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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여.” ‘조폭마누라’가 장성한 세 아들을 뒀다면 이랬을까. 여수 백호파의 대모 홍덕자(김수미)는 조직을 물려받은 세 아들을 끊임없이 다그친다. 그 덕에 조직은 외풍없이 평화를 누리지만,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다. 세력 확장을 위해 서울로 올라간 큰아들 인재(신현준)가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급기야 그녀는 두 아들에게 “내 환갑날까지 느그 형 색싯감을 찾아오라”는 엄명을 내린다.
전국관객 500만명을 끌어모았던 <가문의 영광>의 속편. 이번엔 엘리트 며느리를 들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재는 어느 날 도식(김해곤) 일당한테 쫓기던 여검사 진경(김원희)을 구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상대가 실은 “깡패들 잡아 콩밥 먹이는” 강력부 검사이고 “오후 2시에 출근해 6시면 사우나로 직행하는” 깡패 보스임을 알아차리기까지, 현실에선 불가능한 기막힌 데이트를 더해간다.
조
과도해진 웃음강박증,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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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크레이븐이 돌아왔다. 상영시간은 짧아졌고, 공간은 압축되었고, 인물들도 줄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도, 가면을 쓴 괴한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나이트 플라이트>의 웨스 크레이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의 긴장과 이완에 영화의 무게를 싣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의 순간이 없어도 안도의 한숨과 절박한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은 그 자체로 충분히 생동감 있다. 과연 7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긴장감을 잃지 않는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 영화는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두번의 급박한 반전과 입체적인 캐릭터, 그리고 비행기의 공간적 성격을 통해 답한다.
호텔리어 리사(레이첼 맥애덤스)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친절한 남자, 잭슨(킬리언 머피)과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탑승하게 된다. 그런데 기상 악화를 뚫고 비행기가 이륙을 마친 순간, 잭슨의 정체가 드러난다. 리사의 호텔에 머무르기로 계획된 정부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리사를 협박하는 잭슨. 불안정한
미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불안한 시선, <나이트 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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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옛날 조선에서. <형사 Duelist>는 여느 나그네의 요설처럼 막을 올린다. 아니, 영화의 프롤로그는 정말로 인간인지 귀신인지 모를 여인네에게 유혹당하는 나그네의 요설이다. 극과 상관없는 프롤로그가 갑자기 중단되면, 장터에서 잠복근무 중인 좌포청의 안 포교(안성기)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처럼 걸걸한 남순(하지원)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화폐위조범들의 출처를 알아내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병조판서(송영창)와 그의 하수인인 슬픈눈(강동원)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남순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슬픈눈과 사랑에 빠지면서 임무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사라져간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이명세는 더이상 서사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서사의 공백을 대신하는 것은 활동사진의 쾌락이다. 고속촬영과 저속촬영, 프리즈 프레임(정지화면), 색감과 명암의 급격하고 다양한 변화를
서사를 대신하는 활동사진의 쾌락, <형사 Du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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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아내와 남편은 불륜을 저질렀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낯선 고장 삼척으로 달려와 혼수상태인 아내와 남편을 볼 때까지도. 아마 그들은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낯선 곳에서, 절대로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자기를 속인 배우자를 간호하면서, 그들의 변명조차 듣지 못하면서,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수와 서영은, 일상에서 만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장 혹독한 고통의 순간에 만난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니’라는 인수의 말처럼,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만약 이곳이 서울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또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먼길을 찾아온 후배에게, 취한 인수는 그냥 가라고 말해야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
결코 외면할 수는 없는 이탈과 내쳐짐의 정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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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말이지만, 배우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실사까지 파고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발전상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배우 없는 영화’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좀 호들갑스러울 수는 있으나, 불가능하다 도리질만 할 수 없는 것은 <스튜어트 리틀>이 내비친 가능성 때문이다. 사람 세상에 입양된 쥐의 모험담이 애니메이션 아닌 실사로도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이 1억달러의 제작비가 쓰일 만한 보람직한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사실. 여기서 사람은 기껏 조연이거나 배경 그림에 불과하다.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가상의 캐릭터 스튜어트, 립싱크 솜씨가 훌륭한 고양이 스노벨과 그 패거리들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여전사 지나 데이비스나 영국 출신 연기파 휴 로리에게 눈길을 보내는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스튜어트 리틀>이 일궈낸 기술혁명은 그렇듯 눈부시다. 풍부한 표정연기와 다이내믹한 액션연기를 소화하는 스튜어트의 생생함은, 그것이 살아
어린 관객에게 전하는 ‘친화적인’ 메시지, <스튜어트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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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깊이, 오래 생각하면 성자나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소나티네>를 보면 성자나 철학자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소나티네>는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가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이다. 언젠가 기타노는 자신의 최고작으로 <소나티네>를 꼽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랫동안 죽음에 홀려 있던 자기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머리에 지그시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기타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세번 반복되는데 한번은 총알없이 하는 장난이지만 두번은 뻥 뚫린 두피 사이로 피가 용솟음치는, 몸서리쳐지는 장면들이다. 그는 왜 이런 끔찍하고 살벌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일까? 다케시는 야쿠자 보스 무라카와를 통해 그 의미를 돌아본다.
기타노 자신이 연기하는 무라카와는 처음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작은 조직의 보스지만 마음에 안 들면 최고 보스의 오른팔이라도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 <소나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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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선 누구나 슬퍼하고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대개는 슬픔을 추스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맞닥뜨리면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밥도 먹고 웃고 떠들기도 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음도 세상살이의 한 부분이고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장의사, 말만 들어도 별로 유쾌하지 않다. 섬뜩해서 오싹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런데 장의사에겐 죽은 사람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혀 초상을 치르는 일이 ‘일상사’다. “사람은 마지막 떠날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할아버지에게 가업으로 하는 장의사가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수긍할 만하다. “장의는 죽은 사람의 몸만 다루는 게 아니라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락실 타령을 하는 망나니 같은 손자에게 장의일을 권하고, 여관방에서 목을 매 죽으려던 철구가 낙천장의사를 찾아오면서부터, 할아버지의 투철한 ‘장인정신’은 드러나기 시작한다. 투덜거리지만 마지 못하는 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끌어낸 얕은 코미디, <행복한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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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게도 장선우 감독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옮겨오면서 세 장으로 나누어, 각각 첫째 구멍, 둘째 구멍, 셋째 구멍이란 원작에 없는 중간제목을 붙였다. 논란과 대결을 의도한 장정일의 말썽 많은 원작에 장선우는 자기식의 방점을 찍어 각색한 것이다. ‘구멍’의 물리적 의미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난 너의 세 구멍과 전부 하고 싶어.” J라는 남자는 아예 구멍에 눌러앉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그는 불편하다. 그곳은 모두 ‘거짓말’이다. 여관에 들어와서야 마음이 놓인다. 별로 돈이 없어보이지도 않는데, J는 굳이 여관만 전전한다. 그것도 땟국물 전 이불과 값싼 조명이 달린 눅눅한 여관만.
그러고 보면 여관도 구멍이다. 그곳에서의 습한 기억을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지만, 짐짓 보이지 않는 척하는 그래서 세상에는 없는 척하는, 세상의 구멍이다. 장선우 감독은 <우묵배미의 사랑>과 <경마장 가는 길>에
성인됨을 상실한 성인남자의 비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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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낯선 사람과의 질펀한 섹스다. 두 번째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친 섹스다. 접촉의 종류는 다르지만 오르가슴의 종류는 마찬가지라고 전제된다. 두 가지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잠깐, 또 하나의 전제를 빼먹었다. 판단의 주체는 남성이며 여성은 객체다. 두명의 여자는 각각의 섹스를 대표하며 각각의 섹스에 빠져 있다. 삼각관계의 중심은 늘 남자 한명이다. 감독·각본의 홀리오 메뎀은 이 상태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는 상식적인 혹은 교과서적인 결론을 갖고 있다. 교과서로 장편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주체인 남성에게 혼돈을 일으킨다. 첫 번째 종류의 섹스가 남긴 흔적을 기억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내 생애 최고의 섹스’였던 추억이 물리적 잉여가 돼 나타나자 남자는 혼비백산한다. 끝내 어디론가 도망쳐버린다. 깊은 사랑의 섹스에 빠져 있던 여자는 영문도 모른 채 후폭풍을 맞는다. 여자는 상처를 씻고자 먼 여행길에 나선다.
소설가 로렌조(트리스탄 우
신비롭고 관능적인 모험,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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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 충격을 주었던 조지 A. 로메로는 그 삼부작 이후 20년 동안 좀비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사이 영화 속의 좀비들은 빠르고 영리하고 코믹한 존재로 진화했고, 더이상 자신의 조상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랜드 오브 데드>는 노인네의 허무한 발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느릿느릿 걷는 게 전부인 저능아 좀비. 로메로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오래전 “인간이 가진 능력의 5%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던 클래식한 좀비들을 거느리고, ‘좀비 삼부작’의 리메이크가 아닌, 지금 이순간의 영화를 만들었다.
되살아난 시체들이 사람을 습격하기 시작하고 몇년이 지난 언젠가. 라일리(사이먼 베이커)는 좀비들이 점령한 마을에서 식량과 물품을 가져오는 보급부대의 군인이다. 그는 좀비들에게 이성과 의사소통 능력이 생기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북쪽지역으로 떠나려는 라일리. 그러나
가볍고 통쾌한 오락영화, <랜드 오브 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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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주관객층으로 잡고 어린이를 다룬, 어른이 만든 ‘어린이’영화에서 소박한 현실성을 찾으려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에 구비된 색색의 아이스크림처럼, 한편의 ‘어린이’영화 속에는 가족간의 사랑, 우정, 꿈, 희망, 모험이 갖가지 빛을 발하며 어린이들의 구미를 당기기 마련이다. 여기에 정의로운 아이들과 타락한 어른의 대립구도를 통해 아이들의 주눅 든 감수성에 일시적 충만감을 준다면, 현실을 완벽히 차단하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어린이영화가 된다.
<에밀과 탐정들>은 전세계적으로 번역되어 수많은 어린이 독자를 확보한 에리히 케스트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심부름을 하려다 도둑한테 돈을 빼앗긴 소년이 친구들과 힘을 합쳐 도둑을 잡는다는 원작의 이야기는 엉성하고 단순해졌지만 한층 화려해진 스케일의 영화가 되어 부활한다. 갑부의 아들부터 가난한 집시까지 다양한 계층의 어린이들로 구성된 에밀의 친구들. 아이들은 그 극명한 생활수준의 차이에
정의로운 아이들 vs 타락한 어른, <에밀과 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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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수도원, 벽에 그리스도상을 못질해 걸자 피가 흘러나오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니먼 형사(장 르노)는 벽에 묻힌 사체를 발견한다. 레다 형사(브누아 마지멜)는 예수 같은 복장을 하고 피흘리며 이상한 말을 하는 남자를 병원으로 데려갔다가 검은 옷을 입은 수도승의 공격을 받는다. 니먼과 레다는 기이한 사건들간의 유사성을 포착하고, 함께 수사에 나선다. 계속 사체를 발견한 두 사람은 예수를 닮은 한 남자와 그를 따르는 12명의 사람들이 일정한 규칙과 암호에 따라 살해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서 기호학을 연구한 메리(카미유 나타)의 도움으로 비밀은 점차 베일을 벗고, 괴력의 수도승들의 위협 속에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7개 봉인의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휩쓴 <다빈치 코드>의 모태가 되었고, 또한 <크림슨 리버2: 요한계시록의 천사들>의 태동을 도왔다. <크림슨 리버2…>는 영화판 <
봉인의 미스터리, <크림슨 리버2: 요한계시록의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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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부부의 저녁 식탁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애지중지 기른 외동딸이 결혼할 남자라며 데려온 이는 전도유망한 흑인 청년 시드니 포이티어.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던 그들에게도 극복하지 못하는 편견이란 것이 있어서, 피부색이 다른 예비 사위와의 대면은 불편하기만 하다. 인종문제가 첨예하던 1960년대에 등장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당시 영화계 안팎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른 인종과의 결합이 생경하지 않은 지금, 이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옳을까. <게스 후?>의 제작진은 기발하다면 기발한 ‘트위스트’를 시도했는데, 흑인 가정에 백인 사위가 들어오는 설정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또 주제의 무게를 덜어낸 자리에 코믹한 에피소드를 빼곡히 채워넣었다.
<Guess Who Comes to Dinner>라는 원작영화의 제목을 싹둑 잘라낸 가벼
주제의 무게를 덜어낸 코믹한 에피소드, <게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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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모코가 그리 불량한 학생은 아니다. 술과 담배를 하는 것도, 거리에서 원조교제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로코코 시대의 복장에 푹 빠져 있을 뿐이다. 하늘하늘한 드레스만을 입는 모모코는, 자신이 18세기 프랑스의 공주 혹은 귀족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언제나 드레스를 입고, 로로코 시대의 귀족들처럼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한다. 나만 즐거우면 됐지, 가 모모코의 주장이다. 그래서 모모코는 친구가 없다.
전직 야쿠자인 아버지가 팔다 남은 짝퉁 베르사체를, 인터넷으로 팔아치우려는 모모코. 그걸 사겠다고 찾아온 이치코는, 시커먼 화장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은 여고생 폭주족이다. 너무 착하고 마음이 약해서 늘 왕따였던 이치코는, 우연히 만난 폭주족 리더 아키미에게 반해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언제나 얼굴을 찡그리며 껌을 씹고, 목소리를 깔면서 침을 찍찍 뱉는다. 말대꾸를 하거나, 짜증이 나면 바로 박치기를 한다. 그런데 왜 이치코는 모모코의 친구가 되는 것일까?
<불량
공주와 폭주족이 한패가 되다, <불량공주 모모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