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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들은 6개월 뒤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것이 9년을 끌어온 수수께끼의 답이다. 연락처도 성도 모른 채 헤어진 셀린느(줄리 델피)와 제시(에단 호크)의 9년 뒤를 그리는 <비포 선셋>은, 로맨티스트와 현실주의자를 고루 만족시켰던 <비포 선라이즈>의 열린 결말을 비로소 닫아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진실을 알고 싶었을까? 속편을 통한 그들의 재회가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은, 제시와 셀린느처럼 우리도 1994년 6월16일 그들이 나눈 감정이 지속과 반복이 불가능한 종류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그러진 약속과 이지러진 기억,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는 덧없는 발돋움 외에 그들의 후일담에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포개지는 삶의 어떤 순간들을 통해 기적처럼 영속하는 시간을 찾아낸다. 춤추는 어린 딸을 보는 순간, 열여섯살의 시간으로 돌아가 첫사랑 소녀의 춤을 바라보는 남자에 관한 제시의 이야기는, 링클레이터가 <비포 선
열망을 감추는 몸짓 속의 진실, <비포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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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의 그녀가 쓴 20대 일기장을 들추니 빼곡하게 적힌 여관 이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여관 이름들은 적어놓았을까, 또는 왜 여관이라는 단어만 붉은 등을 켜고 있는 것일까. 애틋하기는커녕 얼굴 붉어질 여관방의 기억이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이것이야말로 성에 눈떠가는 젊음의 궤적일지 모른다.
게다가 일기를 쓴 나지니(김선아)와 주요 등장인물인 지니의 역대 애인 명단(이현우, 김수로, 공유)을 보건대 이 일기장의 문체가 웃음기 가득한 발랄한 것이며, 적나라한 성애 묘사엔 별 관심이 없음을 짐작하겠다. 어찌 훔쳐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일기장이 돌연 (지니를 떠난) 이기적인 수컷들을 응징하기 위한 증거 자료로 채택되면서 그나마 일기장에 흐르던 따스한 분위기가 증발되고 우린 어리둥절해진다.
증발되기 전, 처음엔 싱그럽고 풋풋했던 한 에피소드.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사포를 쓰고 성가를 부르는 한 여자의 눈빛은 그야말로 사랑으로 충만하다. 성가대 지휘자 구현(
29살의 그녀가 쓴 20대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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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가 내 기억 속에 있어.” 교통방송 리포터 서유진(송지효)은 어디선가 본 듯한 전화번호를 자신의 번호라며 알려주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의 남자 강성주(고수)를 만난 뒤 이렇게 중얼거린다. 마약특별수사본부 강력계 형사 강성주는 경찰로 호송되던 와중에 사라진 100억원어치 마약의 행방을 찾고자 수사에 나선 참이다. 그리고 서유진은 자신과 같은 디지털카메라 동호회에 속한 한 멤버가 마약거래에 연루된 사람인지도 모른 채 사건에 휘말려들고 있었다. 단서를 잡으면 다시 끈이 풀리는 미로 같은 사건에 강성주가 깊숙이 다가가는 동안, 서유진은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과거의 일부였던 듯 이상한 데자뷰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유진이 과거라고 믿었던 그 이미지는 예언이 담긴 미래였다. 어긋나듯 일치하는 현실과 미래. 그 이미지의 중첩을 경험하는 그녀의 직업은, 공교롭게도 도심의 ‘현재’ 교통상황을 실시간 알려주는 리포터다. 유진의 환영이 다가올 미래었음을 밝히는 순간부터 <썸>
바꾸려 했으나 바뀌지 않는 운명,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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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여고생과 열몇살 나이가 많은 남자가 집안 사이의 약속에 의해 부득이 결혼을 올린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섹스와 애정보다 유아적인 장난에 기반을 두며, 남자가 여자아이의 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단계를 맞는다. 학교에서 여자아이는 또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고 남자는 같은 학교 여교사의 애정공세에 시달린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라고?
2002년 홍콩에서 만들어진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는 최근의 ‘<어린 신부> 표절 논란’에서 ‘원본’으로 지적되는 영화다. 과연 두 영화는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기본 상황까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함께 대형마트를 누비는 장면이야 현대 아시아 대도시의 부부생활이 비슷할 터이니 넘어갈 수 있다 해도,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교사가 집으로 쳐들어오는 신에 이르면 ‘표절설’이 근거없지만은 않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러나 가족, 학교라는 배경을 활용해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가는 <어린 신부>와 달리 <아저씨…&
<어린 신부>의 원본?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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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하루 전세 내 밤새 도심을 돌겠다는 평범하지 않은 손님이 있다.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섞어 뿌린 듯한 회색빛 머리칼, 딱 달라붙는 고급 회색 슈트를 입은 이 정체불명의 사내는 빈센트(톰 크루즈)다. 이런 손님이라면 택시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가 제격일 것이다. 노스스프링에서 유니온까지는 7분, 베니스까지는 3분. LA 시내 구간구간의 소요시간을 빠삭하게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10시간 안에 도심 다섯 군데를 돌며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라면 이런 프로페셔널 운전사를 골라야 한다.
택시가 LA 야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심도 깊은 카메라로 잡아낸 이국적인 대도시의 밤풍경을 보라. 부감으로 잡아낸 풍경 속엔 밤하늘에 흩뿌린 듯한 빌딩의 노란 불빛과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야자수가 어울려 고즈넉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재즈로 편곡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넘실댄다.
<G선상의 아리아>
삭막한 도시의 밤에 찾아온 악몽, <콜래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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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앙코르와트 사원 석벽에 사랑의 비밀을 봉인한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먼지 낀 창을 들여다보듯” 희미하게 지나간 날들을 기억할 뿐이라던 그 남자는 지난 사랑의 실패를 딛고 또 다른 인연을 만났을까. 아름답고 안쓰럽고, 그래서 궁금했던 그 남자 차우가 돌아왔다. 그는 변했고, 변하지 않았다. 그건 왕가위도 마찬가지다. <2046>을 만나는 일은 <화양연화>를 거듭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낼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한 것 이상, 예상한 것 이외의 것을 보게 될 거라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예고가, 이럴 때 어울린다.
우선 그 남자의 근황. 신문사 일을 그만두고 포르노 소설을 쓰는 차우(양조위)는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가 되어 있다. 만취해 쓰러진 여자(유가령)를 데려간 곳은 오리엔탈 호텔 2046호. 사랑했던 여인 수리첸(장만옥)과 남몰래 만나고, 함께 무협소설을 써내려가기도
왕가위의 화려하고 비장한 ‘오페라’,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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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정일과의 대담에서 김기덕 감독은 “언젠가 ‘집’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소망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빈 집>을 통해 실현되었다. 하지만 제목의 그 ‘집’은 의미심장하게도 ‘빈집’이다. 굳이 제목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한강다리 아래의 천막(<악어>), 정박 중인 배(<야생동물 보호구역>), 새장여인숙(<파란 대문>), 형형색색의 좌대(<섬>), 빨간색 군용버스(<수취인불명>), 매춘이 이루어지는 트럭(<나쁜 남자>),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 뜬 암자(<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등 김기덕의 영화에서 불완전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집의 형상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빈 집>에서 엿보이는 집에 대한 김기덕의 관념(의 변화)에는 어딘지 예사롭지 않은 데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의 그의 관심이 장소(집) 자체가 아닌
환상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유령연습’, <빈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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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모범적인 남자 고등학생을 일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미모의 여성을 등장시켜 그동안 억압된 성욕을, 혹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기.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를 비롯한 할리우드 청춘물이 즐겨 다루는 소재다. 성에 대한 이미지는 여기저기 널려 있으나 정작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말로만 ‘섹스’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는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유치한 성적 욕망과 낭만적 사랑을 결합시키며 섹스코미디의 상상력에 로맨스의 진정성을 부여하려고 시도한다. 게다가 거기에는 포르노 배우와 포르노 사업이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중요한, 심지어 교육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신선함(?)’도 있다.
모범생 매튜(에밀 허시)는 명문대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 장학금을 타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졸업을 앞둔 동료 학생들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그에게 일탈이란 순간의 몽상에 불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매튜 앞에 매혹적
평범한 모범생의 야심찬 성공담,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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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족 소녀 파이키아(케이샤 캐슬 휴즈)는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아이다. 파이키아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와 일족의 지도자가 됐어야 할 쌍둥이 오빠. 족장인 할아버지 코로(라위리 파라텐)는 사내아이의 죽음만 애도하면서 갓난 손녀를 돌아보지 않고, 고집스럽게 지도자의 이름 파이키아를 딸에게 준 아버지 포루라니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외국을 떠돌아다닌다. 어린아이에게 천형을 짊어지도록 만든 전사(前史)를 짧게 읊어내린 <웨일 라이더>는 순식간에 세월을 뛰어넘어 열두살이 된 파이키아에게로 도약한다. 씩씩하고 사려 깊은 파이키아는 맏아들로 태어난 소년들 중에서 지도자를 뽑으려는 할아버지의 수업에 참여하려 하지만,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고래 등에 올라타고 바다를 건너온 조상 파이키아. 코로는 오직 남자만이 그 신성한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후계자의 자리를 둘러싼 할아버지와 소녀의 갈등이 폭발로 다가갈 무렵, 바다 멀리에서 고래들이 헤엄쳐온다.
뉴욕에
고래를 타고 꿈을 꾸는 천진난만한 영웅, <웨일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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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네트가 별을 덮고, 전자와 빛이 뛰어다녀도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정도로는 정보화되어 있지 않은 근미래. <공각기동대>를 여는 이 한 문장으로 오시이 마모루는 다가올 멋진 신세계를 제시했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이 문장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예언서처럼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상상력의 발전속도를 손쉽게 능가해오지 않았던가.
2032년. 네트의 전뇌공간 속으로 쿠사나기가 사라져버린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인간의 모습을 한 소녀로봇(‘인형’이라 불린다)이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인형들은 “도와줘요”라고 중얼거리며 자살을 감행한다. 고스트(영혼)가 없고 AI(인공지능)만이 탑재된 인형이 ‘자살’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공안 9과의 바트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형들을 만난다. 기이한 종교적 색채를 지닌 축제에서 인간에 의해 불태워지는 인형들, 인간을 초월하기 위해 스스로를 시체로 만들어버린 인형들. 오시이 마모루는 이
수줍은 ‘존재’들의 러브스토리, <이노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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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소년보다 생일이 며칠 빨랐다. 그러니까 소년이 태어난 뒤에 소녀가 이 세상에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소녀가 죽어버리고, 소녀가 없는 세상에서 소년은 17년을 더 살았다. 함께했을 때 그들은 궁금해했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랑도 죽는 걸까.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소년은 어렴풋이 그 답을 깨우친다. 그리고 붉은 사막과 푸른 하늘, 시간도 문명도 사라진 태초의 진공 같은 ‘세상의 중심’으로, 해묵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새로울 게 없는 영화다. 찬란했던 첫사랑, 연인과의 사별, 남겨진 자의 슬픔을 다룬 전형적인 최루성 멜로드라마. 그런데 이 영화가 올해 일본에서 크게 사고를 쳤다. 원작소설이 3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가 싶더니 5월에 개봉한 영화는 한술 더 떠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롱런했다. “왜 잊게 되는 걸까. 소중한 것들이 많았는데.” 주인공의
아련한 그리움의 서정,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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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씹새끼들아!” 원빈의 첫마디가 거칠게 열린다. 주먹질을 막 마치던 참이다.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릴 것 같던 그의 해맑던 눈이 꼴통의 눈깔로 변신했다. 잘생기고 깡다구로 똘똘 뭉친 고교짱 종현으로 말이다. 이 깡다구에게 연년생 형이 있었으니, 공부 빼면 시체인 성현이다. 입술을 갈라놓는 특수분장을 했지만 신하균은 꺼림칙한 이미지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성현은 성격은 천사표에 반성문을 써도 문학적이라고 칭찬받는 우등생이다. 깡다구가 “형제는 용감했다”고 스스로 빈정댈지언정 빈말은 아니다. 형은 전교 석차로, 동생은 싸움 석차로 그 학교를 평정해버렸으니.
문제는 동생이 깡다구가 되고, 형이 천사표 우등생이 된 까닭이다. 갖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설움이자 믿음이다. 형은 입천장이 벌어져서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의 한 종류, 언청이다. 가족사진을 찍어도 끝내 얼굴을 돌려 입술의 흉을 감추고 마는 슬픈 운명이, 노골적인 편애로 억척스럽게 뒷바라지해대는 어머니가 그를 천사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설움과 믿음, <우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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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프로그램 한 코너의 이름을 빌린 제목과 코미디언 정준하가 얼굴을 들이미는 포스터 때문에 <노브레인 레이스>는 막가파 영화처럼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제리 주커 감독에 녹록지 않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는 이 영화는 반듯한 짜임새를 가지고 제대로 웃기는 코디미영화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당기던 이들 가운데 6명이 호텔 사장이 참석하는 파티에 초대된다. 거기서 사장은 사물 보관함 열쇠 6개를 나눠주며 뉴멕시코의 실버시티역 1번 사물함에 현금 200만달러가 든 가방이 있으니 먼저 가서 가지라고 한다. 초대된 이들 가운데 몇은 그 말을 안 믿고, 몇은 “바보 짓 안 하겠다”며 버티다가 실버시티를 향해 사막길을 달려간다.
원제 ‘Rat Race’는 영한사전에 ‘무의미한(극심한) 경쟁’이라고 번역돼 있다. 그 뜻이 돈에 눈이 멀어 미친 듯 달려가는 이들의 경주에 어울리지만, 정작 경주 결과에 돈을 벌고 잃는 이들은 따로 있다. 돈 많고 할 일 없어 내
‘예스 브레인’ 코미디, <노브레인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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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조각가가 왜 그리 잔혹하게 고양이 연쇄 살해에 나서는지 이유가 불분명하다. 짐작건대, 그는 좀체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의 개인주의를 혐오하거나 고양이의 불온한 눈빛에 불길함을 자극받은 건 아닐까. 하지만 고양이와의 대화법을 체득한 나카다가 마주치는 고양이들과 성심성의껏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고양이의 내면은 다정다감하고 사랑스럽다. <캣우먼>은 이렇게 전형화됐다고까지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이미지를 캐릭터로 끌어온다. 자신의 소심함에 쩔쩔매던 여성이 고양이의 혼으로 새 생명을 얻는 순간, 그녀는 규범에 속박받지 않는 ‘고양잇과 여성’이 된다. 길들여지지 않은 본능으로 꿈틀대며 날카로운 공격성을 순간적으로 드러낸다. 욕망은 통제될 필요도, 여지도 없다. 수줍은 미소와 너그러움을 여전히 지니고 있어 이따금 두 본성이 대립되지만, 결국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통일성을 갖는다.
남성 영웅 대열에 홀로 선 할리 베리의 <캣우
섹시하고 독립적인 단독자, <캣우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