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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니 911>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힘을 벗어난 악질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교화하기 위해 베테랑 ‘내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내니들은 한 가정에 며칠간 머무르며 부모의 잘못된 교육 방식부터 아이들의 행동 방식까지 집안 곳곳에 뿌리박힌 ‘나쁜’ 습관들을 지적한다. 엄격한 표정과 딱딱한 영국식 영어로 그녀들은 다양한 가정의 다양한 패턴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직 규칙과 규율의 중요성만을 강조한다. 그녀들이 떠날 때쯤이면, 문제투성이였던 가정은 완벽하게 조용하고 평화로워진다. 아이들은 그 짧은 시간에 유순하게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로 재탄생하고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남편은 자상해지고 신경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여유를 찾는다. 외부에서 투입된 내니의 ‘법’이 벼랑 끝의 가정을 구하는 셈이다.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를 보면 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다만, 이 영화에는 아이들에게 하루
벼랑 끝의 가정을 구하는 마법,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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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인 수십명이 카불 거리를 행진한다. 모두 과부인 그들은 “우리는 정치는 모른다”면서 다만 일을 하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소리치지만, 최루탄과 물대포에 쫓겨 철망 안에 갇히고 만다. 눈동자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맨손의 여인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시위 장면은 탈레반 정권 치하 아프가니스탄이 문자 그대로 지옥일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처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그 지옥을 짊어진 한 소녀의 삶으로 넘어간다. <천상의 소녀>는 픽션이라 해도 픽션일 수가 없는 영화다. 여자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혼자서는 밖에 나갈 수도 없는 탈레반의 규율. 그것은 자유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열두살 소녀 레일라(마리나 골바하리)는 어머니(주바이다 사하르), 할머니와 살고 있다. 아버지는 카불 전쟁에서 죽었고 외삼촌은 러시아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에 집안엔 남자가 한명도 없다. 어머니가 몰래 일하던 병원이 넉달 밀린 월급도 주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굴러떨어지는 삶, <천상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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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를 창부라고 부르는 것이 못내 아쉽다면, 그것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고 한수 읊을 줄 알았던 그이의 기예와 자긍심 때문이다. 전통적인 게이샤(예자/藝者) 역시 기생과 마찬가지로 기예를 긍지삼아 살아가던 여인들이었다. 높은 값에 처녀성을 경매하고 권세가들 옆에서 웃음을 팔고 살았을지언정 그들은 당대의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안고 살았다. <게이샤의 추억>은 그처럼 몸과 예술을 하나로 엮어 팔았던 어느 게이샤의 회고록이다. 소녀 치요(오고 스즈카)는 가난 때문에 교토의 게이샤촌으로 팔려간다. 당대 최고의 게이샤 하츠모모(공리)의 미움을 사서 하녀로 전락한 치요는 우연히 만난 회장(와타나베 겐)에게 연정을 품고, 하츠모모의 라이벌인 마메하(양자경)의 도움을 받아 사유리(장쯔이)라는 이름의 게이샤로 거듭난다.
실제 게이샤의 회고담을 토대로 한 원작을 영화화했다지만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 문화의 속살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할리우드식 동양화 화첩, <게이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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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일드>는 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장 뤽 다르덴의 여섯 번째 장편 극영화다. 200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들의 영화 <로제타> 이후 두 번째 수상이다. 다르덴 형제는 같은 동심원 안을 서성거리며 세계를 관찰하고 또 완성하는 연작형의 감독이다. 국내에서 개봉했던 <아들>을 비롯하여, <로제타> <약속>은 그들의 관심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직전’의 인간들이 있다.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의 전모가 있기보다 어쩌다보니 이미 휘말려들어가 있는 절박한 상황의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예측불가능한 상황의 직전만이 있다. 그 순간 그들을 구제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이들의 관심이다. 단, 신의 손에 기대지 않고, 사회의 철저한 구호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까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늘이 열릴 만한 신의 은총도, 얼음장같이 냉철한 사유의
시선의 팽팽함으로 생기는 긴장, <더 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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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것은 운명이 지배하고, 확실한 것은 인간의 재주로 다스린다”는 라틴 경구가 있다. 누군가 운명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숲에서 맥베스를 홀리던 세 마녀처럼 <무극>에서도 강가에 여신(첸홍)이 등장해서 어린 칭청(장백지)에게 슬픈 미래를 예언한다. 칭청의 운명은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시간을 되돌리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않는 한 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불운한 칭청을 사랑하는 세 남자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가장 큰 불행은 ‘마음은 털어놓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연애의 상식을 망각한 점이다.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대장군, 쿤룬, 북공작은 무작정 기다리고 그녀를 가둬두거나 시키는 일만 수행할 뿐이다. 그런 몸짓을 사랑이나 의지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쿤룬의 빛보다 빠른 발놀림으로 뒤쫓아도 따라잡기 힘든 운명의 여신을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 시장에 고정된 시선, <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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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때 시골 역장을 꿈꾼다, 라고 하면 거짓말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잠깐 그들의 운명을 부러워하는 때가 있다, 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기차엔 어떤 서정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찻길은 인생의 시적인 비유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 때 없는가. 철길을 한없이 걷고 싶은 때. 롭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에 나오는 장면처럼, 친구들과 철길을 따라 가는 여행을 하고 싶은 때. 또는 기차 맨 뒤칸에서 <박하사탕>처럼 지난 세월을 철길처럼 굽어보고 싶은 때. 아마 이 거부하기 어려운 철길의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할 것 같다. <스테이션 에이전트>라는 영화 덕분이다.
핀이라는 사람이 있다. 사색적이며 책을 보기를 좋아하고 눈이 맑고 목소리가 굵은 남자다. 장난감 기차를 수리하는 것으로 봐서 손기술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고, 술과 담배와 산책을 즐긴다는 점에서 조용한 쾌락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카페 뤼미에르>에 캐스팅
우정의 발생학, <스테이션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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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펜 아닌 컴퓨터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이 없다. 폭스가 <아이스 에이지>를, 드림웍스가 <슈렉>을 만들어 디지털 장편애니메이션 시장 공략에 나설 때 디즈니한테는 존 래세터가 이끄는 아이디어 집단 픽사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러나 픽사가 느끼는 디즈니와의 계약 내용은 불합리했고, 마침 애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픽사 스튜디오의 CEO 자리에 앉으면서 적극적인 투자 전략으로 사세 확장에 성공하자 픽사는 완전하게 디즈니와 이별을 고한다. 스티브 잡스는 올 여름 존 래세터의 <자동차>가 디즈니를 통해 배급되는 픽사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치킨 리틀>은 디즈니 최초의 자체 제작 CG 장편애니메이션(혹은 흔히 말하는 3D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순수 디지털 영화를 디즈니가 드디어 내놓는 까닭은, 픽사와의 협업으로 갱신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 왕국의 이미지를 지속, 발전시키려는 뜻과 무관하지 않
픽사 없는 디즈니의 잠재력, <치킨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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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 이누도 잇신과 각본가 와타나베 아야는 참 영리하다. 매번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정치적 올바름’과 동화적인 낭만성을 적절하게 버무릴 줄 알기 때문이다.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장애인 소녀와 미남 청년의 러브스토리로 심금을 울렸던 그들이 게이 실버타운에 관한 영화 <메종 드 히미코>로 돌아왔다. 그들은 전작에서 장애인을 다루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을 교조적으로 설파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여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고, 단순히 소년 소녀의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번 작품에서 그들은 ‘메종 드 히미코’라는, 황혼기에 접어든 게이들의 정서적·육체적 보금자리를 통해 동성애자 커뮤니티와 그들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중소 페인트 회사의 그렇고 그런 여직원인 사오리는 한 남자의 집요한 접촉 시도를 따돌리는 중이다. 그의 전화도, 그의 방문도 그녀는 전혀 반갑지 않다. 이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화합과 이해, <메종 드 히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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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깨다’ 혹은 ‘사랑을 떠나보내다’ 혹은 ‘사랑을 잃다’가 아니다. ‘사랑을 놓치다’라는 문장은 결과가 비슷할지언정 원인이 많이 다름을 가리킨다. 가장 비슷한 표현인 ‘사랑을 잃다’조차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 자기 판단과 의지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의문스럽다. ‘사랑을 (붙잡으려 했으나) 놓치다’에는 자기 탓이 명백히 내포돼 있다. <마파도>의 코미디 활극에서 아스라한 멜로로 선을 달리한 추창민 감독의 <사랑을 놓치다>는 ‘자기 탓’에 대한 탐구 로맨스다.
자기 탓인 까닭은 사랑을 놓친 원인의 절반이 망설임에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조정코치로 생계를 꾸리는 우재(설경구)는 10년 만에 만난 대학친구 연수(송윤아)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남자의 본능과 운동선수다운 맷집으로 일단 돌격을 감행한다. 깃발은 꽂았는데 우재는 기어코 망설인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닐까. 들떴던 연수가 우재의 그 틈을 보고야 만다. 더욱이 우재가 스스로에게 확신을 입히는
‘설경구스러운 이미지’의 멜로 버전, <사랑을 놓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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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둘이나 되는 아이들 치다꺼리에 한숨 쉴 시간도 없었던 부모의 좌충우돌 자녀양육기 <열두명의 웬수들>이 업그레이드 버전 <열두명의 웬수들x2>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2년 사이 훌쩍 자랐고, 베이커 부부는 잠잠할 날 없던 둥지가 점점 비어가는 게 안타깝다. 맏딸 노라(파이퍼 페라보)는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 어느새 만삭의 몸이 되어 있다. 노라 부부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할 틈도 없이, 톰(스티브 마틴)과 케이트(보니 헌트) 부부는 갓 졸업한 딸 로레인(힐러리 더프)이 뉴욕의 잡지 사에 취직이 되어 집을 떠난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른 아이들마저 일을 하거나 놀기 위해 아버지 톰과 시간을 보내는 데 소홀해지자, 톰은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옛날 베이커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호숫가에는 톰의 천적, 지미 머타(유진 레비)가 여덟명의 아이들과 포진하고 있다.
스티브 마틴과 보니 헌트는 물론, 열두명의 아이들이 전편에 이어 그
더없이 견고하고 이상적인 가족애, <열두명의 웬수들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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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작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등으로 활동해온 미란다 줄라이 감독은 그녀가 쓰고 연출한 첫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서 주인공 크리스틴을 직접 연기한다. 노인을 위한 택시 ‘엘더 캡’을 운전하는 크리스틴은 아마추어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비디오, 사진, 음악을 혼합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크리스틴의 예술. 영화의 첫 장면에서 크리스틴은 혼자 음색을 바꿔가며 사랑하는 두 남녀의 서약을 녹음한다. “나는 자유로워질 거야. 나는 용감해질 거야. 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인 양 살겠어.” 감독이 이렇게 선포한 주제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여러 인물을 통해 거듭 메아리치고, 부연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화법은 일종의 복화술이다. 크리스틴의 동네 이웃인 등장인물들은 모두 삶이 그저 ‘살다’의 명사형이 아니라 예술품처럼 특별한 무엇이기를 은밀히 열망한다. 그중에는 “마냥 사는 건 싫어. 나는 마술적인 일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어”라고 호언하는 구둣가게
사춘기적인 어색함을 간직한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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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의 감독이 탈북 청소년, 장애우, 비정규직, 재중동포 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다룬다. 장애우 소녀가 직접 출연하여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가 하면, 이미 사망한 주인공을 대신한 카메라가 이야기를 쫓아가는 등 감독별로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2003년 <여섯 개의 시선>에 이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옴니버스 프로젝트 2탄인 이 영화는 인권과 차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드높이고자 기획됐다.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정지우 감독 <배낭을 멘 소년>
열아홉 현이와 진선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탈북 청소년. 진선은 학교에서 동급생에게 시달리는 것이 싫어 말을 못하는 척하고, 현이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항상 배낭에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넣고 다닌다. 그들에게는 오토바이 질주만이 잠시 답답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사랑니>에서 첫사랑과 재회한 서른살 여성의 심리를 미세하게 그려
인권과 차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다섯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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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why be로도 읽힐 수 있는)로 다시 거듭나는 윤도현밴드가 길 위에서 고통과 즐거움을 얻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로드무비. 2005년 봄, 걱정과 희망을 반씩 섞어 트렁크와 함께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탄 윤도현밴드. 영국 신인 록밴드 스테랑코와 더불어 영국,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지를 한달간 돌며 순회공연에 나선다. 아무도 모르는 신인 밴드로 다시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밤새 버스를 달리며 햇반과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겨우 50명도 안 되는 관객 앞에서 그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이러다가 밀라노 공연, 대규모의 런던 코코 마지막 공연까지 치를 수 있을까. 참고로 <온 더 로드, 원>이란 작품은 없다. <사랑, Two>에서 영감을 받은 이 제목은 그들의 첫 번째 유럽 투어가 그들의 히트곡처럼 오랫동안 기억되는 도전이 되길 바라는 염원이자, 초년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열정으로 YB시대를 다시 열겠다는 다짐이다.
제각각 공연장
밴드의 성장 과정을 담은 로드무비, <온 더 로드,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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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수로 활동했던 대학생 우재(설경구)는 사귄 지 2백일 되는 날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는다. 청천벽력과도 같던 그 말에 좌절한 우재는 매일 술과 함께 보낸다. 이런 그 옆에는 늘 연수(송윤아)가 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우재를 남몰래 좋아했던 연수는 돌연 군대에 간 우재를 면회간다. 그 자리에서 연수는 우재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 너머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연수는 우재에 관한 모든 것을 잊는다. 수년이 흐른 뒤 우재와 연수는 한 파출소에서 다시 만난다. 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이 긴 시간 동안 우재와 연수는 뚜렷한 이유없이 우연처럼 또 필연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토이뮤직이 내놓은 감미로운 OST
감미로운 발라드 음악을 주로 발매한 토이뮤직에서 제작한 이 영화의 OST 앨범은 발매 전부터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예고편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공개된 곡은 그룹 토이의 객원가수로 이름을 알려온 김연우의 3집 앨범의 타이틀곡 <사랑한다는 흔한
10년을 망설인 사랑, <사랑을 놓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