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서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첫 번째 대상은 푸른 벽에 붙어 있다가 재빨리 기어올라가는 한 마리 도마뱀이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어딘가에 홀로 뚝 떨어진 듯해 보이는 그것은 아무래도 주인공 겐지(아사노 다다노부)가 읽던 그림책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온 녀석인 것만 같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자신이 자기 종 가운데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더라는 바로 그 도마뱀. 슬슬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지고 심지어는 자신을 괴롭히던 녀석들마저 곁에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품게 되는 세계의 그 단독자는 결국에 이런 결론에 이른다. “같이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삶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원제가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인 <라스트 라이프…>는 그처럼 깜깜한 우주 속을 유영하는 듯 마지막 삶을 살아가는 도마뱀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고 이야기하며 그 ‘도마뱀’들의 초상을 그리는 영화다.
방콕에서
고독한 영혼들의 러브 스토리,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
말이 좋아 낙원이지, 늘 태양이 가득한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는 은퇴한 보석도둑 맥스(피어스 브로스넌)에게 감옥과 같다. 맥스와 롤라(셀마 헤이엑)는 ‘내 인생의 한탕’에 성공한 뒤 은퇴했다. FBI 요원인 스탠(우디 해럴슨)을 보기 좋게 엿먹이며 아기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훔친 두 사람은 캐리비언해로 은퇴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다. 롤라는 취미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보려고 애쓰지만, 맥스는 얼마 안 가 무료함을 느끼고 뜨내기 여행객의 지갑을 슬쩍 하는 것으로 심심풀이를 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탠이 그들 앞에 나타난다. 캐리비언에 정박할 크루즈에 맥스와 롤라가 두 개를 훔쳤던 나폴레옹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다이아몬드가 전시된다면서, 스탠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두 사람을 감시한다.
어쩌면 ‘낙원판 <오션스 일레븐>’이나 ‘낭만적인 <이탈리안 잡>’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실력이 뛰어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최고의 보석절도 커플의 최후의 한탕, <애프터 썬셋>
-
<살인의 추억>에서 김상경은 입버릇처럼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감’ 즉, 직관으로 사건에 다가서려는 송강호와 대조되는 수사 태도를 가진 김상경은 정보수집과 분석을 통한 과학수사의 신봉자였다. 이처럼 연쇄살인범들을 조사할 때 그들이 범죄 현장에 남긴 정보들을 담은 온갖 서류와 범죄 심리 이론을 통해서 살인범을 역추적해나가는 이들을 프로파일러라고 한다. 제목인 프로파일러를 칭하는 속어인 ‘마인드 헌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프로파일러가 되고자 하는 FBI아카데미의 교육생들이 겪게 되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8명의 교육생들은 실전과 유사한 경험을 쌓기 위한 시뮬레이션 실습을 위해 외딴섬에 격리된다. 그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 있는 시뮬레이션을 기대하지만, 닥쳐오는 것은 실제의 연쇄살인이며, 희생자는 다름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이다. 외부인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살인들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제한된 시간 안에 살
허술한 프로파일러들이 겪는 연쇄살인사건, <마인드 헌터>
-
<죠스>를 능가하는 센세이셔널한 서스펜스 스릴러. 이런 홍보문구는 억지로 웃으며 던지는 농담처럼 들린다. <오픈워터>는 서스펜스를 품었으되 스릴러가 아니며 상어가 등장하나 <죠스>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 관객이 79분 동안 지켜보게 될 대부분의 이미지는 넘실대는 검은 바다와 두 남녀에 한정되어 있을 뿐. 디지털카메라 한대, 120시간의 촬영기간, 13만달러의 제작비로 완성된 <오픈워터>는 영화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가 아이디어와 몸뚱이 하나로 만들어냈을 법한 아마추어리즘의 산물이다. 선댄스에서 화제를 모은 뒤 전미 개봉으로 이어진 성공담 역시 <블레어 윗치>의 전례와 쏙 빼닮았다.
1998년 호주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픈워터>는 스쿠버다이빙 담당자의 실수로 망망대해에 남겨진 두 남녀의 이틀간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허기가 밀려오고, 체온은 저하되고, 구조의 희망도 말라붙는다. 그 순간 다이버의 천국이
고요하게 찾아오는 죽음의 순간, <오픈워터>
-
-
사람들이 로맨틱코미디를 보는 이유는 뭘까. 해피엔딩이 예정되어 있는 달콤한 사랑 게임을 보며, 현실 속의 나 자신도 그러리란 희망을 품는 걸까, 아니면 실제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믿기에 오히려 거리두기의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어떤 경우든 로맨틱코미디는 양자 모두한테 만족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연, 운명, 해피엔딩이라는 비현실과 밀고 당기기, 오해와 난관, 다툼과 화해라는 현실을 뒤섞어놓은, 일종의 무스 케이크니까.
<그녀는 요술쟁이>는 무스 케이크 중에서도 쌉쌀한 초콜릿이나 농축된 치즈가 아닌, 그야말로 달콤한 산딸기 무스다. 꽃이 흐드러진 집 앞에 플랫 슈즈를 신은 니콜 키드먼이 퐁당 내려서는 순간부터 자줏빛 향연은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인간 세상에 살겠다는 마녀 이자벨. 남들은 그 좋은 마녀를 왜 안 하려는 거냐지만, 사랑마저 마법으로 뚝딱 해치우는 그들 세계가 그녀는 지겹다.
비오는 날 머리도 망가져보고, 어딘가 모자라는 남자와 사랑도 해보
코 끝에서 시작되는 아주 특별한 로맨스, <그녀는 요술쟁이>
-
“AGAIN 1966!” 2002 월드컵 한국팀의 이탈리아전 당시 붉은 악마들이 연출했던 카드섹션 응원은 알다시피 1966년 제8회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 대 0으로 이겼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그 승리는 단지 ‘한민족의 쾌거’만이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그로부터 36년 뒤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천리마 축구단>은 그 확실한 증거다. 어렸을 적부터 약소국인 북한이 어떻게 이탈리아를 이겼는지 궁금했다는 대니얼 고든 감독은 이 축구사의 신화와 그 뒤편에 자리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붙잡아낸다.
<천리마 축구단>은 단순하지만은 않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가 우선 조명하는 것은 이탈리아전에서 환상적인 결승골을 날렸던 박두익을 비롯해 당시 북한 최고의 스트라이커 박승진, 골키퍼 리창명 등의 현재 모습과 그들의 추억담이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 훈련을 진행했으며, 월드컵에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등 그들의 이야기는 당시 북한팀에서 촬영했던 진귀한 기록
1966년 축구사의 신화와 그 뒤편에 자리한 이야기, <천리마 축구단>
-
<어떤 나라>의 명목상 관심은 북한의 매스게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의 매스게임은 과도한 정치성만 제거한다면, 체조와 음악 등이 고도의 조화를 이룬 종합예술이라 할 만하다. 물론 여기서 정치성을 떼어내기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매스게임은 ‘전체를 위한 하나’라는 전체주의의 이상이 가장 잘 녹아든 집체예술이며,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가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게 북한 지도자들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두 소녀, 열세살 현순이와 열한살 송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니얼 고든 감독은 이들이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되어가나에 관심을 두는 건 아니다. <어떤 나라>는 매스게임을 소재로 내세우지만, 관심만큼은 북한사회의 일상에 꽂혀 있다. 2003년 2월부터 9월까지 고든의 카메라는 노동자 아버지를 둔 현순이네와 교수 아버지를 둔 송연이네 집안 구석구석을 훑으며 밥숟가락은 몇개인지, 도시락 메뉴는 뭔지, 공휴일에는 뭘 하는지 등등 시시콜콜
매스게임을 통해 본 북한, <어떤 나라>
-
한대수의 노래 <옥이의 슬픔>에서 옥이는 “햇빛에 타고 있는 팔월 오후에 권태에 못 이겨” 폼나게 가출했다. 한편 <초승달과 밤배>의 옥이는 먹고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아니 떠밀려난다. 옥이(한예린)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오라비 난나(이요섭)의 무관심으로 약장수의 트럭에 오르고, 이모할머니 집으로 더부살이를 떠나고, 시립아동보호소에 내팽개쳐진다. 슬픈 얼굴로 내몰리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옥이와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은 김수용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원세의 <엄마없는 하늘아래>로 연결되는 한국영화 ‘소년소녀 가장’ 신파물의 계보를 잇는다.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강부자)와 단둘이 사는 난나. 갑자기 나타난 젖먹이 여동생 옥이 때문에 난나는 졸지에 보모로 전락한다. 할머니가 일하러 가는 동안 옥이를 돌봐야 하는 난나는 그녀를 버려두고 놀러다니기 일쑤다. 게다가 성장하며 영양실조로 등이 굽어가는 옥이는 난나에게는 ‘쪽팔림’ 그 자
‘소년소녀 가장’ 신파물의 계보, <초승달과 밤배>
-
진급을 해도 모자랄 쉰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스물여덟살 새파란 상사를 맞이하여 밑으로 밀려나버린 광고 회사 중역 댄 포먼(데니스 퀘이드). 성질 같아선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아내는 늦둥이를 가졌다고 알려오고, 딸아이 알렉스(스칼렛 요한슨)는 유명 대학에 합격했으니 입학금만 있으면 된다고 좋아한다. 부아는 나지만 돈은 필요하다. 본의 아니게 댄 포먼을 궁지에 몰아넣은 젊은 사장 카터(토퍼 그레이스)도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아내는 이혼을 선언한 뒤 떠나버리고, 직장에서는 외톨이나 다름없다. 쾌속승진을 했어도 누구 하나 마음 터놓고 지낼 사람이 없는 그는 외롭다. 혼자 지내게 될 결혼기념일이 두려워 댄 포먼의 집에 억지로 초대 약속을 받아낼 정도다. 카터는 회사에서 마주쳤던 댄 포먼의 딸 알렉스를 그곳에서 다시 만나고, 이제부터 카터와 알렉스는 나이 많은 부하 직원, 또는 근심 많은 아버지를 속인 채 아슬아슬한 연애의 감정을 키워간다.
<
아버지의 어깨에서 인생의 보물을 찾다, <인 굿 컴퍼니>
-
아름답고 푸른 지구가 어느 날 외계인들의 일방적인 계획에 의해 파괴된다면? 오싹하겠지만, 쫄지는 마라(Don’t Panic)! 지구가 터질 때 지구와 같이 터져죽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 지구에 파견 조사 나와 있는 외계인 친구를 미리 사귀어두는 것이다. 물론 당신도 지구가 터질 줄은 미처 몰랐겠고 그 외계인이 (보나마나 지구인처럼 위장하고 살았을 테니) 외계인일 줄도 몰랐겠지만 어쩌다 그 외계인과 당신이 친구여서 우정과 신뢰를 서로 쌓아왔다면 지구가 폭파하기 직전 당신의 친구는 특별히 당신에게만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며 “친구, 넌 나와 함께 탈출하자꾸나”라는 인정넘치는 제안을 베풀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런 식의 조언은,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하인라인 또는 아서 클라크처럼 SF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하고 진지한 작가들은 해준 적이 없다.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생소할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조언, 아니 농담이다. 병원 청소부, 닭장 청소부, 보디가드 등 SF소설과는
웃기는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작심하고 사람을 울리겠다는 데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럴 셈으로 <성원>은 가슴저미는 사연들을 퍽도 많이 들려준다. 우선 주인공 양파의 존재가 그렇다.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양파에겐 ‘그녀의 얼굴을 단 한번만 봤으면’ 하는 게 살아 생전의 소원이다. 하지만 죽음으로써 양파가 초란을 볼 수 있게 됐을 땐 초란이 양파를 알아보지 못한다. 죽음조차 두 사람의 사랑을 막지 못했지만, 어긋난 사랑의 운명은 죽음보다 더 가혹해서 이들의 재회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홍콩에서 <첨밀밀>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멜로드라마인 <성원>의 뜨락에는 온갖 슬픔의 수사들이 만발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사어의 대부분이 최루성 멜로드라마 장르의 ‘관용어’라는 데에 있다. 할리우드영화 <사랑과 영혼>을 떠올릴 것도 없이 산 자와 유령의 사랑은 <천녀유혼> 시리즈에서 익히 본 것이다. 사랑의 갈피를 채운 작은 사연들에서 이 영화만의 감성을
홍콩산 멜로 영화, <성원>
-
하비 카이틀, 로버트 드 니로, 실베스터 스탤론, 레이 리오타라는 화려한 배역진은 이 영화를 조금은 궁금하게 만들다. 어두운 뒷골목을 누비던, 아니 영웅, 반영웅을 자처하던 스타들이 경찰이 되어 모두 한 마을에 산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해비>라는 저예산 영화로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탁월하게 묘사해 내는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캅 랜드>에서도 주요한 세 인물을 각각 다른 위치에 배치시킨다.
스탤론이 연기한 프레디는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사고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바람에 그토록 갈망하던 뉴욕시경 시험에 낙방한 인물. 레이의 배려로 캅 랜드를 돌보는 보안관 일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쪽 귀를 희생하면서 살려낸 여자는 다른 경찰관의 아내가 되어 있는 상태. 그에게 경찰은 인생의 목표인 동시에 거부의 대상이다. 캅 랜드를 지배하고 있는 레이 역의 하비 카이틀은 자신의 조카를 숨기기는 했지만 마을의 신변을 보장하기 위해
‘캅’ 그들만의 세계를 바라보는 진지함, <캅 랜드>
-
“좋은 빵을 만드는 것은 좋은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 영화 첫머리에 소개되는 주인공의 신조는 <주노명 베이커리>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빵 배달을 갔던 주노명이 몰래 집에 들어가 잠든 아내의 몸을 더듬는 장면에선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아내의 신음소리에 맞춰 수십겹의 페스츄리로 이뤄진 빵이 달콤하게 부풀어오른다. 점점 커지는 빵처럼 사랑은 만족감에 취한다. 그러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싶은 순간 주노명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결혼한 지 10년된 부부, 매일 빵집 카운터에 앉아 아파트로 둘러싸인 풍경만 바라보는 여자에게 늘 빵처럼 부풀어오르기를 요구할 순 없을 것이다.
<주노명 베이커리>는 주노명에게 닥친 위기에서 본격적인 드라마를 시작한다. 흔히 불륜이라고 또는 중년의 로맨스라고 말하는 그것을 주노명의 아내 역시 체험한다. 그 대상이 고릴라같은 남자 박무석이지만 이 남자는 보기보다 괜찮다. 아무도 몰라주는 주노명의 빵 만드는
불륜도 살짝 구으면 로맨스가 된다, <주노명 베이커리>
-
이 거리엔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신나간 마약중독자들, 임신한 창녀들, 칼과 총으로 구멍난 시체들,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며 죽어가는 부랑자들이 구급요원 프랭크를 기다리고 있다. <비상근무>에 담겨진 90년대 초 뉴욕 뒷골목의 밤풍경은 단연코 아비규환이다. 영광의 도시 뉴욕은 지옥의 그늘을 감추고 있다가 밤이 되면 끔직하고 흉칙한 맨살을 이렇게 드러낸다. 프랭크도 이 악몽의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 자신의 미숙으로 죽은 한 소녀의 혼령이 그에게 치유불능의 불면증을 심은 뒤로 그의 얼굴은 말기 암환자처럼 변했다. 죽어가는 인간들의 호출에 몽유하듯 끌려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독백대로 “죽음에서 구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목격하는 것”뿐이다. 그럴수록 프랭크의 안색은 더욱 검게 변해간다.
뉴욕시의 병원에서 10년간 구급요원으로 일한 조 코넬리의 원작소설이 폴 슈레이더의 각색과 마틴 스콜세지의 연출을 거쳐 다시 태어난 <비상근무>는 스콜세지적인
세속도시에서의 영적 구원, <비상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