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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년 만이다. 느물느물한 한량 같은 조지 클루니와 칭얼거리는 크리스 오도넬, 우직한 아놀드 슈워제네거, 차마 보기 민망했던 알리시아 실버스톤과 우마 서먼이라는 스타 군단을 이끌고도 ‘재앙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던 <배트맨 앤 로빈> 이후로 <배트맨> 시리즈는 완전히 끝나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워너브러더스는 이 어둡지만 매혹적인 슈퍼히어로를 8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고,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한 채 크리스토퍼 놀란이 메가폰을 잡은 <배트맨 비긴즈>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팀 버튼이라는 막강한 대선배와 대런 애로노프스키라는 경쟁자를 모두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배트맨 비긴즈>가 무엇보다 리얼리스틱하게 보이길 바랐으며 주인공의 이중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적인 슈퍼히어로를 창조했다고 여러 차례 단언했다. 그 말대로 <배트맨 비긴즈>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믹북의 판타지적 성격보다는 성장드라마
여름영화로서의 화끈한 엔터테인먼트, <배트맨 비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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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맡은 앨리슨 오웬은 ‘헨리 8세, 크롬웰 등 여러 역사적 인물을 검토해 보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만큼 현대적 감각에 맞는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요, 상상력으로 역사의 틈을 메운 문학작품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불러세워 회고하는 것은 어떤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 엘리자베스에 대해 문외한이었다고 고백하는 인도출신 감독 세카르 카푸르의 관점은 어떤 것이며, 그는 엘리자베스라는 한 권력자를 어떻게 서술하려는 것일까?
<엘리자베스>에서 무엇보다도 도전적인 관점은, 확인된 바 없이 소문으로만 남았다는 엘리자베스의 사랑이며 그녀의 상징과도 같이 알려진 처녀성일 것이다.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며 음모스릴러의 진면목을 보여주던 영화가 가장 밝게 스포트라이트를 두는 부분은 자연의 대지에 맘껏 취해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다. 이 생기발랄한 처녀에게 사랑이 그냥 지나쳐 갔다는 사실을 감독은 아마 믿을 수 없었던 모
영웅적인 삶을 꿈꾸며 살다간 여성, <엘리자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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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칸이 3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든 <권태>와 <로베르토 수코>는 아무래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양친살해를 시작으로 무심한 듯 연쇄살인을 이어가는 실존인물 ‘로베르토 수코’에 대해 감독은 동정도 하지 않지만 비난도 하지 않는다. 범죄로 범죄적 세상에 맞선다고 항변하는 그의 행위와 표정을 처연하게 비출 뿐이다. <권태>에선 성기로 권태스런 세상을 맞받아치는 17살의 소녀 세실리아를 그저 바라본다. 말은 40대 철학교수 마르땅을 통해 철철 흘러넘친다. 세실리아에게 포섭돼 ‘계몽’받기에 이르는 그는 자신의 전 부인에게 “섹스를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해… 입보다 성기의 표정이 더 풍부해”라고 소녀를 묘사한다. 살인하는 수코나 섹스하는 세실리아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사실 ‘생각’을 보여주기란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이들은 생각하는 상대방이나 관객을 압도한다. 생각없는 세실리아는 생각 많은 철학자 마르땅을 완벽히 압도한다. 원작소설에서
표정 많은 성기가 말 많은 생각을 훈화하는 코믹애정극,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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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18일.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덜컹거리는 밴을 타고 텍사스를 가로질러 콘서트장으로 향한다. <스위트홈 앨라배마>를 흥얼거리던 에린(제시카 비엘)은 대마초를 피우는 남자친구 캠퍼(에릭 벌포)와 다투고, 뒷자리의 모르간(조너선 터커)은 이미 마약에 취했는지 나사가 빠져보이고, 앤디(마이클 보겔)는 히치하이킹으로 이들과 합류한 히피, 페퍼(에리카 리어센)와 화끈한 스킨십에 몰두해 있다. 어두운 세상의 이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일행의 쾌활함은 예정된 지옥과 대비되고, 자욱한 먼지와 작열하는 태양은 이후의 어둠을 예고하는 듯 묘한 한기를 내뿜는다.
에린 일행이 흥겨운 여정 한복판에서 정체불명의 소녀를 발견하고 차를 세우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이들은 넋이 나간 소녀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인근 마을을 향해 방향을 틀고, 이에 미쳐 날뛰던 소녀는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피와 뇌수를 뒤집어쓴 일행이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차 안
30년만에 부활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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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문제없어요.” 영화가 시작되면 부부인 듯한 커플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답과는 달리 이들은 문제없는 부부의 모습이 절대로 아니다. 결혼 5년째인지 6년째인지 옥신각신하질 않나, 섹스 빈도를 묻는 상담가의 말꼬리를 잡으며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나. 뚱한 얼굴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인터뷰의 모양새로 문을 연 영화는 이후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의 터프하고 섹시한 판타지 버전으로 돌변한다. 감전되듯 첫눈에 반해 뜨겁게 사랑했지만, 급속히 열정이 식고 권태에 빠진 이 부부는 결국 서로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만다. ‘그동안 속고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나서, 그 참에 식칼이나 기관총 같은 살벌한 무기까지 들려준다면,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가 라이벌 조직에 소속된 킬러이고,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면, 더더욱 사랑이나 화해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스터 &
두 주연배우의 카리스마 복습편,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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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SF영화에 등장하는 우주는 흔히 지구보다 훨씬 고도의 문명사회로 설정되곤 한다. 이 첨단의 우주공간은 처음엔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감정이 배제된 삭막함이나 첨단기술문명의 비인간성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으로 영화를 끝맺는 것이 흔한 ‘공식’의 하나다. <포트리스2>도 이런 이야기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우주를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곳, 탈출해야만 하는 곳으로 설정한 것은 좀 달라 보이는 대목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92년에 만들어져 제법 관심을 끌었던 <포트리스>의 후속편이다. <포트리스2>는 전편 <포트리스>에서 미래사회의 인구억제정책을 따르지 않고 둘째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지하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한 존의 가족들과 이들을 추적하는 맨텔사 요원들의 숨가쁜 공방전으로 시작한다. 결국 존은 붙잡혀 갇히는데 <포트리스2>의 감옥은 우주에 있다. 이곳에서 문명의 이기와 첨
공식이 뻔한 SF, <포트리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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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듀스의 멤버 김성재의 죽음으로, 세상은 한동안 술렁였다. 범인으로 지목된 애인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고, 의혹을 남긴 채 종결되고 잊혀진 사건. <진실게임>의 아이디어는 김성재의 의문사에서 출발했다. <아빠는 보디가드>의 김기영 감독은 매스컴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인기 가수와 열성 팬의 관계”에 집중해 2년간 시나리오를 쓰고, 2년의 시간을 들여 영화로 제작했다. 98년 영화판권담보융자지원 대상작.
그러나 <진실게임>은, 특정인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실재 사건에서 영감을 얻고 상상력으로 살을 붙인 가공의 스토리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을 역추적해가는 미스테리 스릴러다. 인기 절정의 가수 조하록의 죽음, 앳된 여고생의 자수로 시작되는 영화는, 피의자인 소녀와 참고인들의 진술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올라간다. 조하록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팬클럽 멤버들과 신보판매 및 가요순위에 팬클럽을 동원하는 조하록의 공생관계, 양쪽 모두를 착취하는 비양
섹스와 폭력을 통하지 않으면 이뤄지는 게 없는 세상,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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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리슨은 자본주의의 성공담과 추락담을 한몸으로 보여준 실존인물이다. 95년 당시 불과 28살이었던 그는 출중한 투자 수완으로 출세 가도를 달렸지만, 불법투자로 영국의 유서깊은 민간은행 베어링스를 파산에 이르게 한다. 대단히 이재에 밝았던 그는 감옥살이를 또다른 기회로 삼아 9억원의 판권료를 받고 자서전 <악덕 거래인>을 썼다. 이원 맥그리거를 자본주의의 실패한 영웅으로 내세운 영화 <겜블>은 바로 그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닉 리슨은 너무 많은 것을 원했던 사나이다. 성공을 향한 욕망은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그를 단숨에 세계 금융계를 주무르는 거물로 만들어놓는다. 하지만 리슨이 짜릿한 성공을 거두는 순간 이미 아찔한 심연이 그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회사와 증권가에서 그의 성공을 신화로 만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그는 안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모한 그의 욕망이 그를 삼켜버린 것이다. “오늘은 5천만달러를 잃었어”라는 리슨의 독백은 파멸의 속도를
모든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느끼는 섬세한 공포, <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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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3부작 완결편인 <숨결>은 ‘앎의 의지’와 ‘알림의 의지’가 조화롭게 맞닿은 다큐멘터리다. <낮은 목소리>엔 앎의 의지가 앞섰고 <낮은 목소리2>엔 알림의 의지가 카메라를 장악했다면, <숨결>에서는 두 의지가 합의를 이루어 박제된 역사를 망각의 유령으로부터 풀어놓는다. 그것이 역사의 복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짓밟힌 채 질뻔했던 들꽃들이 이름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2편이 ‘나눔의 집’ 언저리를 맴돌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을 중심에 놓았던 것과는 달리 <숨결>은 그들의 과거를 채록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1,2편의 등장인물이 비슷했던 것과는 달리 <숨결>에는 겹치는 인물이 거의 없다. <숨결>과 전편들을 연결하는 인물은 이용수 할머니인데, 흥미로운 건 이 할머니가 인터뷰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는 사실이다. 이미 자기의 존재를 드러냈던 이용수 할머니는 감독 대
<낮은 목소리> 3부작 완결편,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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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성월동화>의 홍보를 위해 방문했던 장국영에게 <색정남녀>의 개봉소감을 묻자 그는 단박에 ‘기쁘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이어, “색정이라는 제목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에로물은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렇다. <색정남녀>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결코 에로물이 아니다. 96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일찌감치 국내 개봉예정이었지만 심의문제로 오랫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주인공 아성은 진지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감독이다. 그 고뇌의 초상은 멀리는 펠리니의 <8과 1/2>에서, 가까이는 홍콩 신세대 감독인 갈민휘의 <첫사랑>, 그리고 여균동의 <죽이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이미 익숙해진 것이지만 결코 낡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원래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대로, 곳곳에 숨어 있는 풍자와 패러디도 천년을 넘겨 개봉한 영화의 가치를 보
풍자와 패러디로 반환의 현실을 돌파해 나가다, <색정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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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카터>는 흑백의 링에서 영화의 제1라운드를 연다. 삽시간에 우리의 눈길과 호흡을 휘어잡는 그는 루빈 ‘허리케인’ 카터. 성난 검은 황소, 혹은 뜨거운 맥박이 뛰는 회오리바람. 사각의 정글을 휩쓸고 포효하는 그는 과연 허리케인처럼 광포하며, 그럼으로써 아름답다. 그 폭풍을 삼면의 벽과 쇠창살에 둘러싸인 옹색한 어둠에 가둔다면? 폭풍은 잦아드는 대신 그의 내면에서는 숲을 쓰러뜨리고 해일을 일으키며 울부짖으리라.
첫 눈에도 틀림없다. 이 청년에게 권투는, 하릴없는 분노가 자기 몸을 부서뜨리지 않도록 동력으로 전환하는 발전기 같은 장치다. 백인의 성추행에 맞서다 사춘기를 소년원에 파묻고도 빚이 남아 청춘의 한때를 매장당한 카터는 칼을 갈 듯 육체와 정신을 숫돌에 벼른다. 그를 쫓아다니며 올가미를 거는 인종차별주의자 델라 페스카 형사의 눈에는 모든 흑인은 셋 중 하나다. 범죄를 계획하고 있거나, 현행범이거나, 이미 죄를 짓고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그런 현실에 대한
고립이 아닌 ‘관계’에 관한 영화, <허리케인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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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의 귀신계는 확실히 동세서점(東勢西漸)의 형국이다. 흡혈귀나 미라의 후예들이 놀던 자리에 이제 장화홍련형 유령들도 출몰하고 있으니. 생전의 한을 풀어줄 귀인을 학수고대하며 슬픈 넋으로 인간 세상을 부유하는 이 착한 동양계 귀신들은 이미 <사랑과 영혼>(1990) 때 유사종을 선보인 바 있으며, 지난해 <식스 센스>에 전격 출연해 서양인들의 얼을 빼놓았다. <스터 오브 에코>도 <식스 센스>의 흥행 퍼레이드에 가리지만 않았어도 꽤 각광받는 동양계 공포 영화가 될 뻔했다. 비슷한데 조금 모자라는 쪽이 늘 열등한 아류로 치부되는 과도한 수모를 당하는 법.
어느 쪽이 벤치마킹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스터 오브 에코>는 <식스 센스>와 사촌지간 정도로 보일 만큼 닮았다. 두 영화에선 모두, 어른보다 더 깊은 눈빛의 아이는 영혼들과 교류하고, 남자는, 아이보다는 한수 아래지만, 어느 날 영적 능력을 깨달은 뒤 낯선 세계
<식스 센스>와 사촌지간, <스터 오브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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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건의 영웅>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비기와 소만의 로맨스도 있고, 화계의 모습은 정신나간 007 같다.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이 홍콩영화는 그러나 어딘지 낯익다. 007의 패러디는 주성치의 트레이드마크였고, 캐리와 소만의 1인2역을 트릭이나 아무런 배려없이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감독은 홍콩의 ‘왕정’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사실 주성치와 왕정 감독의 궁합은 90년대 홍콩 영화산업의 주류였다. <정이건의 영웅>은 새로운 액션 영웅으로 떠오른 정이건을 앞세워 만든, 그러나 여전히 왕정 작품 같은, 복합 장르의 영화다. 정이건의 액션 스타로서의 입지는 국내에서는 <풍운> <중화영웅>으로 알려졌고, 홍콩에서는 무엇보다도 유위강 감독의 <고혹자> 시리즈로 유명해졌다. 사실 문준, 왕정, 유위강이 설립한 ‘최가박당’(BOB)에서 만든 이들 영화는 블록버스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할리우드식 전략을 따라 사양길에 접어든 홍콩영화
정신나간 007같은 종합선물세트, <정이건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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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어드>는 장이모의 필모그래피에서 ‘뚱딴지’ 같은 영화이다. 모더니스트다운 형식미의 추구와 리얼리스트다운 현실 탐구에 땀흘렸던 장이모는 <트라이어드>에서 장르 영화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갱스터를 주재료로 삼아 뮤지컬, 누아르의 성분들을 적절히 뒤섞는다. 하지만 장이모는 장르 자체를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자의식적으로 장르의 관습을 뒤틀지 않는다. 갈등의 고리를 촘촘하게 맺고 푸는,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미덕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반쯤이 돼서야 갈등의 단서가 던져지고 마지막에 가서야 범죄조직 내부의 음모와 다툼이 핵심갈등이었음을 겨우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트라이어드>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이 확연하게 갈리는 영화다. 그렇다고 갱스터 장르의 틀을 빌려 중국 근대사를 재해석하는 것도 아니다. 왜 장이모가 느닷없이 장르의 우주로 들어갔는지, <트라이어드>에 담긴 그의 숨은 뜻을 짐작하기는 쉽지
장르 영화에 대한 매혹, <트라이어드>