게 매만진 소년의 성장기, <사랑해, 말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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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호러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매혹됐던 소년 팀 버튼은 공동 묘지에서 늘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가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키운 건 그때부터였다. 그의 세계에선 적어도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해코지하는 일은 없다. 무덤에서 나와 새 삶을 얻은 강아지가 흉측한 몰골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프랑켄위니>), 할로윈의 스타가 ‘재밌자고’ 벌인 일들로 세상의 크리스마스가 엉망이 되는 것(<크리스마스 악몽>)처럼, 사건은 그들의 선의와 열정이 오도됐을 때 벌어진다. 이러한 팀 버튼의 상상력, 특히 그 이미지의 힘 앞에선 저승이나 비정상의 세계가 불온하거나 사악하다는 식의 편견을 고수할 수가 없다. 유령을 신부로 맞는 신랑의 이야기 <유령신부>는 그의 그런 믿음과 미감을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경우다.
19세기 말로 추정되는 빅토리아풍의 마을. 졸부 평민 집안의 빅터(조니 뎁)와 쇠락한 귀족 가문의 빅토리아(에밀리 왓슨)는 돈과 지위를 맞교환
팀 버튼이 사랑하는 모두를 담은 선물세트, <유령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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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레인지>는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계보를 잇는 서부극이다. 빛나던 카우보이의 시대는 지나버렸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상처와 회한뿐이다. 과거를 숨기고 입을 꾹 다물었던 주인공 찰리 웨이트(케빈 코스트너)가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살인들을 보스 스피어맨(로버트 듀발)에게 토로하는 순간 웨스턴의 테마인 권선징악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나약한 한 인간만이 화면 속에 남아 있다.
방목을 하며 살아가는 찰리와 보스 일당은 하몬빌 마을의 벡스터(마이클 갬본) 일당의 시비에 걸려든다. 피투성이가 되어 잡힌 동료 모스를 구하지만 상황은 점점 험악해진다. 이후 벡스터 일당의 습격에 찰리와 보스는 역습으로 제압하지만, 소 떼를 지키던 모스는 죽고 막내 버튼(디에고 루나)도 총에 맞는다. 버튼을 데리고 모스를 치료했던 의사 바로우를 찾아가는 찰리 일당. 그러나 마을에는 목숨을
상처와 회한만 남은 카우보이의 시대, <오픈 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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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민족음악가 R.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독일의 오랜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보탄 신은 난쟁이족의 왕 알베리히가 황금을 훔친 대가로 반지를 빼앗고, 알베리히는 반지에 저주의 마법을 건다. 보탄 신은 저주를 이길 수 있는 인간 지그프리트를 창조하고, 자기 명을 어긴 딸 브룬힐데를 잠들게 한다. 반지를 되찾은 지그프리트는 잠들어 있던 브룬힐데를 깨워 사랑을 맹세하지만 알베리히의 아들 하겐과 그의 이복형제 군터의 모략으로 군터의 누이 크림힐드를 아내로 맞게 된다. 하겐과 군터는 지그프리트의 보물과 반지에 눈이 멀어 지그프리트를 죽이고자 한다.
총 4막의 오페라 중 지그프리트와 브룬힐데의 이야기를 담은 3,4막을 영화화한 <니벨룽겐의 반지>는 원작이 가진 비극의 원형을 고스란히 품는다. 지그프리트와 브룬힐데의 사랑, 여기에 끼어든 하겐의 누이 크림힐드와의 삼각관계, 지그프리트를 위협하는 하겐과 군터의 계략 등 큰 줄기도 같다. 탐욕과 질투에서 비롯된
고전미를 반감시킨 액션멜로블록버스터, <니벨룽겐의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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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신민아)에게 동건(류승범)은 천지창조 조물주다. “그동안 잠들어 있어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동건씨가 저에게 보여주니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 해주에게 동건의 허풍과 수다는 더없는 위안이고 행복이다. 우연한 선행으로 해주를 알게 되고, 이후 그녀의 눈과 손과 발이 되기를 자처한 동건. 잠자는 숲속의 공주 곁에는 백마 탄 왕자가 서야 로맨틱한 판타지가 완성된다고 믿는 동건은 자신을 근사한 외모의 귀공자 타입으로 속이고서 해주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야수와 미녀>는 제목이 일러주듯,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청년의 우여곡절 연애담이다. 동건의 시련은 각막이식수술을 받은 해주가 시력을 되찾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마법에서 풀렸지만, 그 순간 백마 탄 왕자는 마법에 걸린 개구리 왕자가 된다. 어서 빨리 자신의 눈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해주의 독촉을 피해 흉터투성이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은 동건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외모 지상주의를 비꼬는 우여곡절 연애담, <야수와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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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틀 안에서 끝없이 자기복제하고 있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운명. 그 소재와 인물과 이야기의 재조립을 거쳐 나온 또 하나의 산물이 <퍼펙트 웨딩>이다. 명랑하고, 밝고, 씩씩한 여주인공 찰리(제니퍼 로페즈)는 해변에서 운동하는 케빈(마이클 바턴)과 눈이 맞아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고, 그의 어머니 바이올라(제인 폰다)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얼떨결에 청혼까지 받는다. 찰리는 어느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혹은 거의 모든 로맨틱코미디 여주인공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는 그런 여자다. 케빈은 그 매력적인 여주인공의 상대로 더없이 적당해 보이는 남자다. 그 둘 사이에 케빈의 어머니 바이올라가 낀다. 그녀는 오랫동안 시사 프로그램의 꼿꼿한 앵커로 활약해왔지만, 이제는 퇴물로 취급받아 현장에서 물러나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이다. 하지만, 여전히 격식과 수준은 그녀 최선의 삶의 조건이다. 며느리 될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운명, <퍼펙트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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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마스크 오브 조로>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에서 알랭 들롱에 이르는 희대의 매력남을 담아낸 캐릭터로, 배트맨을 비롯한 ‘가면 쓴 영웅’의 원형이 되었던 조로를, 굳이 다시 영화화할 필요가 있었을까, 회의하던 이들도 이 영화의 미덕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든 조로가 후계자를 키운다는 홍콩 무술영화식 모티브를 끌어들인 <마스크 오브 조로>는 고전 활극의 낭만과 매력을 상기시켰다. 영화는 2억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캐서린 제타 존스는 섹스 심벌이 되었으며,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라틴 스타로 재도약했다. 스스로 ‘전설’이라 명명한 속편의 나르시시즘엔 이런 연유가 있었다.
<레전드 오브 조로>는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된 조로 부부, 알레한드로(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엘레나(캐서린 제타 존스)가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검을 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위기 상황마다 출동하는 남편을
속편의 나르시시즘, <레전드 오브 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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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라는 영화가 있었다. 감독 박철수보다는 각본 김수현과 배우 윤여정의 크레딧이 유난히 돋보였던, 딱 20년 전에 만들어진 섬뜩한 복수극. 앞부분은 방송인 홍 여사(윤여정)가 홀로 키우던 고3 외동딸의 수난극이었다. 매춘 사냥꾼들에게 학교 앞에서 납치된 뒤 윤간당하고 남성들의 노리개로 길들여지는 끔찍한 시간이 흘러간다. <어미>의 진면목은 그 다음이다. 되찾아온 딸은 수렁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하고 어미는 절규한다. 제 새끼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통곡의 시간을 보내고 어미는 사냥에 나선다. 애초부터 공평무사한 법 따위는 없다는 현실을 늦게 깨달은 어미는 칼과 쇠사슬과 염산과 면도칼로 찌르고 조이고 녹이고 잘라버린다. 응징의 강도가 압도적이었거니와 부유한 지성인에서 야생의 어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윤여정의 분노는 더할 나위 없이 살벌했고, 또 공분의 대상으로 삼을 법했다. 아버지는 부재하고 남성은 광포한 폭력 그 자체였던 <어미>는 5공 말기 그 시
스릴러 영화의 자신감있는 진화, <오로라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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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치족 추장 아바하치(미카엘 헤르비그)와 그의 의형제인 백인 총잡이 레인저(크리스티안 트라미츠)는 부족의 생존을 위해 술집을 열기로 한다. 그들은 쇼숌족에게서 황금을 빌려 시설까지 갖춘 건물을 샀다고 착각하지만, 사기꾼 산타 마리아는 황금을 가로채고 쇼숌족 추장의 아들 웃기는 토끼를 살해한다. 그 죄까지 뒤집어쓰게 된 두 남자.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탈출한 아바하치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을 찾아 빚을 갚고자 한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술에 취해 아무에게나 나눠주었던 보물지도 네 조각을 모두 찾아야만 한다. 아바하치는 지도 한 조각을 가지고 있는 쌍둥이 형 위니터치를 찾아가 나머지 조각들이 어디 있나 물어본다.
서부극을 가장한 <황야의 마니투>는 코미디와 어드벤처에 가끔은 뮤지컬까지 뒤섞은 정신없는 영화다. 인디언 마을에 이방인이 들어오는 첫머리는 그나마 서부극에 가깝지만, 새끼 토끼를 애지중지하는 추장 구린 도마뱀이나 산타 마리아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은 뭔가 불길해
풀기없이 늘어진 천조각 같은 코미디, <황야의 마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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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속에 푹 빠진 천재들의 삶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혹적이지만, 같이 살아가야 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난감한 존재이다. 때로는 그들의 지나친 열정이, 때로는 그들의 지독한 순수성이 그들을 세상과 담쌓은 ‘유리 동물원’ 속의 인물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빙 줄리아>의 줄리아 역시 그런 매혹과 난감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패왕별희>의 데이처럼 처연한 빛깔이 흐르지 않는 것은 경극배우 데이가 20세기 초반의 격동적인 역사에 휘말렸던 것과 달리 그녀는 1930년대 런던의 화려한 무대 위를 누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반 자보가 포착한 줄리아의 위기는 그녀를 둘러싼 외부세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욕망과 사랑이라는 그녀의 내면으로부터 온다.
1938년 런던의 한 연극무대, 당대 최고의 여배우 줄리아 램버트(아네트 베닝)가 열연을 펼치고 관객은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무대 뒤의 그녀는 심리적, 육체적
중년의 위기를 맞은 여배우의 오묘한 아우라, <빙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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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격투기 헤비급 선수처럼 생긴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제이슨 스태덤)다. 냉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 앞에서 멋모르는 양아치 몇명이 그의 고급 세단을 내놓으라며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양복이 구겨지는 것이 싫다며 차 위에 차분히 옷을 개어 올려놓는 순간 이 싸움판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이미 정해진다. 남자는 말 그대로 인간 병기이며 전직 트랜스포터(영화의 설명에 따르면, 불문곡직하고 자신이 맡은 짐을 범죄 집단 사이에서 운반해주는 직업이라고 한다)다. 그러나 동시에 치기에 젖은 양아치들 정도는 몇대 때려주고 돌려보낼 만큼 신사다.
‘좀 조용히 살아보려는 은퇴한 영웅이 사건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실력 행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전통을 이 영화는 고스란히 반복한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프랭크는 주인집 꼬마와 깊은 정이 든다. 결국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꼬마를 납치하여 정치가인 아버지를 협박하려드는 마약 밀매조직이다. 프랭크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독창적이지 못한 총싸움 영화, <트랜스포터 엑스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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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그 지명도에 비해 영화로 접할 기회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마이클 브룩에 따르면 영어권에서 극장용 유성영화로 제작된 <베니스의 상인>은 놀랍게도 이번에 개봉되는 마이클 레드퍼드 작품이 최초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에서 제작된 몇편의 무성영화가 있었지만, 유성영화 시대에 들어선 뒤로 로렌스 올리비에가 샤일록을 맡아 열연한 연극 등이 TV용 영화로 각색된 일을 제외하고는 순수하게 극장의 관객을 대상으로 제작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이자 전형적인 반영웅(antihero)인 샤일록이라는 캐릭터가 갖는 미묘한 정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반유대주의(anti-Semitism)는 동시대 연극 관람객인 귀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젊은 귀족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느라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들이 소비하는 돈은 합법적인 상업
시공을 초월한 텍스트의 즐거움, <베니스의 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