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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의 친구들은 엉망진창이다. 로나는 천연덕스럽게 아스피린을 환각제로 속여팔아 엄청난 매상을 올리고, 사이몬 패거리는 고급 스포츠카를 훔치고 살인 미수를 저지르고 호텔에 불을 낸다. 순둥이로 보이는 클레어는 거칠고 막돼먹은 마약 딜러와 사랑에 빠진다. 그래도 이 아이들을 어찌 할 것인가, 하고 걱정할 건 없다. 벼랑 끝을 향해 무모하게 질주하는 것 같지만 이들 누구도 죽지 않고 누구의 영혼도 망가지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전야를 보낼 따름이다. 아직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이들에겐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치명적이긴 하지만 그 가능성이야말로 젊음의 매력이다. 다시 아침이 돌아오면 이들은 멀쩡하게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진짜로 걱정스러운 건 오히려 안팎이 다른 ‘어른’ 버크다. 법과 제도를 상징하는 경찰 버크는 아담과 잭을 끄나풀 삼아 마약파는 아이들을 소탕하려 하지만, 정작 그는 불법인 피라미드 판매로 치부하려는 인물이다. 위선덩어리인
미국 10대들의 ‘탈주의 욕망’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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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킬러가 이사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인 야드>는 할리우드영화의 오랜 흥행공식인, 한줄로 요약되는 컨셉을 갖고 있다. 잔잔한 수면 위로 파문을 일으키며 튕겨나가는 조약돌처럼 외부의 충격은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을 불러온다. 그리고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사연들이 순간순간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원제인 ‘The Whole Nine Yards’는 ‘엄청난 행운’을 일컫는 말인데, 그런 축복을 받자면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도입부에서 주인공 오즈의 가정을 만신창이로 설정한 것은 멋진 보상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치과의사 오즈는 시카고 출신이지만 아내를 따라 몬트리올에 눌러앉았다. 번듯한 직장과 아담한 집이 있지만 장인이 남긴 엄청난 빚에 눌려 허덕이는 오즈의 가정은 좀처럼 햇빛이 들지 않는다. 남편이 죽기만 바라는 아내, 장모와 함께 산다면 이 남자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여기서 살인청부업자 지미 튤립의 등장은 오
할리우드영화의 오랜 흥행공식, <나인 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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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누군가로 변하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신성한 마지막 순간 이렇게 말하리라. 그것은 복수였다고.” 남자로 변장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다음, 혼돈스런 격정으로 출렁대는 삶을 살다 요절한 이자벨 에버하트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티나 브랜든에게 남장은 앙갚음도 시위도, 울혈진 그 무엇도 아니다. 브랜든이 남자로 행세하는 동기는 투명하고 천연스럽다. 좋아서, 편안해서, 즐거워서, 사내의 차림새로 거울을 볼 때 자신이 덜 낯설어 보여서다. 그래서 애인 라나에게 ‘양성’임을 고백하는 순간 브랜든은 변명한다. “사실보다 훨씬 복잡하게 들릴 거야.”
그러나 누구도 해칠 의사가 없는 정직한 몸짓이 경천동지할 위협으로 둔갑하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브랜든은 기어코 박멸돼야 할 역병이 되어 가혹한 징벌을 받는다. 백인여성과 사귀었다는 이유로 40년 전 피살된 버지니아의 흑인 청년 에멧 틸처럼. 그러나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진 1993년 실화를
노동 계급 젊은이들의 청춘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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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아무리 상황이 심각해져도 주인공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어떤 금연 영화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도 <인사이더>는 동시에 강력한 사회파 영화다. <인사이더>는 등장인물들과 사건의 폭이 만만치 않은데, 수많은 회사와 사람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담배산업을 주축으로 언론과 기업의 유착관계, 기자와 정보원과의 관계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자칫 사회면 톱기사를 밋밋하게 옮겨버린 듯한 장광설을 사뿐히 기워낸 것은 전적으로 마이클 만의 연출력이다(<인사이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포함,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특히 2시간45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낮은 포복으로 일관하는 클로즈업이 없다면, 영화의 긴장감은 아예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큐감독 출신답게 마이클 만은 <라스트 모히칸>의 안이한 로맨티시즘을 뒤로 하고 <히트>를 전환점 삼아 점점 더 날카로운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드
어떤 금연 영화보다 강력한 영향력, <인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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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상업영화의 틀에서 비껴나 독립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자신의 취향과도 관련 있겠지만, 이와이 순지 영화의 주인공 중엔 아웃사이더들이 많다. 엔타운 안팎에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유랑자들이나 이지메를 당하면서(또는 하면서도) 괴로움의 나날을 보내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아이들, 그리고 <피크닉>의 세 주인공들이 그렇다. 코코, 쯔무지, 사토루, 세상과 격리된 정신병원에서 환자로 서로를 알게 된 이 삼총사는 이상하게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가까워진다. 지구가 멸망한다고 오해한 이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정신병원을 나와 ‘피크닉’을 떠난다. 바깥 세상으로 탈출했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한 가지 족쇄만큼은 벗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담장 아래로는 내려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담장과 다리 난간과 건물의 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들은 천생 경계인, 즉 아웃사이더들인 것이다.
이 아웃사이더 중에서도 진짜 아웃사이더는 단연
X같은 세상아, 엿 먹어라! <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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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한쌍의 커플이 있다. 남자 유키오의 일이 다소 바쁘고 여자 모에미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점만 빼놓는다면. 그러나 영화에서 말하듯 한 사람에게 ‘사소한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될 수’ 있는 법.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유키오는 애완용 거북이가 노끈으로 돌돌 묶인 것을 발견한다. 그 다음에는 책이 묶이고, 가위가 묶이고, 집안의 집기가 모두 묶인다. 모두 모에미가 한 짓이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육체까지 결박하기 시작한다.
이와이 순지의 첫 영화 <언두>에서 파국은 일찍 시작된다. 모에미의 ‘강박성 속박 증후군’은 생각 외로 완강하고 집요하다. 모에미는 모든 것을 묶음으로써 자신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키오에 대한 기다림이나 사랑까지도. 하지만 아무리 굵은 동아줄이나 쇠사슬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묶을 수는 없다. 모에미의 매듭이 단단하고 촘촘해질수록 둘 사이의 관계는 오히
묶어야 사는 여자, <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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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극장의 불이 꺼지면 당신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해야 한다. 사이버 공간을 상징하는 화면이 마디마디 등장해 혼란스럽기 때문도 아니고, ‘에테르’, ‘세로토닌’ 같은 복잡한 개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당신의 마음을 고도 제로의 절대 평정 상태에 놓아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당신의 마음을 우울함이 꽉 찬 작은 방으로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이고, 때때로 이상기류를 만난 종이연처럼 돌연 추락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배경은 이와이 순지 감독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학교다. 주인공 유이치의 중학교 생활은 끔찍하다. 한밤중에 동급생에게 불려나가 그들 앞에서 자위를 하거나 마음에도 내키지 않는 음반을 왕창 가방에 쑤셔넣고 줄행랑치는 도둑질을 해야 하며 원조교제를 하고 있는 여학생의 일거수일투족도 감시해야 한다. 심지어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성폭행당하는 것을 방조해야 하니 그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이다. 이 지옥의 꼭대기에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릴리 슈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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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해설이 이어진다. “언젠가 엔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도시는 이민자들로 넘쳐나 골드러시를 방불케 했다… 이민자들은 이 도시를 ‘엔타운’(円都)이라 불렀다. 일본인들은 이 이름을 싫어해 여기로 모여든 이민자들을 ‘엔타운’(円盜)이라 부르며 경멸했다… 이건 엔타운에 모여든 엔타운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가상의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와이 순지표 판타지영화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사실 <스왈로우테일…> 속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그리 멀지 않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엔타운은 아비규환의 전쟁터이자 질긴 삶들이 똬리를 튼 정글이며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다다른 종착역이다. 그런 탓에 한 주인공의 뇌까림처럼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여기가 천국인가?”라는 말 또한 성립된다. 이곳의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일류 가수
세기의 끝과 판타지랜드,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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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와 상품화된 여성간의 상관성을 들먹거리는 것은 상투적일 뿐이다. 여성이 남성의 취향에 맞춰 자신의 몸과 욕망을 길들이는 것조차 상품 가치를 높이는 일로서 취급되는 것이 물신화된 사회의 특징이 아닌가. 남성 담론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본다는 것, 즉 은닉된 남성의 눈을 경유하지 않은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여성의 자아 찾기란 시력의 회복이다.
제임스 토벅의 <위험한 관계>는 프랑스 혁명 직전의 부르주아 사회의 풍속도를 담은 <위험한 관계>와 동명의 제목을 지녔지만, 거액이 오가는 하룻밤의 정사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은밀한 유혹>을 연상시킨다. <은밀한 유혹>이 여성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음란한 게임을 엉뚱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면, <위험한 관계>는 여성을 상품화하는 남성에 대한 처벌과 여성의 자아 발견을 맞물리게 하려는 의욕을 보인다. 물론 그
치명적이지 않는 팜므파탈, <위험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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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유독 눈독 들이는 ‘남의 나라에서 보물찾기’ 시리즈, 여름을 겨냥한 2005년판이다. 광활한 자연과 그 속의 악당들과 무모한 싸움을 벌이며 악당도 물리치고 보물도 찾는 이야기. <사하라> 역시 그런 영화들의 맥을 잇는다. 약간의 변화를 찾아보자면, 이 영화에는 남자 주인공들을 유혹하는 치명적인 악녀가 없다는 것, 그리고 반공주의 모험 시리즈처럼 빡빡한 대립관계에 그다지 몰두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사실, <사하라>는 맥가이버 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영화처럼 보인다. 먼지 날리는 몇 백년 전 무기를 다루는 솜씨나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발휘되는 기지와 유머감각, 게다가 타자의 존재에 대해 결코 사유하지 않음까지 이 영화는 냉전시대 탐험영화들의 행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북전쟁 때 사라진 ‘죽음의 함선’을 찾기 위해 더크(매튜 매커너헤이)와 알(스티브 잔)은 말리로 떠난다. 때마침 서아프리카에 퍼지는 전염병의
수명 다한 할리우드의 보물찾기 시리즈, <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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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관한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엄마’ 혹은 ‘어머니’에 관한 영화들일 것이다. 가장 최근에도 ‘엄마’라는 제목으로 두편의 한국영화가 나왔다. 한 영화는 ‘어머니’에 관한 모든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을 모아 감동의 도가니탕을 기획하면서 어머니를 가족 화합과 자식 사랑의 화신으로 만들어버렸고, 다른 영화인 다큐멘터리는 사회가 ‘어머니’라는 이름에 부여한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머니의 실체를 포착하기 위한 시도를 감행했다. 이 두 영화는 어머니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두 흐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의 어머니들은 아마도 이 두축 사이 어딘가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리라.
로저 미셸의 <마더>는 거칠게 말하면 후자에 속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런던 교외에 사는 노부부가 런던에 사는 딸과 아들 내외 그리고 손자들을 보기 위해 상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편과 함께였을 때 어머니 메이는 언제나 바쁜 아들 내외와 여전히
늙지 않는 욕망의 아름다움,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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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년 만이다. 느물느물한 한량 같은 조지 클루니와 칭얼거리는 크리스 오도넬, 우직한 아놀드 슈워제네거, 차마 보기 민망했던 알리시아 실버스톤과 우마 서먼이라는 스타 군단을 이끌고도 ‘재앙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던 <배트맨 앤 로빈> 이후로 <배트맨> 시리즈는 완전히 끝나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워너브러더스는 이 어둡지만 매혹적인 슈퍼히어로를 8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고,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한 채 크리스토퍼 놀란이 메가폰을 잡은 <배트맨 비긴즈>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팀 버튼이라는 막강한 대선배와 대런 애로노프스키라는 경쟁자를 모두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배트맨 비긴즈>가 무엇보다 리얼리스틱하게 보이길 바랐으며 주인공의 이중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적인 슈퍼히어로를 창조했다고 여러 차례 단언했다. 그 말대로 <배트맨 비긴즈>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믹북의 판타지적 성격보다는 성장드라마
여름영화로서의 화끈한 엔터테인먼트, <배트맨 비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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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맡은 앨리슨 오웬은 ‘헨리 8세, 크롬웰 등 여러 역사적 인물을 검토해 보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만큼 현대적 감각에 맞는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요, 상상력으로 역사의 틈을 메운 문학작품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불러세워 회고하는 것은 어떤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 엘리자베스에 대해 문외한이었다고 고백하는 인도출신 감독 세카르 카푸르의 관점은 어떤 것이며, 그는 엘리자베스라는 한 권력자를 어떻게 서술하려는 것일까?
<엘리자베스>에서 무엇보다도 도전적인 관점은, 확인된 바 없이 소문으로만 남았다는 엘리자베스의 사랑이며 그녀의 상징과도 같이 알려진 처녀성일 것이다.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며 음모스릴러의 진면목을 보여주던 영화가 가장 밝게 스포트라이트를 두는 부분은 자연의 대지에 맘껏 취해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다. 이 생기발랄한 처녀에게 사랑이 그냥 지나쳐 갔다는 사실을 감독은 아마 믿을 수 없었던 모
영웅적인 삶을 꿈꾸며 살다간 여성, <엘리자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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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칸이 3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든 <권태>와 <로베르토 수코>는 아무래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양친살해를 시작으로 무심한 듯 연쇄살인을 이어가는 실존인물 ‘로베르토 수코’에 대해 감독은 동정도 하지 않지만 비난도 하지 않는다. 범죄로 범죄적 세상에 맞선다고 항변하는 그의 행위와 표정을 처연하게 비출 뿐이다. <권태>에선 성기로 권태스런 세상을 맞받아치는 17살의 소녀 세실리아를 그저 바라본다. 말은 40대 철학교수 마르땅을 통해 철철 흘러넘친다. 세실리아에게 포섭돼 ‘계몽’받기에 이르는 그는 자신의 전 부인에게 “섹스를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해… 입보다 성기의 표정이 더 풍부해”라고 소녀를 묘사한다. 살인하는 수코나 섹스하는 세실리아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사실 ‘생각’을 보여주기란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이들은 생각하는 상대방이나 관객을 압도한다. 생각없는 세실리아는 생각 많은 철학자 마르땅을 완벽히 압도한다. 원작소설에서
표정 많은 성기가 말 많은 생각을 훈화하는 코믹애정극, <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