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트 페어런츠2>의 그렉(벤 스틸러)은 남자 간호사다. 결혼을 앞둔 그는 몹시 심란하다. 전직 CIA 출신이자 보수적인 장인어른 때문이다. 이미 4년 전 장인의 거짓말 탐지기에 당한 경험이 있는 그는 부모들의 상견례가 두렵다. 일단 전업주부 아버지와 섹스 테라피스트 어머니를 각각 변호사와 의사로 위장은 해놨지만, 계획은 늘 엎어치라고 있는 게 아니던가. 우선 그렉의 부모님인 포커 부부는 너무 개방적이다. 가슴까지 훤히 드러낸 어머니의 패션이나 포옹과 키스가 기본 인사법인 아버지는 첫 만남에서 온건하고 보수적인 사돈 번즈 부부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번즈 부부는 ‘모범 부부상’감이지만 섹스에 관한 한 입을 꾹 다문 갱년기 커플이다. 이들 가문의 충돌은 불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 충돌에는 현실 감각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포커씨는 상견례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들의 첫경험을 떠들어대고 번즈씨는 남의 집안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숨기거나 사위의 사사로운 과거를 캐낸다. 장
가족간의 화해와 갈등을 표면적으로만 그린 코미디, <미트 페어런츠2>
-
<역전의 명수>는 기획 단계부터 제목으로 유명해진 영화다. 한때 제목을 사수하기 위해 타 영화와 공방을 벌이기도 했던 만큼 이 제목이 갖는 의미는 크다. ‘역전’ 국밥집 아들 ‘명수’가 인생 ‘역전’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함축해 보여주면서, 스스로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통쾌한 한방’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게 하니까. 공감과 대리만족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켜줄 것이냐가 자칭 ‘휴먼코미디’ <역전의 명수>의 관건이었다.
영화의 인물과 공간은 상징적이다. 의리에 살고 죽는 실속없는 인생 명수(정준호)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쌍둥이 동생 현수(정준호)를 위해 무조건 양보하고 희생한다. 복잡한 여자관계도 대신 정리해주고, 사법고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군대도 대신 가고, 출세에 지장없도록 감옥도 대신 간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다. 그런 명수에게 베일에 싸인 여인 순희(윤소이)가 접근해, 은행을 털자고 제안한다. 명수는 얼떨결에
예측 가능한 소동을 통한 예측 가능한 성찰, <역전의 명수>
-
실비아 플라스는 그녀의 책상에서 천사를 찾으려고 했다. 시로 세속의 성공을 누리길 원했고, 그 책상 곁에는 연인으로서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는 동반자가 서 있기를 꿈꾸었다. 재능있는 소녀는 숱한 시험을 통과하고 장학금을 따낸다. 그러나 결벽증적 투지는 자주 그녀를 죽음과 한뼘 거리까지 몰아세웠다. 스물한살에 자살을 기도했다 실패한 실비아(기네스 팰트로)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훗날 계관시인이 된 남편 테드 휴스(대니얼 크레이그)를 만난다.
영화는 여기부터다. 애초 <톰 앤 비브> <헨리와 준> 같은 문인 전기영화와 운을 맞추어 <테드와 실비아>라는 가제로 출발했던 <실비아>는 남편에 대한 동업자적 시기와 성적인 질투심으로 출렁거린 시인의 결혼생활에 집중한다. 테드 휴스는 정말 부정을 저질렀을까? 아니면 그녀의 병적인 의심이 테드로 하여금 배신을 선택하도록 내몰았을까? 실비아 플라스의 충실한 팬이라는 크리스틴 제프스
여성 문인의 파괴와 쇠락, <실비아>
-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더이상 이 세상에, 혹은 그 어느 세상에도 그가 부재한다는 깜깜한 절망감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세계 어딘가에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면, 살아남은 자는 견딜 수 있다. <화이트 노이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그런데 죽은 이의 음성은 산 자의 꿈이나 무당을 통해 들려오지 않는다. 그것은 괴기한 형상과 목소리로 컴퓨터와 라디오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기록과 녹음을 통해 분석되는 죽은 자의 소식. 그것은 더이상 낭만적이거나 반갑거나 슬프지 않고 다만 소름끼친다.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존(마이클 키튼)은 어느 날부터인가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자동응답기와 라디오를 통해 음성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에 흐릿한 형상으로 나타나 죽음의 위협에 당면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 영화에서 존을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현대 과학기술의 무서운 힘, <화이트 노이즈>
-
-
잠이 안 온다고 불평하는 남자를 여자가 위로한다. “누구나 가끔은 잠 못 이뤄.” 그녀를 향해 돌아누우며 남자가 말한다. “나는 1년 동안 못 잤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고갱이 그린 예수처럼 여윈 몸과 움푹 팬 눈자위는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증언한다. 원인 모를 장기적 불면에 시달리는 기계공 트레버 레즈닉 역의 크리스천 베일은 185cm의 몸을 55kg까지 감량했다. 체중조절도 이쯤 되면 스턴트다. 원래 깡마른 배우를 쓰는 편이 쉽지 않았을까? 하지만 <머시니스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을까?”라고 절실히 묻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영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이 평소 모습을 기억하는 스타가 필요하다.
밤새 깨어 있는 트레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읽지 않을 때면, 공항 24시간 커피숍의 웨이트리스 마리아(아이타나 산체스 지온)와 창녀 스티비(제니퍼 제이슨 리) 곁에서 안식을 구한다. 일터에서 그는 노동법을 거론할 만
영화광이 조립한 공포 기계, <머시니스트>
-
<블랙아웃>은 필립 카우프만의 연출 작품이다. 그가 만든 <외계의 침입자>(1978)나 <필사의 도전>(1983)은 수준급이다. 그는 할리우드 대중주의와 장인의 연출력을 능수능란하게 교합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만한 감독이다. <블랙아웃>은 노련한 그 장인의 손길이 스릴러 장르에 미쳤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게다가 새뮤얼 잭슨, 애슐리 저드, 앤디 가르시아로 엮은 삼각편대는 기대할 만한 배역진이다. 영화에서 그들의 연기는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영화의 방만한 구조다.
제시카(애슐리 저드)는 끔찍한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나쁜 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경찰계의 대부인 존 밀스(새뮤얼 잭슨)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강력계 경관이 된다. 시기의 눈총들이 거세지만 제시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동료 경찰 마이크(앤디 가르시아)만은 그녀를 이해
방만한 구조의 스릴러 영화, <블랙아웃>
-
<쿨!>은 빚을 대신 받는 청부업자가 영화제작에 뛰어드는 코미디 <겟 쇼티>의 속편이다. 10년 만에 제작된 이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조지 클루니의 표적> <재키 브라운> 등에 재료를 제공한 작가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에 기대고 있다. 그렇다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들이닥치는 난관, 궁지에 몰려도 냉정한 주인공, 하나씩 장애물을 격파하는 묘기. 또 한번 존 트래볼타를 기용한 <쿨!>은 그런 공식에 충실하고자 한다.
빚받으러 LA에 왔다가 영화제작자가 된 갱스터 칠리(존 트래볼타)는 쓸데없이 속편이나 강요하는 할리우드에 염증을 느껴 영화판을 떠나려고 하고 있다. 때마침 친구 토미(제임스 우즈)가 러시아 마피아에게 살해당하자 칠리는 미망인 이디(우마 서먼)를 도와 파산 직전이었던 토미의 음반사업에 뛰어든다. 그가 발견한 신인은 악덕 매니저에게 붙들려 고생 중인 린다 문(크리스티나 밀리언). 칠리는
<겟 쇼티>의 속편, 이번에는 음반시장이다, <쿨!>
-
땅에서 발만 떼도 하늘이 뱅뱅 도는 어지럼증을 앓고 있는 엄마(고두심)는 수십년째 해남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막내딸(채정안)의 결혼날짜가 다가오자, 엄마의 한숨은 깊어간다. 목포 시내에서 열릴 결혼식에 무슨 수로 참석한단 말인가. 젊어서 사별한 남편은 아내의 꿈길에 찾아와 능청맞게 등을 긁어달라 하고는, 걸어서라도 막내 결혼식에 꼭 가라는 당부를 전한다. “밥 있제? 밥 좀 도라.” 잠에서 깬 엄마는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며칠은 족히 걸릴 긴 여정에 몸을 싣는다.
몇해 전 <인간극장>에 소개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는 <엄마>는 ‘엄마가 가는 길’이 주인공인 영화다. 치명적인 어지럼증을 극복하고, 엄마는 어떻게든 딸의 결혼식장에 당도할 것이다. 설령 그 길이 악명 높은 월출산 구름다리로 이어져 출렁거리고, 비바람이 몰아쳐 시야가 막히고 걸음을 내딛기 힘들어도, 걱정된답시고 따라나선 자식들이 저희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꼴을 보는 일이 있어도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길 위의 드라마, <엄마>
-
<더티 댄싱2>는 한물간 무용수들의 재기담이다. 천재 안무가 알렉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무용단은 추모공연을 계획한다. 한번도 세상에 내보이지 못했던 알렉스의 작품 <침묵의 몸짓>을 소화해낼 수 있는 무용수는 초기 멤버였던 크리사(리사 나이미)와 트래비스(패트릭 스웨이지), 맥스(조지 드라 페나)뿐. 7년 전 <침묵의 몸짓>을 연습하던 중 사고로 뿔뿔이 흩어졌던 세 사람은 다시 한번 도약을 꿈꾸며 연습실에 모인다. 하지만 지난날의 용병들은 늙고 지친 몸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남몰래 트래비스의 아이를 키워온 크리사와 스스로의 에고로 가득한 트래비스는 ‘파르되(주인공들의 2인무)’를 온전히 소화할 수 없고, 맥스는 늙은 무용수로서의 육체적인 한계에 다다른다. 세 사람은 과거를 극복하고 또다시 무대 위에서 만개할 수 있을까.
<더티 댄싱2>는 낡은 퇴물들이 또 한번 생의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한 영화다. <열정의 무대
한물간 무용수들의 재기담, <더티 댄싱2>
-
20대를 넘긴 여성들의 최대 고민은 무엇일까. 성적 욕구? 경제적 독립? 사랑? 현실에서는 결혼이 이 세 가지 고민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 인식되지만, 사실 결혼은 이 모두를 불만족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모든 고민을 해결해줄 동화 속의 왕자님이 결코 존재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그 왕자님과의 결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수많은 그녀들의 이야기에는 성과 경제와 결혼이 함께 붙어다닌다. 그것이 과장된 성 그 자체만 존재하는 남성 중심적인 ‘침대 이야기’들과 다른 점일 것이다. 역시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영화의 내용은 여성의 성이 아니라 위의 고민을 한번에 해결하려는 여성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갑작스런 독립을 하게 된 세 여성들. 그녀들에게는 480유로와 낡은 차 한대뿐이다. 부동산을 전전하지만 그 돈으로는 마땅한 집을 찾을 수 없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 그
싱거운 신데렐라 성공담, <걸스 온 탑2>
-
<잔다라2>의 영어 제목은 도덕적 죄를 뜻하는 ‘The Sin’이다. 타이어 제목 또한 ‘불륜’ 혹은 ‘간통’을 의미한다. 미리 말하면, <잔다라2>는 <잔다라> 속편이 아니다. <잔다라>는 적나라한 성애묘사로 1966년 출판죄자 곧 판금됐던 타이의 소설. 2001년 흥행감독 논지 니미부트르의 동명의 영화 또한 검열위원회의 3심을 통해서야 개봉 허가를 받아냈을 정도로 뜨거운 문제작이었다. 한국에서 개봉한 몇편의 타이영화 중 <잔다라>는 종려시의 육체를 앞세운 탓에 제법 인지도가 있는 편. 그런 후광을 빌리기 위해서였을까. 타이엔 없는 타이영화 <잔다라2>가 한국에서 개봉하게 됐다.
재밌는 건 수입사가 제멋대로 붙인 제목이지만, 내용이 턱없이 다르진 않다는 점. 영문 모르면 현대판 버전 혹은 속편이라고 믿을 법도 하다. <잔다라>에는 매맞고 자란 저주받은 아들 잔이 커서 아버지의 둘째부인 분령과 정을 통
<잔다라>의 가짜 속편, <잔다라2>
-
미스 USA 선발대회는 1편에서 끝났다. 다시 미인대회에 나갈 수는 없을 테니, 샌드라 불럭이 반짝거리는 보석에 명품 핸드백을 들고 미모를 뽐낼 기회는 없어진 것일까? 그럴 리가. <미스 에이전트> 때 기미를 보인 샌드라 불럭의 공주병 증세가 본격적으로 개화한다. <미스 에이전트2: 라스베가스 잠입사건>에서 그레이시(샌드라 불럭)는, 미스 USA 대회로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현장근무를 하기가 불가능해진다.
문제는 세계 평화에 앞장서는 초절정 인기녀 그레이시가 실연을 당했다는 것. 미인대회 우정상에 빛나는 그녀는 전편의 미남 수사관 에릭(벤자민 브랫)에게 차인다(그것도 전화로). 상사가 현장 근무 대신 제안하는 것은 ‘FBI 홍보요원’이 되라는 것. 실연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그레이시는 상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FBI의 ‘얼굴’이 된다. 한편, 너무 터프해서 팀워크에 문제가 있는 여자 수사관 샘(레지나 킹)은 그레이시와의 마찰 끝에 그레이시가 TV쇼에 출연해
여성 버디무비, <미스 에이전트2: 라스베가스 잠입사건>
-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클루리스> <엠마>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통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오만과 편견>을 각색한 <신부와 편견>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형식(뮤지컬)과 문화권(인도)을 초월해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의 거린다 차다 감독의 <신부와 편견>이 극장과 TV, 동시 개봉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소개된다.
인도 암리차르의 박시 가문에는 아름다운 네딸이 있다. 박시가의 어머니는 네딸을 돈 많은 집에 시집보내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들 앞에 부유한 독신남 발라지(네이븐 앤드루스)와 다아시(마틴 핸더슨)가 나타난다. 큰딸 자야는 발라지와 첫눈에 반해 사랑을 키워가지만, 미국의 호텔 재벌 다아시는 둘째딸 랄리타(아이쉬와라야 라이)와 서로 끌리면서도 티격태격한다. 박시가의 어머니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영화의 발리
인간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즐거움, <신부와 편견>
-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린이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가장 기본적인 성공요건은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집중력이 산만한 어린이들을 90분여 동안 그 작품에 몰입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난제를 풀기 위해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원작이 만화이고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극장용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유희왕>은 1996년 일본 만화주간지 <소년점프>에 연재한 이래 총 38권의 단행본과 총 224화 분량의 TV시리즈, 게임소프트 회사 코나미에서 출시되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희왕 카드게임’ 등의 원천소스가 된 만화이다. 극장판 <유희왕>은 원작 만화의 시작과 똑같이 학교에서 거의 왕따 수준의 나약한 소년 ‘유희’가 게임가게를 하는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천년퍼즐을 풀면서 ‘어둠의 유희’가 등장하게 되는 시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유희’가 천년퍼즐을 풀자 5천년 전 세상의
원작 팬들에 대한 확실한 팬서비스, <유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