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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오는 슬기로운 꼬마 양양은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소년을 사로잡은 주제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다. 어리둥절해하는 어른들에게 어린 예술가가 밝히는 의도는 명쾌하다. “사람들은 항상 절반밖에 못 보잖아요. 나머지 반을 보여주고 싶어요.”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도 비슷한 소망을 내비친다. 얼굴의 반대편에 있기에 타인은 유심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본인은 아예 잊고 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인어공주>에는 돌아앉은 남녀의 등을 응시하는 숏이 유난히도 많다. 티셔츠를 훌렁 벗고 탕에 들어가는 때밀이 어머니의 등, TV 앞에 멍하니 앉은 아버지의 등, 받아쓰기에 열중한 스무살 처녀의 웅크린 등, 마음 끌리는 처녀의 자맥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집배원의 등. 그리고 이 모든 뒷모습들은 못나고 가난한 부모에게 절망한 딸이 엄마의 놀라운 ‘뒷모습’과 마주치는 여행 속에 흩어져 있다.
불행한
스무살 시절 엄마를 만난 딸,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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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블록버스터 속편들이 있다. 아마도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일 터. 난데없는 <스타쉽 트루퍼스>의 속편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컬트영화 취급을 받고 있는 폴 버호벤 감독의 전작에서 설정만 따서 만들어진 비디오용 영화이고, 당연히 원작자인 로버트 하인라인의 이름은 찾아볼 수도 없다.
어쨌든 여기서도 벌레들과 인간의 전쟁은 계속된다. 그중에서도 <스타쉽 트루퍼스2>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이 자그마한 기지에 갇혀 구출될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작에서 가져온 예의 그 ‘배달의 기수’식 패러디는 여전하다. 그런데 이 후속편에 번듯하게 첨가된 프로파간다 풍자는 좀 의아하다. 전작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폴 버호벤 특유의 살짝 배배 꼬인 유머들은 나름대로 싱거운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뉘앙스가 거세된 저자본의 비디오용 후속편이 그걸 따라하려 하니 유머는 사라지고 그 허세만
막나가는 B급 비디오영화, <스타쉽 트루퍼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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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양사>를 좋아하는 이들은 세이메이의 팬인 동시에 세이메이를 연기한 배우 노무라 만사이의 팬이다. 세이메이의 흡입력은 그가 세계와 거리를 두고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다. 인간과 여우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을 가진 음양사 세이메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다. 숙명적으로 경계에 위치한 그는 모호하고 양면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교겐(狂言)계의 스타 노무라 만사이는 세이메이 캐릭터에 요염한 자태와 우아한 몸짓을 부여했다. <음양사2>에서 더욱 강해진 세이메이의 활약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조금은 유감스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전작이 비교적 선명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야마토 황실을 수호하려는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이토 히데아키)의 활약을 중심에 두었던 데 반해 원작자 유메마쿠라 바쿠가 각본에 참여한 <음양사2>의 축은 오히려 멸망당하고 잊혀진 이즈모국의 복수극이기 때문이다.
이즈모를 멸망시켰던 야마토국의 수도에서 귀족들이 습격
잊혀진 패자 이즈모국의 복수극, <음양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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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에 루즈삭스를 신은 미소녀, 일본의 학원만화를 본 적 있다면 그녀를 모를 리 없다.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원작만화를 못 봤더라도 그녀는 오랫동안 소년들의 꿈이었다. 그건 꼭 일본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달라도 미소녀 판타지엔 국경이 없다.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은밀한 즐거움은 실사영화로 미소녀 판타지를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만화보다 강력한 이미지로 다가온 그녀, 아즈미(우에토 아야)는 그 예쁜 얼굴을 남자들의 피로 적신다. 아즈미의 칼이 징그럽고 음흉한 사내들을 벨 때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도 생길 법하다.
이야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과 전쟁을 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전란통에 고아가 된 아즈미는 어린 시절부터 9명의 소년과 더불어 자객이 되는 훈련을 받는다. 도쿠가와 편인 사부는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도요토미 수하의 장군들을 암살해야 한다고 믿으며 아즈미와 소년들을 가르친
미소녀 사무라이 액션코미디,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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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당신의 숨겨진 재능을 깨달아 지금보다 더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신작을 탈고했음에도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자서전 대필만 권유받는 동화(정준호). 순수문학가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그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무시당하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조폭 두목 윤만철(손창민)의 자서전 대필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삶의 큰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책 집필을 위해 만철의 젊은 시절 일기를 뒤지던 동화는 “상대방보다 반 박자 빨리 나가는” 싸움의 기술을 깨우쳐가고, “이제 주먹질 같은 건 그만두자”고 부하들을 어르는 젠틀맨 만철은 동화의 국문학과 후배 연희(정소영)와 사랑에 빠지면서 안정된 삶을 꿈꾸게 된다.
<나두야 간다>는 집 안팎에서 실패한 인생살이를 경험하는 동화의 주사와 호텔을 전전하며 불안정하게 사는 만철의 한숨을 통해 두 인물이 서로의 삶에 혹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그럴듯
실패한 소설가와 섬세한 조폭 두목의 인생 재건축 공사, <나두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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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에 쪽배처럼 떠 있는 캐나다 퀘벡의 작은 섬 생 마리. 한때 이곳에서 고기잡이는 엄숙하고 열정적인 제의였고 하루 열네 시간의 노동을 마친 사내들과 여인들의 잠자리는 온 우주의 불화를 다 잠재울 듯 흡족했다. 그러나 어획량이 줄고 경제발전이 낙도를 비껴가면서 섬사람들의 삶에는 이끼가 낀다. 언젠가부터 일거리가 떨어진 어부들은 배를 띄우는 대신 연금을 받기 위해 우체국 앞에 줄을 선다. 먹고사는 건 둘째다. 주민들은 국가의 시혜가 아닌 노동의 대가로 밥을 먹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장과 경찰마저 생 마리 섬을 등지고 떠나자, 터줏대감 제르맹(레이몽 부샤르)과 친구들은 일자리를 돌려줄 플라스틱 공장 유치에 팔을 걷고 나선다. 하지만 공장 설립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따르니, 섬에 상주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항목이 그것이다. 의사들에게 보낸 구인광고가 족족 퇴짜를 맞던 어느 날, 방탕한 도시생활로 눈밑이 그늘진 몬트리올의 성형외과 의사 크리스토퍼(다비드 부탱)가 상륙한
낙도 주민들의 요절복통 의사선생 유치작전, <대단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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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뚫린 고속도로는 지루하다, 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일직선으로 뻥 뚫린 그 길이 설사 시속 160km를 보장하더라도 시야에 변함없는, 기껏해야 매번 똑같이 생겨먹은 휴게소만을 제공하는 고속도로는 질색이라고. 아마도 장진 감독이 이 축에 들지 않을까. 속도를 속시원히 낼 수는 없어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국도를 선호하는 부류 말이다. 이런 길은 지루하지 않다, 고 믿을 것이다. 요모조모 눈요기하며 내지르다가 떡하니 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 나타나면 아예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나마 한눈팔기에 좋으니까. <아는 여자>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다. 목적지는 같고, 여하튼 그곳에 도착하기는 하지만 자꾸 딴짓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타이밍에 그럴 것 같지 않은 캐릭터가 일을 벌인다. “사랑은 새벽길을 산책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아침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운치있게 내레이션을 쏟아내던 이가 예상치 못하게 이별을 선언하는
사랑에 관한 사색과 성찰이 담긴 로맨틱코미디, <아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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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는 왕자님>. 제목만 들어도 뻔한 줄거리가 머리 속에 쫙 펼쳐진다. 그럼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가 이번에는 또 어떻게 변주될까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로맨틱코미디의 매력. 게다가 이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감독이 여성(마사 쿨리지, <섹스&시티
> <앤지> <더 월2> 등을 연출한 경력이 있다)이라면 이 영화가 여성의 얄팍한 ‘환상’만을 자극하지 않고 또 다른 독특한 신데렐라를 창조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페이지(줄리아 스타일스)는 의사의 꿈을 이루려는 미국의 대학 졸업반 학생으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어느 날 그녀 앞에 한눈에도 왕자병 기색이 역력한 철없는 에디(루크 메이블리)가 나타난다. 덴마크의 왕자인 에디는 왕실의 꽉 막힌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자유분방한 미국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온 것이다.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던 그녀와 그의 사랑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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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다가오는 심리적 공포, 아름답고 슬픈 호러, 그런 걸 기대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령>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즉각적인 공포로 승부하는 영화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 같은 충격을 원한다면 만족할 만하다. 기본 설정은 <가위>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등 2000년에 유행했던 한국 공포영화들을 연상시킨다. 5명의 친구가 있고 그중 한명이 왕따를 당하다 죽는다. 원혼이 살아 있는 4명 앞에 차례로 나타난다. <령>이 여기에 덧붙인 것은 주인공 지원(김하늘)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친구를 따돌리고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정말 나였을까? 언뜻 떠오르는 기억과 악몽이 정체모를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영화의 전모를 암시하는 힌트는 크게 두 가지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이 노래는 영화의 오프닝에 흘러나온다. <나이트메어&
놀이공원 귀신의 집 같은 즉각적인 공포, <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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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이후 총여섯명의 고속도로 운전자들을 살해한 끝에 2002년 10월9일 플로리다 형무소의 전기의자에 앉기까지, 아일린 워노스를 표현하는 언론들의 선정적인 헤드라인은 항상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이었으며, 그녀를 표현하는 공적인 이미지는 ‘괴물’ 같은 거구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8살 때 처음 아버지 친구에게 강간당했고, 13살 때 이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어떤 종류의 관심이나 애정에도 철저하게 버림받은 채 돈으로 육체를 거래하는 과정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를 표현하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단순명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를 다룬 영화 <몬스터>를 보면서 우리는 또 한번 함정에 빠지게 된다. 영화를 통해 재현되는 실존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한 일인가?
<몬스터>의 아일린 워노스- (영화 속에서는) 리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타입에도 묶을 수 없는
미성숙한 영혼이 폭발하는 정화의 순간,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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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늪지의 괴물 슈렉은 마법에 걸린 피오나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미녀와 야수>를 닮은 키스신은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었다. 슈렉은 여전히 괴물로 남았고, 피오나는 인간이 아닌 괴물로 변해버렸다. 자기 본성에 맞게 살아가는 괴물과 그에게 매료돼 자기 자신을 버린 연인. 그뒤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마침표를, 그들은 그렇게 찍은 듯했다. <슈렉2>는 ‘과연 그랬을까?’라는 의혹으로부터 심술궂은 후일담을 풀어낸다. 신분이 다르고, 인종(!)이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할 순 있지만, 그들의 결합을 세상이 축복하겠느냐고 딴죽을 걸어보는 것이다.
<슈렉2>는 슈렉이 피오나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겁나먼’ 왕국의 초대를 받지만, 피오나의 부모와 왕국 사람들은 슈렉 부부의 모습에 경악한다. 환대받지 못한 슈렉은 피오나와 다투기도 하고, 피오나의 아버지가 보낸 자객 ‘장화 신은 고양이’의 습격
악당이 늘어난 좌충우돌 풍자극, <슈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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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콜핏’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모녀 삼대가 있다. 노년의 씨씨1은 술 취한 바람둥이 남편을 욕조에 익사시킨다. 중년의 씨씨2는 도통 무심한 뚱보 남편을 바다에 익사시킨다. 갓 결혼한 씨씨3는 수영도 못하는 새신랑을 수영장에 익사시킨다. 그때마다 불려온 검시관 매짓은 연쇄살해극을 단순사고사로 위장해준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모종의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는 매짓을 그녀들은 매번 퇴짜 맞힐 뿐이다. 이 기묘한 죽음의 퍼레이드와 욕망의 숨바꼭질이 영국산이라면, 히치콕 같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영화적 후예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줄넘기소녀의 별 이름 100개 외우기로 시작한 영화가 화면과 대사 곳곳에 1에서 100까지의 숫자를 숨은그림처럼 뿌려놓는다면? 실로 영화는 스릴러적 몰입을 방해하는 별난 게임들로 가득하다. 매짓의 아들 스멋은 제멋대로 창안한 꽤 지적이면서도 허망한 구석이 있는 게임들을 차례차례 선보인다. 피터 그리너웨이 체질이 아니라면 이마저 얼떨떨하겠지만, <차례로
별난 게임들로 가득한 지적 유희, <차례로 익사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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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월30일 일요일 비무장 시위를 벌이던 북아일랜드 데리 시민 열세명이 영국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열네명이 다쳤고, 그중 한명이 곧 죽어 사망자는 열넷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날 벌어진 일 때문에 처벌받지 않았다. <블러디 선데이>는 ‘피의 일요일’이라고 기억되는 이날 진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기록하고 있는 영화다. ‘피의 일요일’ 꼭 30년 뒤인 2002년 1월25일 영국에서 개봉한 <블러디 선데이>는 마치 카메라를 가지고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것처럼 사실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영화는 단 한번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판단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을 목격자로 만든다. 목격자는 자신이 본 사실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본도 직접 쓴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1만명 넘는 사람이 행진에 참가한 이 사건에서 네명을 골라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각각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블러디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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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해. 내 곁에 있어줘.” “나의 일을 포기할 순 없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단 얘기야?”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동문서답처럼 보이지만, 일본에서도 이 대화는 남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중년 남녀의 절대적인 사랑을 그렸던 <실락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 그의 또 다른 소설을 영화화한 <메트레스 연인>은 결혼 적령기를 넘긴 한 여성의 혼란스러운 자아찾기라는, 진부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의 소몰리에(와인 전문가)인 미혼 여성 카타기리 슈코(가와시마 나오미)와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유부남 토노 슈헤이(미타무라 구니히코)는 달콤한 한때를 즐기는 연인 사이. 여자는 결혼의 정의를 “서로가 정착할 수 있는 곳의 발견”이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남자는 이에 대해 “결혼은 서로 나아가길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부인에게 토노가 버림받은 이후, 둘
결혼에 대한 진부하지만 절실한 물음, <메트레스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