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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되는 순간 통행이 금지되던 그때 그 시절, 넓디넓은 광화문 거리를 중앙정보부의 주 과장(한석규) 차가 홀로 질주한다. 신경질적으로 한번 빙글, 또 한번 빙글. 높은 빌딩에서 중앙청 건물까지 시원하게 잡은 이 장면은 다분히 함축적이다. 김 부장(백윤식)의 도박에 기꺼이 동참했던 일생일대의 모험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는 순간의 절박함과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던 개인의 처절한 마음 풍경이다. 큼직큼직하게 지어진 건축물(권력체계) 앞에선 초라한 개인. 또 이 장면은 지금의 한국영화가 한국 현대사의 어떤 정점에 이르렀음을 웅변한다. 아마도 주변의 교통통제 없이는 촬영이 가능하지 않았을 터다. 24시간 차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곳이며 청와대가 지척인 권력의 코앞이니까. 그런 곳에서 촬영하면서도 의 비밀제작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사실 충무로의 공공연했던 비밀이 촬영 종료까지 유지됐던 건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암묵적 동의 내지 희망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권력’이
권력의 천박함을 우아하게 조롱하는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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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우디 앨런은 ‘상황’ 코미디를 많이 사용했다. 어설픈 갱단으로 분한 그가 비누로 깎은 권총을 들이밀고 협박할 때는 비가 내려 총이 거품이 됐고(<돈을 갖고 튀어라>), 하얀 쫄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자신이 이제 막 바깥으로 튀어나갈 정자라고 우겨대기도 했다(<당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그러나 차마 묻지 못했던 것들)>). 그러다가 그의 영화에서 뉴욕의 삶이 철학과 예술을 양옆에 끼고 등장한 것은 ‘말’이 영화의 중심적 양식을 차지한 시기와 일치한다.
특히, 우디 앨런은 뉴욕의 일상을 다룰 때 대화의 영화, 말의 영화를 고집한다. 스스로를 비롯하여 인물들은 많은 말을 한다. 레스토랑이 등장할 때 그곳은 메뉴가 중요한 곳이 아니라 잡담과 수다의 화제가 중요한 곳이다. 맨해튼의 거리와 센트럴 공원의 벤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설전과 논쟁과 설교의 장소가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벌이는 정신상담은 말로서 문제 해결을
궤변과 억견의 코미디, <애니씽 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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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거짓에 상처받은 연인들은 진실이 마음을 치유해주리라고 믿지만, 차라리 흉터가 되도록 참고 참아야 했는데, 라고 진실을 듣는 순간에야 후회한다. 그 남자하고 잤어? 나보다 좋았어? 몇번이나 오르가슴을 느꼈지? 당신은 내 삶을 무너뜨렸어. 순결할 것만 같던 진실은 치졸한 의심으로 튀어나와 상처를 후벼파고, 자해나 마찬가지인 그 순간, 환상은 깨지고 사랑은 증발한다. 일흔 넘은 노장 마이크 니콜스가 연출한 <클로저>는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는 그 난투의 순간을 눈치채는 영화다. 니콜스는 “우리는 사랑의 처음과 끝만을 기억하고 그 중간은 편집해버린다. 거기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겨난다. 우리는 사물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가, 삶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가”라는 말로 <클로저>를 설명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단 하나를 알아보았다고 해도 그 관계가 무너지는건 순식간이다. 최소한 순식간이었다고 기억된다.
작가를 꿈꾸는 런던의
거짓없는 진실 때문에 사랑이 멈춘다, <클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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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부모 노릇은 쉽지 않다. 낳고 키우는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모든 경제적 대가를 차치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는 터럭만큼의 미움도 받기 싫은 사람은, 자식 생각을 애당초 버리는 것이 좋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온 세상을 바쳐 사랑한 누군가로부터 온 마음을 다한 증오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델 에이전시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커리어우먼 헬렌(케이트 허드슨)은 인기만점 이모. 그는 조카들에게 때맞춰서 입맛에 꼭 맞는 선물을 안겨주고, 엄마와는 나눌 수 없는 비밀 얘기까지 서슴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큰언니 부부는 세상을 떠나고, 헬렌은 큰언니의 유언에 따라 조카 세명의 양육을 맡게 된다. 완벽한 주부인 둘째언니 제니(조앤 쿠색)는 아직도 철부지 같기만한 헬렌이 그저 불안하기만 하고, 그 우려는 어느 정도 적중한다. 잦은 출장과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파티의 연속인 모델 에
철없는 이모의 성장통, <레이징 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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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조승우)은 다섯살짜리 지능을 가진 스무살 자폐아 청년이다. 초원의 엄마 경숙(김미숙)은 아들을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키우려고 애쓰고, 의지를 키워주는 마라톤을 그 방법으로 선택한다. 달리고 있을 때만은, 힘든 일도 참고, 똑바로 앞을 바라볼 줄도 알게 된 초원. 그러나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선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경숙은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육영학교 체육교사로 온 전직 마라토너 정욱(이기영)에게 초원의 훈련을 부탁한다.
은 2002년 8월 방영된 TV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다. 장애를 극복한 마라토너, 쯤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정윤철 감독은 극복이나 승리를 위한 싸움보다는 소통으로 다가가는 치유에 초점을 맞추었다. 초원은 남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감정과 호오(好惡)를 표현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그 아이를 내 마음속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어쩌면 은 단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여정일지도
소통으로 다가가는 치유, <말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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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설경구) 검사는 강력반 형사 시절(<공공의 적>)보다 관객의 피를 더 끓어오르게 한다. 패륜아에 대한 분노에서 나아가 사학재단비리와 정경유착으로까지 사회적 공분의 규모를 더 크게 확장한 2편은 한국사회의 구조악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한다.
착하고 공부 잘하는 반장이었던 철중은 중학생 때 힘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며, 고등학교 때 세상에 다른 출발선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어른이 됐다. 그 어른이 되게 한 계기를 준 이가 바로 한상우(정준호)다. 학교 패싸움을 주도했지만 정작 특혜를 받고 체벌에서 빠진 상우를 보면서 철중은 세상의 더러운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한상우는 성장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가족과 법을 짓밟고, 강철중은 한상우를 잡기 위해 법의 경계를 넘는다.
예상대로 이 구조악을 물리치는 방법은 정교하고 날카로운 메스가 아니라 묵직한 해머다. 가운을 입고 섬세한 손길로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끈 튀어나온 근육의 힘으로 적을 내리치
한국사회의 구조악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한다, <공공의 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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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텐 미니츠 올더 프로젝트’의 2부에 해당하며, 1부격인 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서 개봉하게 됐다. 에 참여한 감독은 모두 여덟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마이크 피기스, 이리 멘젤, 이스트만 자보, 클레르 드니, 폴커 슐뢴도르프, 마이클 레드퍼드, 장 뤽 고다르다. 의 명성에 비교해도 떨어질 것이 없고, 참여한 감독 수도 한명 더 늘어났다. 프로듀서 중 한명인 니콜라스 매클린톡이 1975년에 제작된 허츠 프랭크의 10분짜리 다큐멘터리 에서 제목을 가져오고, 빔 벤더스와 짐 자무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비로소 완성된 시간 성찰 프로젝트의 두 번째 면모를 2002년 제작 이후 2005년이 되어서야 확인하게 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는 신화의 한 구절처럼 시간을 풀이한다. 낯선 이탈리아 마을로 들어선 인도 청년은 나무 밑에 앉아 목이 마르다며 물을 청하는 노인을 만난다. 노인에게 물을 떠주기 위해 헤매던 청년은 순간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만 노
‘시간’에 대한 10분간의 명상록, <텐 미니츠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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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슬프거나 무섭거나 잔혹한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정은 그럴 수 있어도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졌답니다’라는 결말이 없으면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수 없다, 고 어른들은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늘 해피엔딩을 들려준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은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스르르 감는다. 그럼에도 냉정히 끝을 맺는 이야기들이 있다. 새엄마의 저주를 받아 백조로 변한 열한명의 왕자들 중 유일하게 마법이 덜 풀려 한쪽 팔 대신 백조 날개를 달고 살게 된 막내 왕자. 선물로 받은 빨간 구두를 교회에 신고 갔다가 쉴새없이 춤추는 벌을 받아 결국 발목을 잘라내야 했던 가난한 소녀. 이것이 정말 끝인가 싶어 책장을 덮을 수 없는 잔혹한 이야기. 은 그런 짓궂은 의도로 쓰여진 소설 (Lemony Snicket’s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을 각색한 영화다(국내에서는 영화와 동명으로 출간됐다).
보들레어가의 삼남매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못된 어른 vs 지혜로운 아이들 <레모니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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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마지막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데레사 수녀의 선행을 되짚은 영화. 이탈리아 국영방송인 라이에서 방영되어 1천만명 이상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동명의 2부작 미니시리즈를 2시간 분량으로 재편집해 스크린에 옮겼다. 전기영화지만, 일대기 형식을 취하진 않는다. 영문 제목인 ‘캘커타의 데레사 수녀’(Mother Teresa of Calcutta)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분쟁으로 혼란 상태인 인도에서 빈민 구호 활동에 나섰던 데레사 수녀의 20여년을 카메라는 클로즈업한다.
1946년 캘커타의 로레토 수도회. 총에 맞은 힌두교도를 숨겨주고 치료해줬다는 이유로 데레사 수녀는 대주교 등과 마찰을 빚는다. “당신처럼 행동하면 교회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충고에도 자신의 행위가 옳은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데레사. 그녀는 이 일로 결국 다른 지역의 수도회로 떠나야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교구의 허락을 받지 않고 비탄에 빠진 캘커타의 거리로 다시 돌아온
충실한 ‘종교영화’,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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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숲속을 뛰어놀던 한 여자가 복면을 쓴 사내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딸과 분리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뇌에 수술이 가해진다. 고통스러운 외침. 그리고 큐브 안. 그녀는 기억을 상실한 채 깨어난다. 이제 그녀는 세개의 절박한 질문에 휩싸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갇혔는가?’ ‘나의 딸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녀는 큐브의 문을 연다. 그리고 동일한 의문을 가진, 생존 본능만 남은 다른 인간들과 대면한다.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한 채 작은 공간에 갇혀 사투하는 시리즈의 인물들은 언제나 ‘안’에서 ‘밖’을 찾는다. 그들은 출구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안’을 경유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잘리고 녹고 사라진다. 생존에 대한 믿음, 그것은 곧 ‘밖’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었다. 지난 두편은 안과 밖에 대한 이러한 이분법을 전제하면서도 언제나 ‘안’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게임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3편
드러난 큐브 밖의 비밀, <큐브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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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윌리엄 새커리의 700페이지 넘는 고전을 각색한 영화다. 여러 번 영화와 TV시리즈로 각색된 이 소설은 야심과 재능이 있고, 다소는 천박한 주인공 베키 샤프를 중심으로, 통속적이지만 신랄하게 19세기 영국사회를 묘사했다. 그러나 인도 출신 여성감독 미라 네어는 전성기를 누리던 대영제국에 매혹된 듯 치밀한 캐릭터엔 소홀하고 화려한 색채만을 덧입혔다. 무리하게 드라마를 구겨넣었지만 틈이 많은 는 베키의 붉은색 드레스 자락이 그 틈을 메워주리라 믿고 있는 듯하다.
고아 소녀 베키 샤프(리즈 위더스푼)는 기숙학교에서 만난 부유한 친구 아멜리아의 오빠를 유혹하지만 결혼은 하지 못한다. 실망한 베키는 크롤리 집안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고, 그 집안의 둘째아들 로든(제임스 퓨어포이)과 비밀리에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결혼 때문에 로든은 백만장자인 고모의 유산을 한푼도 상속받지 못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베키는 옆집에 사는 부유한 스타인 백작(가브리엘 번)으로부터 경제적, 사회적인
치밀한 캐릭터엔 소홀하고 화려한 색채만을 덧입힌 <베니티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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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과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어둠의 전사의 활약상 에서 ‘슈퍼히어로의 여자’ 엘렉트라의 데뷔는 인상적이었다. 빨간 가죽 코르셋과 바지 차림으로, 삼지창 모양의 단검을 휘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밤마다 ‘데어데블’로 변신한다는 것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 그 ‘데어데블’이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너무 늦게 알았다. 영화의 채도를 높이기 위해 곁들인 여성 조연치고는, 감정의 깊이와 재능의 무게가 남달랐던 것. 의 말미에 암시된 것처럼 엘렉트라는 살아났다. 속편 제작이 요원해진 반면, 그 ‘외전’인 는 제때 돌아와 주었다.
는 ‘부활’을 기점으로, 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의 흔적은 전편에서 기사회생한 엘렉트라의 기본 캐릭터 정도. 삶과 죽음까지 다스리는 키마쿠레 무술의 달인 스틱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엘렉트라(제니퍼 가너)는 더욱 막강한 무공의 소유자로 거듭난다. 문제는 그녀의 분노와 복수심. “폭력과 고통은
친근하지만 너무 익숙한 설정, <엘렉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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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찰스 샤이어 감독은 을 연출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과 오랜 창작 파트너이자 부부였다. 마이어스의 코미디가 연애심리를 파고드는 여성지 편집자의 감각을 드러낸다면 공교롭게도 는 세련된 미녀와 고급 장신구의 이미지가 교대로 즐비한 남성 패션지의 한 섹션을 연상시킨다. 처음부터 입고 태어난 듯 구찌 슈트와 프라다 구두가 어울리는 알피 앨킨즈(주드 로)는 뉴욕의 바람둥이. 그의 직업은 ‘엘레강스’라는 간판을 단 리무진 렌터카 회사의 운전기사다. 시종처럼 벌어 왕자처럼 사는 알피에겐 맞춤한 직장이다. 알피는 유혹과 발뺌의 곡예를 반복하며 독신모 줄리(마리사 토메이), 권태로운 주부 도리, 단짝 친구의 애인 로넷(니아 롱), 정서가 불안한 니키(시에나 밀러), 화장품 재벌 리즈(수잔 서랜던)의 품을 전전한다. 그가 관계를 팽개칠 때마다 피해자는 여자들인 듯 보이지만, 기실 망가지는 쪽은 알피다.
원전인 1966년작 의 마이클 케인이 그랬듯, 주드 로는 영화 내내 관객을 향해 ‘늑대의 본
주드 로의 팬에게 바치는 꽃다발 같은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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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이나 (1961) 같은 알랭 레네의 초기 걸작들에 대해 못마땅해했던 평자들 가운데에는 그 영화들이 들려준 다분히 앙상한 멜로드라마의 이야기를 지적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 눈에 비친 레네의 영화들이란 기껏해야 불륜 이야기를 다룬 것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무력한 것은, 레네가 그 골조만 보면 빈약하고 진부할 수도 있었을 이야기에 지극히 창의적인 시선과 손길을 가져감으로써 그것을 영화와 이 세계에 대한 어떤 심원한 성찰(의 틀)로 격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우선 결과는 생각지 말고 의도만을 고려해본다면, 을 만든 덴마크의 젊은 감독 크리스토퍼 보에에게도 레네처럼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태도가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에의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란, 그저 처음 봤을 뿐이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들어놓은 어떤 여자에게 한 남자가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남자 알렉스에게는 여자친구 시몬느가 있었고, 또 그를 사로잡은 여자 아메는 어거
사랑에 관한 흥미진진한 재구성, <리컨스트럭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